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가 만든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규범이나 제도, 지배적인 가치관 등은 우리의 선택 이전부터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일부 또는 전부가 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 주어진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기 삶의 든든한 토대를 이루지만 그러면서도 때로는 그 질서의 바깥을 상상하거나 실제로 잠시나마 그것을 벗어나 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정체성’이라 부르는 것은 주어진 질서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이루어진 이상적 타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주어진 질서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그것에 맞서며, 그것 바깥에서 자기 존재의 자리를 찾고, 또 심지어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셀 묶음에서는 중국의 16세기에서부터 18세기까지의 고전을 통해 이렇게 주어진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인물들을 만난다. 역사적 전환기였던 이 시기에 작가들은 ‘전통’이라는 명목 속에 이어져 내려온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들의 문학적 세계 안에서 그 경계 너머를 탐색했다. 『유림외사』에 등장하는 인물 두소경은 과거 시험과 출세라는 당시 문인 공동체의 “정답”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모란정』의 두여낭은 꿈에서 경험한 사랑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금지된 장소로 나아간다. 사상가 이지는 「동심에 관하여」라는 짧은 산문에서 진실한 마음의 발현을 가로막고 위선과 허위만을 양산하는 유가의 경전 전통을 비판하며,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에 여전히 남아 있는 진실의 원천인 동심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소설 『수호전』에서 호걸들은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이 네 작품은 우리에게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지금껏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기존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삶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새롭게 발견하고 또 만들어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명문가의 외동딸로 태어난 두여낭은 아버지 두보(杜寶)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아버지가 스승으로 모신 진최량(陳最良)에게서 『시경(詩經)』을 배우던 두여낭은 시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 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봄날,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집 뒤편 정원으로 나간 두여낭은 그곳에서 잠이 든다. 꿈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든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 그녀는 꿈에서 깬 후에도 그를 깊이 그리워한다. 인적 드문 후원으로 나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훈계를 듣고도 두여낭은 다시 그곳을 찾아가 지난 꿈의 흔적을 더듬는다. 아래의 본문은 총 55회 가운데 12회인 “꿈을 찾아서(尋夢)”에 나오는 장면들이다(고딕체 문장은 그 부분이 노래로 연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본문
두여낭: 어제 꿈에서 보았던 연못과 정자의 풍경이 아직 이렇게 또렷하다니. 지난 꿈을 다시 꾸려고만 하면 어쩜 이렇게 새로운 괴로움이 한 가닥 더 생겨나는 것일까. 생각에 잠겨 뒤척이다 밤새 잠도 한숨 못 자고. 마침 한가한데다 춘향이도 내보냈으니 화원에나 슬쩍 가서 지난 꿈의 흔적을 찾아 보는게 좋겠어. (슬퍼하며) 아아, 이게 바로 어느 시인이 “꿈 속에서 나란히 날던 찬란한 봉황새는 사라졌어도 마음에는 여전히 서로를 느끼던 감각 남아 있어 조금은 그와 닿는 듯하네.”라고 한 것이구나. (걷는다) 화원에 와 보니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고 화원지기도 없네. 떨어진 꽃잎들만 땅에 온통 흩어져 있구나!
(중략)
춘 향: 밥 먹으러 갔다가 아씨가 안 보이시기에 줄곧 찾아 헤맸지 뭐예요. 그런데 여기 계시다니요!
(1) 두여낭이 화원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녀가 떠올리는 꿈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두여낭이 바라보는 화원의 풍경(땅에 흩어진 꽃잎, 작약의 여린 싹, 실처럼 늘어진 수양버들, 엽전처럼 맺힌 느릅나무 꼬투리)을 그녀의 감정 상태와 연결해서 상상해 보자.
(2) 여러분은 두여낭처럼 누군가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춘향이 전하는 두여낭의 어머니의 말은 여러분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 이러한 말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고 또 반응했는가?
(3) 본문에서와 같이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꿈이라는 비현실적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후원은 감시와 간섭을 빗겨나가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우리 사회에서 두여낭의 후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들, 즉 사회적 규범의 억압에서 벗어나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나 매체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것들은 어떤 순기능을 제공하는가? 반대로 이들이 갖는 한계나 부작용은 무엇인가?
해설읽기
본문에서 춘향을 통해 전달되는 두여낭 어머니의 훈계는 전통 시기 중국에서 사대부 가문의 젊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던 사회적 통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외부인의 시선과 출입이 제한된 공간인 규방(閨房)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밀한 공간에서 자수를 놓고, 종이에 향을 배이게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학습하고 내면화했다. 다시 말해, 두여낭에게 허락된 규방과 안마당은 단지 일상의 생활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회적·성적 정체성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이념의 체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두여낭이 이 공간을 벗어나 후원으로 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규범에 대한 도전을 내포한다. 그것이 위험한 까닭은 꼭 거기에 “꽃 요괴와 나무 정령이 자주 출몰”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위반, 즉 어떤 처벌을 상기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으로 들어가는 두여낭의 모습은 아무리 엄격한 규율로도 인간의 본성적인 욕망의 출현을 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외부인과도 접촉할 수 없는 그 후원에서 두여낭은 꿈을 통해 젊은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지금 그녀는 춘향이 곁을 비운 틈을 타 다시 후원으로 가서 꿈의 연인을 회상한다. 두여낭의 욕망은 억압 속에서도 자라나고, 규율은 예정된 실패로 나아간다.
본문이 들어 있는 맥락은 더 나아가 욕망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오히려 싹트고 자라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사실 처음에 두여낭을 후원으로 유인한 것은 바로 본문에서 어머니를 대신해 감시와 훈계의 역할을 하는 춘향이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식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아버지가 시킨 『시경』 공부였다. 아버지는 그녀를 장차 한 가정의 현숙한 부인이 되도록 하고자 선생을 들여 시를 가르치지만, 두여낭은 그 시를 읽으며 오히려 남녀 간의 사귐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본문의 첫 단락에서도 두여낭은 꿈속의 연인을 찾아 화원으로 향하는 자신을 이전에 읽었던 시의 구절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작가 탕현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는 “정(情)”이라는 개념을 통해 욕망의 통제 불가능성을 표현한다. 이 희곡의 내용만큼이나 잘 알려진 서문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 여자들 중에 정이 깊은 이들이 많다지만, 두여낭 같은 이가 또 있을까? 그녀는 꿈에서 임을 만나 병이 들고, 병이 깊어지자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려 세상에 남기고는 죽는다. 그녀는 죽고 삼 년이 지나 저승의 재판장에 가서도 꿈에서 만난 남자와의 인연에 대해 묻고 그 답을 얻은 뒤 이승으로 돌아온다. 두여낭 같은 자라야 참으로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에게 한 번 가기만 하면 점점 깊어지기 마련이다. 정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이 그로 인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살면서 그 정 때문에 죽음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죽어서 그 정으로 인해 되살아날 정도가 아니라면, 이런 정이란 진정한 것이 아니다.
이 서문은 본문의 마지막에서 두여낭이 고백하는 자신의 뒤흔들린 마음이 단순한 봄철의 설렘 이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땅에 흩어진 꽃잎과 작약의 여린 싹처럼, 혼란과 설렘으로 시작된 두여낭의 사랑은 이후에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점점 깊어져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더 이후에는 다시 이승으로 데려오기까지 할 것이다. 정을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정서적인 상태라기보다 물질적인 에너지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스스로 운동하며 정신과 생명의 질서를 바꾸어 놓는다. 정이 이처럼 강력한 것이라면 아무리 엄격한 교육과 훈육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억압적인 질서를 전복하는 힘이 인간의 생명력 자체에 내재한다는 이러한 사유는 왜 이 작품이 발표와 동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 특히 두여낭과 같은 규방 여성들의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전의 유학이 강조하던,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성인들이 정한 규범을 잘 지키라는 가르침이 점차 낡고 형식적인 것으로 느껴지던 시대에, 작가 탕현조는 힘 또는 영향력이라는 관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규중 소녀의 내면을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자리로 지정하고, 허구 세계의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것의 역량을 펼쳐내 보인다.
키워드
규범, 꿈, 마음, 사랑, 현실
전후맥락
명문가의 외동딸로 태어난 두여낭은 아버지 두보(杜寶)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아버지가 스승으로 모신 진최량(陳最良)에게서 『시경(詩經)』을 배우던 두여낭은 시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 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봄날,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집 뒤편 정원으로 나간 두여낭은 그곳에서 잠이 든다. 꿈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든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 그녀는 꿈에서 깬 후에도 그를 깊이 그리워한다. 인적 드문 후원으로 나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훈계를 듣고도 두여낭은 다시 그곳을 찾아가 지난 꿈의 흔적을 더듬는다. 아래의 본문은 총 55회 가운데 12회인 “꿈을 찾아서(尋夢)”에 나오는 장면들이다(고딕체 문장은 그 부분이 노래로 연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본문
두여낭: 어제 꿈에서 보았던 연못과 정자의 풍경이 아직 이렇게 또렷하다니. 지난 꿈을 다시 꾸려고만 하면 어쩜 이렇게 새로운 괴로움이 한 가닥 더 생겨나는 것일까. 생각에 잠겨 뒤척이다 밤새 잠도 한숨 못 자고. 마침 한가한데다 춘향이도 내보냈으니 화원에나 슬쩍 가서 지난 꿈의 흔적을 찾아 보는게 좋겠어. (슬퍼하며) 아아, 이게 바로 어느 시인이 “꿈 속에서 나란히 날던 찬란한 봉황새는 사라졌어도 마음에는 여전히 서로를 느끼던 감각 남아 있어 조금은 그와 닿는 듯하네.”라고 한 것이구나. (걷는다) 화원에 와 보니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고 화원지기도 없네. 떨어진 꽃잎들만 땅에 온통 흩어져 있구나!
(중략)
춘 향: 밥 먹으러 갔다가 아씨가 안 보이시기에 줄곧 찾아 헤맸지 뭐예요. 그런데 여기 계시다니요!
(1) 두여낭이 화원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녀가 떠올리는 꿈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두여낭이 바라보는 화원의 풍경(땅에 흩어진 꽃잎, 작약의 여린 싹, 실처럼 늘어진 수양버들, 엽전처럼 맺힌 느릅나무 꼬투리)을 그녀의 감정 상태와 연결해서 상상해 보자.
(2) 여러분은 두여낭처럼 누군가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춘향이 전하는 두여낭의 어머니의 말은 여러분에게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 이러한 말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고 또 반응했는가?
(3) 본문에서와 같이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꿈이라는 비현실적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후원은 감시와 간섭을 빗겨나가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우리 사회에서 두여낭의 후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들, 즉 사회적 규범의 억압에서 벗어나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나 매체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것들은 어떤 순기능을 제공하는가? 반대로 이들이 갖는 한계나 부작용은 무엇인가?
해설읽기
본문에서 춘향을 통해 전달되는 두여낭 어머니의 훈계는 전통 시기 중국에서 사대부 가문의 젊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던 사회적 통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외부인의 시선과 출입이 제한된 공간인 규방(閨房)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밀한 공간에서 자수를 놓고, 종이에 향을 배이게 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학습하고 내면화했다. 다시 말해, 두여낭에게 허락된 규방과 안마당은 단지 일상의 생활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회적·성적 정체성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이념의 체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두여낭이 이 공간을 벗어나 후원으로 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 규범에 대한 도전을 내포한다. 그것이 위험한 까닭은 꼭 거기에 “꽃 요괴와 나무 정령이 자주 출몰”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위반, 즉 어떤 처벌을 상기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으로 들어가는 두여낭의 모습은 아무리 엄격한 규율로도 인간의 본성적인 욕망의 출현을 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외부인과도 접촉할 수 없는 그 후원에서 두여낭은 꿈을 통해 젊은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지금 그녀는 춘향이 곁을 비운 틈을 타 다시 후원으로 가서 꿈의 연인을 회상한다. 두여낭의 욕망은 억압 속에서도 자라나고, 규율은 예정된 실패로 나아간다.
본문이 들어 있는 맥락은 더 나아가 욕망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들 속에서 오히려 싹트고 자라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사실 처음에 두여낭을 후원으로 유인한 것은 바로 본문에서 어머니를 대신해 감시와 훈계의 역할을 하는 춘향이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식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아버지가 시킨 『시경』 공부였다. 아버지는 그녀를 장차 한 가정의 현숙한 부인이 되도록 하고자 선생을 들여 시를 가르치지만, 두여낭은 그 시를 읽으며 오히려 남녀 간의 사귐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본문의 첫 단락에서도 두여낭은 꿈속의 연인을 찾아 화원으로 향하는 자신을 이전에 읽었던 시의 구절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작가 탕현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는 “정(情)”이라는 개념을 통해 욕망의 통제 불가능성을 표현한다. 이 희곡의 내용만큼이나 잘 알려진 서문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 여자들 중에 정이 깊은 이들이 많다지만, 두여낭 같은 이가 또 있을까? 그녀는 꿈에서 임을 만나 병이 들고, 병이 깊어지자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려 세상에 남기고는 죽는다. 그녀는 죽고 삼 년이 지나 저승의 재판장에 가서도 꿈에서 만난 남자와의 인연에 대해 묻고 그 답을 얻은 뒤 이승으로 돌아온다. 두여낭 같은 자라야 참으로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에게 한 번 가기만 하면 점점 깊어지기 마련이다. 정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이 그로 인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살면서 그 정 때문에 죽음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죽어서 그 정으로 인해 되살아날 정도가 아니라면, 이런 정이란 진정한 것이 아니다.
이 서문은 본문의 마지막에서 두여낭이 고백하는 자신의 뒤흔들린 마음이 단순한 봄철의 설렘 이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땅에 흩어진 꽃잎과 작약의 여린 싹처럼, 혼란과 설렘으로 시작된 두여낭의 사랑은 이후에 그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점점 깊어져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더 이후에는 다시 이승으로 데려오기까지 할 것이다. 정을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정서적인 상태라기보다 물질적인 에너지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스스로 운동하며 정신과 생명의 질서를 바꾸어 놓는다. 정이 이처럼 강력한 것이라면 아무리 엄격한 교육과 훈육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억압적인 질서를 전복하는 힘이 인간의 생명력 자체에 내재한다는 이러한 사유는 왜 이 작품이 발표와 동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 특히 두여낭과 같은 규방 여성들의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전의 유학이 강조하던,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성인들이 정한 규범을 잘 지키라는 가르침이 점차 낡고 형식적인 것으로 느껴지던 시대에, 작가 탕현조는 힘 또는 영향력이라는 관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규중 소녀의 내면을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자리로 지정하고, 허구 세계의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것의 역량을 펼쳐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