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고전 본문은 「사순론(似順論)」 편에 들어 있는 「별류(別類)」라는 제목의 글에서 앎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을 다룬 부분이다. 제목인 별류(別類)는 ‘사물을 부류에 따라 나누어 파악해야 한다’는 뜻으로, 부류에 따라 개개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한편 「별류」가 들어 있는 「사순론(似順論)」 편에서의 사순(似順)은 ‘잘 통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이 편에서는 사건과 사물에 대하여 판단을 할 때 표면만을 봐서는 안 되고 그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연관된 글들이 실려 있다.
고전본문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이다. 잘못을 범하는 자의 우환은 모르면서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사만물 가운데 많은 것들이 비슷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되고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 노나라 사람 가운데 공손작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근거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본디 반신불수를 치료할 수 있다. 이제 내가 반신불수 치료약을 두 배로 쓰면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은 본디 작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크게 만들 수 없으며,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온전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칼을 감정하는 사람이 말했다. “칼이 흰 빛이면 견고하다는 것이고 노란 빛이면 유연하여 질기다는 것이다. 노란 빛과 흰 빛이 섞여 있으면 견고하고도 유연하여 질기니 좋은 칼이다.” 이에 반박하는 사람이 말했다. “흰 빛은 유연하여 질기지 않다는 것이고 노란 빛은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니 노란 빛과 흰 빛이 섞여 있으면 견고하지도 않고 유연하여 질기지도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유연하면 휘게 되고, 견고하면 부러질 것인데 칼이 부러지거나 휘는데 어찌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칼의 실질은 바뀐 바가 없는데 어떤 이는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나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말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귀와 눈을 밝게 하여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망령된 말들이 그치게 된다. 귀와 눈을 밝게 하여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한다면 성군인 요 임금과 폭군인 걸 임금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충신이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근심하는 바이고 현자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다버리는 것이다.
고양응이라는 사람이 집을 지으려 하자 장인이 대꾸하여 말했다. “안 됩니다. 목재가 아직 생나무라 그 위에 칠을 하면 반드시 비틀릴 것입니다. 생나무로 집을 지으면 당장은 설령 좋더라도 뒤에는 반드시 망가집니다.” 고양응이 말했다. “그대의 말을 따른다면 집은 망가지지 않을 것이요. 목재는 갈수록 말라서 단단해질 것이고 칠은 갈수록 말라서 가벼워질 것이요. 갈수록 단단해지는 것으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을 감당한다면 망가지지 않을 것이요.” 장인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명령을 받들어 집을 지었다. 집이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괜찮았지만 그 뒤에는 결국 망가졌다. 고양응은 자그마한 일을 헤아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큰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오와 녹이 같은 명마가 태양을 등지고 서쪽으로 달려도 저녁때에 이르러 보면 태양은 그 앞에 있다. 눈은 본디 보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지혜도 본래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이치도 참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
知不知上矣. 過者之患, 不知而自以爲知. 物多類然而不然, 故亡國僇民無已. … 魯人有公孫綽者, 告人曰, “我能起死人.” 人問其故, 對曰, “我固能治偏枯, 今吾倍所以爲偏枯之藥, 則可以起死人矣.” 物固有可以爲小, 不可以爲大, 可以爲半, 不可以爲全者也. 相劍者曰, “白所以爲堅也, 黃所以爲牣也, 黃白雜則堅且牣, 良劍也.” 難者曰, “白所以爲不牣也, 黃所以爲不堅也, 黃白雜則不堅且不牣也. 又柔則錈, 堅則折. 劍折且錈, 焉得爲利劍.” 劍之情未革, 而或以爲良, 或以爲惡, 說使之也. 故有以聰明聽說則妄說者止, 無以聰明聽說則堯桀無別矣. 此忠臣之所患也, 賢者之所以廢也. … 高陽應將爲室家, 匠對曰, “未可也. 木尙生, 加塗其上, 必將撓. 以生爲室, 今雖善, 後將必敗.” 高陽應曰, “緣子之言, 則室不敗也. 木益枯則勁, 塗益乾則輕, 以益勁任益輕則不敗.” 匠人無辭而對, 受令而爲之. 室之始成也善, 其後果敗. 高陽應好小察, 而不通乎大理也. 驥驁綠耳背日而西走, 至乎夕則日在其前矣. 目固有不見也, 智固有不知也, 數固有不及也.
[출전] 『여씨춘추』
토론하기
(1) 고전 본문 속 공손작과 칼 검정가, 고양응이 범한 오류가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보자. 그리고 왜 그러한 잘못을 범하게 되었는지도 짚어보자.
(2) 자신이 공손작, 칼 검정가, 고양응이 범한 오류와 비슷한 오판을 내린 적이 있다면 그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또한 우리 사회에서 그와 비슷한 오판을 찾아보고 어떠한 오류를 범했는지, 왜 범하게 되었는지를 따져보자.
(3) 어떻게 해야 공손작, 칼 검정가, 고양응이 범한 오류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방도를 먼저 고전 본문에서 찾아본 다음 그 외에 또 어떠한 방도가 있는지를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후스(胡適)라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중국 학자가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반, 중국의 근대화에 발 벗고 나서서 지대한 공헌을 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당시 그는 중국이 봉건적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구 열강의 밥이 되어,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은 처지가 된 원인의 하나로 ‘별 차이 없네 선생’이 저 옛날부터 온 중국에 득시글거렸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어느 시대든 거의 온 백성이 중국어 원어로 ‘챠부뚸(差不多)’ 선생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 중국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별 차이 없네 선생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세상을 살았다. 대표적 예 하나만 들면 이러하다. 한번은 별 차이 없네 선생이 아팠다. 아들을 보내 급히 마을의 의사를 찾았지만 공교롭게도 의사가 다른 마을로 왕진을 간 바람에 마을에는 의사라는 직함이 붙어 있는 이는 수의사밖에 없었다. 그러자 별 차이 없네 선생은 “인간 의사나 동물 의사나 그것이 그것이지 뭐!” 하면서 수의사를 모셔와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당연히 병세의 악화로 드러났다.
고전 본문의 공손작, 칼 검정가, 고양응은 이러한 별 것 없네 선생의 선조 격이 되는 인물들이다. 공손작은 반신불수, 그러니까 몸이 반 이상 마비된 병증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으니까 이를 두 배로 쓰면 완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죽은 이도 고칠 수 있다고 여겼다. 반신불수나 죽음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이지 못함과 죽은 상태에서의 움직이지 못함이라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차이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던 셈이다.
‘모순’이라는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칼 검정가의 말 또한 마찬가지다. 견고함과 유연함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기에 칼 하나에 결코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임에도 ‘어떡하든 많이 팔기만 하면 되는 거야!’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 결과 상반되는 말을 마구 섞어서, 견고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지닌 칼이라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말을 마구 뱉어냈다. 모순 고사에서 창과 방패 둘 다를 많이 팔고자 하는 욕심에 “이 창은 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소!”라고 하면서 창을 팔려 했고, “이 방패로는 막지 못하는 창이 없소!” 하며 방패를 팔려 했던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어떡하든 창과 방패를 많이 팔겠다는 욕망에 마음이 가려져 서로 모순되는 점은 보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점만 보았던 것이다. ‘별 차이 없네’ 하는 정신자세, 마음가짐에 어떡해서든 이익을 최대치로 보겠다는 물욕이 결합되면서 서로 모순되는 말이건만 같이 말해도 ‘별 문제 없어’ 하는 마음으로 발전한 결과였다.
고양응의 이야기는 ‘별 문제 없어’ 하는 마음이 일을 어디까지 망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고사다. 지금도 집 짓는 일은 매우 큰일이다. 그러니 건축술도 발달하지 못했고, 건축 자재를 구하고 수급하는 일도 지금보다는 훨씬 어려웠던 저 옛날에 집 짓는 일은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건축 자재를 고르는 일부터 기초를 다지는 일,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놓아 집의 골격을 만들어가는 일, 지붕을 올리고 마감을 하는 일 등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이 모든 일은 서로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기에 어느 하나가 하자가 생기면 그 부분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집 전체가 문제될 수 있었다. 집의 골격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기초를 잘 다지고 마감을 멋지게 했더라도 집의 골격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집은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그럼에도 고양응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만 근거하여 기둥이나 서까래로 쓸 목재를 골랐다. 생나무를 쓰면 생나무에 들어 있는 수분이 갈수록 마를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나무는 비틀어지거나 쪼그라들 것이 분명하기에 생나무로 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당시는 집을 짓는 목수나 장인 같은 건축 전문가는 사회적 신분이 낮았기에 지배계층이었던 고양응이 고집을 부리고 나오자 건축 전문가는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집이 붕괴됐으니 말이다. 이 고사를 쓴 글쓴이는 “고양응은 자그마한 일을 헤아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큰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뿐만이 아니라 고양응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앎만이 옳다는 독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이라도 그것이 전문적 식견에 기초한 옳은 말이면 받아들일 줄 아는, 그러한 열린 사유 역량도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좁은 식견과 독단, 오만 등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존의 앎마저도 위태롭게 만든다. 자신의 앎이 좁디좁은 식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앎을 고집스레 주장하는 것이 독단이나 오만의 소산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앎은 편협과 독단, 오만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 고전 본문 말미에서 글쓴이는 “눈은 본디 보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지혜도 본래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이치도 참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아무리 위대한 지성이라고 해도 보아낼 수 없는 것이, 알아낼 수 없는 것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세상에는 우리가 사물의 이치라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마저 적용되지 않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존재한다. 이러한 마당에 편협과 독단, 오만의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이의 앎이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키워드
검정, 고양응, 공손작, 모순, 반신불수, 앎, 칼
전후맥락
고전 본문은 「사순론(似順論)」 편에 들어 있는 「별류(別類)」라는 제목의 글에서 앎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을 다룬 부분이다. 제목인 별류(別類)는 ‘사물을 부류에 따라 나누어 파악해야 한다’는 뜻으로, 부류에 따라 개개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한편 「별류」가 들어 있는 「사순론(似順論)」 편에서의 사순(似順)은 ‘잘 통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이 편에서는 사건과 사물에 대하여 판단을 할 때 표면만을 봐서는 안 되고 그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연관된 글들이 실려 있다.
고전본문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이다. 잘못을 범하는 자의 우환은 모르면서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사만물 가운데 많은 것들이 비슷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되고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 노나라 사람 가운데 공손작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근거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본디 반신불수를 치료할 수 있다. 이제 내가 반신불수 치료약을 두 배로 쓰면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은 본디 작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크게 만들 수 없으며,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온전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칼을 감정하는 사람이 말했다. “칼이 흰 빛이면 견고하다는 것이고 노란 빛이면 유연하여 질기다는 것이다. 노란 빛과 흰 빛이 섞여 있으면 견고하고도 유연하여 질기니 좋은 칼이다.” 이에 반박하는 사람이 말했다. “흰 빛은 유연하여 질기지 않다는 것이고 노란 빛은 견고하지 않다는 것이니 노란 빛과 흰 빛이 섞여 있으면 견고하지도 않고 유연하여 질기지도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유연하면 휘게 되고, 견고하면 부러질 것인데 칼이 부러지거나 휘는데 어찌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칼의 실질은 바뀐 바가 없는데 어떤 이는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나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말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귀와 눈을 밝게 하여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망령된 말들이 그치게 된다. 귀와 눈을 밝게 하여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한다면 성군인 요 임금과 폭군인 걸 임금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충신이 그렇게 하지 못할까 근심하는 바이고 현자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다버리는 것이다.
고양응이라는 사람이 집을 지으려 하자 장인이 대꾸하여 말했다. “안 됩니다. 목재가 아직 생나무라 그 위에 칠을 하면 반드시 비틀릴 것입니다. 생나무로 집을 지으면 당장은 설령 좋더라도 뒤에는 반드시 망가집니다.” 고양응이 말했다. “그대의 말을 따른다면 집은 망가지지 않을 것이요. 목재는 갈수록 말라서 단단해질 것이고 칠은 갈수록 말라서 가벼워질 것이요. 갈수록 단단해지는 것으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을 감당한다면 망가지지 않을 것이요.” 장인은 대꾸할 말이 없어서 명령을 받들어 집을 지었다. 집이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괜찮았지만 그 뒤에는 결국 망가졌다. 고양응은 자그마한 일을 헤아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큰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오와 녹이 같은 명마가 태양을 등지고 서쪽으로 달려도 저녁때에 이르러 보면 태양은 그 앞에 있다. 눈은 본디 보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지혜도 본래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이치도 참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
知不知上矣. 過者之患, 不知而自以爲知. 物多類然而不然, 故亡國僇民無已. … 魯人有公孫綽者, 告人曰, “我能起死人.” 人問其故, 對曰, “我固能治偏枯, 今吾倍所以爲偏枯之藥, 則可以起死人矣.” 物固有可以爲小, 不可以爲大, 可以爲半, 不可以爲全者也. 相劍者曰, “白所以爲堅也, 黃所以爲牣也, 黃白雜則堅且牣, 良劍也.” 難者曰, “白所以爲不牣也, 黃所以爲不堅也, 黃白雜則不堅且不牣也. 又柔則錈, 堅則折. 劍折且錈, 焉得爲利劍.” 劍之情未革, 而或以爲良, 或以爲惡, 說使之也. 故有以聰明聽說則妄說者止, 無以聰明聽說則堯桀無別矣. 此忠臣之所患也, 賢者之所以廢也. … 高陽應將爲室家, 匠對曰, “未可也. 木尙生, 加塗其上, 必將撓. 以生爲室, 今雖善, 後將必敗.” 高陽應曰, “緣子之言, 則室不敗也. 木益枯則勁, 塗益乾則輕, 以益勁任益輕則不敗.” 匠人無辭而對, 受令而爲之. 室之始成也善, 其後果敗. 高陽應好小察, 而不通乎大理也. 驥驁綠耳背日而西走, 至乎夕則日在其前矣. 目固有不見也, 智固有不知也, 數固有不及也.
[출전] 『여씨춘추』
토론하기
(1) 고전 본문 속 공손작과 칼 검정가, 고양응이 범한 오류가 무엇이었는지를 짚어보자. 그리고 왜 그러한 잘못을 범하게 되었는지도 짚어보자.
(2) 자신이 공손작, 칼 검정가, 고양응이 범한 오류와 비슷한 오판을 내린 적이 있다면 그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또한 우리 사회에서 그와 비슷한 오판을 찾아보고 어떠한 오류를 범했는지, 왜 범하게 되었는지를 따져보자.
(3) 어떻게 해야 공손작, 칼 검정가, 고양응이 범한 오류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방도를 먼저 고전 본문에서 찾아본 다음 그 외에 또 어떠한 방도가 있는지를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후스(胡適)라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중국 학자가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반, 중국의 근대화에 발 벗고 나서서 지대한 공헌을 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당시 그는 중국이 봉건적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구 열강의 밥이 되어,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은 처지가 된 원인의 하나로 ‘별 차이 없네 선생’이 저 옛날부터 온 중국에 득시글거렸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어느 시대든 거의 온 백성이 중국어 원어로 ‘챠부뚸(差不多)’ 선생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 중국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별 차이 없네 선생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세상을 살았다. 대표적 예 하나만 들면 이러하다. 한번은 별 차이 없네 선생이 아팠다. 아들을 보내 급히 마을의 의사를 찾았지만 공교롭게도 의사가 다른 마을로 왕진을 간 바람에 마을에는 의사라는 직함이 붙어 있는 이는 수의사밖에 없었다. 그러자 별 차이 없네 선생은 “인간 의사나 동물 의사나 그것이 그것이지 뭐!” 하면서 수의사를 모셔와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당연히 병세의 악화로 드러났다.
고전 본문의 공손작, 칼 검정가, 고양응은 이러한 별 것 없네 선생의 선조 격이 되는 인물들이다. 공손작은 반신불수, 그러니까 몸이 반 이상 마비된 병증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으니까 이를 두 배로 쓰면 완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죽은 이도 고칠 수 있다고 여겼다. 반신불수나 죽음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이지 못함과 죽은 상태에서의 움직이지 못함이라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차이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던 셈이다.
‘모순’이라는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칼 검정가의 말 또한 마찬가지다. 견고함과 유연함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기에 칼 하나에 결코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임에도 ‘어떡하든 많이 팔기만 하면 되는 거야!’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 결과 상반되는 말을 마구 섞어서, 견고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지닌 칼이라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말을 마구 뱉어냈다. 모순 고사에서 창과 방패 둘 다를 많이 팔고자 하는 욕심에 “이 창은 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소!”라고 하면서 창을 팔려 했고, “이 방패로는 막지 못하는 창이 없소!” 하며 방패를 팔려 했던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어떡하든 창과 방패를 많이 팔겠다는 욕망에 마음이 가려져 서로 모순되는 점은 보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점만 보았던 것이다. ‘별 차이 없네’ 하는 정신자세, 마음가짐에 어떡해서든 이익을 최대치로 보겠다는 물욕이 결합되면서 서로 모순되는 말이건만 같이 말해도 ‘별 문제 없어’ 하는 마음으로 발전한 결과였다.
고양응의 이야기는 ‘별 문제 없어’ 하는 마음이 일을 어디까지 망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고사다. 지금도 집 짓는 일은 매우 큰일이다. 그러니 건축술도 발달하지 못했고, 건축 자재를 구하고 수급하는 일도 지금보다는 훨씬 어려웠던 저 옛날에 집 짓는 일은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건축 자재를 고르는 일부터 기초를 다지는 일,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놓아 집의 골격을 만들어가는 일, 지붕을 올리고 마감을 하는 일 등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이 모든 일은 서로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기에 어느 하나가 하자가 생기면 그 부분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집 전체가 문제될 수 있었다. 집의 골격을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기초를 잘 다지고 마감을 멋지게 했더라도 집의 골격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집은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그럼에도 고양응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만 근거하여 기둥이나 서까래로 쓸 목재를 골랐다. 생나무를 쓰면 생나무에 들어 있는 수분이 갈수록 마를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나무는 비틀어지거나 쪼그라들 것이 분명하기에 생나무로 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당시는 집을 짓는 목수나 장인 같은 건축 전문가는 사회적 신분이 낮았기에 지배계층이었던 고양응이 고집을 부리고 나오자 건축 전문가는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집이 붕괴됐으니 말이다. 이 고사를 쓴 글쓴이는 “고양응은 자그마한 일을 헤아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큰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뿐만이 아니라 고양응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앎만이 옳다는 독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이라도 그것이 전문적 식견에 기초한 옳은 말이면 받아들일 줄 아는, 그러한 열린 사유 역량도 결여되어 있었다.
이러한 좁은 식견과 독단, 오만 등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존의 앎마저도 위태롭게 만든다. 자신의 앎이 좁디좁은 식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앎을 고집스레 주장하는 것이 독단이나 오만의 소산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앎은 편협과 독단, 오만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 고전 본문 말미에서 글쓴이는 “눈은 본디 보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지혜도 본래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이치도 참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아무리 위대한 지성이라고 해도 보아낼 수 없는 것이, 알아낼 수 없는 것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세상에는 우리가 사물의 이치라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마저 적용되지 않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존재한다. 이러한 마당에 편협과 독단, 오만의 감옥에 갇혀 있음에도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이의 앎이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키워드
검정, 고양응, 공손작, 모순, 반신불수, 앎,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