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가]는 『장자』 「제물론」 편에 실려 있는 우언의 전문이다. ‘제물론’은 ‘만물이 다 같음에 대하여 논하다’는 뜻으로, 이 편에는 만사만물을 서로 구분함을 당연시하는 세상의 일반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우언 26편이 실려 있다. 고전 본문은 그 중의 하나로 해당 우언의 전문으로, 겨울에 손발이 추위로 인해 트는 것을 방지해주는 약을 어떠한 조건에서 사용하느냐에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나]는 「논지(論智)」라는 제목으로 『장자』 에 실려 있는 우언의 전문이다. ‘논지(論智)’는 ‘지식(또는 지혜)을 논하다’는 뜻으로, 앎 내지 지혜를 어떠한 조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상반되기까지 달라진다는 이치를 구름과 산의 관계, 불과 연기의 관계에 비유하여 의논하는 내용이다.
고전본문
[가] 장자가 말했다. “혜자 선생님께서는 본래 큰 것을 사용함에 익숙하지 못하시군요.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드는 자가 있었는데 대대로 솜옷 빠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한번은 지나가는 나그네가 이 소문을 듣고는 그 기술을 백 금에 사기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그 송나라 사람이 가족을 모아놓고 의논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대로 직업으로 솜옷을 빨아왔지만 몇 금 버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하루아침에 나의 기술을 백 금에 팔게 되었으니 기술을 알려주도록 하자.’ 그래서 그 나그네는 그 기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 기술을 가지고 가서 오나라 왕에게 유세했습니다. 월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자 오나라 왕은 그를 장군으로 삼았는데, 겨울에 월나라 군대와 수전을 벌였지만 오나라 군사는 그 기술 덕분에 손이 트지 않아서 월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쳤습니다. 이에 오나라 왕은 고을을 나누어 주고는 그를 그 고을의 통치자로 봉했습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할 수 있음은 마찬가지인데, 어떤 이는 고을을 받고 어떤 이는 솜옷 빠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곧 사용함의 다름 때문입니다.
[나] 고을 사람 하나가 욱리자에게 물었다. “구름은 산에서 생기고 산은 그 구름 덕분에 신령하게 됩니다. 반면에 연기는 불에서 나오는데 불은 그 연기 탓에 가려져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욱리자가 답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무릇 사람이 앎을 사용함도 그와 같습니다. 앎이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그것을 잘 사용하면 산이 구름을 피워내는 것과 같이 되고, 잘못 사용하면 불이 연기를 피워내는 것과 같이 됩니다. 그래서 한비자는 진나라에서 투옥되었고, 조조는 한나라에서 죽었으니 이는 연기가 불에서 나온 것에 해당합니다.”
[가]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亂,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나] 州之庸问于郁離子曰, “雲山出也, 而山以之靈. 烟火出也, 而火以之畜, 不亦異哉.” 郁離子曰, “善哉问. 夫人之用智者亦猶是也. 夫智人出也, 善用之. 猶山之出雲也. 不善用之, 猶火之出烟也. 韩非囚秦, 晁错死汉, 烟出火也.”
[출전]『장자 외』
토론하기
(1) 고전 본문 [가]와 같은 사례를 역사에서 또 현대사회에서 찾아보자. 그러한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이치를 짚어보자.
(2) 고전 본문 [나]와 같은 사례를 역사나 현대사회, 자연세계에서 찾아보자. 그러한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이치를 짚어보자.
(3) 앎을 진보시켜 가는데 [가], [나]의 이야기에서 어떠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논해보자.
해설읽기
법가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는 한비자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못가 마른땅에 사는 뱀이 거처를 옮기고자 했다. 그대 몸집이 작은 뱀이 큰 뱀에게 말했다. “그대가 앞서 가고 내가 좇아가면 사람들은 뱀이 지나간다고 여길 뿐이어서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나를 받들어 업고 감으로써 사람들이 나를 신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에 받들어 큰 뱀이 작은 뱀을 업고서 길을 건너가니 사람들이 모두 피하면서 “신이로다!”라고 말했다.(「설림」편)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깊지 못한 사고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읽는다. 그러나 ‘배치의 효용’이라는 차원에서도 읽을 수 있다. 큰 뱀과 작은 뱀이 줄지어 배치됐을 때의 효용과 큰 뱀이 작은 뱀을 업는 방식으로 배치됐을 때의 효용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일러주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 본문 [가]와 [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가]의 송나라 사람의 직업은 대대로 솜옷 빠는 일이다. 그런데 솜옷을 추운 겨울에 입는다. 그러니 솜옷을 빨게 되면 차가운 물에 손을 담글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다보면 손에 동상이 걸려 손등이 거북이 등딱지의 균열처럼 트게 된다. 따라서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손이 트지 않게 해야 했고, 이러한 절박한 필요 덕분에 손이 트지 않은 약을 개발하게 됐던 것이다. 덕분에 엄동설한에도 손이 트지 않은 채 솜옷 빠는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렇게 솜옷 빠는 일을 잘해내도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여전히 최하층이었다. 당시 솜옷 빠는 이들은 평민보다도 사회적 신분이 낮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연하게 손이 트지 않는 약이 있음을 알게 된 나그네는 그 약의 제조법을 백 금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 송나라 사람은 백 금이라는 거금을 준다는 말에 혹하여 기뻐하며 그 제조법을 나그네에게 넘겼다. 어느 한 순간도 ‘이 약 제조법을 백 금이라는 엄청난 돈으로 산단 말인가?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말인데, 그러면 내가 직접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에게 팔면 더 큰 이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음이다. 덕분에 나그네는 그 약 제조법을 수월하게 얻었고, 이를 오나라 임금에게 팔았다. 오나라는 이웃한 월나라와 오랜 세월 동안 걸핏하면 전쟁을 벌이곤 했다. 그런데 오나라나 월나라 모두 같은 하천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둘이 전쟁을 하면 주로 수전을 벌이곤 했다. 겨울에 전쟁을 치르게 되면 병사들이 동상에 쉬이 걸려 손이 틀 수밖에 없어 전투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골치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손이 트지 않게 해주는 약은 겨울에 수전을 치를 때 전투력을 제고해주는 참으로 고마운 약이었다. 때마침 겨울철에 오나라가 월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자 오나라 왕은 그 나그네를 장군으로 삼았고, 이 약을 손에 바른 오나라 병사는 손이 트지 않은 덕분에 전투력이 감퇴되지 않을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월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였다. 그렇게 전공을 세운 나그네는 오나라 왕으로부터 고을을 하사받아 그 고을의 영주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신분이 임금 다음의 자리까지 향상되었던 것이다.
약 제조법과 같은 기술이 어떠한 환경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로 인한 결과는 이렇게 천지 차이일 수 있다. 송나라 사람은 자신만이 지닌 기술을 솜옷을 빠는 조건 아래서만 사유하고 사용했던 것이고, 나그네는 그 기술을 오나라와 월나라의 겨울철 전쟁이라는 조건으로 옮겨서 사유하고 사용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송나라 사람은 그렇게 유용한 기술을 지녔음에도 여전히 사회 최하층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나그네는 임금 다음의 신분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기술만 이러한 것은 아니다. 지식이나 지혜도 마찬가지다. [나]에서 구름은 산에서 비롯된 것으로(옛 사람들은 구름은 산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자신을 만들어준 산을 신령하게 해준다. 반면에 연기는 불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을 가려서 불이 밝게 빛나는 것을 방해한다.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빛나게 해주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똑같이 무언가로부터 태어난 것임에도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에 도움이 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방해한다. 이 또한 배치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구름이 산과 배치되었기에 구름이 산을 신령하게 해줄 수 있었지, 구름이 태양과 배치되면 태양의 밝기를 가리게 된다. 연기가 불과 배치되었기에 연기가 불의 밝기를 가렸지만, 연기도 산에 배치되면 마치 안개가 낀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내 산을 신령하게 해줄 수 있다. 기술뿐 아니라 앎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배치 속에서 앎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무용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유용하면 그 앎은 옳은 것이 되고 무용하면 그 앎은 그른 것이 된다. 앎은 이처럼 앎을 둘러싼 조건이 어떠하냐에 따라 유용함과 무용함 사이에서, 또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진동한다. 앎 그 자체만을 익히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되고, 앎을 둘러싼 제반 조건 아래서 앎을 조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야 앎이 사회 차원에서 어떠한 효용을, 의의를 지니는지 등을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
기술, 배치, 상대주의, 손 트지 않는 약, 앎,
전후맥락
[가]는 『장자』 「제물론」 편에 실려 있는 우언의 전문이다. ‘제물론’은 ‘만물이 다 같음에 대하여 논하다’는 뜻으로, 이 편에는 만사만물을 서로 구분함을 당연시하는 세상의 일반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의 우언 26편이 실려 있다. 고전 본문은 그 중의 하나로 해당 우언의 전문으로, 겨울에 손발이 추위로 인해 트는 것을 방지해주는 약을 어떠한 조건에서 사용하느냐에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나]는 「논지(論智)」라는 제목으로 『장자』 에 실려 있는 우언의 전문이다. ‘논지(論智)’는 ‘지식(또는 지혜)을 논하다’는 뜻으로, 앎 내지 지혜를 어떠한 조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상반되기까지 달라진다는 이치를 구름과 산의 관계, 불과 연기의 관계에 비유하여 의논하는 내용이다.
고전본문
[가] 장자가 말했다. “혜자 선생님께서는 본래 큰 것을 사용함에 익숙하지 못하시군요.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드는 자가 있었는데 대대로 솜옷 빠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한번은 지나가는 나그네가 이 소문을 듣고는 그 기술을 백 금에 사기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그 송나라 사람이 가족을 모아놓고 의논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대로 직업으로 솜옷을 빨아왔지만 몇 금 버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하루아침에 나의 기술을 백 금에 팔게 되었으니 기술을 알려주도록 하자.’ 그래서 그 나그네는 그 기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 기술을 가지고 가서 오나라 왕에게 유세했습니다. 월나라가 전쟁을 일으키자 오나라 왕은 그를 장군으로 삼았는데, 겨울에 월나라 군대와 수전을 벌였지만 오나라 군사는 그 기술 덕분에 손이 트지 않아서 월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쳤습니다. 이에 오나라 왕은 고을을 나누어 주고는 그를 그 고을의 통치자로 봉했습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할 수 있음은 마찬가지인데, 어떤 이는 고을을 받고 어떤 이는 솜옷 빠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곧 사용함의 다름 때문입니다.
[나] 고을 사람 하나가 욱리자에게 물었다. “구름은 산에서 생기고 산은 그 구름 덕분에 신령하게 됩니다. 반면에 연기는 불에서 나오는데 불은 그 연기 탓에 가려져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욱리자가 답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무릇 사람이 앎을 사용함도 그와 같습니다. 앎이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그것을 잘 사용하면 산이 구름을 피워내는 것과 같이 되고, 잘못 사용하면 불이 연기를 피워내는 것과 같이 됩니다. 그래서 한비자는 진나라에서 투옥되었고, 조조는 한나라에서 죽었으니 이는 연기가 불에서 나온 것에 해당합니다.”
[가]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亂,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나] 州之庸问于郁離子曰, “雲山出也, 而山以之靈. 烟火出也, 而火以之畜, 不亦異哉.” 郁離子曰, “善哉问. 夫人之用智者亦猶是也. 夫智人出也, 善用之. 猶山之出雲也. 不善用之, 猶火之出烟也. 韩非囚秦, 晁错死汉, 烟出火也.”
[출전]『장자 외』
토론하기
(1) 고전 본문 [가]와 같은 사례를 역사에서 또 현대사회에서 찾아보자. 그러한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이치를 짚어보자.
(2) 고전 본문 [나]와 같은 사례를 역사나 현대사회, 자연세계에서 찾아보자. 그러한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이치를 짚어보자.
(3) 앎을 진보시켜 가는데 [가], [나]의 이야기에서 어떠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논해보자.
해설읽기
법가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는 한비자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못가 마른땅에 사는 뱀이 거처를 옮기고자 했다. 그대 몸집이 작은 뱀이 큰 뱀에게 말했다. “그대가 앞서 가고 내가 좇아가면 사람들은 뱀이 지나간다고 여길 뿐이어서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나를 받들어 업고 감으로써 사람들이 나를 신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에 받들어 큰 뱀이 작은 뱀을 업고서 길을 건너가니 사람들이 모두 피하면서 “신이로다!”라고 말했다.(「설림」편)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깊지 못한 사고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읽는다. 그러나 ‘배치의 효용’이라는 차원에서도 읽을 수 있다. 큰 뱀과 작은 뱀이 줄지어 배치됐을 때의 효용과 큰 뱀이 작은 뱀을 업는 방식으로 배치됐을 때의 효용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일러주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 본문 [가]와 [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가]의 송나라 사람의 직업은 대대로 솜옷 빠는 일이다. 그런데 솜옷을 추운 겨울에 입는다. 그러니 솜옷을 빨게 되면 차가운 물에 손을 담글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다보면 손에 동상이 걸려 손등이 거북이 등딱지의 균열처럼 트게 된다. 따라서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손이 트지 않게 해야 했고, 이러한 절박한 필요 덕분에 손이 트지 않은 약을 개발하게 됐던 것이다. 덕분에 엄동설한에도 손이 트지 않은 채 솜옷 빠는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렇게 솜옷 빠는 일을 잘해내도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여전히 최하층이었다. 당시 솜옷 빠는 이들은 평민보다도 사회적 신분이 낮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연하게 손이 트지 않는 약이 있음을 알게 된 나그네는 그 약의 제조법을 백 금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 송나라 사람은 백 금이라는 거금을 준다는 말에 혹하여 기뻐하며 그 제조법을 나그네에게 넘겼다. 어느 한 순간도 ‘이 약 제조법을 백 금이라는 엄청난 돈으로 산단 말인가?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말인데, 그러면 내가 직접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에게 팔면 더 큰 이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음이다. 덕분에 나그네는 그 약 제조법을 수월하게 얻었고, 이를 오나라 임금에게 팔았다. 오나라는 이웃한 월나라와 오랜 세월 동안 걸핏하면 전쟁을 벌이곤 했다. 그런데 오나라나 월나라 모두 같은 하천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둘이 전쟁을 하면 주로 수전을 벌이곤 했다. 겨울에 전쟁을 치르게 되면 병사들이 동상에 쉬이 걸려 손이 틀 수밖에 없어 전투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골치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손이 트지 않게 해주는 약은 겨울에 수전을 치를 때 전투력을 제고해주는 참으로 고마운 약이었다. 때마침 겨울철에 오나라가 월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자 오나라 왕은 그 나그네를 장군으로 삼았고, 이 약을 손에 바른 오나라 병사는 손이 트지 않은 덕분에 전투력이 감퇴되지 않을 수 있어 그렇지 못한 월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였다. 그렇게 전공을 세운 나그네는 오나라 왕으로부터 고을을 하사받아 그 고을의 영주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신분이 임금 다음의 자리까지 향상되었던 것이다.
약 제조법과 같은 기술이 어떠한 환경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로 인한 결과는 이렇게 천지 차이일 수 있다. 송나라 사람은 자신만이 지닌 기술을 솜옷을 빠는 조건 아래서만 사유하고 사용했던 것이고, 나그네는 그 기술을 오나라와 월나라의 겨울철 전쟁이라는 조건으로 옮겨서 사유하고 사용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송나라 사람은 그렇게 유용한 기술을 지녔음에도 여전히 사회 최하층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나그네는 임금 다음의 신분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기술만 이러한 것은 아니다. 지식이나 지혜도 마찬가지다. [나]에서 구름은 산에서 비롯된 것으로(옛 사람들은 구름은 산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자신을 만들어준 산을 신령하게 해준다. 반면에 연기는 불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을 가려서 불이 밝게 빛나는 것을 방해한다.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빛나게 해주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똑같이 무언가로부터 태어난 것임에도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에 도움이 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낳아준 존재를 방해한다. 이 또한 배치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구름이 산과 배치되었기에 구름이 산을 신령하게 해줄 수 있었지, 구름이 태양과 배치되면 태양의 밝기를 가리게 된다. 연기가 불과 배치되었기에 연기가 불의 밝기를 가렸지만, 연기도 산에 배치되면 마치 안개가 낀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내 산을 신령하게 해줄 수 있다. 기술뿐 아니라 앎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배치 속에서 앎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고 무용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유용하면 그 앎은 옳은 것이 되고 무용하면 그 앎은 그른 것이 된다. 앎은 이처럼 앎을 둘러싼 조건이 어떠하냐에 따라 유용함과 무용함 사이에서, 또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진동한다. 앎 그 자체만을 익히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되고, 앎을 둘러싼 제반 조건 아래서 앎을 조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야 앎이 사회 차원에서 어떠한 효용을, 의의를 지니는지 등을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
기술, 배치, 상대주의, 손 트지 않는 약, 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