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 본문은 「사설」의 전문이다. 이 글은 크게 7단락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단락에서는 스승이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를 서술하였고, 둘째 단락에서는 글쓴이인 한유 자신의 스승을 삼는 방식을 서술하였다. 셋째 단락부터 다섯째 단락에서는 한유 당시의 스승 삼기를 둘러싼 제반 병폐를 서술하였고, 여섯 째 단락에서는 공자의 스승 삼기를 예로 들어 바람직한 스승 삼기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젊은 후학인 이반에게 그대의 스승 삼는 방식이 시류와 다를지라도 그 방식이 올바른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격려를 담았다.
고전본문
옛날 배우는 자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전수하며, 미혹된 바를 풀어주는 자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닌데 누군들 미혹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미혹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그 미혹됨은 끝내 풀어지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고 그가 도를 들었으면 진실로 나보다 앞서니 나는 그를 따라 스승으로 삼는다.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었다면 또한 나보다 앞선 것이니 나는 그를 따라 스승으로 삼는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으니 어찌 그가 나보다 태어난 해가 먼저인지, 뒤인지를 따지겠는가? 그러므로 신분이 높고 천함을 막론하고, 나이가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도가 있는 곳이 바로 스승이 있는 곳이다.
아아! 스승의 도가 전해지지 않음이 오래되었다. 사람들의 미혹됨을 해소하고자 하나 어렵도다! 옛날의 성인은 그 사람들보다 뛰어남이 컸지만 오히려 또한 스승을 따르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의 뭇 사람들은 그러한 성인들보다 한참 못났음에도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더욱 훌륭해지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이 성인인 까닭과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까닭은 모두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제 자식을 사랑하여 스승을 택하여 그를 가르치게 하면서 그 자신에 있어서는 스승 모시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되었다. 저 어린아이의 스승은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문장의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로 이는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미혹됨을 풀어주는 이가 아니다. 구두를 모르거나 미혹됨이 풀리지 않았을 때, 어떤 때는 스승을 모시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으니 이는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는 것이니 나는 그러한 이들의 현명함을 아직 보지 못했다.
무당, 의사, 악사, 뭇 장인과 같은 사람들은 서로 스승 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대부의 족속들은 서로를 “스승”, “제자”라고 부르면서 무리 지어 그들을 비웃는다. 그 까닭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과 저 사람은 나이가 서로 같고 도의 수준도 서로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위가 낮음에도 스승으로 삼는다면 이는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고, 스승 삼은 이가 관직이 높다면 이는 아첨에 가까운 것이다.” 아아! 스승의 도가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무당, 의사, 악사, 뭇 장인과 같은 사람들을 군자들은 같은 급으로 여기지 않지만, 지금은 군자들의 지혜가 도리어 그들에 미치지 못하니 괴이하다.
성인에게는 고정된 스승이 없으시다. 공자는 담자, 장홍, 사양, 노담을 스승으로 삼으셨다. 담자 등은 그 현명함이 공자에 미치지 못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 사람이 가면 그 안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그러니 제자가 꼭 스승만 못할 필요도 없으며 스승이 꼭 제자보다 현명할 필요도 없으니, 도를 들음에 선후가 있음과 기예에 전공이 있음, 이와 같을 뿐이다.
이 씨 집안의 반이 나이가 열일곱인데 옛 문장을 좋아하고 여섯 경전을 모두 통달하여 익혔으며 시속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에게 배웠다. 나는 그가 옛 도를 행할 수 있음을 기뻐하여 「사설」을 지어 그에게 준다.
古之學者必有師.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為惑也, 終不解矣. 生乎吾前, 其聞道也, 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 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是故無貴無賤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眾人, 其下聖人也亦遠矣, 而恥學於師. 是故聖益聖, 愚益愚, 聖人之所以為聖, 愚人之所以為愚, 其皆出於此乎. 愛其子, 擇師而教之, 於其身也則恥師焉, 惑矣.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巫醫樂師百工之人, 不恥相師. 士大夫之族, 曰師曰弟子云者, 則群聚而笑之. 問之, 則曰, “彼與彼年相若也, 道相似也. 位卑則足羞, 官盛則近諛.” 嗚呼, 師道之不復可知矣. 巫醫樂師百工之人, 君子不齒, 今其智乃反不能及, 其可怪也歟. 聖人無常師. 孔子師郯子萇弘師襄老聃. 郯子之徒, 其賢不及孔子. 孔子曰, “三人行, 則必有我師.” 是故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聞道有先後, 術業有專攻, 如是而已. 李氏子蟠, 年十七, 好古文, 六藝經傳, 皆通習之, 不拘於時, 學於余. 余嘉其能行古道, 作師說以貽之.
[출전] 한유, 『사설』
토론하기
(1) 글쓴이의 스승 삼는 방식과 그가 비판한 이들의 스승 삼는 방식을 비교해보자. 그리고 각각의 방식이 지니는 장단점을 이야기해보자.
(2) 성인에게는 고정된 스승이란 없다는 공자의 말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또한 셋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3) 스승의 역할, 자격, 조건 등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공자가 평소에 제자나 위정자 등과 나누었던 대화, 그들에게 해주었던 말 등이 담겨 있는 『논어』 는 전근대 시기의 중국문명을 빚어낸 중요한 텍스트였다. 여기에는 “세 사람이 가면 그 안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이는 공자가 평생 스승을 어떻게 삼아왔는지를 일러주는 언급으로 이후 적어도 2천 5백여 년 동안 중국뿐 아니라 한자권 전역에 걸쳐 스승에 대한 관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언급이었다.
중국문명을 빚어온 주요 텍스트인 『논어』에 위와 같은 스승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방증해주듯이, 스승에 대한 논의는 인류가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던 초기부터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자연의 도전을 극복해가면서 문명한 사회를 일구기 위해서는 앞선 세대가 일궈놓은 소산을 계승하여 갱신, 발전시켜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앞선 세대의 소산을 가르쳐주는 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스승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던 것이다. 그의 스승 삼기 태도는 무척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다.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만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나보다 못한 이 또한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스승 삼기의 핵심은 “내가 배울 바가 있느냐, 없느냐”라고 여겼다. 나보다 나은 이라면 나보다 나은 바를 배울 수 있으니 당연히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나보다 못난 이라면 나보다 나은 바가 없기 때문에 스승으로 삼을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나보다 못난 이를 보면서 이를테면 ‘나는 저래서는 안 되겠다’는 식으로 나를 진작시킬 수가 있다. 그렇게 나를 진작시키면 나는 못난 이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니 이를 통해 결국 내가 나아지게 된다. 그러니 못난 이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못난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를 통해 나를 진보시킬 수 있는 바를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한유는 이러한 공자의 스승 삼기 논의를 이어 받아 도(道), 그러니까 참된 진리가 있는 곳이 바로 나의 스승이 있는 곳이라고 단언했다. 스승 삼기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그가 도를 깨우치고 있는지 여부이지, 이를테면 관직이 나보다 높다든지, 나이가 많다든지, 가문이 좋다든지, 사회적 신분이 높다든지 같은 것이 스승 삼기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유 당시 스승 삼기를 둘러싼 잘못된 풍조에 대한 무척 신랄한 비판이었다. 당시에는 관리로 갓 임용된 이들이나 관직이 낮은 자들이 자기보다 상관을 스승이라 부르며 인맥을 형성하고, 이를 발판 삼아 출세를 도모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도의 깨우침 정도나 학문의 수준 같은 스승 삼기의 참된 기준은 외면당하고, 출세로 대변되는 속물적 욕망의 실현 여부가 스승 삼기의 어엿한 기준으로 행세하고 있었음이다. 그러니 이러한 풍조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학문과 인격을 심화, 제고해가겠다는 의도나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하여 나이도 묻지 않고 사회적 신분도 따지지 않은 채, 나보다 나은 바가 있다면 그를 스승으로 삼아 나를 진보시켜 가고자 하는 이들을 흉본다. 더구나 그들의 사회적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그들의 그러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스승 삼기를 두고, 그들이 천박하다 보니 그러한 천박한 짓을 서슴없이 행한다고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런 행위를 버젓이 행했던 자들의 성취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렇게 출세로 대변되는 속물적 욕망의 실현 가능성에 입각하여 스승 삼기를 행한 이들이 과연 공자 같은 성인 급으로 자신을 성장시켜 갔던 것일까? 답은 명약관화이다.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성인은 도덕적, 학술적 차원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이를 말하지 높은 관직이나 막강한 권세 따위를 지닌 이를 가리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유는 그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공자조차도 상대방이 어떠하냐와 무관하게 자신이 배울 바가 있으면 그들을 스승으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환기했다. 훗날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도 동일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북학의서(北學議序)」라는 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학문의 길에서는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어린 하인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알면 일단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보다 못함을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스스로 종신토록 고루하고 답이 없는 지경에 갇혀 지내게 된다.” 박지원의 말처럼 공자가 스승으로 삼았던 담자, 장홍, 사양, 노담은 공자보다 뛰어난 인물들이 결코 아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자는 담자에게는 고대의 관직에 대하여 배웠고, 장홍에게는 고대의 음악에 대하여 배웠다고 한다. 사양에게는 거문고를 배웠고, 노담 그러니까 노자에게는 고대의 예법에 대하여 배웠다고 한다. 자신의 도덕적, 학문적 성취가 아무리 높고 빼어나더라고 인간이 신이 아닌 한 인간이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그리고 상대가 그러한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라면, 신분이나 나이 등을 따지지 않고 배웠던 것이다. 노담은 노자로 알려져 있고, 노자는 공자의 유가와 상극의 학술이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그에게서 필요한 바를 배우기 위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비유컨대 적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면 기꺼이 수그리고 들어가 배움을 청했다는 것이다.
공자, 그리고 그를 추종한 한유가 이러한 스승 삼기를 실천하고 담론할 수 있었음은 그들이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면 십중팔구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앎에 만족하고 만다. 그러면 앎은 경직되고 나아가 고인 물처럼 썩는다. 내 삶의 터전인 사회를 위시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나의 앎은 변하지 않는다면, 그 앎의 생명력, 경쟁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본래 앎은 사회 속에서 유의미한 앎으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이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평생, 그러니까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인간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키워드
공자, 선생, 스승, 선생, 앎, 진리
전후맥락
고전 본문은 「사설」의 전문이다. 이 글은 크게 7단락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단락에서는 스승이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를 서술하였고, 둘째 단락에서는 글쓴이인 한유 자신의 스승을 삼는 방식을 서술하였다. 셋째 단락부터 다섯째 단락에서는 한유 당시의 스승 삼기를 둘러싼 제반 병폐를 서술하였고, 여섯 째 단락에서는 공자의 스승 삼기를 예로 들어 바람직한 스승 삼기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젊은 후학인 이반에게 그대의 스승 삼는 방식이 시류와 다를지라도 그 방식이 올바른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격려를 담았다.
고전본문
옛날 배우는 자에게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전수하며, 미혹된 바를 풀어주는 자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닌데 누군들 미혹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미혹되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그 미혹됨은 끝내 풀어지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고 그가 도를 들었으면 진실로 나보다 앞서니 나는 그를 따라 스승으로 삼는다.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었다면 또한 나보다 앞선 것이니 나는 그를 따라 스승으로 삼는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으니 어찌 그가 나보다 태어난 해가 먼저인지, 뒤인지를 따지겠는가? 그러므로 신분이 높고 천함을 막론하고, 나이가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도가 있는 곳이 바로 스승이 있는 곳이다.
아아! 스승의 도가 전해지지 않음이 오래되었다. 사람들의 미혹됨을 해소하고자 하나 어렵도다! 옛날의 성인은 그 사람들보다 뛰어남이 컸지만 오히려 또한 스승을 따르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의 뭇 사람들은 그러한 성인들보다 한참 못났음에도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더욱 훌륭해지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이 성인인 까닭과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까닭은 모두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제 자식을 사랑하여 스승을 택하여 그를 가르치게 하면서 그 자신에 있어서는 스승 모시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되었다. 저 어린아이의 스승은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문장의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로 이는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미혹됨을 풀어주는 이가 아니다. 구두를 모르거나 미혹됨이 풀리지 않았을 때, 어떤 때는 스승을 모시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으니 이는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는 것이니 나는 그러한 이들의 현명함을 아직 보지 못했다.
무당, 의사, 악사, 뭇 장인과 같은 사람들은 서로 스승 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대부의 족속들은 서로를 “스승”, “제자”라고 부르면서 무리 지어 그들을 비웃는다. 그 까닭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과 저 사람은 나이가 서로 같고 도의 수준도 서로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위가 낮음에도 스승으로 삼는다면 이는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고, 스승 삼은 이가 관직이 높다면 이는 아첨에 가까운 것이다.” 아아! 스승의 도가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무당, 의사, 악사, 뭇 장인과 같은 사람들을 군자들은 같은 급으로 여기지 않지만, 지금은 군자들의 지혜가 도리어 그들에 미치지 못하니 괴이하다.
성인에게는 고정된 스승이 없으시다. 공자는 담자, 장홍, 사양, 노담을 스승으로 삼으셨다. 담자 등은 그 현명함이 공자에 미치지 못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 사람이 가면 그 안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그러니 제자가 꼭 스승만 못할 필요도 없으며 스승이 꼭 제자보다 현명할 필요도 없으니, 도를 들음에 선후가 있음과 기예에 전공이 있음, 이와 같을 뿐이다.
이 씨 집안의 반이 나이가 열일곱인데 옛 문장을 좋아하고 여섯 경전을 모두 통달하여 익혔으며 시속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에게 배웠다. 나는 그가 옛 도를 행할 수 있음을 기뻐하여 「사설」을 지어 그에게 준다.
古之學者必有師.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為惑也, 終不解矣. 生乎吾前, 其聞道也, 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 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是故無貴無賤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眾人, 其下聖人也亦遠矣, 而恥學於師. 是故聖益聖, 愚益愚, 聖人之所以為聖, 愚人之所以為愚, 其皆出於此乎. 愛其子, 擇師而教之, 於其身也則恥師焉, 惑矣.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巫醫樂師百工之人, 不恥相師. 士大夫之族, 曰師曰弟子云者, 則群聚而笑之. 問之, 則曰, “彼與彼年相若也, 道相似也. 位卑則足羞, 官盛則近諛.” 嗚呼, 師道之不復可知矣. 巫醫樂師百工之人, 君子不齒, 今其智乃反不能及, 其可怪也歟. 聖人無常師. 孔子師郯子萇弘師襄老聃. 郯子之徒, 其賢不及孔子. 孔子曰, “三人行, 則必有我師.” 是故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聞道有先後, 術業有專攻, 如是而已. 李氏子蟠, 年十七, 好古文, 六藝經傳, 皆通習之, 不拘於時, 學於余. 余嘉其能行古道, 作師說以貽之.
[출전] 한유, 『사설』
토론하기
(1) 글쓴이의 스승 삼는 방식과 그가 비판한 이들의 스승 삼는 방식을 비교해보자. 그리고 각각의 방식이 지니는 장단점을 이야기해보자.
(2) 성인에게는 고정된 스승이란 없다는 공자의 말에 대하여 토론해보자. 또한 셋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자.
(3) 스승의 역할, 자격, 조건 등에 대하여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공자가 평소에 제자나 위정자 등과 나누었던 대화, 그들에게 해주었던 말 등이 담겨 있는 『논어』 는 전근대 시기의 중국문명을 빚어낸 중요한 텍스트였다. 여기에는 “세 사람이 가면 그 안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이는 공자가 평생 스승을 어떻게 삼아왔는지를 일러주는 언급으로 이후 적어도 2천 5백여 년 동안 중국뿐 아니라 한자권 전역에 걸쳐 스승에 대한 관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언급이었다.
중국문명을 빚어온 주요 텍스트인 『논어』에 위와 같은 스승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방증해주듯이, 스승에 대한 논의는 인류가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던 초기부터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자연의 도전을 극복해가면서 문명한 사회를 일구기 위해서는 앞선 세대가 일궈놓은 소산을 계승하여 갱신, 발전시켜 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앞선 세대의 소산을 가르쳐주는 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스승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던 것이다. 그의 스승 삼기 태도는 무척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다.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만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나보다 못한 이 또한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스승 삼기의 핵심은 “내가 배울 바가 있느냐, 없느냐”라고 여겼다. 나보다 나은 이라면 나보다 나은 바를 배울 수 있으니 당연히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나보다 못난 이라면 나보다 나은 바가 없기 때문에 스승으로 삼을 수 없다. 다만 그렇게 나보다 못난 이를 보면서 이를테면 ‘나는 저래서는 안 되겠다’는 식으로 나를 진작시킬 수가 있다. 그렇게 나를 진작시키면 나는 못난 이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니 이를 통해 결국 내가 나아지게 된다. 그러니 못난 이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못난 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를 통해 나를 진보시킬 수 있는 바를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한유는 이러한 공자의 스승 삼기 논의를 이어 받아 도(道), 그러니까 참된 진리가 있는 곳이 바로 나의 스승이 있는 곳이라고 단언했다. 스승 삼기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그가 도를 깨우치고 있는지 여부이지, 이를테면 관직이 나보다 높다든지, 나이가 많다든지, 가문이 좋다든지, 사회적 신분이 높다든지 같은 것이 스승 삼기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유 당시 스승 삼기를 둘러싼 잘못된 풍조에 대한 무척 신랄한 비판이었다. 당시에는 관리로 갓 임용된 이들이나 관직이 낮은 자들이 자기보다 상관을 스승이라 부르며 인맥을 형성하고, 이를 발판 삼아 출세를 도모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도의 깨우침 정도나 학문의 수준 같은 스승 삼기의 참된 기준은 외면당하고, 출세로 대변되는 속물적 욕망의 실현 여부가 스승 삼기의 어엿한 기준으로 행세하고 있었음이다. 그러니 이러한 풍조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학문과 인격을 심화, 제고해가겠다는 의도나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하여 나이도 묻지 않고 사회적 신분도 따지지 않은 채, 나보다 나은 바가 있다면 그를 스승으로 삼아 나를 진보시켜 가고자 하는 이들을 흉본다. 더구나 그들의 사회적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그들의 그러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스승 삼기를 두고, 그들이 천박하다 보니 그러한 천박한 짓을 서슴없이 행한다고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런 행위를 버젓이 행했던 자들의 성취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렇게 출세로 대변되는 속물적 욕망의 실현 가능성에 입각하여 스승 삼기를 행한 이들이 과연 공자 같은 성인 급으로 자신을 성장시켜 갔던 것일까? 답은 명약관화이다.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성인은 도덕적, 학술적 차원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이를 말하지 높은 관직이나 막강한 권세 따위를 지닌 이를 가리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유는 그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공자조차도 상대방이 어떠하냐와 무관하게 자신이 배울 바가 있으면 그들을 스승으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환기했다. 훗날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도 동일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북학의서(北學議序)」라는 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학문의 길에서는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어린 하인이라 할지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알면 일단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보다 못함을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스스로 종신토록 고루하고 답이 없는 지경에 갇혀 지내게 된다.” 박지원의 말처럼 공자가 스승으로 삼았던 담자, 장홍, 사양, 노담은 공자보다 뛰어난 인물들이 결코 아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자는 담자에게는 고대의 관직에 대하여 배웠고, 장홍에게는 고대의 음악에 대하여 배웠다고 한다. 사양에게는 거문고를 배웠고, 노담 그러니까 노자에게는 고대의 예법에 대하여 배웠다고 한다. 자신의 도덕적, 학문적 성취가 아무리 높고 빼어나더라고 인간이 신이 아닌 한 인간이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그리고 상대가 그러한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라면, 신분이나 나이 등을 따지지 않고 배웠던 것이다. 노담은 노자로 알려져 있고, 노자는 공자의 유가와 상극의 학술이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그에게서 필요한 바를 배우기 위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비유컨대 적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면 기꺼이 수그리고 들어가 배움을 청했다는 것이다.
공자, 그리고 그를 추종한 한유가 이러한 스승 삼기를 실천하고 담론할 수 있었음은 그들이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면 십중팔구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앎에 만족하고 만다. 그러면 앎은 경직되고 나아가 고인 물처럼 썩는다. 내 삶의 터전인 사회를 위시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나의 앎은 변하지 않는다면, 그 앎의 생명력, 경쟁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본래 앎은 사회 속에서 유의미한 앎으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이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평생, 그러니까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인간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키워드
공자, 선생, 스승, 선생, 앎,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