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퉁바오 영감은 누에 농사를 짓는 성실한 농민이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누에 농사에 성공해 비교적 형편이 좋았으나, 아버지와 자신의 세대를 거치면서 가세가 점차 기울어, 지금은 빚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퉁바오 영감은 집안이 몰락한 원인을 자신이 “양놈들”이라 부르며 경멸하는 서구 제국주의 경제적 침탈과, 그와 동시에 진행된 중국 사회의 서구화 때문이라 여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상하이에서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누에를 가공하고 실을 뽑는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이런 열악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올해 누에 농사는 예년보다 유난히 잘된다. 퉁바오 영감은 불어나는 누에를 먹이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어 뽕잎을 사고, 온 가족이 굶주림을 참고 밤낮없이 매달려 누에를 키운다. 그러나 공장들이 문을 닫은 탓에 고치 수요가 급감하고, 퉁바오 영감이 고집한 토종 누에는 외래종에 밀려 가격이 폭락한다. 결국 퉁바오 영감은 어느때보다 많이 얻은 누에를 제대로 팔지도 못한 채, 오히려 더 많은 빚만 떠안게 된다. 본문은 이러한 이 소설의 도입부로서, 퉁바오 영감이 집안이 몰락해 온 역사를 회상하고,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전본문
퉁바오 영감은 검게 탄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들고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강과, 강 위의 배들, 그리고 강 양쪽 강기슭에 따라 나 있는 뽕밭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이 모든 풍경은 그가 스무 살을 갓 넘었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세상”은 분명히 바뀌어 있었다. 자기 집도 이제는 다른 집들처럼 늘 잡곡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게다가 빚도 삼백 원이 넘게 불어나 있었다.
뚜우! 뚜, 뚜, 뚜 ——
그때 갑자기 뱃고동 소리가 저쪽 편 멀리 강굽이에서부터 들려왔다.
(중략)
퉁바오 영감은 얼굴에 분노를 가득 담은 채, 저 멀리서 소형 증기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고, 배가 그의 앞을 지나 또 한 번 강굽이까지 곧장 나아가 굽이를 따라 돌면서 몇 번 ‘뚜뚜뚜’ 소리를 내고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눈으로 따라갔다.
퉁바오 영감은 이런 증기선 같은 양놈의 물건을 줄곧 증오해 왔다. 그 자신이 지금껏 양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천 나으리가 봤다는 붉은 눈썹에 초록 눈, 다리를 뻣뻣하게 뻗고 걷는 양놈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천 나으리도 양놈들을 몹시 싫어해서, “양놈들이 사기 쳐서 돈을 죄다 가져갔지.”라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퉁바오 영감이 천 나으리를 본 것은 여덟, 아홉 살밖에 안 되었을 때여서 지금까지도 천 나으리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은 모두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뿐이었지만, “양놈들이 사기 쳐서 돈을 죄다 가져갔지.”라는 말을 떠올릴 때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바로 앞에서 보이는 듯했다.
양놈들이 어떻게 사기 쳐서 돈을 가져갔는지는 퉁바오 영감도 잘 알지 못했으나, 천 나으리의 이 말이 조금도 틀림없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분명하게 겪은 것이 있다. 읍내에 서양 비단, 서양 옷감, 서양 기름이니 하는 양놈들의 물건이 보이기 시작하고, 강에 다니는 증기선이 더 많아지면서부터 자신의 밭에서 키워 파는 물건들은 하루가 다르게 값이 떨어지는 반면에 읍내에서 사 오는 물건들은 날이 갈수록 값이 올랐다. 그러자 아버지가 물려준 얼마 안 되는 재산이 그렇게 줄기 시작하더니, 그나마도 아주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아예 빚까지 지게 되었다. 퉁바오 영감이 양놈들을 미워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없지 않았다.
그의 이런 확고한 생각은 마을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한 오 년 전쯤, 누군가 그에게 정권이 또 한 번 바뀌었고, 새 정권에서는 양놈들을 때려잡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퉁바오 영감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읍내에 갔더니 그 새로 나와서 “양놈들을 때려잡자”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이 모두 양놈들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젊은 놈들이 분명히 양놈들과 몰래 짜고서 촌사람들을 속이려 드는 게 틀림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얼마 안 가서 “양놈들을 때려잡자”라는 소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읍내 물건값은 예전보다 훨씬 가파르게 날이 갈수록 치솟았으며, 시골 사람들에게 매겨지는 세금도 더 무거워졌다. 퉁바오 영감은 이 모든 게 정부가 양놈들과 짜고 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중 작년에 퉁바오 영감이 거의 병이 날 뻔할 정도로 분통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누에고치마저도 외래종이 더 비싼 값을 받게 된 것이었다. 외래종 고치는 한 섬에 10원이 넘게 비싸게 팔렸다. 평소에 며느리와 늘 잘 지내왔던 퉁바오 영감도 이 일로는 결국 다툼을 벌이고 말았다. 며느리 쓰따냥이 하필이면 그 해부터 외래종 누에를 치자고 한 것이다. 작은 아들은 제 형수 편이었고, 큰아들 아쓰도 별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역시 외래종을 쳤으면 했다. 퉁바오 영감도 모두의 뜻을 이길 수는 없어서 결국 마지못해 양보를 했다. 지금 그의 집에는 누에 씨가 다섯 판 있는데, 네 판은 토종이고 한 판은 외래종이었다.
‘세상이 정말 갈수록 망해가는구먼! 몇 년만 지나면 뽕나무까지 양놈 종자로 하자고 할 판이야!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니까!’
퉁바오 영감은 뽕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는, 옆에 있던 긴 담뱃대를 집어 들어 발치의 마른 흙덩이를 화풀이하듯 내리쳤다.
[출전] 마오둔, 『봄누에』
토론하기
(1) 본문에서 알 수 있는 퉁바오 영감은 어떤 사람인가? 그가 그러한 생각과 삶의 태도를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 본문의 ‘누에 농사’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변화를 드러내는 징후들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3) 퉁바오 영감과 그의 가족이 겪는 일처럼, 역사라는 거대한 구조 앞에서 개인은 때때로 무력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나 공동체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퉁바오 영감의 “검게 탄 주름투성이의 얼굴”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대로 누에 농사를 지어 온 집안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평생을 성실한 농민으로 살아온 퉁바오 영감의 얼굴에는 그의 고된 삶을 닮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다. 이어지는 서술은 얼굴 가득한 그의 주름이 단순히 오랜 노동의 결과라기보다는, 한평생 성실하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피할 수 없었던 가난과 빚에 짓눌린 삶을 압축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증기선은 그의 고단하고 궁핍한 삶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기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 배는 그 기술이 탄생한 유럽의 먼 도시를 넘어, 이제 중국의 작은 농촌 마을에까지 들어와 있다. 이것은 증기 기관이 상징하는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물리적 거리와 국가 경계를 초월하여 아시아의 한 농촌에까지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준다.
퉁바오 영감이 여전히 기억할 뿐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하는 천 나으리의 말—“돈은 양놈들이 사기 쳐서 죄다 가져갔지.”—은 그가 이 말을 “여덟, 아홉 살밖에 안 되었을 때” 들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제국주의와 결탁한 서구 자본주의가 중국 사회에 들어온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말해준다. 직접 서양인을 본 적도 없는 퉁바오 영감과 같은 보통 농민에게조차, 그 파괴적 영향력이 생생하게 체감되고 있다. 한때 마을에서 큰 부자였던 천 나으리의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고, 정도는 덜하지만 퉁바오 영감의 집안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천 나으리의 말에 대한 퉁바오 영감의 회상은 이렇게 20세기 초의 세계사적 흐름과 동시대 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 살았던 개인의 삶을 하나로 엮는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인 누에 농사는 이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역사들의 연결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의복과 관련된 1차 산업인 누에 농사는 한 사회의 문화와 경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퉁바오 영감이 읍내에서 목격한 것처럼, 사람들은 점차 서구화된 삶의 양식을 좇아가고, 그중에서도 옷은 이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양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양 옷감과 외래종 누에고치의 가격은 상승하고, 전통 옷감과 토종 누에고치의 가치는 하락한다. 심지어 서구 제국주의를 거부하며 새로운 정권을 지지하는 청년들조차 실제 생활에서는 이미 서구화되어 양장을 입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변화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퉁바오 영감의 아들들과 며느리는 외래종 누에고치를 기를 것을 주장하고, 이것은 영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실현된다. 어쩌면 퉁바오 영감 역시 감정적으로는 수용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과 며느리의 선택이 적극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인 것처럼,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퉁바오 영감과 같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세상이 정말 갈수록 망해가는구먼!” 하고 한탄하며 흙덩이를 내리치는 것뿐이다. 이 무력한 몸짓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탈과 세계 시장의 서구화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개인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키워드
가난, 개인, 사회경제적 구조, 시대의 변화, 역사 속의 개인, 제국주의
전후맥락
퉁바오 영감은 누에 농사를 짓는 성실한 농민이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누에 농사에 성공해 비교적 형편이 좋았으나, 아버지와 자신의 세대를 거치면서 가세가 점차 기울어, 지금은 빚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퉁바오 영감은 집안이 몰락한 원인을 자신이 “양놈들”이라 부르며 경멸하는 서구 제국주의 경제적 침탈과, 그와 동시에 진행된 중국 사회의 서구화 때문이라 여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상하이에서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누에를 가공하고 실을 뽑는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이런 열악한 시장 환경 속에서도 올해 누에 농사는 예년보다 유난히 잘된다. 퉁바오 영감은 불어나는 누에를 먹이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어 뽕잎을 사고, 온 가족이 굶주림을 참고 밤낮없이 매달려 누에를 키운다. 그러나 공장들이 문을 닫은 탓에 고치 수요가 급감하고, 퉁바오 영감이 고집한 토종 누에는 외래종에 밀려 가격이 폭락한다. 결국 퉁바오 영감은 어느때보다 많이 얻은 누에를 제대로 팔지도 못한 채, 오히려 더 많은 빚만 떠안게 된다. 본문은 이러한 이 소설의 도입부로서, 퉁바오 영감이 집안이 몰락해 온 역사를 회상하고,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전본문
퉁바오 영감은 검게 탄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들고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강과, 강 위의 배들, 그리고 강 양쪽 강기슭에 따라 나 있는 뽕밭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이 모든 풍경은 그가 스무 살을 갓 넘었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세상”은 분명히 바뀌어 있었다. 자기 집도 이제는 다른 집들처럼 늘 잡곡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게다가 빚도 삼백 원이 넘게 불어나 있었다.
뚜우! 뚜, 뚜, 뚜 ——
그때 갑자기 뱃고동 소리가 저쪽 편 멀리 강굽이에서부터 들려왔다.
(중략)
퉁바오 영감은 얼굴에 분노를 가득 담은 채, 저 멀리서 소형 증기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고, 배가 그의 앞을 지나 또 한 번 강굽이까지 곧장 나아가 굽이를 따라 돌면서 몇 번 ‘뚜뚜뚜’ 소리를 내고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눈으로 따라갔다.
퉁바오 영감은 이런 증기선 같은 양놈의 물건을 줄곧 증오해 왔다. 그 자신이 지금껏 양놈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천 나으리가 봤다는 붉은 눈썹에 초록 눈, 다리를 뻣뻣하게 뻗고 걷는 양놈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천 나으리도 양놈들을 몹시 싫어해서, “양놈들이 사기 쳐서 돈을 죄다 가져갔지.”라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퉁바오 영감이 천 나으리를 본 것은 여덟, 아홉 살밖에 안 되었을 때여서 지금까지도 천 나으리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은 모두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뿐이었지만, “양놈들이 사기 쳐서 돈을 죄다 가져갔지.”라는 말을 떠올릴 때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바로 앞에서 보이는 듯했다.
양놈들이 어떻게 사기 쳐서 돈을 가져갔는지는 퉁바오 영감도 잘 알지 못했으나, 천 나으리의 이 말이 조금도 틀림없다는 것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분명하게 겪은 것이 있다. 읍내에 서양 비단, 서양 옷감, 서양 기름이니 하는 양놈들의 물건이 보이기 시작하고, 강에 다니는 증기선이 더 많아지면서부터 자신의 밭에서 키워 파는 물건들은 하루가 다르게 값이 떨어지는 반면에 읍내에서 사 오는 물건들은 날이 갈수록 값이 올랐다. 그러자 아버지가 물려준 얼마 안 되는 재산이 그렇게 줄기 시작하더니, 그나마도 아주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아예 빚까지 지게 되었다. 퉁바오 영감이 양놈들을 미워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없지 않았다.
그의 이런 확고한 생각은 마을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한 오 년 전쯤, 누군가 그에게 정권이 또 한 번 바뀌었고, 새 정권에서는 양놈들을 때려잡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퉁바오 영감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읍내에 갔더니 그 새로 나와서 “양놈들을 때려잡자”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이 모두 양놈들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젊은 놈들이 분명히 양놈들과 몰래 짜고서 촌사람들을 속이려 드는 게 틀림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얼마 안 가서 “양놈들을 때려잡자”라는 소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읍내 물건값은 예전보다 훨씬 가파르게 날이 갈수록 치솟았으며, 시골 사람들에게 매겨지는 세금도 더 무거워졌다. 퉁바오 영감은 이 모든 게 정부가 양놈들과 짜고 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중 작년에 퉁바오 영감이 거의 병이 날 뻔할 정도로 분통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누에고치마저도 외래종이 더 비싼 값을 받게 된 것이었다. 외래종 고치는 한 섬에 10원이 넘게 비싸게 팔렸다. 평소에 며느리와 늘 잘 지내왔던 퉁바오 영감도 이 일로는 결국 다툼을 벌이고 말았다. 며느리 쓰따냥이 하필이면 그 해부터 외래종 누에를 치자고 한 것이다. 작은 아들은 제 형수 편이었고, 큰아들 아쓰도 별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역시 외래종을 쳤으면 했다. 퉁바오 영감도 모두의 뜻을 이길 수는 없어서 결국 마지못해 양보를 했다. 지금 그의 집에는 누에 씨가 다섯 판 있는데, 네 판은 토종이고 한 판은 외래종이었다.
‘세상이 정말 갈수록 망해가는구먼! 몇 년만 지나면 뽕나무까지 양놈 종자로 하자고 할 판이야!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니까!’
퉁바오 영감은 뽕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혼자 생각하고는, 옆에 있던 긴 담뱃대를 집어 들어 발치의 마른 흙덩이를 화풀이하듯 내리쳤다.
[출전] 마오둔, 『봄누에』
토론하기
(1) 본문에서 알 수 있는 퉁바오 영감은 어떤 사람인가? 그가 그러한 생각과 삶의 태도를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 본문의 ‘누에 농사’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변화를 드러내는 징후들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3) 퉁바오 영감과 그의 가족이 겪는 일처럼, 역사라는 거대한 구조 앞에서 개인은 때때로 무력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나 공동체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퉁바오 영감의 “검게 탄 주름투성이의 얼굴”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대로 누에 농사를 지어 온 집안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평생을 성실한 농민으로 살아온 퉁바오 영감의 얼굴에는 그의 고된 삶을 닮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다. 이어지는 서술은 얼굴 가득한 그의 주름이 단순히 오랜 노동의 결과라기보다는, 한평생 성실하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피할 수 없었던 가난과 빚에 짓눌린 삶을 압축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증기선은 그의 고단하고 궁핍한 삶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기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 배는 그 기술이 탄생한 유럽의 먼 도시를 넘어, 이제 중국의 작은 농촌 마을에까지 들어와 있다. 이것은 증기 기관이 상징하는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물리적 거리와 국가 경계를 초월하여 아시아의 한 농촌에까지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를 보여준다.
퉁바오 영감이 여전히 기억할 뿐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고 확신하는 천 나으리의 말—“돈은 양놈들이 사기 쳐서 죄다 가져갔지.”—은 그가 이 말을 “여덟, 아홉 살밖에 안 되었을 때” 들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제국주의와 결탁한 서구 자본주의가 중국 사회에 들어온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말해준다. 직접 서양인을 본 적도 없는 퉁바오 영감과 같은 보통 농민에게조차, 그 파괴적 영향력이 생생하게 체감되고 있다. 한때 마을에서 큰 부자였던 천 나으리의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고, 정도는 덜하지만 퉁바오 영감의 집안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천 나으리의 말에 대한 퉁바오 영감의 회상은 이렇게 20세기 초의 세계사적 흐름과 동시대 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 살았던 개인의 삶을 하나로 엮는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인 누에 농사는 이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역사들의 연결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의복과 관련된 1차 산업인 누에 농사는 한 사회의 문화와 경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퉁바오 영감이 읍내에서 목격한 것처럼, 사람들은 점차 서구화된 삶의 양식을 좇아가고, 그중에서도 옷은 이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양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양 옷감과 외래종 누에고치의 가격은 상승하고, 전통 옷감과 토종 누에고치의 가치는 하락한다. 심지어 서구 제국주의를 거부하며 새로운 정권을 지지하는 청년들조차 실제 생활에서는 이미 서구화되어 양장을 입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변화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퉁바오 영감의 아들들과 며느리는 외래종 누에고치를 기를 것을 주장하고, 이것은 영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실현된다. 어쩌면 퉁바오 영감 역시 감정적으로는 수용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과 며느리의 선택이 적극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인 것처럼,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퉁바오 영감과 같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세상이 정말 갈수록 망해가는구먼!” 하고 한탄하며 흙덩이를 내리치는 것뿐이다. 이 무력한 몸짓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탈과 세계 시장의 서구화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개인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키워드
가난, 개인, 사회경제적 구조, 시대의 변화, 역사 속의 개인, 제국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