전후맥락
존 스튜어트 밀은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다. 빅토리아 시대로 통칭되는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1837~1901)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와 일치한다. 또한 이 시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근대화된 도시 중산층이 확장되고 남녀의 성별분업이 본격화된 때이기도 하다. 남성은 집 밖에 나가 도시를 세우는 일을 하고, 여성은 아이들과 가정을 돌보는 것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이와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존재로 여겨지는 반면, 어머니와 딸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하였다. 여성에게 남편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것과 건강한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을 ‘천사’로 칭송하고 그러한 모습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가정의 천사라는 이름 아래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포로이기도 했다. 가정의 천사로서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지켜야 했고 조금이라도 가정에서 벗어나면 바로 타락했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숙녀’는 정조를 지키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내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당시 남성들이 자랑스러워하던 기사도 정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외모도 갖추어야 비로소 숙녀가 될 수 있었다. 남성들의 한 손에 잡히는 허리는 연약하고, 여성적인 외모의 상징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몸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었다. 질긴 고래수염, 심지어 쇠로 된 코르셋을 입은 그녀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수시로 쓰러졌다. 또 대비 효과로 가는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치마 속에 크리놀린이라는 새장 모양의 틀을 넣어서 부풀렸다. 그런데 크리놀린은 촛불에서 쉽게 불이 옮겨 붙었고 불이 붙은 다음에는 혼자서 빨리 벗을 수도 없는 옷이었다. 이렇게 매일 입고 다니던 크리놀린 때문에 매해 3천 명의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는 2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고전본문
미련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고로 고귀한 사람과 동일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물론 어떤 사람들은 남성의 지배권과, 내가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 정당하지 못한 군주 권력의 형태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군주의 지배권이 자의적이고 그저 일방적인 수탈을 목표로 하는 데 반해 남성의 지배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못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지배가 어디 있겠는가? 인류가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노예로 나뉘는 것이, 가장 머리가 깬 사람의 눈에조차 대단히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지성,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인간의 정신적 발전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의심이나 주저 없이 남성지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볼 때 기존 체제가 더 좋더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둘 중에 하나만 경험해본 마당에, 경험에 의해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녀평등론이 단지 이론에 바탕을 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주장 역시 이론에만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종속이라는 불평등한 제도 아래서,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또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정도의 발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경험만으로는, 만일 우리가 (보다 성평등한) 다른 종류의 제도를 받아들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발전을 더 일찍 이룩할 수 없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다.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본성 때문에 그들이 각각 현재와 같은 기능과 위치를 담당하게 되었고, 또 그것이 본성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현재와 같은 남녀 관계가 유지되는 한, 상식과 인간 정신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어느 누구도 남녀의 본성에 대해 안다거나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사회에서 여성 없이 남성만 살았거나 반대로 남성 없이 여성만 살았다면, 또는 지금처럼 여성이 남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회가 존재했다면, 각각의 본성 속에 들어 있는 정신적, 도덕적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 분명히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여성의 본성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은 확실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말하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종속 상태에 있었던 그 어떤 계급도 상전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의 타고난 성질이 여성의 경우처럼 철저하게 왜곡되는 예는 없다.
-존 스튜어트 밀,『여성의 종속』중에서
토론하기
(1)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여성해방의 논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말해보자.
(2) 밀처럼 남성이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할 때 남성 당사자에게 어떤 어려움과 이점이 발생하는지 이야기해보자.
(3) 밀은 여성의 지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상적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당시 밀이 여성의 선택을 전망할 때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 말해보자.
해설읽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가정이나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있기 마련이며, 이러한 조직에서는 이성적 사고 능력을 더 많이 가진 자가 지배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노예는 아예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아이들의 능력은 아직 미숙하며, 여자는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지만 권위가 부족하다. 때문에 이들이 남성 시민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간주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밀은 그러한 체제는 우연과 습속의 결과일 뿐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도나 관습은 습속의 누적일 뿐이고 행위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것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확실함이나 생생함은 현재의 경험이지 그것으로 과거의 기원을 만들어내거나 미래의 유지를 주장할 수는 없다. 밀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며,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 따라서 누구든 최소한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밀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이 자기발전의 기회와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개별성과 사회성이라는 두 날개를 가지고 살아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밀이 생각하기에 당시 영국은 자본주의사회의 병폐로 인해 인간의 사회성은 훼손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밀이 보기에 개별성은 상황이 달랐다. 현대 사회 속성상 개별성의 입지는 날로 위축되고 있었는데 여성의 경우는 야만적 습속 때문에 더더욱 개별성이 훼손되었다고 보았다. 밀이 생각할 때 개별성은 그 본질상 한번 훼손되면 재생시키기가 매우 어렵고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존속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밀이 보기에 여성의 개별성, 즉 발전의 자유와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장래 영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키워드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 개별성, 공리주의
전후맥락
존 스튜어트 밀은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다. 빅토리아 시대로 통칭되는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1837~1901)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와 일치한다. 또한 이 시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근대화된 도시 중산층이 확장되고 남녀의 성별분업이 본격화된 때이기도 하다. 남성은 집 밖에 나가 도시를 세우는 일을 하고, 여성은 아이들과 가정을 돌보는 것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이와 더불어 아버지와 아들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존재로 여겨지는 반면, 어머니와 딸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하였다. 여성에게 남편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것과 건강한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가정에 헌신하는 여성을 ‘천사’로 칭송하고 그러한 모습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가정의 천사라는 이름 아래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포로이기도 했다. 가정의 천사로서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지켜야 했고 조금이라도 가정에서 벗어나면 바로 타락했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숙녀’는 정조를 지키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내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당시 남성들이 자랑스러워하던 기사도 정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외모도 갖추어야 비로소 숙녀가 될 수 있었다. 남성들의 한 손에 잡히는 허리는 연약하고, 여성적인 외모의 상징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가느다란 몸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었다. 질긴 고래수염, 심지어 쇠로 된 코르셋을 입은 그녀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수시로 쓰러졌다. 또 대비 효과로 가는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치마 속에 크리놀린이라는 새장 모양의 틀을 넣어서 부풀렸다. 그런데 크리놀린은 촛불에서 쉽게 불이 옮겨 붙었고 불이 붙은 다음에는 혼자서 빨리 벗을 수도 없는 옷이었다. 이렇게 매일 입고 다니던 크리놀린 때문에 매해 3천 명의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는 2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고전본문
미련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도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고로 고귀한 사람과 동일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물론 어떤 사람들은 남성의 지배권과, 내가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 정당하지 못한 군주 권력의 형태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군주의 지배권이 자의적이고 그저 일방적인 수탈을 목표로 하는 데 반해 남성의 지배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못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지배가 어디 있겠는가? 인류가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노예로 나뉘는 것이, 가장 머리가 깬 사람의 눈에조차 대단히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지성,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인간의 정신적 발전에 기여한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의심이나 주저 없이 남성지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볼 때 기존 체제가 더 좋더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둘 중에 하나만 경험해본 마당에, 경험에 의해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녀평등론이 단지 이론에 바탕을 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주장 역시 이론에만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종속이라는 불평등한 제도 아래서,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또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정도의 발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경험만으로는, 만일 우리가 (보다 성평등한) 다른 종류의 제도를 받아들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발전을 더 일찍 이룩할 수 없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확실히 대답할 수는 없다.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본성 때문에 그들이 각각 현재와 같은 기능과 위치를 담당하게 되었고, 또 그것이 본성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현재와 같은 남녀 관계가 유지되는 한, 상식과 인간 정신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어느 누구도 남녀의 본성에 대해 안다거나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사회에서 여성 없이 남성만 살았거나 반대로 남성 없이 여성만 살았다면, 또는 지금처럼 여성이 남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회가 존재했다면, 각각의 본성 속에 들어 있는 정신적, 도덕적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 분명히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여성의 본성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은 확실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말하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종속 상태에 있었던 그 어떤 계급도 상전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의 타고난 성질이 여성의 경우처럼 철저하게 왜곡되는 예는 없다.
-존 스튜어트 밀,『여성의 종속』중에서
토론하기
(1)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여성해방의 논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말해보자.
(2) 밀처럼 남성이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할 때 남성 당사자에게 어떤 어려움과 이점이 발생하는지 이야기해보자.
(3) 밀은 여성의 지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상적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당시 밀이 여성의 선택을 전망할 때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 말해보자.
해설읽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가정이나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에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있기 마련이며, 이러한 조직에서는 이성적 사고 능력을 더 많이 가진 자가 지배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노예는 아예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아이들의 능력은 아직 미숙하며, 여자는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지만 권위가 부족하다. 때문에 이들이 남성 시민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간주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밀은 그러한 체제는 우연과 습속의 결과일 뿐 인간의 본성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제도나 관습은 습속의 누적일 뿐이고 행위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것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확실함이나 생생함은 현재의 경험이지 그것으로 과거의 기원을 만들어내거나 미래의 유지를 주장할 수는 없다. 밀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며, 그보다는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 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다. 따라서 누구든 최소한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밀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여성이 자기발전의 기회와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개별성과 사회성이라는 두 날개를 가지고 살아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밀이 생각하기에 당시 영국은 자본주의사회의 병폐로 인해 인간의 사회성은 훼손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밀이 보기에 개별성은 상황이 달랐다. 현대 사회 속성상 개별성의 입지는 날로 위축되고 있었는데 여성의 경우는 야만적 습속 때문에 더더욱 개별성이 훼손되었다고 보았다. 밀이 생각할 때 개별성은 그 본질상 한번 훼손되면 재생시키기가 매우 어렵고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존속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밀이 보기에 여성의 개별성, 즉 발전의 자유와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장래 영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키워드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 개별성, 공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