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力命」 편은 천명과 인력의 모순관계를 제재로 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천명 자체에는 시비 판단이나 공의(公義) 실현 같은 의지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대대로 장수와 요절, 부유함과 빈곤함,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잘삶과 못삶 등은 천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왔다. 역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늘 있어 왔던, 가령 악한 이는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며 천수를 누리는 반면 선한 이는 빈곤하고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요절하는 현상을 그 근거로 든다. 「力命」 편에는 이러한 인식이 드러나 있는 고사들이 실려 있으며, 이들을 통해 천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설파되어 있다. 고전 본문은 그 가운데 한 편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는 북궁자의 항변을 별 노력 없이도 잘살고 있는 서문자는 이게 다 타고난 덕 때문이라며 일축한다. 이러한 서문자에 대해 현자인 동곽 선생이 등장하여 그러한 생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고전본문
복궁자가 서문자에게 말했다. “나와 그대는 같은 시대에 사는데도 사람들은 그대만을 잘되게 한다. 그대와는 같은 족속인데도 사람들은 그대만 존경한다. 그대와 같은 외양임에도 사람들은 그대만을 사랑한다. 그대와 같은 말을 하는데 사람들은 그대 말만 믿고 쓴다. 그대와 같은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은 그대만을 성실하다고 한다. 그대와 같이 벼슬살이를 하는데 사람들은 그대만을 승진시킨다. 그대와 같은 농사를 지었는데 사람들은 그대만 부자가 되게 하였다. 그대와 같은 장사를 했는데 사람들은 그대만 이롭게 하였다. 나는 옷은 짧고 거친 베옷이고 음식은 거친 곡식이며, 거처는 오막살이이고 출타하면 걸어 다닌다. 자네는, 옷은 수놓은 비단옷이고 음식은 좋은 곡식과 기름진 고기이며, 거처는 큰 저택이고 출타하면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닌다. 집에서는 행복에 겨워하며 나를 업신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조정에서는 거침없이 말을 하면서 나를 업신여기는 안색을 보인다. 만나보자고 청해도 만나볼 수 없고, 놀러 가도 같이 가려 하지 않은 지가 참으로 몇 해나 되었다. 그대는 스스로 그대의 덕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서문자가 말했다. “나도 그 실상을 알 수가 없다. 자네는 일을 하면 잘 안 되고 나는 일을 하면 잘 되니 이는 사람마다 덕이 후하고 박한 탓이 아닐까? 이렇게 타고난 덕이 다른데 그대는 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 이는 그대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다.” 북궁자는 대꾸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실망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동곽 선생과 마주쳤다. 동곽 선생이 복궁자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디를 갔다 오기에 그렇게 축 처진 채로 걸어오는데 얼굴에는 부끄러워하는 빛이 가득한가?” 복궁자는 그간의 일을 다 말했다. 그랬더니 동곽 선생이 말했다. “내가 자네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겠네. 자네와 같이 다시 서문자를 찾아가서 물어볼 말이 있네.”
동곽 선생이 서문자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찌하여 복궁자를 그리 심하게 모욕하였는가? 다시 한 번 말해보게.” 복궁자가 말했다. “복궁자가 시대, 족속, 나이, 외양, 말, 행동이 저와 다를 바 없는데도 사회적 지위와 빈부는 저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저는 ‘나도 그 실상을 알 수가 없다. 자네는 일을 하면 잘 안 되고 나는 일을 하면 잘 되니 이는 사람마다 덕이 후하고 박한 탓이 아닐까? 이렇게 타고난 덕이 다른데 그대는 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 이는 그대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동곽 선생이 말했다. “자네가 후하고 박하다고 말함은 사람의 재주와 역량의 차이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거니와 내가 말하려는 후함과 박함은 그런 것과는 다르다. 복궁자는 덕은 후하고 운명에는 박한 사람이고, 자네는 운명에는 후하지만 덕에는 박한 사람이다. 자네의 잘됨은 자네의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고, 복궁자가 못됨은 어리석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하늘 때문이지 사람 때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네는 운명이 후하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복궁자는 덕이 후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모두들 본디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서문자가 말했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북궁자는 귀가한 후에 짧고 거친 베옷을 입어도 여우 털옷이나 담비 털옷의 따뜻함을 지니게 되었고 피와 콩밥을 먹어도 정미한 곡식의 맛을 느끼게 되었으며, 오막살이에 살아도 고대광실에 사는 듯이 넓다고 여겼고 섶나무 실은 수레를 타고 가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수레를 타고 가는 듯이 느껴졌다. 평생토록 유유자적하며 영화로움과 부끄러움이 저쪽에 있는지 내 쪽에 있는지를 따질 줄을 몰랐다. 동곽 선생이 이러하다는 얘기를 듣고 말했다. “복궁자가 오랫동안 몽매하였다가 한 차례 말로 깨우칠 수 있었으니 깨우침을 쉽게 행하였도다!”
北宮子謂西門子曰, “朕與子並世也, 而人子達. 並族也, 而人子敬. 並貌也, 而人子愛. 並言也, 而人子庸. 並行也, 而人子誠. 並仕也, 而人子貴. 並農也, 而人子富. 並商也, 而人子利. 朕衣則裋褐, 食則粢糲, 居則蓬室, 出則徒行. 子衣則文錦, 食則粱肉, 居則連欐, 出則結駟. 在家熙然有棄朕之心, 在朝諤然有敖朕之色. 請謁不及相, 遨遊不同行, 固有年矣. 子自以德過朕邪.” 西門子曰, “予無以知其實. 汝造事而窮, 予造事而達, 此厚薄之驗歟. 而皆謂與予並, 汝之顏厚矣.” 北宮子無以應, 自失而歸, 中途遇東郭先生. 先生曰, “汝奚往而反, 偊偊而步, 有深愧之色邪.” 北宮子言其狀, 東郭先生曰, “吾將舍汝之愧, 與汝更之西門氏而問之.” 曰, “汝奚辱北宮子之深乎. 固且言之.” 西門子曰, “北宮子言世族年貌言行與予並, 而賤貴貧富與予異. 予語之曰, ‘予無以知其實. 汝造事而窮, 予造事而達, 此將厚薄之驗歟. 而皆謂與予並, 汝之顏厚矣.’” 東郭先生曰, “汝之言厚薄不過言才德之差, 吾之言厚薄異於是矣. 夫北宮子厚於德, 薄於命, 汝厚於命, 薄於德. 汝之達, 非智得也, 北宮子之窮, 非愚失也. 皆天也, 非人也. 而汝以命厚自矜, 北宮子以德厚自愧, 皆不識夫固然之理矣.” 西門子曰, “先生止矣. 予不敢復言.” 北宮子既歸, 衣其裋褐, 有狐貉之溫, 進其茙菽, 有稻粱之味, 庇其蓬室, 若廣廈之蔭, 乘其篳輅, 若文軒之飾. 終身逌然, 不知榮辱之在彼也, 在我也. 東郭先生聞之曰, “北宮子之寐久矣, 一言而能寤, 易悟也哉.”
[출전]『열자』
토론하기
(1) 북궁자, 서문자, 동곽 선생 각각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이들 셋의 주장 각각이 지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2) 동곽 선생이 서문자를 가르친 말을 듣고 왜 북궁자만 깨우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자.
(3) 북궁자와 서문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공평함은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개인 차원과 사회 차원으로 나눠서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고전 본문에는 늘 빈한하고 못살며 사회적 지위도 낮은 북궁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시대조건 아래서 살고 있고, 같은 겨레인데다 나이나 외모, 말과 행동 등이 별 차이가 없음에도 늘 부유하고 잘살며 사회적 지위도 높은 서문자에게 찾아가 따진다. 이렇게 둘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는데 왜 자신은 이 모양 이 꼴이고 당신은 또 왜 그렇게 잘살고 부유하며 출세까지 했냐고,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항변한다.
이에 서문자는 겉으로 보기에 북궁자 당신과 내가 비슷한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은 북궁자 당신이 타고난 덕과 내가 타고난 덕에 결정적 차이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대꾸한다. 그러고 나서 서문자는 타고난 덕이 박한 줄도 모르고 왜 자신에게 항변한다면 이는 철면피나 하는 짓이라면서 북궁자에게 타박을 놓는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층에게서 쉬이 목도되는 자기중심적 운명론의 전형인 셈인데, 아무튼 서문자의 대꾸에 할 말을 잃은 북궁자는 좌절한 채로 집으로 돌아간다. 도중에 우연히 동곽 선생이라는 현자와 마주친다. 동곽 선생은 풀이 푹 죽어 있는 북궁자에게 무슨 일로 그렇게 축 처진 채 부끄러워하는지를 물었고, 저간의 사정을 들은 동곽 선생은 북궁자를 앞세워 서문자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렇게 서문자와 마주하게 되자 동곽 선생은 서문자더러 북궁자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했는지를 물었고, 서문자가 그리 말했다고 하자 서문자를 훈계한다.
훈계의 요지는 이러했다. 먼저 동곽 선생은 서문자의 ‘타고난 덕의 후함과 박함’이라는 구도 설정을 ‘덕의 후함과 박함+운명의 후함과 박함’이라는 구도로 교정한다. 그러고 나서 “복궁자는 덕은 후하고 운명에는 박한 사람이고, 서문자 자네는 운명에는 후하지만 덕에는 박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덕(德)’은 역량, 능력의 다른 이름이다. 다시 말해 북궁자는 역량은 뛰어났지만 운명이 박해서 그렇게 어렵고 힘들며 빈천하게 살게 됐을 따름이고, 서문자는 역량이 모자랐지만 운명이 후해서 그렇게 수월하고 편안하며 부귀하게 살게 됐을 따름이라는 뜻이다. 동곽 선생은 다음으로 이렇게 설정한 구도를 토대로 “서문자 자네의 잘됨은 자네의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고, 복궁자가 못됨은 어리석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하늘 때문이지 사람 때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뒤이어 이치가 이러함에도 자신을 우월시하고 북궁자를 모욕한 서문자나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여 축 처져 있던 북궁자 모두 “본디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들 행동한 것이라고 일깨웠다.
동곽 선생의 이러한 가르침 덕분에 서문자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반성했고, 북궁자는 자신의 못삶, 가난, 지위 낮음 탓에 좌절한다거나 그들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 못삶, 가난, 지위 낮음 따위로 인해 “본디 그러한 자연의 이치”대로의 삶이 안겨다주는 참 즐거움이 방해받지 않는 경지로 성숙된다. 타고난 운명이란 것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에 더는 얽매이지 않는, 운명이 자신에게 후하든 박하든 간에, 그것과 무관하게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바를 해가면서 영위하는 삶을 긍정했음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바가 있다. 북궁자는 타고난 운명을 초극했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서문자는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전 본문에서는 동곽 선생의 훈계를 들은 서문자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반성하는 모습만 서술되어 있다. 이를 두고 서문자가 운명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운명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운명을 후하게 타고난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저 교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운명을 박하게 타고난 사람에게는 운명이 적잖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것에 얽매이지 않도록, 달리 말해 운명을 초극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일까?
만약 그러하다면 운명은 사뭇 편파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한데, 동서고금의 역사 어디를 봐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명쾌하고도 명료한 답변은 없는 듯하다. 아니, 인간인 이상 이러한 물음에 영원히 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키워드
귀천,노력, 동곽 선생, 빈부, 숙명, 요절,운명, 인력, 장수, 천명,
전후맥락
「力命」 편은 천명과 인력의 모순관계를 제재로 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천명 자체에는 시비 판단이나 공의(公義) 실현 같은 의지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대대로 장수와 요절, 부유함과 빈곤함,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 잘삶과 못삶 등은 천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왔다. 역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늘 있어 왔던, 가령 악한 이는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며 천수를 누리는 반면 선한 이는 빈곤하고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요절하는 현상을 그 근거로 든다. 「力命」 편에는 이러한 인식이 드러나 있는 고사들이 실려 있으며, 이들을 통해 천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설파되어 있다. 고전 본문은 그 가운데 한 편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는 북궁자의 항변을 별 노력 없이도 잘살고 있는 서문자는 이게 다 타고난 덕 때문이라며 일축한다. 이러한 서문자에 대해 현자인 동곽 선생이 등장하여 그러한 생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고전본문
복궁자가 서문자에게 말했다. “나와 그대는 같은 시대에 사는데도 사람들은 그대만을 잘되게 한다. 그대와는 같은 족속인데도 사람들은 그대만 존경한다. 그대와 같은 외양임에도 사람들은 그대만을 사랑한다. 그대와 같은 말을 하는데 사람들은 그대 말만 믿고 쓴다. 그대와 같은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은 그대만을 성실하다고 한다. 그대와 같이 벼슬살이를 하는데 사람들은 그대만을 승진시킨다. 그대와 같은 농사를 지었는데 사람들은 그대만 부자가 되게 하였다. 그대와 같은 장사를 했는데 사람들은 그대만 이롭게 하였다. 나는 옷은 짧고 거친 베옷이고 음식은 거친 곡식이며, 거처는 오막살이이고 출타하면 걸어 다닌다. 자네는, 옷은 수놓은 비단옷이고 음식은 좋은 곡식과 기름진 고기이며, 거처는 큰 저택이고 출타하면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닌다. 집에서는 행복에 겨워하며 나를 업신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조정에서는 거침없이 말을 하면서 나를 업신여기는 안색을 보인다. 만나보자고 청해도 만나볼 수 없고, 놀러 가도 같이 가려 하지 않은 지가 참으로 몇 해나 되었다. 그대는 스스로 그대의 덕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서문자가 말했다. “나도 그 실상을 알 수가 없다. 자네는 일을 하면 잘 안 되고 나는 일을 하면 잘 되니 이는 사람마다 덕이 후하고 박한 탓이 아닐까? 이렇게 타고난 덕이 다른데 그대는 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 이는 그대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다.” 북궁자는 대꾸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실망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동곽 선생과 마주쳤다. 동곽 선생이 복궁자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디를 갔다 오기에 그렇게 축 처진 채로 걸어오는데 얼굴에는 부끄러워하는 빛이 가득한가?” 복궁자는 그간의 일을 다 말했다. 그랬더니 동곽 선생이 말했다. “내가 자네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겠네. 자네와 같이 다시 서문자를 찾아가서 물어볼 말이 있네.”
동곽 선생이 서문자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찌하여 복궁자를 그리 심하게 모욕하였는가? 다시 한 번 말해보게.” 복궁자가 말했다. “복궁자가 시대, 족속, 나이, 외양, 말, 행동이 저와 다를 바 없는데도 사회적 지위와 빈부는 저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저는 ‘나도 그 실상을 알 수가 없다. 자네는 일을 하면 잘 안 되고 나는 일을 하면 잘 되니 이는 사람마다 덕이 후하고 박한 탓이 아닐까? 이렇게 타고난 덕이 다른데 그대는 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 이는 그대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동곽 선생이 말했다. “자네가 후하고 박하다고 말함은 사람의 재주와 역량의 차이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거니와 내가 말하려는 후함과 박함은 그런 것과는 다르다. 복궁자는 덕은 후하고 운명에는 박한 사람이고, 자네는 운명에는 후하지만 덕에는 박한 사람이다. 자네의 잘됨은 자네의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고, 복궁자가 못됨은 어리석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하늘 때문이지 사람 때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네는 운명이 후하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복궁자는 덕이 후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모두들 본디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서문자가 말했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북궁자는 귀가한 후에 짧고 거친 베옷을 입어도 여우 털옷이나 담비 털옷의 따뜻함을 지니게 되었고 피와 콩밥을 먹어도 정미한 곡식의 맛을 느끼게 되었으며, 오막살이에 살아도 고대광실에 사는 듯이 넓다고 여겼고 섶나무 실은 수레를 타고 가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수레를 타고 가는 듯이 느껴졌다. 평생토록 유유자적하며 영화로움과 부끄러움이 저쪽에 있는지 내 쪽에 있는지를 따질 줄을 몰랐다. 동곽 선생이 이러하다는 얘기를 듣고 말했다. “복궁자가 오랫동안 몽매하였다가 한 차례 말로 깨우칠 수 있었으니 깨우침을 쉽게 행하였도다!”
北宮子謂西門子曰, “朕與子並世也, 而人子達. 並族也, 而人子敬. 並貌也, 而人子愛. 並言也, 而人子庸. 並行也, 而人子誠. 並仕也, 而人子貴. 並農也, 而人子富. 並商也, 而人子利. 朕衣則裋褐, 食則粢糲, 居則蓬室, 出則徒行. 子衣則文錦, 食則粱肉, 居則連欐, 出則結駟. 在家熙然有棄朕之心, 在朝諤然有敖朕之色. 請謁不及相, 遨遊不同行, 固有年矣. 子自以德過朕邪.” 西門子曰, “予無以知其實. 汝造事而窮, 予造事而達, 此厚薄之驗歟. 而皆謂與予並, 汝之顏厚矣.” 北宮子無以應, 自失而歸, 中途遇東郭先生. 先生曰, “汝奚往而反, 偊偊而步, 有深愧之色邪.” 北宮子言其狀, 東郭先生曰, “吾將舍汝之愧, 與汝更之西門氏而問之.” 曰, “汝奚辱北宮子之深乎. 固且言之.” 西門子曰, “北宮子言世族年貌言行與予並, 而賤貴貧富與予異. 予語之曰, ‘予無以知其實. 汝造事而窮, 予造事而達, 此將厚薄之驗歟. 而皆謂與予並, 汝之顏厚矣.’” 東郭先生曰, “汝之言厚薄不過言才德之差, 吾之言厚薄異於是矣. 夫北宮子厚於德, 薄於命, 汝厚於命, 薄於德. 汝之達, 非智得也, 北宮子之窮, 非愚失也. 皆天也, 非人也. 而汝以命厚自矜, 北宮子以德厚自愧, 皆不識夫固然之理矣.” 西門子曰, “先生止矣. 予不敢復言.” 北宮子既歸, 衣其裋褐, 有狐貉之溫, 進其茙菽, 有稻粱之味, 庇其蓬室, 若廣廈之蔭, 乘其篳輅, 若文軒之飾. 終身逌然, 不知榮辱之在彼也, 在我也. 東郭先生聞之曰, “北宮子之寐久矣, 一言而能寤, 易悟也哉.”
[출전]『열자』
토론하기
(1) 북궁자, 서문자, 동곽 선생 각각의 주장을 정리해보자. 이들 셋의 주장 각각이 지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2) 동곽 선생이 서문자를 가르친 말을 듣고 왜 북궁자만 깨우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자.
(3) 북궁자와 서문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공평함은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개인 차원과 사회 차원으로 나눠서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고전 본문에는 늘 빈한하고 못살며 사회적 지위도 낮은 북궁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시대조건 아래서 살고 있고, 같은 겨레인데다 나이나 외모, 말과 행동 등이 별 차이가 없음에도 늘 부유하고 잘살며 사회적 지위도 높은 서문자에게 찾아가 따진다. 이렇게 둘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는데 왜 자신은 이 모양 이 꼴이고 당신은 또 왜 그렇게 잘살고 부유하며 출세까지 했냐고,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항변한다.
이에 서문자는 겉으로 보기에 북궁자 당신과 내가 비슷한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은 북궁자 당신이 타고난 덕과 내가 타고난 덕에 결정적 차이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대꾸한다. 그러고 나서 서문자는 타고난 덕이 박한 줄도 모르고 왜 자신에게 항변한다면 이는 철면피나 하는 짓이라면서 북궁자에게 타박을 놓는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층에게서 쉬이 목도되는 자기중심적 운명론의 전형인 셈인데, 아무튼 서문자의 대꾸에 할 말을 잃은 북궁자는 좌절한 채로 집으로 돌아간다. 도중에 우연히 동곽 선생이라는 현자와 마주친다. 동곽 선생은 풀이 푹 죽어 있는 북궁자에게 무슨 일로 그렇게 축 처진 채 부끄러워하는지를 물었고, 저간의 사정을 들은 동곽 선생은 북궁자를 앞세워 서문자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렇게 서문자와 마주하게 되자 동곽 선생은 서문자더러 북궁자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했는지를 물었고, 서문자가 그리 말했다고 하자 서문자를 훈계한다.
훈계의 요지는 이러했다. 먼저 동곽 선생은 서문자의 ‘타고난 덕의 후함과 박함’이라는 구도 설정을 ‘덕의 후함과 박함+운명의 후함과 박함’이라는 구도로 교정한다. 그러고 나서 “복궁자는 덕은 후하고 운명에는 박한 사람이고, 서문자 자네는 운명에는 후하지만 덕에는 박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덕(德)’은 역량, 능력의 다른 이름이다. 다시 말해 북궁자는 역량은 뛰어났지만 운명이 박해서 그렇게 어렵고 힘들며 빈천하게 살게 됐을 따름이고, 서문자는 역량이 모자랐지만 운명이 후해서 그렇게 수월하고 편안하며 부귀하게 살게 됐을 따름이라는 뜻이다. 동곽 선생은 다음으로 이렇게 설정한 구도를 토대로 “서문자 자네의 잘됨은 자네의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고, 복궁자가 못됨은 어리석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하늘 때문이지 사람 때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뒤이어 이치가 이러함에도 자신을 우월시하고 북궁자를 모욕한 서문자나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여 축 처져 있던 북궁자 모두 “본디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들 행동한 것이라고 일깨웠다.
동곽 선생의 이러한 가르침 덕분에 서문자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반성했고, 북궁자는 자신의 못삶, 가난, 지위 낮음 탓에 좌절한다거나 그들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 못삶, 가난, 지위 낮음 따위로 인해 “본디 그러한 자연의 이치”대로의 삶이 안겨다주는 참 즐거움이 방해받지 않는 경지로 성숙된다. 타고난 운명이란 것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에 더는 얽매이지 않는, 운명이 자신에게 후하든 박하든 간에, 그것과 무관하게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바를 해가면서 영위하는 삶을 긍정했음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바가 있다. 북궁자는 타고난 운명을 초극했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서문자는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전 본문에서는 동곽 선생의 훈계를 들은 서문자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반성하는 모습만 서술되어 있다. 이를 두고 서문자가 운명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운명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운명을 후하게 타고난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저 교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운명을 박하게 타고난 사람에게는 운명이 적잖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것에 얽매이지 않도록, 달리 말해 운명을 초극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일까?
만약 그러하다면 운명은 사뭇 편파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한데, 동서고금의 역사 어디를 봐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명쾌하고도 명료한 답변은 없는 듯하다. 아니, 인간인 이상 이러한 물음에 영원히 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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