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 본문 [가]는 「내저설상(內儲說上)」 편에, [나]는 「내저설하(內儲說下)」 편에 수록되어 있는 고사이다. 내저설의 저(儲)는 ‘쌓다’는 뜻이고 설(說)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내(內)는 내저설 다음 편이 외저설(外儲說)이어서 이 두 편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글자다. 그러니까 내저설은 ‘이야기를 쌓아둔 내 편’이라는 뜻이다. 이 두 편에는 각각 군주가 익혀야 하는 7가지 술수와 군주가 파악해야 하는 신하들의 6가지 사사로움을 도모하는 조짐과 관련한 역사 고사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가]와 [나]는 그 중 하나로, [가]에서는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있게 만든다)” 고사로 유명한 이야기의 전문이고, [나]는 사람들이 짜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멀쩡한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다룬 이야기의 전문이다.
고전본문
[가] 방공이 태자와 함께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인질로 가게 되자 떠나기 전에 위나라 왕에게 아뢨다. “지금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믿지 않소이다.” 방공이 다시 여쭸다. “두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믿지 않소이다.” 방공이 또 다시 여쭸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과인은 믿소이다.” 이에 방공이 아뢨다. “무릇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명백하나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지금 조나라의 수도 한단은 위나라와의 거리가 시장보다 멀고 저를 논란거리로 삼는 자들은 세 사람보다 많으니 바라건대 왕께서는 잘 헤아려주시기를 청합니다.” 훗날 방공이 한단에서 돌아왔지만 결국은 왕을 다시 뵐 수는 없었다.
[나] 연나라 사람 이계는 멀리 나갔다 오기를 좋아하였다. 그 아내는 한 총각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이계가 갑자기 돌아왔을 때 그 총각이 방안에 있었다. 아내가 이를 걱정하자 여종이 말했다. “공자가 벌거벗은 채 머리를 풀고 문으로 곧장 나가게 하십시오. 저희들은 못 본 체하겠습니다.” 이에 총각이 그 계책을 따라 재빨리 달려 문밖으로 나갔다. 이계가 말했다. “이 자는 누구냐?” 집안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계가 말했다. “내가 귀신을 보았단 말인가?” 아내가 말했다. “그러합니다.” 이계가 말했다.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을까?” 집안사람들이 말했다. “다섯 가지 짐승의 똥을 끼얹으십시오.” 이계가 말했다. “좋다.” 이에 똥을 끼얹었다. 일설에는 난초를 우려낸 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가] 龐恭與太子質於邯鄲, 謂魏王曰, “今一人言巿有虎, 王信之乎.” 曰, “不信.” “二人言巿有虎, 王信之乎.” 曰, “不信.” “三人言巿有虎, 王信之乎.” 王曰, “寡人信之.” 龐恭曰, “夫巿之無虎也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今邯鄲之去魏也遠於巿, 議臣者過於三人, 願王察之.” 龐恭從邯鄲反, 竟不得見.
[나] 一曰, 燕人李季好遠出, 士在內中, 妻患之. 其室婦曰. “令公子裸而解髮, 直出門, 吾屬佯不見也.” 於是公子從其計, 疾走出門. 季曰, “是何人也.” 家室皆曰, “無有.” 季曰, “吾見鬼乎.” 婦人曰, “然.” “爲之奈何.” 曰, “取五牲之矢浴之.” 季曰, “諾.” 乃浴以矢. 一曰浴以蘭湯.
[출전]『한비자』
토론하기
(1) [가]나 [나]와 유사한 일을 겪었거나 행한 적이 있다면 이야기해보자. 또한 주변에서 이들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 이야기해보자.
(2) [가]의 위나라 왕은 왜 시장에 호랑이가 진짜로 나타났다고 믿게 되었을까? [나]의 연나라 사람 이계는 왜 귀신들린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았을까? 그 이유를 분석해보자.
(3) [가]의 위나라 왕, [나]의 연나라 사람 이계가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도를 취해야 했을까?
해설읽기
고전 본문 [가]는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뜻인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 이야기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분명함에도 세 사람이 연이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니까 말한 대로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상대를 속이고자 작정하고 같은 내용을 거듭 말하면 온갖 권력을 쥐고 있는 왕조차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니 일반인이야 얼마나 쉬이 속이겠는가 싶다.
고전 본문 [나]는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남편이 장시간 외출을 즐겨하는 것을 악용하여 젊은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바람을 피우던 여인이 불륜 현장이 남편에게 발각되자 오히려 가솔들을 이용해 남편을 귀신들린 미친 이로 몰고 가 위기에서 벗어난다. 남편은 불륜의 당사자인 아내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하인들도 한 목소리로 아내와 똑같이 말하자 결국 자신을 의심하고는, 자기가 아내와 하인들의 말처럼 귀신에 들렸다고 믿고 만다. 자신의 눈으로 한 젊은 사내가 아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말이다. 결국 이계는 아내와 하인들의 말을 듣고는 가축들의 똥물을 기꺼이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당시 사람들은 동물의 똥물을 뒤집어쓰면 귀신이 놀라 도망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와 [나]는 이렇듯 왕이든 평민이든 결국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다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일러주고 있다. 그런데 왜 왕이든 평민이든 사람들은 왜 다수가 비슷한 말을 하면 덥석 믿고 마는 것일까? 이는 결코 속는 사람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는 없다. 이를테면 [가]의 연나라 왕이나 [나]의 이계가 어리숙하거나 어리석었기에 그러한 속임수에 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들 이야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바가 없게 된다. 그저 멍청하고 모자란 이를 쉬이 속여 먹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니 이들로부터 무슨 의미를 길어낼 수 있을까 싶다. 게다가 옛사람들은 아무 이야기나 책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들 이야기가 책에 기록됐다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무언가 의미 있는 바들을 길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얘기다. 따라서 초점을 속은 사람에게서 “무엇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임에도 속았을까?”라는 물음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이 물음은 이렇게도 바꿔볼 수 있다. “사람을 속이는 힘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가]와 [나]에서 연나라 왕과 이계는 미리 작당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속았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곧 겉으로 봤을 때 그러한 것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작당된 ‘말’에 의해 속은 것이다. 연나라 왕이나 이계는 자신에게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라는 말을,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라는 말을 한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을 믿었다. 앞서 전제했듯이 연나라 왕이나 이계가 어리숙하고 어리석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가짜뉴스를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은 다 어리숙하고 어리석어서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가]와 [나] 같은 현상은 말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말에 담긴 내용을 믿게 하는 역량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개인의 지적 역량과 무관하게 연나라 왕과 이계가 속았던 것이다. 이러한 말의 힘을 가리켜 학자들은 말의 ‘형성적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 말은 무언가를 형성해내는, 그러니까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형성적 힘은 삼인성호의 예에서처럼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고, 이계의 예에서처럼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힘을 지닌 말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판단을 바꾸게 된다. 자신이 아는 것이 옳고 진실한 것이었음에도 말 때문에 자신의 앎을 방기하고는 잘못된 앎을 옳고 진실한 것이라 믿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공자 시대에 이미 ‘지언(知言)’, 그러니까 말을 파악하는 능력을 중시했고, 이후 유가뿐 아니라 유가의 대척점에 섰던 도가, 법가 할 것 없이 지언의 능력을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키워드
말의 힘, 속임수, 사기 삼인성호(三人成虎), 앎, 지언, 진실, 형성적 힘,
전후맥락
고전 본문 [가]는 「내저설상(內儲說上)」 편에, [나]는 「내저설하(內儲說下)」 편에 수록되어 있는 고사이다. 내저설의 저(儲)는 ‘쌓다’는 뜻이고 설(說)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내(內)는 내저설 다음 편이 외저설(外儲說)이어서 이 두 편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글자다. 그러니까 내저설은 ‘이야기를 쌓아둔 내 편’이라는 뜻이다. 이 두 편에는 각각 군주가 익혀야 하는 7가지 술수와 군주가 파악해야 하는 신하들의 6가지 사사로움을 도모하는 조짐과 관련한 역사 고사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가]와 [나]는 그 중 하나로, [가]에서는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있게 만든다)” 고사로 유명한 이야기의 전문이고, [나]는 사람들이 짜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멀쩡한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다룬 이야기의 전문이다.
고전본문
[가] 방공이 태자와 함께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인질로 가게 되자 떠나기 전에 위나라 왕에게 아뢨다. “지금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믿지 않소이다.” 방공이 다시 여쭸다. “두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믿지 않소이다.” 방공이 또 다시 여쭸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과인은 믿소이다.” 이에 방공이 아뢨다. “무릇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명백하나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지금 조나라의 수도 한단은 위나라와의 거리가 시장보다 멀고 저를 논란거리로 삼는 자들은 세 사람보다 많으니 바라건대 왕께서는 잘 헤아려주시기를 청합니다.” 훗날 방공이 한단에서 돌아왔지만 결국은 왕을 다시 뵐 수는 없었다.
[나] 연나라 사람 이계는 멀리 나갔다 오기를 좋아하였다. 그 아내는 한 총각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이계가 갑자기 돌아왔을 때 그 총각이 방안에 있었다. 아내가 이를 걱정하자 여종이 말했다. “공자가 벌거벗은 채 머리를 풀고 문으로 곧장 나가게 하십시오. 저희들은 못 본 체하겠습니다.” 이에 총각이 그 계책을 따라 재빨리 달려 문밖으로 나갔다. 이계가 말했다. “이 자는 누구냐?” 집안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이계가 말했다. “내가 귀신을 보았단 말인가?” 아내가 말했다. “그러합니다.” 이계가 말했다.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을까?” 집안사람들이 말했다. “다섯 가지 짐승의 똥을 끼얹으십시오.” 이계가 말했다. “좋다.” 이에 똥을 끼얹었다. 일설에는 난초를 우려낸 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가] 龐恭與太子質於邯鄲, 謂魏王曰, “今一人言巿有虎, 王信之乎.” 曰, “不信.” “二人言巿有虎, 王信之乎.” 曰, “不信.” “三人言巿有虎, 王信之乎.” 王曰, “寡人信之.” 龐恭曰, “夫巿之無虎也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今邯鄲之去魏也遠於巿, 議臣者過於三人, 願王察之.” 龐恭從邯鄲反, 竟不得見.
[나] 一曰, 燕人李季好遠出, 士在內中, 妻患之. 其室婦曰. “令公子裸而解髮, 直出門, 吾屬佯不見也.” 於是公子從其計, 疾走出門. 季曰, “是何人也.” 家室皆曰, “無有.” 季曰, “吾見鬼乎.” 婦人曰, “然.” “爲之奈何.” 曰, “取五牲之矢浴之.” 季曰, “諾.” 乃浴以矢. 一曰浴以蘭湯.
[출전]『한비자』
토론하기
(1) [가]나 [나]와 유사한 일을 겪었거나 행한 적이 있다면 이야기해보자. 또한 주변에서 이들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 이야기해보자.
(2) [가]의 위나라 왕은 왜 시장에 호랑이가 진짜로 나타났다고 믿게 되었을까? [나]의 연나라 사람 이계는 왜 귀신들린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았을까? 그 이유를 분석해보자.
(3) [가]의 위나라 왕, [나]의 연나라 사람 이계가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도를 취해야 했을까?
해설읽기
고전 본문 [가]는 “세 사람이면 없는 호랑이도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뜻인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 이야기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분명함에도 세 사람이 연이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니까 말한 대로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상대를 속이고자 작정하고 같은 내용을 거듭 말하면 온갖 권력을 쥐고 있는 왕조차도 속일 수 있다는 것이니 일반인이야 얼마나 쉬이 속이겠는가 싶다.
고전 본문 [나]는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남편이 장시간 외출을 즐겨하는 것을 악용하여 젊은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바람을 피우던 여인이 불륜 현장이 남편에게 발각되자 오히려 가솔들을 이용해 남편을 귀신들린 미친 이로 몰고 가 위기에서 벗어난다. 남편은 불륜의 당사자인 아내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하인들도 한 목소리로 아내와 똑같이 말하자 결국 자신을 의심하고는, 자기가 아내와 하인들의 말처럼 귀신에 들렸다고 믿고 만다. 자신의 눈으로 한 젊은 사내가 아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말이다. 결국 이계는 아내와 하인들의 말을 듣고는 가축들의 똥물을 기꺼이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당시 사람들은 동물의 똥물을 뒤집어쓰면 귀신이 놀라 도망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와 [나]는 이렇듯 왕이든 평민이든 결국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다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일러주고 있다. 그런데 왜 왕이든 평민이든 사람들은 왜 다수가 비슷한 말을 하면 덥석 믿고 마는 것일까? 이는 결코 속는 사람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는 없다. 이를테면 [가]의 연나라 왕이나 [나]의 이계가 어리숙하거나 어리석었기에 그러한 속임수에 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들 이야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바가 없게 된다. 그저 멍청하고 모자란 이를 쉬이 속여 먹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되니 이들로부터 무슨 의미를 길어낼 수 있을까 싶다. 게다가 옛사람들은 아무 이야기나 책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들 이야기가 책에 기록됐다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무언가 의미 있는 바들을 길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얘기다. 따라서 초점을 속은 사람에게서 “무엇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임에도 속았을까?”라는 물음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이 물음은 이렇게도 바꿔볼 수 있다. “사람을 속이는 힘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가]와 [나]에서 연나라 왕과 이계는 미리 작당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속았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곧 겉으로 봤을 때 그러한 것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작당된 ‘말’에 의해 속은 것이다. 연나라 왕이나 이계는 자신에게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라는 말을,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라는 말을 한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을 믿었다. 앞서 전제했듯이 연나라 왕이나 이계가 어리숙하고 어리석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가짜뉴스를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은 다 어리숙하고 어리석어서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가]와 [나] 같은 현상은 말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말에 담긴 내용을 믿게 하는 역량이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개인의 지적 역량과 무관하게 연나라 왕과 이계가 속았던 것이다. 이러한 말의 힘을 가리켜 학자들은 말의 ‘형성적 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 말은 무언가를 형성해내는, 그러니까 만들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형성적 힘은 삼인성호의 예에서처럼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고, 이계의 예에서처럼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힘을 지닌 말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판단을 바꾸게 된다. 자신이 아는 것이 옳고 진실한 것이었음에도 말 때문에 자신의 앎을 방기하고는 잘못된 앎을 옳고 진실한 것이라 믿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공자 시대에 이미 ‘지언(知言)’, 그러니까 말을 파악하는 능력을 중시했고, 이후 유가뿐 아니라 유가의 대척점에 섰던 도가, 법가 할 것 없이 지언의 능력을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키워드
말의 힘, 속임수, 사기 삼인성호(三人成虎), 앎, 지언, 진실, 형성적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