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저작에서 뒤르켐은 세 가지 주요 논점을 제시한다. 첫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분업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본다. 둘째, 이러한 분업이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추적함으로써 각 사회에서 분업이 나타나는 조건과 양상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당시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나타났던 사회적 혼란을 ‘분업의 비정상적 형태’로 파악함으로써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안하는 것이다. 본문은 이 중에서 뒤르켐이 살았던 당시 사회에서 분업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즉 급격한 산업화 속에 대도시가 발달하고, 그러한 도시로 일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구밀도의 증가, 고밀도 사회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높은 수준의 상호작용과 관계맺음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고전본문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 간 관계(intra-social)는, 본래의 한계를 사방으로 넘어 확장되기 때문에 더욱 더 많아진다. 그리하여 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은 서로 작용-반작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접촉하는 개인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발달한다. 만약 이러한 관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활발한 상호작용을 ‘역동적 혹은 도덕적 밀도’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분업의 진전은 사회의 도덕적 또는 역동적 밀도에 정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관계는 개인들 사이의 실제 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줄어들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물질적 밀도가 증가하지 않으면 도덕적 밀도 역시 성장할 수 없으며, 전자는 후자를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 어느 쪽이 다른 쪽을 결정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두 요소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사회의 점진적인 응축은 세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저(低)발전 사회들이 인구와 함께 넓은 범위의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 보다 발전된 사회에서는 인구가 집중되는 경향이 항상 나타난다. 스펜서(H. Spencer)가 지적했듯이, 만약 미개 부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인구 비율을 동일한 면적의 유럽 지역의 인구 비율과 비교하거나, 혹은 영국 칠왕국 시대(the Heptarchy)의 인구 밀도를 오늘날의 인구 밀도와 대비해 본다면, 사회적 집단들의 결합으로 인해 이루어진 발전은 집단 간 사이 공간의 발전과 함께 이뤄졌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러 국가의 산업발전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이러한 과정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입증한다.
유목민이나 수렵민, 목축민들의 생산활동에는 어떠한 종류의 집중도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가능한 한 가장 넓은 공간으로의 분산을 필요로 한다. 농업은 정착 생활이 필요하므로 사회적 결속을 일정 수준으로 강화시키지만, 가족 단위 사이에는 여전히 토지의 공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회적 결속의 수준은 아직 불완전하다. 도시에서는 응집의 정도가 더 커지지만, 로마법의 제약으로 인해 도시의 주택들이 서로 밀접하게 붙어 있지는 않았다. 현재의 도시와 같은 밀집된 주거 형태는 우리 사회에서 형성됐으며, 이는 사회적 그물망(social web)이 한층 촘촘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 사회는 일시적 후퇴가 일어나는 예외적인 시기들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도시 밀도의 증가를 경험해왔다.
(2) 도시의 형성과 발전은 하나의 동일한 현상을 보여주는 특징적인 징후이다. 평균적인 밀도 증가는 출생률의 실질적 증가에 의해 발생한 것일 수 있으며, 그 결과 미약한 집중 상태와 뚜렷한 분절적 유형의 지속 현상이 양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는 언제나 개인들이 타인들과 매우 밀접한 교류 상태를 유지하려는 필요에서 비롯된다. 도시는 사회적 군중(social mass)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응축되어 있는 점들이다. 이러한 도시들은 도덕적 밀도가 증가하지 않는 한 확장되거나 성장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도시들이 특히 이주를 통해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적 분절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융합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출전] 에밀 뒤르켐,『사회 분업론』
토론하기
(1) 뒤르켐의 논의에 따른다면, 수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기만 하면 모두 도시라고 할 수 있는가?
(2)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지역에서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신뢰 수준을 어떻게 설명해볼 수 있는가?
(3) 현대사회의 인구구조 변화는 도시나 지역에서의 삶의 모습, 사회적 환경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게 될까?
해설읽기
본문은 사회에서 분업이 어떻게 발달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첫 문단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여 반응을 주고받을수록 사회분업이 발전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 간 접촉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들 사이의 실제 거리가 가까워져야 한다는 점이 명시된다. 즉 사람들 사이의 ‘물질적 밀도’가 증가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의 물질적 밀도는 ‘도덕적 밀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사람들 간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자주 접촉하게 되고, 이렇게 잦은 교류가 활성화될 때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의 밀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도덕적 밀도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빈도와 깊이를 나타내는 개념이자, 물질적 밀도와도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으로 규정될 수 있다.
다음으로 본문은 원시 부족의 사회부터 유목민 사회, 농업 사회, 로마와 산업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사례로 들어, 도시의 물질적 밀도와 도덕적 밀도가 사회분업을 촉진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본문은 인구 분포의 변화에서 그러한 분업 과정을 추론해나간다. 뒤르켐은 당시 또다른 중요한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의 논의를 인용하며 인구의 성장은 조직 구조의 변화(성장)을 동반한다고 설명한다. 원시 사회나 유목민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넓은 지역에 널리 퍼져 생활했지만, 농업이 발달하면서 일정한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이 곧 긴밀한 관계로 이뤄진 사회 조직들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근대 사회와 같은 사회적 밀도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뒤르켐은 고대 로마를 예로 들고 있다. 로마 역시 높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고밀도 도시였지만, 법령에 의해 사람들의 집이 ‘벽을 공유할만큼’ 서로 밀착되어 있는 형태로 밀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충분히 접촉하고 교류하지 않았고, 근대적 도시로 발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르켐은 근대의 도시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탄생했다고 보는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사람들 간의 좁은 사회적 거리와 그로 인한 높은 사회적 밀도가 프랑스 도시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 시기 프랑스 도시의 인구 밀도는 단순히 출생률의 실질적인 증가에 의해서만 증가한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농촌 지역)으로부터 모여든 이주민에 의해 급격하게 증가했음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지역으로부터 모인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높은 이질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질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도시는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는 동시에 커다란 사회조직으로 확장됨으로써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질적인 사람들이 소규모로 조직되어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대규모로 상호 의존하게 되는 근대 사회로 이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은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며 큰 틀에서 전체 사회에 통합되게 된다. 즉 사회분업이 일어나게 되며, 이렇게 분업화된 사회에서 도시 사람들은 서로가 수행하는 기능에 상호의존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유기적 연대’를 구성하게 된다.
정리하면 이 글은 사회의 복잡한 분업 발달이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인구의 집중, 물질적 밀도와 도덕적 밀도의 증가, 그리고 도시화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근대 도시, 분업, 사회적 분화, 사회의 연대, 시민도덕, 인구 밀도,
전후맥락
이 저작에서 뒤르켐은 세 가지 주요 논점을 제시한다. 첫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분업이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본다. 둘째, 이러한 분업이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추적함으로써 각 사회에서 분업이 나타나는 조건과 양상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당시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나타났던 사회적 혼란을 ‘분업의 비정상적 형태’로 파악함으로써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안하는 것이다. 본문은 이 중에서 뒤르켐이 살았던 당시 사회에서 분업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즉 급격한 산업화 속에 대도시가 발달하고, 그러한 도시로 일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인구밀도의 증가, 고밀도 사회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높은 수준의 상호작용과 관계맺음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고전본문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 간 관계(intra-social)는, 본래의 한계를 사방으로 넘어 확장되기 때문에 더욱 더 많아진다. 그리하여 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은 서로 작용-반작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접촉하는 개인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발달한다. 만약 이러한 관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활발한 상호작용을 ‘역동적 혹은 도덕적 밀도’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분업의 진전은 사회의 도덕적 또는 역동적 밀도에 정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관계는 개인들 사이의 실제 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줄어들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물질적 밀도가 증가하지 않으면 도덕적 밀도 역시 성장할 수 없으며, 전자는 후자를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 어느 쪽이 다른 쪽을 결정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두 요소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사회의 점진적인 응축은 세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저(低)발전 사회들이 인구와 함께 넓은 범위의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 보다 발전된 사회에서는 인구가 집중되는 경향이 항상 나타난다. 스펜서(H. Spencer)가 지적했듯이, 만약 미개 부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인구 비율을 동일한 면적의 유럽 지역의 인구 비율과 비교하거나, 혹은 영국 칠왕국 시대(the Heptarchy)의 인구 밀도를 오늘날의 인구 밀도와 대비해 본다면, 사회적 집단들의 결합으로 인해 이루어진 발전은 집단 간 사이 공간의 발전과 함께 이뤄졌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러 국가의 산업발전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이러한 과정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입증한다.
유목민이나 수렵민, 목축민들의 생산활동에는 어떠한 종류의 집중도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가능한 한 가장 넓은 공간으로의 분산을 필요로 한다. 농업은 정착 생활이 필요하므로 사회적 결속을 일정 수준으로 강화시키지만, 가족 단위 사이에는 여전히 토지의 공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회적 결속의 수준은 아직 불완전하다. 도시에서는 응집의 정도가 더 커지지만, 로마법의 제약으로 인해 도시의 주택들이 서로 밀접하게 붙어 있지는 않았다. 현재의 도시와 같은 밀집된 주거 형태는 우리 사회에서 형성됐으며, 이는 사회적 그물망(social web)이 한층 촘촘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 사회는 일시적 후퇴가 일어나는 예외적인 시기들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도시 밀도의 증가를 경험해왔다.
(2) 도시의 형성과 발전은 하나의 동일한 현상을 보여주는 특징적인 징후이다. 평균적인 밀도 증가는 출생률의 실질적 증가에 의해 발생한 것일 수 있으며, 그 결과 미약한 집중 상태와 뚜렷한 분절적 유형의 지속 현상이 양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는 언제나 개인들이 타인들과 매우 밀접한 교류 상태를 유지하려는 필요에서 비롯된다. 도시는 사회적 군중(social mass)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응축되어 있는 점들이다. 이러한 도시들은 도덕적 밀도가 증가하지 않는 한 확장되거나 성장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도시들이 특히 이주를 통해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적 분절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융합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출전] 에밀 뒤르켐,『사회 분업론』
토론하기
(1) 뒤르켐의 논의에 따른다면, 수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기만 하면 모두 도시라고 할 수 있는가?
(2)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지역에서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신뢰 수준을 어떻게 설명해볼 수 있는가?
(3) 현대사회의 인구구조 변화는 도시나 지역에서의 삶의 모습, 사회적 환경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게 될까?
해설읽기
본문은 사회에서 분업이 어떻게 발달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첫 문단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여 반응을 주고받을수록 사회분업이 발전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 간 접촉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개인들 사이의 실제 거리가 가까워져야 한다는 점이 명시된다. 즉 사람들 사이의 ‘물질적 밀도’가 증가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의 물질적 밀도는 ‘도덕적 밀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사람들 간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자주 접촉하게 되고, 이렇게 잦은 교류가 활성화될 때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의 밀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도덕적 밀도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의 빈도와 깊이를 나타내는 개념이자, 물질적 밀도와도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으로 규정될 수 있다.
다음으로 본문은 원시 부족의 사회부터 유목민 사회, 농업 사회, 로마와 산업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사례로 들어, 도시의 물질적 밀도와 도덕적 밀도가 사회분업을 촉진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본문은 인구 분포의 변화에서 그러한 분업 과정을 추론해나간다. 뒤르켐은 당시 또다른 중요한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의 논의를 인용하며 인구의 성장은 조직 구조의 변화(성장)을 동반한다고 설명한다. 원시 사회나 유목민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넓은 지역에 널리 퍼져 생활했지만, 농업이 발달하면서 일정한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이 곧 긴밀한 관계로 이뤄진 사회 조직들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근대 사회와 같은 사회적 밀도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뒤르켐은 고대 로마를 예로 들고 있다. 로마 역시 높은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고밀도 도시였지만, 법령에 의해 사람들의 집이 ‘벽을 공유할만큼’ 서로 밀착되어 있는 형태로 밀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충분히 접촉하고 교류하지 않았고, 근대적 도시로 발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르켐은 근대의 도시가 프랑스에서 최초로 탄생했다고 보는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사람들 간의 좁은 사회적 거리와 그로 인한 높은 사회적 밀도가 프랑스 도시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 시기 프랑스 도시의 인구 밀도는 단순히 출생률의 실질적인 증가에 의해서만 증가한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농촌 지역)으로부터 모여든 이주민에 의해 급격하게 증가했음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지역으로부터 모인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높은 이질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질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도시는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되는 동시에 커다란 사회조직으로 확장됨으로써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동질적인 사람들이 소규모로 조직되어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대규모로 상호 의존하게 되는 근대 사회로 이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은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며 큰 틀에서 전체 사회에 통합되게 된다. 즉 사회분업이 일어나게 되며, 이렇게 분업화된 사회에서 도시 사람들은 서로가 수행하는 기능에 상호의존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유기적 연대’를 구성하게 된다.
정리하면 이 글은 사회의 복잡한 분업 발달이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인구의 집중, 물질적 밀도와 도덕적 밀도의 증가, 그리고 도시화와 같은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키워드
근대 도시, 분업, 사회적 분화, 사회의 연대, 시민도덕, 인구 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