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글은 20세기 중반, 정부에 의해 잘 계획된 도시의 사회적 환경을 시민 의식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경제적으로 발전된 서구 사회는 도시를 정비하고 ‘질서’에 따라 구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러한 실천이 사람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성숙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 글의 앞 부분은 청소년, 미성숙한 정신의 특징을 갈등이나 혼란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것, 이질성에 대해 성숙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을 쉽게 한다. 이러한 대응은 그 자체로 미성숙한 것일 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신적 미성숙함이 1960년대 미국의 대도시 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제시된 본문은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일부분이다.
고전본문
사회의 언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거대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도시의 혼돈이다. 그 매혹과 공포는 도시 경계 내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뉴욕의 의류 지구는 사무 지구로, 사무 지구는 사회복지 지구로, 사회복지 지구는 다시 우아한 타운하우스 지구로 넘쳐 흐르고, 이와 같은 연쇄는 결국 14번가 주변의 거대한 쇼핑 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미드타운 남부의 다양성 속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수많은 서로 다른 삶의 형태가 겹쳐지는 데서 엄청난 활력을 느낀다. 이 다양성은 뉴욕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각 지구들 중 어느 영역도 도시 공동체 내부에서 자신의 경계를 통제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곳도 부유하고 중앙집권화되어 스스로를 벽으로 둘러싸 다른 지역과 구별지을만큼 강력하지 않았기에, 각 구역은 필연적으로 다른 구역의 침입을 겪어야 했다. (중략)
공동체의 물질적 풍요는 일관된 공동체라는 신화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명백한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충분한 돈을 가진 공동체가 물리적으로 경계를 통제하고 내부 상황을 조절하는 것이다. 대도시의 오래된 동네들이 복잡했던 이유는, 어느 한 집단도 자신을 보호할만한 경제적 자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라운스톤 거주자들은 한 집에 한 가족만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없었고,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주거 단위를 보호할 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건물 1층의 시끄러운 술집과 상점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상업 활동으로부터 주거 생활을 보호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사할 돈이 없었다. 자원이 부족한 도시의 현실은 공동체의 일관성에 대한 신화를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현금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도시 인구의 상당 부분이 일정한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이러한 일관성, 내부적 동질성에 대한 욕구, 구조적인 배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 지역 전체가 계급, 인종, 민족에 따라 지리적으로 분할될 수 있으며, 상점이나 오락 같은 ‘보기 흉한’ 활동들은 가정 생활로부터 숨겨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 활동을 인정사정없이 단순화함으로써 공동체의 일관된 정체성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풍요는 공동 정체성에 대한 욕망을 형성하는 데 더 미묘하고 어쩌면 더 위험한 역할을 한다. 결핍의 시기, 가난한 공동체에서는 개인과 가족 간의 나눔이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된다. 진공 청소기 같은 희소한 가전제품이나 식량같은 기본 생필품을 공유하는 것은 미국 도시 흑인 게토를 연구한 이들이 종종 언급해 온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 사이의 직접적인 사회적 접촉을 발생시키는 공동체 내의 공유 활동은 도시 지역사회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지역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 기술, 물품들은 구체적인 공동체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공유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풍요의 특징이다. 각 가정은 자신만의 진공청소기, 냄비와 프라이팬 세트, 교통수단, 난방, 수도시설 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교류의 필요성, 공유의 필요성은 풍요로운 공동체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는 자기완결적인 가정으로 물러날 수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 즉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고 묶여 있다는 느낌이 과거에 공동체 경험을 제공하던 영역으로부터 단절됨을 의미한다. 공유해야 할 것이 훨씬 적어지면, 개인들이 서로가 누구인가를 가늠하기 위해 끌어올 수 있는 경험의 자원도 훨씬 작아진다.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할 때, 이제 사람들은 서로의 관계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 어떤 면에서 동질적인 존재인지를 상상하려고 한다.
즉 달리 말하면, 풍요는 공동체 속에서 고립되는 힘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유대감을 상상하도록 한다.
[출전] 리처드 세넷,『무질서의 효용』
토론하기
(1) 뒤르켐이나 짐멜과 같은 학자가 설명했던 19세기 대도시의 모습과 세넷이 설명하고 있는 20세기 중반 대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
(2)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는 ‘좋은 동네’일까? 나는 어떤 사람들을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또 ‘좋은 동네’는 어떤 동네를 말하는 것인지를 정리해 본 뒤, 질문에 답해보자.
(3) 대도시는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도시의 ‘풍요’를 사람들 간의 상호교류를 촉진시키고 성숙한 다양성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해설읽기
제시된 본문은 도시의 본질과 공동체의 성격을 연결하여 분석하고 있다. 도시에 대해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혼돈’인데, 도시의 무질서에서 오는 이 혼돈은 도시의 고유한 매력이자 공포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시의 혼돈은 도시 경계선 안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본문은 활력과 에너지가 분출하는 당시 뉴욕의 복잡한 도시 환경을 예로 들어 보여준다. 의류 산업 지구에서 쇼핑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서로 넘쳐흐르며 엄청난 활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어느 한 구역도 자신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제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거나 부유하지 않아 다른 구역의 침입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도시의 오래된 구역이 복잡한 것은 어느 한 집단도 자신을 보호할 만한 경제적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브라운스톤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이들은 상업 활동이나 시끄러운 술집으로부터 주거 생활을 보호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할 돈이 없기 때문에 서로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결핍의 경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순수하고 완전한 것’으로 만드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실천하지 못하는 제약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는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공동체는 경계와 내부 구성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데, 이러한 힘이 다른 공동체와의 교류와 접촉의 필요성을 차단하고 ‘순수하고 질서있는 공동체’라는 신화를 강화하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충분한 부를 쌓은 도시인을 위한 대규모 지역 -오늘날 한국 사회에 빗댄다면 대단지 아파트 같은 지역-이 등장하면서 일관성을 향한 욕망, 즉 체계적인 배제와 내적 동일성을 향한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지역 전체를 계급, 인종, 민족에 따라 지리적으로 나눌 수 있게 하고, 상점이나 유흥 같은 '눈에 거슬리는' 활동을 가정생활에서 숨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생활 반경을 단순화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서로 다름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능력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본문은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공동체나 결핍의 시기에는 개인과 가족 간의 공유가 생존에 필수적이다. 본문은 미국 도시의 흑인 게토에서 사람들이 진공청소기나 식료품 같은 부족한 물품을 공유하는 것을 예로 들지만, 이러한 예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도시들에서 널리 나타나는 특징이다. 사람들은 공유를 통해 직접적인 사회적 접촉을 할 수밖에 없었고, 서로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함께 공유하는 기술, 물건, 공간 등은 공동체의 구체적인 구심점이 됐다.
대조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가정마다 자동차, 전열기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교류의 필요성, 즉 공유의 필요성이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가정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공동체의 감정, 즉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단절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유대감을 쌓을 때, 실제로 서로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만큼 비슷한지를 상상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비슷한 경제적 수준과 라이프스타일, 같은 인종,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배타적 공동체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함’, ‘질서’를 향한 욕망은 쉽게 타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키워드
대도시, 무질서, 인구밀도, 순수성, 정체성
전후맥락
이 글은 20세기 중반, 정부에 의해 잘 계획된 도시의 사회적 환경을 시민 의식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경제적으로 발전된 서구 사회는 도시를 정비하고 ‘질서’에 따라 구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러한 실천이 사람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성숙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 글의 앞 부분은 청소년, 미성숙한 정신의 특징을 갈등이나 혼란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것, 이질성에 대해 성숙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을 쉽게 한다. 이러한 대응은 그 자체로 미성숙한 것일 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신적 미성숙함이 1960년대 미국의 대도시 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제시된 본문은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일부분이다.
고전본문
사회의 언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거대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도시의 혼돈이다. 그 매혹과 공포는 도시 경계 내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뉴욕의 의류 지구는 사무 지구로, 사무 지구는 사회복지 지구로, 사회복지 지구는 다시 우아한 타운하우스 지구로 넘쳐 흐르고, 이와 같은 연쇄는 결국 14번가 주변의 거대한 쇼핑 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미드타운 남부의 다양성 속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수많은 서로 다른 삶의 형태가 겹쳐지는 데서 엄청난 활력을 느낀다. 이 다양성은 뉴욕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각 지구들 중 어느 영역도 도시 공동체 내부에서 자신의 경계를 통제할 만한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곳도 부유하고 중앙집권화되어 스스로를 벽으로 둘러싸 다른 지역과 구별지을만큼 강력하지 않았기에, 각 구역은 필연적으로 다른 구역의 침입을 겪어야 했다. (중략)
공동체의 물질적 풍요는 일관된 공동체라는 신화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명백한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충분한 돈을 가진 공동체가 물리적으로 경계를 통제하고 내부 상황을 조절하는 것이다. 대도시의 오래된 동네들이 복잡했던 이유는, 어느 한 집단도 자신을 보호할만한 경제적 자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라운스톤 거주자들은 한 집에 한 가족만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없었고, 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주거 단위를 보호할 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건물 1층의 시끄러운 술집과 상점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상업 활동으로부터 주거 생활을 보호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사할 돈이 없었다. 자원이 부족한 도시의 현실은 공동체의 일관성에 대한 신화를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현금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도시 인구의 상당 부분이 일정한 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이러한 일관성, 내부적 동질성에 대한 욕구, 구조적인 배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 지역 전체가 계급, 인종, 민족에 따라 지리적으로 분할될 수 있으며, 상점이나 오락 같은 ‘보기 흉한’ 활동들은 가정 생활로부터 숨겨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인간 활동을 인정사정없이 단순화함으로써 공동체의 일관된 정체성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풍요는 공동 정체성에 대한 욕망을 형성하는 데 더 미묘하고 어쩌면 더 위험한 역할을 한다. 결핍의 시기, 가난한 공동체에서는 개인과 가족 간의 나눔이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된다. 진공 청소기 같은 희소한 가전제품이나 식량같은 기본 생필품을 공유하는 것은 미국 도시 흑인 게토를 연구한 이들이 종종 언급해 온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 사이의 직접적인 사회적 접촉을 발생시키는 공동체 내의 공유 활동은 도시 지역사회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지역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 기술, 물품들은 구체적인 공동체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공유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풍요의 특징이다. 각 가정은 자신만의 진공청소기, 냄비와 프라이팬 세트, 교통수단, 난방, 수도시설 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교류의 필요성, 공유의 필요성은 풍요로운 공동체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는 자기완결적인 가정으로 물러날 수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 즉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고 묶여 있다는 느낌이 과거에 공동체 경험을 제공하던 영역으로부터 단절됨을 의미한다. 공유해야 할 것이 훨씬 적어지면, 개인들이 서로가 누구인가를 가늠하기 위해 끌어올 수 있는 경험의 자원도 훨씬 작아진다.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할 때, 이제 사람들은 서로의 관계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생각하기보다 어떤 면에서 동질적인 존재인지를 상상하려고 한다.
즉 달리 말하면, 풍요는 공동체 속에서 고립되는 힘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유사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유대감을 상상하도록 한다.
[출전] 리처드 세넷,『무질서의 효용』
토론하기
(1) 뒤르켐이나 짐멜과 같은 학자가 설명했던 19세기 대도시의 모습과 세넷이 설명하고 있는 20세기 중반 대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가?
(2)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는 ‘좋은 동네’일까? 나는 어떤 사람들을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또 ‘좋은 동네’는 어떤 동네를 말하는 것인지를 정리해 본 뒤, 질문에 답해보자.
(3) 대도시는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도시의 ‘풍요’를 사람들 간의 상호교류를 촉진시키고 성숙한 다양성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해설읽기
제시된 본문은 도시의 본질과 공동체의 성격을 연결하여 분석하고 있다. 도시에 대해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혼돈’인데, 도시의 무질서에서 오는 이 혼돈은 도시의 고유한 매력이자 공포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시의 혼돈은 도시 경계선 안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본문은 활력과 에너지가 분출하는 당시 뉴욕의 복잡한 도시 환경을 예로 들어 보여준다. 의류 산업 지구에서 쇼핑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들이 서로 넘쳐흐르며 엄청난 활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어느 한 구역도 자신을 ‘하나의 공동체’로 통제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거나 부유하지 않아 다른 구역의 침입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도시의 오래된 구역이 복잡한 것은 어느 한 집단도 자신을 보호할 만한 경제적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브라운스톤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이들은 상업 활동이나 시끄러운 술집으로부터 주거 생활을 보호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할 돈이 없기 때문에 서로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결핍의 경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순수하고 완전한 것’으로 만드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실천하지 못하는 제약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는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공동체는 경계와 내부 구성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데, 이러한 힘이 다른 공동체와의 교류와 접촉의 필요성을 차단하고 ‘순수하고 질서있는 공동체’라는 신화를 강화하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충분한 부를 쌓은 도시인을 위한 대규모 지역 -오늘날 한국 사회에 빗댄다면 대단지 아파트 같은 지역-이 등장하면서 일관성을 향한 욕망, 즉 체계적인 배제와 내적 동일성을 향한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지역 전체를 계급, 인종, 민족에 따라 지리적으로 나눌 수 있게 하고, 상점이나 유흥 같은 '눈에 거슬리는' 활동을 가정생활에서 숨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생활 반경을 단순화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서로 다름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능력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본문은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공동체나 결핍의 시기에는 개인과 가족 간의 공유가 생존에 필수적이다. 본문은 미국 도시의 흑인 게토에서 사람들이 진공청소기나 식료품 같은 부족한 물품을 공유하는 것을 예로 들지만, 이러한 예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도시들에서 널리 나타나는 특징이다. 사람들은 공유를 통해 직접적인 사회적 접촉을 할 수밖에 없었고, 서로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함께 공유하는 기술, 물건, 공간 등은 공동체의 구체적인 구심점이 됐다.
대조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가정마다 자동차, 전열기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교류의 필요성, 즉 공유의 필요성이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가정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공동체의 감정, 즉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단절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유대감을 쌓을 때, 실제로 서로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만큼 비슷한지를 상상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비슷한 경제적 수준과 라이프스타일, 같은 인종,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배타적 공동체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함’, ‘질서’를 향한 욕망은 쉽게 타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키워드
대도시, 무질서, 인구밀도, 순수성,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