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가]는 『춘추좌전』 문공(文公) 6년(621년 BCE) 조에 실려 있는 기사이다. 문공 6년 봄에 진나라는 이 땅에서 군사 조직을 재편하면서 열병을 실시하였다. 이때 호역고는 중군의 장군이 되었고 조선자는 그의 부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상관이었던 양처보가 유능한 사람이 상관이 되어야 한다면서 호역고와 조선자의 자리를 바꿔 버렸다. 호역고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부하였던 이를 상관으로 섬겨야 하는 모욕을 당한 셈이다. 이에 호역고는 양처보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다. 한편 조선자는 장군이 된 다음에 빠른 속도로 진나라 국정을 장악해갔고 양처보는 점차 세력을 잃어갔다. 그해 여름, 호역고는 속간백을 시켜 세력을 잃은 양처보를 살해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조선자의 부하가 되게 한 데 대한 원한을 갚았다. 문제는 그해 가을에 생겼다. 진나라 군주는 고위 관리를 함부로 죽였다는 죄명으로 속간백을 처형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호역고는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을 챙기지도 못한 채 서둘러 진나라에서 탈출하여 오랑캐 지역인 적 땅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한때 호역고의 수하였던 조선자가 부하인 유변을 시켜 호역고의 가솔을 적 땅으로 보내주라고 명령한다. [가]는 그 이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대목이다.
[나]는 『춘추좌전』 양공(襄公) 3년 조의 기사이다. 중군위라는 고위직에 있었던 기해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진나라 군주는 그에게 후임으로 누가 적당한지를 묻는다. 그러자 기해는 자신과 원수 관계인 해호를 추천한다. 그런데 해호는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자 진나라 군주는 다시 기해에게 적합한 후임자를 묻는다. 이에 기해는 자신의 아들을 천거한다. 곧 기해는 가장 먼저로는 자신과 원수 관계인 자를 추천하였고, 다음으로는 자신과 혈연관계인 아들을 추천했다는 내용이다.
고전본문
[가] 진나라가 양처보를 살해한 속간백을 죽였다. 그러자 속간백과 같은 편이었던 호역고는 오랑캐 지역인 적 땅으로 달아났다. 이에 조선자가 유변을 시켜 호역고의 처자를 적 땅으로 보내주려 하였다. 그런데 호역고는 이전에 이(夷)라는 지역에서 군대 사열을 할 때 유변을 모욕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변의 수하들은 호역고의 집안사람들을 죽여 그때의 일을 설욕하고자 했다. 그러자 유변이 말했다. “안 된다. 내가 듣기로 오래된 전적에 이르기를, ‘은혜를 갚든 원한을 갚든 당사자가 아닌 자손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이 타인에게 성의를 다하는 도리이다. 또한 주군께서 호역고에게 예를 갖췄는데 내가 그의 총애에 기대어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것은 불가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의 총애에 기대어 원한을 갚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또한 원한을 씻는다고 하면서 원한을 더함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며,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해침은 섬기는 이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이 셋을 버리고 무엇으로 주군을 모시겠는가?” 이에 유변은 호역고의 집안 식구와 가재도구, 재물을 모두 수레에 실고 직접 인솔하여 국경까지 호송해주었다.
[나] 기해는 중군위라는 고위직에 있었다. 그가 고령을 핑계로 사직을 청하자 진나라 군주가 후임자로 누가 적당한지를 물었다. 기해는 원수지간이었던 해호를 천거했다. 진나라 군주가 임용하려 할 때 해호가 세상을 떠났다. 진나라 군주가 기해에게 다시 적합한 후임자를 물었다. 기해가 대답했다. “제 아들 기오가 합당합니다.” 때마침 중군위의 보좌관인 양설직이 죽자 진나라 군주가 기해에게 물었다. “누가 그를 이을 수 있겠소?” 기해가 대답했다. “그의 아들 양설적이 괜찮습니다.” 그러자 기오를 중군위로 삼고 양설적으로 그를 보좌하게 했다. 군자가 기해에 대해 평하였다. “이를 보니 기해는 능력 있는 이를 천거할 줄 알았다. 원수를 천거했지만 이는 아첨이 아니었고, 아들을 내세웠지만 이는 편든 게 아니었으며, 부하의 아들을 추천했지만 이는 작당하려는 게 아니었다.
[가] 晉殺續簡伯. 賈季奔狄. 宣子使臾騈送其帑. 夷之蒐, 賈季戮臾騈, 臾騈之人欲盡殺賈氏以報焉. 臾騈曰, “不可. 吾聞前志有之曰, ‘敵惠敵怨, 不在後嗣, 忠之道也.’ 夫子禮於賈季, 我以其寵報私怨, 無乃不可乎. 介人之寵, 非勇也. 損怨益仇, 非知也. 以私害公, 非忠也. 釋此三者, 何以事夫子.” 盡具其帑與其器用財賄, 親帥扞之, 送致諸境.
[나] 祁奚請老, 晉侯問嗣焉. 稱解狐, 其讎也, 將立之而卒. 又問焉. 對曰, “午也可.” 於是羊舌職死矣, 晉侯曰, “孰可以代之.” 對曰, “赤也可.” 於是使祁午爲中軍尉, 羊舌赤佐之. 君子謂祁奚“於是能擧善矣. 稱其讎, 不爲諂. 立其子, 不爲比. 擧其偏, 不爲黨.
[출전] 좌구명,『춘추좌전』
토론하기
(1) [가]에서 유변이 호역고의 가솔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정리해본 다음 유변의 그러한 태도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2) [나]에서 기해는 무엇을 근거로 원수도 추천하고 자기 아들도 추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기해의 태도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3) [가]와 [나]에서 복수와 관련한 규범을 도출해내보자.
해설읽기
[가]에서 유변은 상관인 조선자로부터 호역고의 가솔을 이끌고 적 땅으로 도망간 호역고에게 인도해주라는 명령을 받는다. 명령을 받고 호역고의 가솔을 인솔하여 길을 떠났을 때 유변의 부하들이 그에게 호역고의 가솔들을 죽이자고 청한다. 이유는 과거에 호역고가 유변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적이 있었으니 그때 당한 치욕을 가족을 죽여 없앰으로써 갚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호역고에 대해 복수하자는 청이었다.
이에 모욕을 당했던 당사자인 유변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복수를 반대했다. 첫째는 당사자가 아닌 자손에게 보복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복수를 하려면 가해자인 호역고 본인에게 해야 된다는 얘기였다. 둘째는 공적으로 섬기는 상관의 뜻을 거스르면서 사적 원한을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적인 원한을 공적인 일보다 앞세울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유변은 이에 덧붙여 상관의 총애에 기대어 사적인 원한을 갚는 것은 안 된다고도 했다. 복수를 한다면 자기 힘으로 해야지 자기를 아껴주는 상관의 힘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셋째는 원한을 씻어내기 위해 복수를 했는데 이로 인해 또 다른 보복이 움튼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유변이 호역고의 가솔을 죽인다면 호역고는 유변을 원수로 여겨 그에게 복수하고자 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문 복수가 자행되게 되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변은 이에 덧붙여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특히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규범은 전국시대 당시 이미 보편화된 규범이었다. 그래서 [나]의 기해는 자신이 맡았던 중군위라는 관직의 후임자로 누가 적합하냐는 군주의 물음에 자신의 원수였던 해호를 추천할 수 있었다. 사적으로 보면 해호는 자신의 원수로, 그가 고위직에 임용되는 좋은 일을 자기 손으로 해준다는 것은 쉽게 결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다른 문헌의 기록을 보면, 기해가 자신의 원수인 해호를 추천하자 진나라 군주는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라고 하며 무척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해호는 “임금께서는 저에게 중군위의 적임자가 누구인지를 물으셨지 저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원수를 추천한다는 일이 매우 하기 힘든 일임을, 무척 드문 일이었음을 시사해주는 기록이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기해는 중군위의 직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이가 바로 해호였기에 그가 원수임에도 해호를 그 자리에 추천하였다. 해당 직무를 잘 수행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공적 이익을 잘 발휘한다는 일이다. 그래서 기해는 공적 이익 실현을 위해 사적인 원한관계를 전혀 앞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공적 이익 실현에 가장 좋은 방안이었기에 기해는 가장 사적인 관계인 자기 아들을 공직에 추천할 수 있었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고려를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무척 강하게 작동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고사들이다.
복수에 대한 유변이나 기해의 관점은 전국시대 당시에 복수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상당 정도로 정립되었음을 일러준다. 복수는 당사자를 성장시켜주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본인에게 원한을 끼친 이보다 훨씬 강해져야 또 다시 당하지 않고 복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복수가 지니는 긍정적 측면이다. 그런가 하면 복수는 유변이 단언했듯이 또 다른 복수를 유발하곤 한다. 그렇게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결국 복수에 얽힌 이들 모두가 공멸하고 만다. 복수가 지니는 부정적 측면이다. 복수를 도덕, 법, 제도 등의 차원에서 규제하는 시도가 이른 시기서부터 지속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전본문의 두 기사에 담긴 복수 규범도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키워드
기해, 복수, 복수 속성, 복수의 윤리학, 복수 이야기, 유변, 춘추좌전
전후맥락
[가]는 『춘추좌전』 문공(文公) 6년(621년 BCE) 조에 실려 있는 기사이다. 문공 6년 봄에 진나라는 이 땅에서 군사 조직을 재편하면서 열병을 실시하였다. 이때 호역고는 중군의 장군이 되었고 조선자는 그의 부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상관이었던 양처보가 유능한 사람이 상관이 되어야 한다면서 호역고와 조선자의 자리를 바꿔 버렸다. 호역고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부하였던 이를 상관으로 섬겨야 하는 모욕을 당한 셈이다. 이에 호역고는 양처보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다. 한편 조선자는 장군이 된 다음에 빠른 속도로 진나라 국정을 장악해갔고 양처보는 점차 세력을 잃어갔다. 그해 여름, 호역고는 속간백을 시켜 세력을 잃은 양처보를 살해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조선자의 부하가 되게 한 데 대한 원한을 갚았다. 문제는 그해 가을에 생겼다. 진나라 군주는 고위 관리를 함부로 죽였다는 죄명으로 속간백을 처형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호역고는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을 챙기지도 못한 채 서둘러 진나라에서 탈출하여 오랑캐 지역인 적 땅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한때 호역고의 수하였던 조선자가 부하인 유변을 시켜 호역고의 가솔을 적 땅으로 보내주라고 명령한다. [가]는 그 이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대목이다.
[나]는 『춘추좌전』 양공(襄公) 3년 조의 기사이다. 중군위라는 고위직에 있었던 기해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진나라 군주는 그에게 후임으로 누가 적당한지를 묻는다. 그러자 기해는 자신과 원수 관계인 해호를 추천한다. 그런데 해호는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자 진나라 군주는 다시 기해에게 적합한 후임자를 묻는다. 이에 기해는 자신의 아들을 천거한다. 곧 기해는 가장 먼저로는 자신과 원수 관계인 자를 추천하였고, 다음으로는 자신과 혈연관계인 아들을 추천했다는 내용이다.
고전본문
[가] 진나라가 양처보를 살해한 속간백을 죽였다. 그러자 속간백과 같은 편이었던 호역고는 오랑캐 지역인 적 땅으로 달아났다. 이에 조선자가 유변을 시켜 호역고의 처자를 적 땅으로 보내주려 하였다. 그런데 호역고는 이전에 이(夷)라는 지역에서 군대 사열을 할 때 유변을 모욕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변의 수하들은 호역고의 집안사람들을 죽여 그때의 일을 설욕하고자 했다. 그러자 유변이 말했다. “안 된다. 내가 듣기로 오래된 전적에 이르기를, ‘은혜를 갚든 원한을 갚든 당사자가 아닌 자손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이 타인에게 성의를 다하는 도리이다. 또한 주군께서 호역고에게 예를 갖췄는데 내가 그의 총애에 기대어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것은 불가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의 총애에 기대어 원한을 갚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또한 원한을 씻는다고 하면서 원한을 더함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며,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해침은 섬기는 이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이 셋을 버리고 무엇으로 주군을 모시겠는가?” 이에 유변은 호역고의 집안 식구와 가재도구, 재물을 모두 수레에 실고 직접 인솔하여 국경까지 호송해주었다.
[나] 기해는 중군위라는 고위직에 있었다. 그가 고령을 핑계로 사직을 청하자 진나라 군주가 후임자로 누가 적당한지를 물었다. 기해는 원수지간이었던 해호를 천거했다. 진나라 군주가 임용하려 할 때 해호가 세상을 떠났다. 진나라 군주가 기해에게 다시 적합한 후임자를 물었다. 기해가 대답했다. “제 아들 기오가 합당합니다.” 때마침 중군위의 보좌관인 양설직이 죽자 진나라 군주가 기해에게 물었다. “누가 그를 이을 수 있겠소?” 기해가 대답했다. “그의 아들 양설적이 괜찮습니다.” 그러자 기오를 중군위로 삼고 양설적으로 그를 보좌하게 했다. 군자가 기해에 대해 평하였다. “이를 보니 기해는 능력 있는 이를 천거할 줄 알았다. 원수를 천거했지만 이는 아첨이 아니었고, 아들을 내세웠지만 이는 편든 게 아니었으며, 부하의 아들을 추천했지만 이는 작당하려는 게 아니었다.
[가] 晉殺續簡伯. 賈季奔狄. 宣子使臾騈送其帑. 夷之蒐, 賈季戮臾騈, 臾騈之人欲盡殺賈氏以報焉. 臾騈曰, “不可. 吾聞前志有之曰, ‘敵惠敵怨, 不在後嗣, 忠之道也.’ 夫子禮於賈季, 我以其寵報私怨, 無乃不可乎. 介人之寵, 非勇也. 損怨益仇, 非知也. 以私害公, 非忠也. 釋此三者, 何以事夫子.” 盡具其帑與其器用財賄, 親帥扞之, 送致諸境.
[나] 祁奚請老, 晉侯問嗣焉. 稱解狐, 其讎也, 將立之而卒. 又問焉. 對曰, “午也可.” 於是羊舌職死矣, 晉侯曰, “孰可以代之.” 對曰, “赤也可.” 於是使祁午爲中軍尉, 羊舌赤佐之. 君子謂祁奚“於是能擧善矣. 稱其讎, 不爲諂. 立其子, 不爲比. 擧其偏, 不爲黨.
[출전] 좌구명,『춘추좌전』
토론하기
(1) [가]에서 유변이 호역고의 가솔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정리해본 다음 유변의 그러한 태도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2) [나]에서 기해는 무엇을 근거로 원수도 추천하고 자기 아들도 추천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기해의 태도에 대하여 평가해보자.
(3) [가]와 [나]에서 복수와 관련한 규범을 도출해내보자.
해설읽기
[가]에서 유변은 상관인 조선자로부터 호역고의 가솔을 이끌고 적 땅으로 도망간 호역고에게 인도해주라는 명령을 받는다. 명령을 받고 호역고의 가솔을 인솔하여 길을 떠났을 때 유변의 부하들이 그에게 호역고의 가솔들을 죽이자고 청한다. 이유는 과거에 호역고가 유변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적이 있었으니 그때 당한 치욕을 가족을 죽여 없앰으로써 갚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호역고에 대해 복수하자는 청이었다.
이에 모욕을 당했던 당사자인 유변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복수를 반대했다. 첫째는 당사자가 아닌 자손에게 보복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복수를 하려면 가해자인 호역고 본인에게 해야 된다는 얘기였다. 둘째는 공적으로 섬기는 상관의 뜻을 거스르면서 사적 원한을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적인 원한을 공적인 일보다 앞세울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유변은 이에 덧붙여 상관의 총애에 기대어 사적인 원한을 갚는 것은 안 된다고도 했다. 복수를 한다면 자기 힘으로 해야지 자기를 아껴주는 상관의 힘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셋째는 원한을 씻어내기 위해 복수를 했는데 이로 인해 또 다른 보복이 움튼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유변이 호역고의 가솔을 죽인다면 호역고는 유변을 원수로 여겨 그에게 복수하고자 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문 복수가 자행되게 되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변은 이에 덧붙여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특히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규범은 전국시대 당시 이미 보편화된 규범이었다. 그래서 [나]의 기해는 자신이 맡았던 중군위라는 관직의 후임자로 누가 적합하냐는 군주의 물음에 자신의 원수였던 해호를 추천할 수 있었다. 사적으로 보면 해호는 자신의 원수로, 그가 고위직에 임용되는 좋은 일을 자기 손으로 해준다는 것은 쉽게 결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다른 문헌의 기록을 보면, 기해가 자신의 원수인 해호를 추천하자 진나라 군주는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라고 하며 무척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해호는 “임금께서는 저에게 중군위의 적임자가 누구인지를 물으셨지 저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원수를 추천한다는 일이 매우 하기 힘든 일임을, 무척 드문 일이었음을 시사해주는 기록이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기해는 중군위의 직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이가 바로 해호였기에 그가 원수임에도 해호를 그 자리에 추천하였다. 해당 직무를 잘 수행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공적 이익을 잘 발휘한다는 일이다. 그래서 기해는 공적 이익 실현을 위해 사적인 원한관계를 전혀 앞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공적 이익 실현에 가장 좋은 방안이었기에 기해는 가장 사적인 관계인 자기 아들을 공직에 추천할 수 있었다. 공적인 일에 사적인 고려를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무척 강하게 작동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고사들이다.
복수에 대한 유변이나 기해의 관점은 전국시대 당시에 복수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상당 정도로 정립되었음을 일러준다. 복수는 당사자를 성장시켜주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본인에게 원한을 끼친 이보다 훨씬 강해져야 또 다시 당하지 않고 복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복수가 지니는 긍정적 측면이다. 그런가 하면 복수는 유변이 단언했듯이 또 다른 복수를 유발하곤 한다. 그렇게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결국 복수에 얽힌 이들 모두가 공멸하고 만다. 복수가 지니는 부정적 측면이다. 복수를 도덕, 법, 제도 등의 차원에서 규제하는 시도가 이른 시기서부터 지속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전본문의 두 기사에 담긴 복수 규범도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키워드
기해, 복수, 복수 속성, 복수의 윤리학, 복수 이야기, 유변, 춘추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