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본문은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의 복수 이야기이다. 「자객열전」에는 춘추전국시대의 이름난 자객 5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고전본문의 예양을 비롯하여 조말, 전저, 섭정, 형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자객 서사는 독립적인 한 편의 이야기로 서술되어 있으며, 고전본문은 예양의 자객 서사 전문이다.
고전본문
예양은 진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으나 자신의 이름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을 떠나 지백을 섬겼다. 지백은 예양을 매우 존중하고 아껴주었다. 지백이 조나라 양자를 공격하자 양자는 한나라, 위나라와 함께 작전을 짜서 지백을 죽이고 그의 후손을 멸한 후 그의 땅을 셋으로 나누어 차지했다.
조나라 양자는 지백을 아주 미워하여 지백의 해골에 옻칠을 해 잔으로 사용하였다. 예양은 산 속으로 도망가 숨었다가 말했다. “아!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뻐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한다. 이제 지백께서 나를 알아주셨으니 나는 반드시 그를 위해 복수를 하고나서 죽음으로써 지백께 보답해야 지백의 혼백에 부끄럽지 않으리라.” 이에 이름을 바꾸고 죄수가 되었고 궁궐로 배치되어 가슴에 비수를 품은 채로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기회를 보아 조양자를 찌르고자 하였다.
하루는 양자가 화장실에 가려는데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상함을 느낀 양자는 화장실을 수색하라고 했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죄인을 붙잡아 문초하였다. 그가 바로 예양이었다. 예양은 가슴에 비수를 품은 채 말했다. “지백을 위해 원수에게 보복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측근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양자가 말했다. “이 사람은 의로운 자이다. 내가 조심해서 피하면 될 따름이다. 또한 지백이 죽은 후 후사도 없는데 그의 신하였던 이가 그를 위해 원수를 갚겠다니 이 사람은 천하의 현인이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를 풀어주었다.
얼마 후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해서 나병환자처럼 만들고, 숯을 삼켜 말을 잘 못하는 자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형상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후 저잣거리에서 구걸하였는데 그의 아내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저잣거리를 다니다가 친구 눈에 띄었는데 친구는 그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그대는 예양이 아닌가?” 예양이 답했다. “그렇다네.” 친구가 울며 말했다. “그대의 재주로 예물을 바치며 양자를 신하로서 섬긴다면 양자는 반드시 그대를 가까이하며 아낄 것이다. 그대를 가까이하고 아끼면 그대가 원하는 바를 결행함이 더 쉽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몸을 해치고 겉모습을 망쳐서 양자에게 복수하기를 구하고자 했으니 또한 힘들지 않겠는가?” 예양이 말했다. “이미 예물을 바쳐서 신하로서 군주를 섬기면서 그를 죽이고자 하는 것, 이는 두 마음을 품고서 그 임금을 섬기는 것이다. 또한 이는 내가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함은 앞으로 천하 후세 사람들 중에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고서 그 임금을 섬기는 이를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다.”
얼마 후 양자가 출타를 하였다. 예양은 양자가 지날 다리 아래 숨어 있었다. 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라 뛰었다. 양자가 말했다. “이는 필시 예양일 것이다.” 수하를 시켜 그를 잡아와 문초하였더니 과연 예양이었다. 이에 양자가 예양을 꾸짖으며 말했다. “그대는 일찍이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기지 않았던가? 지백이 그들을 멸했거늘 그대는 그들을 위해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예물을 바치고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지백 또한 이미 죽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유독 그를 위해 원수를 갚고자 함이 깊단 말인가?” 예양이 말했다. “제가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길 때 범 씨와 중항 씨 모두 저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들을 대했습니다. 지백의 경우는 저를 국사(國士, 한 나라의 최고 지식인)로서 대우하였기 때문에 저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양자가 크게 숨을 뱉으며 탄식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예양이여. 그대가 지백을 위함에 그 명분은 이미 이루었고, 과인이 그대를 용서해줌도 또한 이미 충분했다. 그대는 그대의 생각대로 하라. 과인은 그대를 다시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에 군사를 시켜 그를 포위하였다.
예양이 말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의 미덕을 가리지 않고 충신은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했다는 명성으로 의로워진다고 들었습니다. 이전에 임금께서는 이미 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셔서 천하에 임금의 어짊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의 일로 저는 정녕 엎드려 죽음을 받겠지만 다만 임금의 옷을 베기를 청합니다. 그로써 원수를 갚고자 하는 뜻을 이룰 수 있다면 비록 죽더라고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감히 바랄 수 없지만 감히 제 속마음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이에 양자는 그를 크게 의롭게 여겼고 이에 수하를 시켜 옷을 가져다 예양에게 주었다. 예양은 검을 뽑아 세 차례 뛰어오르며 옷을 벤 다음 말했다. “이제 나는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그가 죽은 날 조나라의 뜻 있는 지사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흩뿌렸다.
豫讓者, 晉人也, 故嘗事范氏及中行氏, 而無所知名. 去而事智伯, 智伯甚尊寵之. 及智伯伐趙襄子, 趙襄子與韓魏合謀滅智伯, 滅智伯之後而三分其地. 趙襄子最怨智伯, 漆其頭以爲飮器. 豫讓遁逃山中曰, “嗟乎. 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今智伯知我, 我必爲報讎而死,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乃變名姓爲刑人, 入宮塗廁, 中挾匕首, 欲以刺襄子. 襄子如廁, 心動, 執問塗廁之刑人, 則豫讓, 內持刀兵曰, “欲爲智伯報仇.” 左右欲誅之. 襄子曰, “彼義人也, 吾謹避之耳. 且智伯亡無後, 而其臣欲爲報仇, 此天下之賢人也.” 卒醳去之.
居頃之, 豫讓又漆身爲厲, 呑炭爲啞, 使形狀不可知, 行乞於市. 其妻不識也. 行見其友, 其友識之曰, “汝非豫讓邪.” 曰, “我是也.” 其友爲泣曰, “以子之才, 委質而臣事襄子, 襄子必近幸子. 近幸子, 乃爲所欲, 顧不易邪. 何乃殘身苦形, 欲以求報襄子, 不亦難乎.” 豫讓曰, “旣已委質臣事人, 而求殺之, 是懷二心以事其君也. 且吾所爲者極難耳. 然所以爲此者, 將以愧天下後世之爲人臣懷二心以事其君者也.”
旣去, 頃之, 襄子當出, 豫讓伏於所當過之橋下. 襄子至橋, 馬驚, 襄子曰, “此必是豫讓也.” 使人問之, 果豫讓也. 於是襄子乃數豫讓曰, “子不嘗事范中行氏乎. 智伯盡滅之, 而子不爲報讎, 而反委質臣於智伯. 智伯亦已死矣, 而子獨何以爲之報讎之深也.” 豫讓曰, “臣事范中行氏, 范中行氏皆衆人遇我, 我故衆人報之. 至於智伯, 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 襄子喟然歎息而泣曰, “嗟乎豫子. 子之爲智伯, 名旣成矣, 而寡人赦子, 亦已足矣. 子其自爲計, 寡人不復釋子.” 使兵圍之. 豫讓曰, “臣聞明主不掩人之美, 而忠臣有死名之義. 前君已寬赦臣, 天下莫不稱君之賢. 今日之事, 臣固伏誅, 然願請君之衣而擊之, 焉以致報讎之意, 則雖死不恨. 非所敢望也, 敢布腹心.” 於是襄子大義之, 乃使使持衣與豫讓. 豫讓拔劍三躍而擊之曰, “吾可以下報智伯矣.” 遂伏劍自殺. 死之日, 趙國志士聞之, 皆爲涕泣.
-사마천,『사기』중에서
토론하기
(1) 예양의 복수 방식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단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또한 그의 복수 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정당화될 수 없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2) 예양은 복수에 성공했다고 선언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예양이 그렇게 선언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3) 예양의 복수 이야기를 마중물 삼아 현대사회에서 가능한 복수 방식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보자.
해설읽기
예양의 복수 이야기에는 복수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가 담겨 있다. 첫째는 복수의 대상 설정과 관련된 것이다. 예양은 지백을 섬기기 전에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다. 그런데 그가 원수를 갚음으로서 보답하고자 한 주군인 지백은 바로 이들을 멸했던 이였다. 그럼에도 예양은 지백에게 범 씨와 중항 씨의 원수를 갚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지백에게 예물을 바치며 그의 신하가 되기를 청했다. 조나라 군주 양자는 예양에게 자신이 섬겼던 범 씨와 중항 씨의 원수는 오히려 섬겼으면서 왜 지백의 원수인 자신에게는 두 번에 걸쳐 암살을 시도하는 등 기어코 복수를 하고자 했는지를 물었다. 이에 예양은 범 씨와 중항 씨는 자신을 그저 그러한 인재로 대했기 때문에 자신도 그들을 그저 그러하게 대했던 것이며, 지백은 자신을 나라의 최고 인재로 대했기 때문에 자신도 지백에게 나라의 최고 인재답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를 통해 복수는 자신을 참되게 알아준 이[지기知己]를 위해 한다는 관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양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둘째는 복수는 추가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복수의 속성이다. 예양은 복수를 위해 먼저 스스로 범죄자가 된다. 그래야 궁궐로 들어가서 양자를 암살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배계층 신분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신분이 되는 손해를 본 것이며 지배계층은 안 하는 화장실 청소 같은, 당시에서는 천하다고 여겨진 일을 기꺼이 떠맡은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손해와 고통을 감수한 것이다. 첫 번째 암살에 실패하고 두 번째 암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더 큰 손해를 감수한다. 이미 자신의 얼굴이 양자 측에 노출되었으므로 예양은 옻칠을 해서 얼굴 등 피부를 나병에 걸린 환자처럼 문드러지게 했다. 또 자신의 목소리도 노출되었기 때문에 불기가 남은 숯을 삼켜 거칠고 쉰 목소리가 나오게 했다. 신체 훼손을 어느 정도로 했냐면 예양의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심하게 했다.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럼에도 대가는 이에 머무르지 않았다. 두 번째 암살도 발각이 된 다음 예양은 양자의 배려 덕분에 그의 옷을 벰으로써 복수를 완수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시야를 예양 하나에서 그 가족으로 넓히면, 예양이 그렇게 스스로 범죄자가 되고 신체를 훼손해가면서 복수에 전념했다는 것은 그가 가족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 자결을 했으니 가족을 영영 돌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예양의 복수는 가족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수행된 것이다. 이처럼 복수는 추가적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속성을 지닌다.
셋째는 복수의 정당화 문제이다. 예양은 복수에 나서면서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는 격언을 들어 자신의 복수 결행을 정당화했다. 당시 격언은 사람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윤리적 근거로 곧잘 활용되었다. 이렇게 명분을 세운 다음 행한 예양의 복수는 복수 대상인 양자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자는 첫 번째 암살 시도 시 붙잡혀 온 예양을 풀어주면서 “이 사람은 의로운 자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두 번째 암살 시도 후에도 이어졌다. 붙잡혀 온 예양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양자를 예양을 크게 의롭게 여기면서 옷을 벗어달라는 예양의 간청에 흔쾌히 응했다. 한편 예양은 얼굴을 문드러지게 하고 목소리를 훼손했음에도 자신을 알아본 벗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신하된 자로서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임금을 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하여 자신이 이처럼 어려운 길을 자청해서 복수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복수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의로움으로 대변되는 정당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마지막은 복수의 완성 문제이다. 예양의 복수 이야기는 무엇을 근거로 복수를 완수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예양은 원수인 양자를 죽이지 못했고 단지 그의 옷을 베었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예양은 복수를 완성했다고 선언하여 이제야 죽은 지백에게 보답했다고 만족해하며 기꺼이 자결을 결행한다. 이러한 예양의 생각은 복수가 꼭 원수를 죽여야만 완수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환기해준다. 예양은 원수의 옷을 베는 것과 같은, 일종의 상징적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복수를 완수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 대상이 군주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 아래서 그렇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눈에는 눈, 코에는 코”와 같이, 당한 그대로 되갚아야만 복수가 완수된 것이라고 본 전통적 관점이 한층 문명화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받은 그대로 되갚아야만 복수가 완성됐다고 보는 사회에서는 복수로 인한 폐해가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키워드
복수, 복수 속성, 사기, 예양, 자객열전, 조 양자
전후맥락
고전본문은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예양의 복수 이야기이다. 「자객열전」에는 춘추전국시대의 이름난 자객 5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고전본문의 예양을 비롯하여 조말, 전저, 섭정, 형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자객 서사는 독립적인 한 편의 이야기로 서술되어 있으며, 고전본문은 예양의 자객 서사 전문이다.
고전본문
예양은 진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으나 자신의 이름이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을 떠나 지백을 섬겼다. 지백은 예양을 매우 존중하고 아껴주었다. 지백이 조나라 양자를 공격하자 양자는 한나라, 위나라와 함께 작전을 짜서 지백을 죽이고 그의 후손을 멸한 후 그의 땅을 셋으로 나누어 차지했다.
조나라 양자는 지백을 아주 미워하여 지백의 해골에 옻칠을 해 잔으로 사용하였다. 예양은 산 속으로 도망가 숨었다가 말했다. “아!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뻐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한다. 이제 지백께서 나를 알아주셨으니 나는 반드시 그를 위해 복수를 하고나서 죽음으로써 지백께 보답해야 지백의 혼백에 부끄럽지 않으리라.” 이에 이름을 바꾸고 죄수가 되었고 궁궐로 배치되어 가슴에 비수를 품은 채로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기회를 보아 조양자를 찌르고자 하였다.
하루는 양자가 화장실에 가려는데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상함을 느낀 양자는 화장실을 수색하라고 했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죄인을 붙잡아 문초하였다. 그가 바로 예양이었다. 예양은 가슴에 비수를 품은 채 말했다. “지백을 위해 원수에게 보복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측근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양자가 말했다. “이 사람은 의로운 자이다. 내가 조심해서 피하면 될 따름이다. 또한 지백이 죽은 후 후사도 없는데 그의 신하였던 이가 그를 위해 원수를 갚겠다니 이 사람은 천하의 현인이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를 풀어주었다.
얼마 후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해서 나병환자처럼 만들고, 숯을 삼켜 말을 잘 못하는 자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형상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후 저잣거리에서 구걸하였는데 그의 아내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저잣거리를 다니다가 친구 눈에 띄었는데 친구는 그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그대는 예양이 아닌가?” 예양이 답했다. “그렇다네.” 친구가 울며 말했다. “그대의 재주로 예물을 바치며 양자를 신하로서 섬긴다면 양자는 반드시 그대를 가까이하며 아낄 것이다. 그대를 가까이하고 아끼면 그대가 원하는 바를 결행함이 더 쉽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몸을 해치고 겉모습을 망쳐서 양자에게 복수하기를 구하고자 했으니 또한 힘들지 않겠는가?” 예양이 말했다. “이미 예물을 바쳐서 신하로서 군주를 섬기면서 그를 죽이고자 하는 것, 이는 두 마음을 품고서 그 임금을 섬기는 것이다. 또한 이는 내가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함은 앞으로 천하 후세 사람들 중에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고서 그 임금을 섬기는 이를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다.”
얼마 후 양자가 출타를 하였다. 예양은 양자가 지날 다리 아래 숨어 있었다. 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라 뛰었다. 양자가 말했다. “이는 필시 예양일 것이다.” 수하를 시켜 그를 잡아와 문초하였더니 과연 예양이었다. 이에 양자가 예양을 꾸짖으며 말했다. “그대는 일찍이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기지 않았던가? 지백이 그들을 멸했거늘 그대는 그들을 위해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예물을 바치고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지백 또한 이미 죽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유독 그를 위해 원수를 갚고자 함이 깊단 말인가?” 예양이 말했다. “제가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길 때 범 씨와 중항 씨 모두 저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들을 대했습니다. 지백의 경우는 저를 국사(國士, 한 나라의 최고 지식인)로서 대우하였기 때문에 저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양자가 크게 숨을 뱉으며 탄식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예양이여. 그대가 지백을 위함에 그 명분은 이미 이루었고, 과인이 그대를 용서해줌도 또한 이미 충분했다. 그대는 그대의 생각대로 하라. 과인은 그대를 다시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에 군사를 시켜 그를 포위하였다.
예양이 말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의 미덕을 가리지 않고 충신은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했다는 명성으로 의로워진다고 들었습니다. 이전에 임금께서는 이미 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셔서 천하에 임금의 어짊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의 일로 저는 정녕 엎드려 죽음을 받겠지만 다만 임금의 옷을 베기를 청합니다. 그로써 원수를 갚고자 하는 뜻을 이룰 수 있다면 비록 죽더라고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감히 바랄 수 없지만 감히 제 속마음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이에 양자는 그를 크게 의롭게 여겼고 이에 수하를 시켜 옷을 가져다 예양에게 주었다. 예양은 검을 뽑아 세 차례 뛰어오르며 옷을 벤 다음 말했다. “이제 나는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는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그가 죽은 날 조나라의 뜻 있는 지사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흩뿌렸다.
豫讓者, 晉人也, 故嘗事范氏及中行氏, 而無所知名. 去而事智伯, 智伯甚尊寵之. 及智伯伐趙襄子, 趙襄子與韓魏合謀滅智伯, 滅智伯之後而三分其地. 趙襄子最怨智伯, 漆其頭以爲飮器. 豫讓遁逃山中曰, “嗟乎. 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今智伯知我, 我必爲報讎而死,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乃變名姓爲刑人, 入宮塗廁, 中挾匕首, 欲以刺襄子. 襄子如廁, 心動, 執問塗廁之刑人, 則豫讓, 內持刀兵曰, “欲爲智伯報仇.” 左右欲誅之. 襄子曰, “彼義人也, 吾謹避之耳. 且智伯亡無後, 而其臣欲爲報仇, 此天下之賢人也.” 卒醳去之.
居頃之, 豫讓又漆身爲厲, 呑炭爲啞, 使形狀不可知, 行乞於市. 其妻不識也. 行見其友, 其友識之曰, “汝非豫讓邪.” 曰, “我是也.” 其友爲泣曰, “以子之才, 委質而臣事襄子, 襄子必近幸子. 近幸子, 乃爲所欲, 顧不易邪. 何乃殘身苦形, 欲以求報襄子, 不亦難乎.” 豫讓曰, “旣已委質臣事人, 而求殺之, 是懷二心以事其君也. 且吾所爲者極難耳. 然所以爲此者, 將以愧天下後世之爲人臣懷二心以事其君者也.”
旣去, 頃之, 襄子當出, 豫讓伏於所當過之橋下. 襄子至橋, 馬驚, 襄子曰, “此必是豫讓也.” 使人問之, 果豫讓也. 於是襄子乃數豫讓曰, “子不嘗事范中行氏乎. 智伯盡滅之, 而子不爲報讎, 而反委質臣於智伯. 智伯亦已死矣, 而子獨何以爲之報讎之深也.” 豫讓曰, “臣事范中行氏, 范中行氏皆衆人遇我, 我故衆人報之. 至於智伯, 國士遇我, 我故國士報之.” 襄子喟然歎息而泣曰, “嗟乎豫子. 子之爲智伯, 名旣成矣, 而寡人赦子, 亦已足矣. 子其自爲計, 寡人不復釋子.” 使兵圍之. 豫讓曰, “臣聞明主不掩人之美, 而忠臣有死名之義. 前君已寬赦臣, 天下莫不稱君之賢. 今日之事, 臣固伏誅, 然願請君之衣而擊之, 焉以致報讎之意, 則雖死不恨. 非所敢望也, 敢布腹心.” 於是襄子大義之, 乃使使持衣與豫讓. 豫讓拔劍三躍而擊之曰, “吾可以下報智伯矣.” 遂伏劍自殺. 死之日, 趙國志士聞之, 皆爲涕泣.
-사마천,『사기』중에서
토론하기
(1) 예양의 복수 방식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단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또한 그의 복수 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고, 정당화될 수 없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2) 예양은 복수에 성공했다고 선언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예양이 그렇게 선언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
(3) 예양의 복수 이야기를 마중물 삼아 현대사회에서 가능한 복수 방식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보자.
해설읽기
예양의 복수 이야기에는 복수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가 담겨 있다. 첫째는 복수의 대상 설정과 관련된 것이다. 예양은 지백을 섬기기 전에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다. 그런데 그가 원수를 갚음으로서 보답하고자 한 주군인 지백은 바로 이들을 멸했던 이였다. 그럼에도 예양은 지백에게 범 씨와 중항 씨의 원수를 갚고자 하지 않고 오히려 지백에게 예물을 바치며 그의 신하가 되기를 청했다. 조나라 군주 양자는 예양에게 자신이 섬겼던 범 씨와 중항 씨의 원수는 오히려 섬겼으면서 왜 지백의 원수인 자신에게는 두 번에 걸쳐 암살을 시도하는 등 기어코 복수를 하고자 했는지를 물었다. 이에 예양은 범 씨와 중항 씨는 자신을 그저 그러한 인재로 대했기 때문에 자신도 그들을 그저 그러하게 대했던 것이며, 지백은 자신을 나라의 최고 인재로 대했기 때문에 자신도 지백에게 나라의 최고 인재답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를 통해 복수는 자신을 참되게 알아준 이[지기知己]를 위해 한다는 관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양은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둘째는 복수는 추가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복수의 속성이다. 예양은 복수를 위해 먼저 스스로 범죄자가 된다. 그래야 궁궐로 들어가서 양자를 암살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배계층 신분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신분이 되는 손해를 본 것이며 지배계층은 안 하는 화장실 청소 같은, 당시에서는 천하다고 여겨진 일을 기꺼이 떠맡은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손해와 고통을 감수한 것이다. 첫 번째 암살에 실패하고 두 번째 암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더 큰 손해를 감수한다. 이미 자신의 얼굴이 양자 측에 노출되었으므로 예양은 옻칠을 해서 얼굴 등 피부를 나병에 걸린 환자처럼 문드러지게 했다. 또 자신의 목소리도 노출되었기 때문에 불기가 남은 숯을 삼켜 거칠고 쉰 목소리가 나오게 했다. 신체 훼손을 어느 정도로 했냐면 예양의 아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심하게 했다.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럼에도 대가는 이에 머무르지 않았다. 두 번째 암살도 발각이 된 다음 예양은 양자의 배려 덕분에 그의 옷을 벰으로써 복수를 완수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시야를 예양 하나에서 그 가족으로 넓히면, 예양이 그렇게 스스로 범죄자가 되고 신체를 훼손해가면서 복수에 전념했다는 것은 그가 가족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 자결을 했으니 가족을 영영 돌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예양의 복수는 가족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수행된 것이다. 이처럼 복수는 추가적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속성을 지닌다.
셋째는 복수의 정당화 문제이다. 예양은 복수에 나서면서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는 격언을 들어 자신의 복수 결행을 정당화했다. 당시 격언은 사람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윤리적 근거로 곧잘 활용되었다. 이렇게 명분을 세운 다음 행한 예양의 복수는 복수 대상인 양자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자는 첫 번째 암살 시도 시 붙잡혀 온 예양을 풀어주면서 “이 사람은 의로운 자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두 번째 암살 시도 후에도 이어졌다. 붙잡혀 온 예양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양자를 예양을 크게 의롭게 여기면서 옷을 벗어달라는 예양의 간청에 흔쾌히 응했다. 한편 예양은 얼굴을 문드러지게 하고 목소리를 훼손했음에도 자신을 알아본 벗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신하된 자로서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임금을 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하여 자신이 이처럼 어려운 길을 자청해서 복수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복수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의로움으로 대변되는 정당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마지막은 복수의 완성 문제이다. 예양의 복수 이야기는 무엇을 근거로 복수를 완수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예양은 원수인 양자를 죽이지 못했고 단지 그의 옷을 베었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예양은 복수를 완성했다고 선언하여 이제야 죽은 지백에게 보답했다고 만족해하며 기꺼이 자결을 결행한다. 이러한 예양의 생각은 복수가 꼭 원수를 죽여야만 완수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환기해준다. 예양은 원수의 옷을 베는 것과 같은, 일종의 상징적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복수를 완수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 대상이 군주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 아래서 그렇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눈에는 눈, 코에는 코”와 같이, 당한 그대로 되갚아야만 복수가 완수된 것이라고 본 전통적 관점이 한층 문명화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받은 그대로 되갚아야만 복수가 완성됐다고 보는 사회에서는 복수로 인한 폐해가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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