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변명론」은 지식인의 못삶과 잘삶은 운명 아닌 것이 없다는 유준의 단정으로 시작된다. 옛날부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은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고, 탐욕스런 자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일을 탄식해왔음이 이를 입증해준다고 보았다. 다만 운명의 원리나 못삶과 잘삶의 운수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한편 유준은 고귀하고 문벌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사람의 노력이 운명을 불러온다고 말한다고 증언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고귀하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다 자기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유준은 첫 번째 생략 부분과 두 번째 생략 부분에서 이러한 말이 사실이 아님을 역사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입증한다. 이 과정에서 유준은 역량 있는 이들이 못삶도 운명 때문이고 잘삶도 운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유준은 운명에 대하여 이렇게 규명한 다음 그러한 운명의 본질에 대하여 논술함으로써, 사람이 운명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운명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변명론」을 갈무리한다.
고전본문
한번 빚어지면 바뀌지 않는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운명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령이다. 이것은 태초에 정해진 것이어서 끝끝내 변하지 않는다. 귀신도 간여할 수 없고 성인과 철인도 헤아릴 수 없으며, 산을 무너뜨린 힘으로도 대항할 수 없고 지는 해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정성으로도 운명을 감동시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목숨이 짧다 해도 그것을 해시계 그림자만큼이라도 더 연장시킬 수 없고, 목숨이 너무 길다 해도 그것을 물시계 눈금자보다 더 빨리 가게 할 수도 없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도 운명을 뛰어넘을 수 없고,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략)… 그러나 운명은 본질상 끊임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어서 그 변화가 한결같지 않다. 더러는 먼저 울다가 뒤에는 웃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처음에는 길하다가 마지막에 흉하기도 하며, 더러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다른 사람 덕분에 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운명은 서로 교차되어 뒤얽히고, 길흉화복 등이 서로를 감아 돌고 기대고 있어 한 가지 원리로만 입증할 수 없으며, 한 가지 길만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운명의 도는 은밀하고 미세하며 적막하고 어둑하여 그 형체를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것은 반드시 만사만물을 부리면서 자신의 영험함을 드러내고, 또한 사람에 기대어 자신의 실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략)… 그러나 이른바 운명에는 삶과 죽음, 사회적 지위의 높음과 낮음, 가난함과 부유함, 안정과 혼란, 재앙과 복록이 있는데 이 열 가지는 모두 하늘이 부여해주는 것이다. 반면에 어리석음, 지혜로움, 착함, 못됨 이 네 가지는 사람이 행하는 바이다. …(중략)… 다 같이 선을 행했고, 다 같이 악을 행했음에도 화와 복은 그 흐름을 달리하여 누구는 복되고 누구는 흉하고, 피폐함과 흥성함이 그 궤적을 달리하여 누구는 망하고 누구는 흥하니, 넓고도 크신 천제(天帝)께서 어찌 이와 같이 행한단 말인가? 다만 시경(詩經)에는 이런 말이 있다. “비바람이 캄캄하게 몰아쳐도 닭 울음소리 그치지 않네.” 그러니 착한 이가 선을 행함을 어찌 그칠 수 있겠는가? 좋은 곡식을 먹고 밥상에 고기를 올리며 좋은 가죽 털옷을 입고 고운 비단 옷을 입는 것, 아리땁고 진기한 춤을 구경하고 운화산의 나무로 만든 명품 거문고 연주를 듣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간절히 원하는 바로, 이는 누가 요구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을 닦고 인의를 익히며 효성과 공손함을 돈독히 실천하고 충성과 정직을 곧추 행하여 예악(禮樂)의 윤기에 점점 젖어들고 성왕의 훌륭한 법도를 실천하는 것은 군자들이 모두 간절히 원하는 바로, 이는 누가 요구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즉 군자는 올바르게 처신하며 도리를 체득하여 천명을 즐기고 운명을 알고 나서 그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식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잘 식별해야 한다. 또 흘러가는 것은 부르지 않고 다가오는 것은 막지 않으며, 살아도 기뻐하지 말고 죽어도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찬란한 누각과 고대광실도 정신을 기쁘게 할 수 없으며 흙집이나 띠풀을 얹은 초가집도 근심을 보탤 수 없다. 부귀에 자만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욕망에도 급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化而不易, 則謂之命. 命也者, 自天之命也. 定於冥兆, 終然不變. 鬼神莫能預, 聖哲不能謀, 觸山之力無以抗, 倒日之誠弗能感. 短則不可緩之於寸陰, 長則不可急之於箭漏. 至德未能踰, 上智所不免. …(중략)… 然命體周流, 變化非一. 或先號後笑, 或始吉終凶, 或不召自來, 或因人以濟. 交錯糾紛, 回還倚伏, 非可以一理徵, 非可以一途驗. 而其道密微, 寂寥忽慌, 無形可以見, 無聲可以聞. 必御物以效靈, 亦憑人而成象. 譬天王之冕旒, 任百官以司職. …(중략)… 然所謂命者, 死生焉, 貴賤焉, 貧富焉, 治亂焉, 禍福焉, 此十者, 天之所賦也. 愚智善惡, 此四者, 人之所行也. …(중략)… 爲善一, 爲惡均, 而禍福異其流, 廢興殊其跡, 蕩蕩上帝, 豈如是乎. 詩云, “風雨如晦, 雞鳴不已.” 故善人爲善. 焉有息哉.” 夫食稻粱, 進芻豢, 衣狐貉, 襲冰紈, 觀窈眇之奇舞, 聽雲和之琴瑟, 此生人之所急, 非有求而爲也. 修道德, 習仁義, 敦孝悌, 立忠貞, 漸禮樂之腴潤, 蹈先王之盛則, 此君子之所急, 非有求而爲也. 然則君子居正體道, 樂天知命, 明其無可奈何, 識其不由智力. 逝而不召, 來而不距, 生而不喜, 死而不慼. 瑤臺夏屋, 不能悅其神, 土室編蓬, 未足憂其慮. 不充詘於富貴, 不遑遑於所欲.
[출전] 유준,『변명론』
토론하기
(1) 고전 본문의 저자는 사람은 운명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이 지닐 수 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2) 고전 본문의 저자는 인간은 운명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이러한 저자의 관점 하에서 인간의 노력은 어떠한 실효를 빚어낼 수 있는가?
(3) 고전 본문 저자의 견해처럼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그러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고전 본문의 저자인 유준은 「변명론」에서 고귀하고 문벌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좋거나 그렇지 못한 운명을 불러온다고 말한다고 증언한다. 지난 세월 내내 이러한 관점이 잘못된 줄을 몰랐기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끌시끌하게 적잖은 논란이 벌어졌고, 심지어 이단의 학설마저도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러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변명론」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유준은 사람의 못삶과 잘삶 중에 운명 아닌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운명은 한번 빚어지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운명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령으로 태초에 정해진 것임에도 끝끝내 변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아무리 훌륭한 덕을 쌓은 이라도, 천하제일의 지혜를 소유한 이라고 해도 주어진 운명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유준만의 지난 관점이라기보다는 자고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온 것과 별 차이 없다. 기존 관점과 달라지는 점은 운명은 갖은 신기하고 신비한 현상을 일으키는 귀신도, 인간 가운데 가장 역량이 뛰어나다는 성인과 철인도 헤아릴 수 없다고 본 점이다. 한마디로 운명은 태초에 그것을 정한 하늘 외에는 그 자세하고 구체적 내용을,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현될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유준은 운명은 산을 무너뜨린 힘으로도 대항할 수 없고 지는 해를 다시 끌어올린 정성으로도 이를 감동시켜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이를테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그러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한 후 하늘의 명을 기다리다”와 같은 권계는 애초부터 사기인 셈이다. 그렇게 노력하고 기다려봤자 애초에 그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게끔 운명이 빚어져 있으면, 하늘의 명은 결코 그가 원하는 바대로 내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테면 “해봤자 뭐해! 결과는 다 정해져 있는데!” 식의 불평도 잘못일 수 있다. 인간은 운명의 구체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 주목하면 유준의 운명론은 지독할 정도의 숙명론에 가깝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눈곱만큼도 인정하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 주목하면 결코 그렇게 볼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유준은 이러한 관점을 더불어 제시했다. 곧 운명은 “본성상 끊임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어서 그 변화가 한결같지 않다. 더러는 먼저 울다가 뒤에는 웃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처음에는 길하다가 마지막에 흉하기도 하며, 더러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다른 사람 덕분에 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흔히들 어떤 사람이 잘살 운명이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살게 된다고 여긴다. 역으로 하는 일마다 잘못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으면 평생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준의 관점에 의하면 이러한 관념은 모두 잘못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단일하고 균질적으로 작동되도록 생겨먹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동되기도 하고 저렇게 작동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떨 때는 잘살게 해주는 쪽으로 흐르기도 하고 다른 때는 못살게 하는 쪽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운명은 서로 교차되어 뒤얽혀 있게 마련이어서, 다시 말해 길함으로 인해 흉함이 생기고 화로 인해 복이 생기는 것 같이 작동되기에 한 가지 원리로만 입증할 수 없고 한 가지 길로만 증명할 수 없다.
이렇게 전제한 다음 유준은 ‘삶과 죽음’, ‘지위의 높음과 낮음’, ‘가난함과 부유함’, ‘사회의 안정과 혼란’, ‘재앙과 복록’은 하늘이 부여해주는 운명인 반면에 ‘어리석음, 지혜로움, 착함, 못됨’은 사람이 행함에 따라 구현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똑같이 선을 행했다고 해도 누구는 잘되고 누구는 못되기 마련이고, 똑같이 악행을 저질러도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태초부터 정해진 바대로 실현되는 것일 뿐으로 하늘의 최고신인 천제(天帝)가 개입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유준의 운명론이 지니는 또 다른 특이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운명이라는 것이 삶의 매 순간에 개입하여 자기 뜻대로 사람을, 삶을 휘둘러댄다고 여긴다. 그런데 유준의 관점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은 잘못이다. 운명이란 것이 본래부터 복잡다단하게 설정되어서 그렇지 운명은 한 번 정해진 다음에는 사람에게, 또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준은 이상의 운명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의를 이렇게 갈무리한다. 모름지기 운명이 이러하다는 점을 잘 깨달은 다음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즐기는 한편, “그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식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잘 식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한 나를 잘살게 해준 운명이 흘러간다고 하여 이에 미련을 두어서도 안 되고, 나를 못살게 하는 운명이 다가온다고 하여 이를 막거나 그것에서 피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권계한다. 살아 있다고 하여 기뻐하지도 말고 죽는다고 하여 슬퍼하지 말며, 잘사는 것을 기쁨의 원천으로 삶지도 말고 못사는 것은 걱정의 원인으로 삶지도 말라고 한다. 부귀나 출세, 장수 등에 자만하지도 말고 빈곤이나 좌절, 요절 등에 굴복하지도 말라고 한다.
키워드
귀천, 노력, 빈부, 숙명,요절, 운명,인력, 장수, 천명,
전후맥락
「변명론」은 지식인의 못삶과 잘삶은 운명 아닌 것이 없다는 유준의 단정으로 시작된다. 옛날부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은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고, 탐욕스런 자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일을 탄식해왔음이 이를 입증해준다고 보았다. 다만 운명의 원리나 못삶과 잘삶의 운수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한편 유준은 고귀하고 문벌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사람의 노력이 운명을 불러온다고 말한다고 증언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고귀하고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다 자기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유준은 첫 번째 생략 부분과 두 번째 생략 부분에서 이러한 말이 사실이 아님을 역사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입증한다. 이 과정에서 유준은 역량 있는 이들이 못삶도 운명 때문이고 잘삶도 운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유준은 운명에 대하여 이렇게 규명한 다음 그러한 운명의 본질에 대하여 논술함으로써, 사람이 운명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운명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변명론」을 갈무리한다.
고전본문
한번 빚어지면 바뀌지 않는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운명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령이다. 이것은 태초에 정해진 것이어서 끝끝내 변하지 않는다. 귀신도 간여할 수 없고 성인과 철인도 헤아릴 수 없으며, 산을 무너뜨린 힘으로도 대항할 수 없고 지는 해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정성으로도 운명을 감동시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목숨이 짧다 해도 그것을 해시계 그림자만큼이라도 더 연장시킬 수 없고, 목숨이 너무 길다 해도 그것을 물시계 눈금자보다 더 빨리 가게 할 수도 없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도 운명을 뛰어넘을 수 없고,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략)… 그러나 운명은 본질상 끊임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어서 그 변화가 한결같지 않다. 더러는 먼저 울다가 뒤에는 웃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처음에는 길하다가 마지막에 흉하기도 하며, 더러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다른 사람 덕분에 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운명은 서로 교차되어 뒤얽히고, 길흉화복 등이 서로를 감아 돌고 기대고 있어 한 가지 원리로만 입증할 수 없으며, 한 가지 길만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운명의 도는 은밀하고 미세하며 적막하고 어둑하여 그 형체를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것은 반드시 만사만물을 부리면서 자신의 영험함을 드러내고, 또한 사람에 기대어 자신의 실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략)… 그러나 이른바 운명에는 삶과 죽음, 사회적 지위의 높음과 낮음, 가난함과 부유함, 안정과 혼란, 재앙과 복록이 있는데 이 열 가지는 모두 하늘이 부여해주는 것이다. 반면에 어리석음, 지혜로움, 착함, 못됨 이 네 가지는 사람이 행하는 바이다. …(중략)… 다 같이 선을 행했고, 다 같이 악을 행했음에도 화와 복은 그 흐름을 달리하여 누구는 복되고 누구는 흉하고, 피폐함과 흥성함이 그 궤적을 달리하여 누구는 망하고 누구는 흥하니, 넓고도 크신 천제(天帝)께서 어찌 이와 같이 행한단 말인가? 다만 시경(詩經)에는 이런 말이 있다. “비바람이 캄캄하게 몰아쳐도 닭 울음소리 그치지 않네.” 그러니 착한 이가 선을 행함을 어찌 그칠 수 있겠는가? 좋은 곡식을 먹고 밥상에 고기를 올리며 좋은 가죽 털옷을 입고 고운 비단 옷을 입는 것, 아리땁고 진기한 춤을 구경하고 운화산의 나무로 만든 명품 거문고 연주를 듣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간절히 원하는 바로, 이는 누가 요구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을 닦고 인의를 익히며 효성과 공손함을 돈독히 실천하고 충성과 정직을 곧추 행하여 예악(禮樂)의 윤기에 점점 젖어들고 성왕의 훌륭한 법도를 실천하는 것은 군자들이 모두 간절히 원하는 바로, 이는 누가 요구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즉 군자는 올바르게 처신하며 도리를 체득하여 천명을 즐기고 운명을 알고 나서 그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식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잘 식별해야 한다. 또 흘러가는 것은 부르지 않고 다가오는 것은 막지 않으며, 살아도 기뻐하지 말고 죽어도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찬란한 누각과 고대광실도 정신을 기쁘게 할 수 없으며 흙집이나 띠풀을 얹은 초가집도 근심을 보탤 수 없다. 부귀에 자만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욕망에도 급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化而不易, 則謂之命. 命也者, 自天之命也. 定於冥兆, 終然不變. 鬼神莫能預, 聖哲不能謀, 觸山之力無以抗, 倒日之誠弗能感. 短則不可緩之於寸陰, 長則不可急之於箭漏. 至德未能踰, 上智所不免. …(중략)… 然命體周流, 變化非一. 或先號後笑, 或始吉終凶, 或不召自來, 或因人以濟. 交錯糾紛, 回還倚伏, 非可以一理徵, 非可以一途驗. 而其道密微, 寂寥忽慌, 無形可以見, 無聲可以聞. 必御物以效靈, 亦憑人而成象. 譬天王之冕旒, 任百官以司職. …(중략)… 然所謂命者, 死生焉, 貴賤焉, 貧富焉, 治亂焉, 禍福焉, 此十者, 天之所賦也. 愚智善惡, 此四者, 人之所行也. …(중략)… 爲善一, 爲惡均, 而禍福異其流, 廢興殊其跡, 蕩蕩上帝, 豈如是乎. 詩云, “風雨如晦, 雞鳴不已.” 故善人爲善. 焉有息哉.” 夫食稻粱, 進芻豢, 衣狐貉, 襲冰紈, 觀窈眇之奇舞, 聽雲和之琴瑟, 此生人之所急, 非有求而爲也. 修道德, 習仁義, 敦孝悌, 立忠貞, 漸禮樂之腴潤, 蹈先王之盛則, 此君子之所急, 非有求而爲也. 然則君子居正體道, 樂天知命, 明其無可奈何, 識其不由智力. 逝而不召, 來而不距, 生而不喜, 死而不慼. 瑤臺夏屋, 不能悅其神, 土室編蓬, 未足憂其慮. 不充詘於富貴, 不遑遑於所欲.
[출전] 유준,『변명론』
토론하기
(1) 고전 본문의 저자는 사람은 운명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이 지닐 수 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토의해보자
(2) 고전 본문의 저자는 인간은 운명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이러한 저자의 관점 하에서 인간의 노력은 어떠한 실효를 빚어낼 수 있는가?
(3) 고전 본문 저자의 견해처럼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사람은 그러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고전 본문의 저자인 유준은 「변명론」에서 고귀하고 문벌이 높은 사람들은 오직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좋거나 그렇지 못한 운명을 불러온다고 말한다고 증언한다. 지난 세월 내내 이러한 관점이 잘못된 줄을 몰랐기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끌시끌하게 적잖은 논란이 벌어졌고, 심지어 이단의 학설마저도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러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변명론」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유준은 사람의 못삶과 잘삶 중에 운명 아닌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운명은 한번 빚어지면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운명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령으로 태초에 정해진 것임에도 끝끝내 변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아무리 훌륭한 덕을 쌓은 이라도, 천하제일의 지혜를 소유한 이라고 해도 주어진 운명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유준만의 지난 관점이라기보다는 자고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온 것과 별 차이 없다. 기존 관점과 달라지는 점은 운명은 갖은 신기하고 신비한 현상을 일으키는 귀신도, 인간 가운데 가장 역량이 뛰어나다는 성인과 철인도 헤아릴 수 없다고 본 점이다. 한마디로 운명은 태초에 그것을 정한 하늘 외에는 그 자세하고 구체적 내용을,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현될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유준은 운명은 산을 무너뜨린 힘으로도 대항할 수 없고 지는 해를 다시 끌어올린 정성으로도 이를 감동시켜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이를테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그러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한 후 하늘의 명을 기다리다”와 같은 권계는 애초부터 사기인 셈이다. 그렇게 노력하고 기다려봤자 애초에 그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게끔 운명이 빚어져 있으면, 하늘의 명은 결코 그가 원하는 바대로 내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테면 “해봤자 뭐해! 결과는 다 정해져 있는데!” 식의 불평도 잘못일 수 있다. 인간은 운명의 구체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 주목하면 유준의 운명론은 지독할 정도의 숙명론에 가깝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눈곱만큼도 인정하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 주목하면 결코 그렇게 볼 수 없게 된다. 더욱이 유준은 이러한 관점을 더불어 제시했다. 곧 운명은 “본성상 끊임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어서 그 변화가 한결같지 않다. 더러는 먼저 울다가 뒤에는 웃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처음에는 길하다가 마지막에 흉하기도 하며, 더러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다른 사람 덕분에 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흔히들 어떤 사람이 잘살 운명이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살게 된다고 여긴다. 역으로 하는 일마다 잘못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으면 평생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준의 관점에 의하면 이러한 관념은 모두 잘못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단일하고 균질적으로 작동되도록 생겨먹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동되기도 하고 저렇게 작동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떨 때는 잘살게 해주는 쪽으로 흐르기도 하고 다른 때는 못살게 하는 쪽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운명은 서로 교차되어 뒤얽혀 있게 마련이어서, 다시 말해 길함으로 인해 흉함이 생기고 화로 인해 복이 생기는 것 같이 작동되기에 한 가지 원리로만 입증할 수 없고 한 가지 길로만 증명할 수 없다.
이렇게 전제한 다음 유준은 ‘삶과 죽음’, ‘지위의 높음과 낮음’, ‘가난함과 부유함’, ‘사회의 안정과 혼란’, ‘재앙과 복록’은 하늘이 부여해주는 운명인 반면에 ‘어리석음, 지혜로움, 착함, 못됨’은 사람이 행함에 따라 구현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똑같이 선을 행했다고 해도 누구는 잘되고 누구는 못되기 마련이고, 똑같이 악행을 저질러도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태초부터 정해진 바대로 실현되는 것일 뿐으로 하늘의 최고신인 천제(天帝)가 개입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유준의 운명론이 지니는 또 다른 특이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운명이라는 것이 삶의 매 순간에 개입하여 자기 뜻대로 사람을, 삶을 휘둘러댄다고 여긴다. 그런데 유준의 관점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은 잘못이다. 운명이란 것이 본래부터 복잡다단하게 설정되어서 그렇지 운명은 한 번 정해진 다음에는 사람에게, 또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준은 이상의 운명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논의를 이렇게 갈무리한다. 모름지기 운명이 이러하다는 점을 잘 깨달은 다음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즐기는 한편, “그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식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잘 식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한 나를 잘살게 해준 운명이 흘러간다고 하여 이에 미련을 두어서도 안 되고, 나를 못살게 하는 운명이 다가온다고 하여 이를 막거나 그것에서 피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권계한다. 살아 있다고 하여 기뻐하지도 말고 죽는다고 하여 슬퍼하지 말며, 잘사는 것을 기쁨의 원천으로 삶지도 말고 못사는 것은 걱정의 원인으로 삶지도 말라고 한다. 부귀나 출세, 장수 등에 자만하지도 말고 빈곤이나 좌절, 요절 등에 굴복하지도 말라고 한다.
키워드
귀천, 노력, 빈부, 숙명,요절, 운명,인력, 장수, 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