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나라 전체에 기근이 들자 허삼관네 집에도 먹을 것이 떨어진다. 허삼관의 식구들은 이제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만 옥수수죽을 마시기로 한다. 허삼관은 옥수수죽으로 채운 배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아내 허옥란과 세 아들—일락, 이락, 삼락—에게도 하루 종일 가만히 침대에만 누워 있도록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허삼관의 생일이 찾아온다. 한겨울, 그 어디에서도 작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가족에게 특별한 생일 요리를 해주기로 결심한다. 실제 음식이 아닌, 말로써. 허삼관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상상의 요리를 ‘배불리 먹고’, 허삼관 자신도 자신의 성대한 생일 요리에 만족한다. 다음날, 허삼관은 다시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그는 곧장 병원으로 가 피를 팔고, “혈두(血頭)”라고 불리는 매혈 브로커에게 5원의 수수료를 떼주고 남은 30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고전본문
허삼관이 허옥란에게 말했다.
“올해가 1958년이잖아. 인민공사(人民公社), 대약진(大躍進), 제강운동(大鍊鋼鐵), 또 뭐가 있었더라? 우리 할아버지랑 넷째 작은아버지네 마을 논밭도 다 회수됐지. 이제부턴 누구라도 자기 논밭 갖는 시대는 끝이야. 전부 나라에 들어갔으니. 농사를 지으려면 나라에 소작을 해야 해. 수확을 하면 나라에 곡식을 내야 하고. 나라가 마치 예전의 지주처럼 되는 거지. 물론 나라를 지주라고 할 수는 없고, 인민공사라고 해야지.
(중략)
그날 저녁에도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허삼관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마음 속으로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게 뭔지 내가 다 알지. 바로 먹는 거. 흰쌀밥, 기름에 볶은 반찬, 생선에 고기도 먹고 싶을 거야. 오늘 내 생일인 덕에 너희도 덩달아 호강했잖니. 설탕까지 먹고. 속으론 그래도 아직 더 먹고 싶어 한다는 것도 내가 알지. 뭘 더 먹고 싶으냐? 생일인 김에 내가 수고를 좀 하마. 입으로 너희 한 사람씩 요리를 해줄 테니, 너희는 귀로 듣고 먹는 거야. 입으로 먹으려고 해 봐야 방귀 한 조각도 못 먹을 테니, 귀를 쫑긋 세우도록 해. 이제 곧 요리를 시작할 거야.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시켜도 된다. 한 명씩, 막내 삼락이부터 시작하자. 삼락아, 너는 뭘 먹고 싶니?”
삼락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죽은 이제 안 먹고 싶어요. 저는 흰쌀밥이 먹고 싶어요.”
“흰쌀밥은 있고 말고.” 허삼관이 말했다. “흰쌀밥이야 무한정 있지. 네가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내 말은 무슨 요리가 먹고 싶냐는 거야.”
“고기요.”
“삼락이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이지.” 허삼관이 말했다. “그러면 너한테는 홍소육 한 접시를 해 주마. 고기는 비계로 할 수도 있고, 살코기로 할 수도 있지만, 반반 쓰는 게 제일 낫지. 게다가 고기 껍데기도 좀 붙어 있어야 하고. 자, 먼저 고기를 썰도록 하자. 손가락만큼 두껍고, 손바닥 반만큼의 크기로 썰어서. 삼락아, 여기 세 점이...”
“아빠, 네 점 주세요.”
“좋아, 그럼 네 점 썰어주지.”
“아빠, 다섯 점 썰어 주세요.”
“너는 네 점까지만 먹어. 너처럼 꼬마가 다섯 점이나 먹으면 배가 터져 죽는다구.”
(중략)
생일 다음 날, 허삼관이 손가락을 접어 가며 세어 보았더니 온 식구가 옥수수죽만 먹은 게 벌써 57일이었다. 그는 혼잣말로 말했다.
“피를 팔아야겠어. 식구들 제대로 된 밥 한 끼는 먹게 해 줘야지.”
그렇게 해서 허삼관은 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이 혈두와 마주쳤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얼굴이 온통 잿빛인데, 이 혈두 얼굴에만 아직도 붉은 핏기가 도는군. 다들 얼굴에 볼살이 쏙 빠졌는데, 이 사람은 혼자 그대로구만. 사람들이 다 고생에 찌든 얼굴인데, 혼자 싱글싱글 웃고 있다니.’
(중략)
피를 뽑아 돈을 받자, 허삼관은 이 혈두에게 5원을 주고, 자신은 나머지 30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허옥란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피를 팔아서 마련해 온 것이고, 나머지 5원은 이 혈두에게 줘서 솟는 샘처럼 확실하게 은혜를 갚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온 식구가 57일이나 내리 옥수수죽만 먹었으니 더는 그렇게 매일 죽만 먹을 순 없다고, 이제부터는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뭔가 다른 것도 먹어야 한다고, 자기가 피를 팔면 돈이 생기고, 나중에 또 돈이 떨어지면 다시 가서 피를 팔면 된다고, 자기 몸속의 피는 마치 우물물 같아서 안 써도 이만큼이고, 매일 써도 이만큼이라고.
[출전] 위화, 『허삼관 매혈기』
토론하기
(1) 본문에서 허삼관의 ‘입요리’는 어떤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가? 또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 허삼관의 성격은 어떠한가?
(2) 허삼관처럼 가족의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자. 가족의 사랑 외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은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3) 오늘날에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생계나 생존을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매혈’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해설읽기
본문의 첫 단락에 나오는 대약진 운동에 관한 허삼관의 설명은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담고 있다. 대약진 운동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의 창건자이자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이 주도한 경제 개발 정책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중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이로써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을 공산주의적인 방식으로 따라잡겠다는 목표 아래 추진되었다. 정부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전국의 가정과 마을을 “인민공사(人民公社)”라는 단위로 조직하여 노동과 생산을 집단화했다. 그러나 허삼관의 말에서 드러나듯, 이 운동은 농민들에게서 토지를 박탈하고 생산의 결과마저 수탈하는 또 다른 형태의 착취로 작용했다. “나라가 마치 예전의 지주처럼 되는 거지.”라는 허삼관의 말은 전근대 시대의 지주제를 비판하고 이를 폐지하려고 한 공산주의 정부가 실상은 “인민공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착취의 구조를 지속하고 있다는 저자의 인식을 드러낸다.
더욱이 정부는 정책 실행에 있어서도 철저히 실패하여, 당초 목표로 삼았던 산업화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인민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집단적 생산 체제 아래에서 농민들은 생산에 대한 동기를 상실했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일방적으로 강요한 중앙 정부와, 이를 형식적으로 맞추기 위해 실제 상황을 왜곡하고 수치를 조작한 지방 정부의 합작은 정책 전반의 붕괴를 초래했다. 허삼관이 언급하는 “제강운동(大鍊鋼鐵)”은 이러한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단적으로 이야기해 준다. 정부는 도시의 산업화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농가마다 조악한 용광로를 설치하게 하고, 가정에서 사용하던 냄비나 농기구 같은 철제 생활용품을 녹여 철을 생산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철은 품질이 낮아 산업적으로는 전혀 활용될 수 없었고, 결국 대부분 폐기되고 말았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는 전국적인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이 시작된 이후 3~4년 사이에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다. 허삼관의 생일 저녁에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은, 역사상 전례 없는 이 대규모 기근을 허구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소설의 맥락은 이 장면이 단순히 허삼관 가족이 잠자리에 드는 모습이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옥수수죽으로 허기를 채우며 배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지내는, 대기근 생활의 일부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허삼관이 오래 굶주린 식구들을 위해 ‘입요리’를 해 주는 장면은 풍요를 약속했던 중국공산당 정부의 허위를 날카롭게 패러디한다. 흰쌀밥이 먹고 싶다는 삼락이의 말에 “흰쌀밥이야 무한정 있지. 네가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라는 허삼관의 대답은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죽어 가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의 풍요를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입으로 만든 홍소육을 그나마도 한 점 더 먹고 싶어하는 삼락이에게 허삼관이 “너처럼 꼬마가 다섯 점이나 먹으면 배가 터져 죽는다구.”라고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은 “배가 터져 죽”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과 정반대로 고기를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본문에서 생략된, 자신을 위한 요리에 대한 허삼관의 말은 이 패러디의 정점을 찍는다. 황주를 한 잔 마시고 볶은 돼지간 한 점을 ‘먹으며’ 허삼관은 생각한다. “이게 바로 신선들의 삶이었구나!” 대기근이라는 비참한 현실에서 떠올리는 신선들의 이상적인 삶은 결국 공산당 정부가 약속했던 유토피아가 허삼관의 입요리만큼이나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허삼관이 피를 팔러 가는 다음 장면에서 작가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보다 분명히 한다. 본문이 속한 맥락에서 자신을 “공산당원”으로 이야기하는 이 혈두는 사람들에게 매혈을 알선하며 수수료를 받아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인물이다. 작가는 허삼관의 시선을 통해 이 혈두의 윤기 나는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이를 마을 사람들의 핏기 없는 얼굴과 대조함으로써 기근이라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연재해 이상으로 인민들의 삶을 비참으로 몰아가는 착취의 구조를 폭로한다.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공산당원 혈두는 공산주의 체제가 사실 그것이 비판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거나, 어떤 의미에서 더 잔혹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체현한다. 더욱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공산주의 혁명을 비롯한 역사의 혁명이 ‘인민의 피’에 기초한다고 한다면, 자신들이 내 건 혁명을 완성해야 할 인민의 피로 지도층의 배를 불리는 공산주의 체제는 인민의 피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회의적으로 묻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허삼관의 희생은 이 모든 역사적 비극과 체제의 부조리를 넘어선다. 피를 팔고 받은 돈 35원에서 혈두에게 수수료를 떼어주고 남은 돈 30원을 집에 가져오는 허삼관은 그 돈으로 가족을 먹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돈이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우물물”과 같은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을 먹일 것이라고 하는 허삼관의 말은 국가와 이데올로기가 실패한 자리를 어떻게 한 개인이 자기희생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메워나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키워드
가족, 대약진 운동, 매혈, 사회 구조의 착취, 자기 희생
전후맥락
나라 전체에 기근이 들자 허삼관네 집에도 먹을 것이 떨어진다. 허삼관의 식구들은 이제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만 옥수수죽을 마시기로 한다. 허삼관은 옥수수죽으로 채운 배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아내 허옥란과 세 아들—일락, 이락, 삼락—에게도 하루 종일 가만히 침대에만 누워 있도록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허삼관의 생일이 찾아온다. 한겨울, 그 어디에서도 작물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가족에게 특별한 생일 요리를 해주기로 결심한다. 실제 음식이 아닌, 말로써. 허삼관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상상의 요리를 ‘배불리 먹고’, 허삼관 자신도 자신의 성대한 생일 요리에 만족한다. 다음날, 허삼관은 다시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그는 곧장 병원으로 가 피를 팔고, “혈두(血頭)”라고 불리는 매혈 브로커에게 5원의 수수료를 떼주고 남은 30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고전본문
허삼관이 허옥란에게 말했다.
“올해가 1958년이잖아. 인민공사(人民公社), 대약진(大躍進), 제강운동(大鍊鋼鐵), 또 뭐가 있었더라? 우리 할아버지랑 넷째 작은아버지네 마을 논밭도 다 회수됐지. 이제부턴 누구라도 자기 논밭 갖는 시대는 끝이야. 전부 나라에 들어갔으니. 농사를 지으려면 나라에 소작을 해야 해. 수확을 하면 나라에 곡식을 내야 하고. 나라가 마치 예전의 지주처럼 되는 거지. 물론 나라를 지주라고 할 수는 없고, 인민공사라고 해야지.
(중략)
그날 저녁에도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허삼관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마음 속으로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게 뭔지 내가 다 알지. 바로 먹는 거. 흰쌀밥, 기름에 볶은 반찬, 생선에 고기도 먹고 싶을 거야. 오늘 내 생일인 덕에 너희도 덩달아 호강했잖니. 설탕까지 먹고. 속으론 그래도 아직 더 먹고 싶어 한다는 것도 내가 알지. 뭘 더 먹고 싶으냐? 생일인 김에 내가 수고를 좀 하마. 입으로 너희 한 사람씩 요리를 해줄 테니, 너희는 귀로 듣고 먹는 거야. 입으로 먹으려고 해 봐야 방귀 한 조각도 못 먹을 테니, 귀를 쫑긋 세우도록 해. 이제 곧 요리를 시작할 거야.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시켜도 된다. 한 명씩, 막내 삼락이부터 시작하자. 삼락아, 너는 뭘 먹고 싶니?”
삼락이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죽은 이제 안 먹고 싶어요. 저는 흰쌀밥이 먹고 싶어요.”
“흰쌀밥은 있고 말고.” 허삼관이 말했다. “흰쌀밥이야 무한정 있지. 네가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내 말은 무슨 요리가 먹고 싶냐는 거야.”
“고기요.”
“삼락이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이지.” 허삼관이 말했다. “그러면 너한테는 홍소육 한 접시를 해 주마. 고기는 비계로 할 수도 있고, 살코기로 할 수도 있지만, 반반 쓰는 게 제일 낫지. 게다가 고기 껍데기도 좀 붙어 있어야 하고. 자, 먼저 고기를 썰도록 하자. 손가락만큼 두껍고, 손바닥 반만큼의 크기로 썰어서. 삼락아, 여기 세 점이...”
“아빠, 네 점 주세요.”
“좋아, 그럼 네 점 썰어주지.”
“아빠, 다섯 점 썰어 주세요.”
“너는 네 점까지만 먹어. 너처럼 꼬마가 다섯 점이나 먹으면 배가 터져 죽는다구.”
(중략)
생일 다음 날, 허삼관이 손가락을 접어 가며 세어 보았더니 온 식구가 옥수수죽만 먹은 게 벌써 57일이었다. 그는 혼잣말로 말했다.
“피를 팔아야겠어. 식구들 제대로 된 밥 한 끼는 먹게 해 줘야지.”
그렇게 해서 허삼관은 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이 혈두와 마주쳤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얼굴이 온통 잿빛인데, 이 혈두 얼굴에만 아직도 붉은 핏기가 도는군. 다들 얼굴에 볼살이 쏙 빠졌는데, 이 사람은 혼자 그대로구만. 사람들이 다 고생에 찌든 얼굴인데, 혼자 싱글싱글 웃고 있다니.’
(중략)
피를 뽑아 돈을 받자, 허삼관은 이 혈두에게 5원을 주고, 자신은 나머지 30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허옥란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피를 팔아서 마련해 온 것이고, 나머지 5원은 이 혈두에게 줘서 솟는 샘처럼 확실하게 은혜를 갚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또 말했다. 온 식구가 57일이나 내리 옥수수죽만 먹었으니 더는 그렇게 매일 죽만 먹을 순 없다고, 이제부터는 며칠에 한 번씩이라도 뭔가 다른 것도 먹어야 한다고, 자기가 피를 팔면 돈이 생기고, 나중에 또 돈이 떨어지면 다시 가서 피를 팔면 된다고, 자기 몸속의 피는 마치 우물물 같아서 안 써도 이만큼이고, 매일 써도 이만큼이라고.
[출전] 위화, 『허삼관 매혈기』
토론하기
(1) 본문에서 허삼관의 ‘입요리’는 어떤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가? 또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 허삼관의 성격은 어떠한가?
(2) 허삼관처럼 가족의 사랑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자. 가족의 사랑 외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은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3) 오늘날에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생계나 생존을 위해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매혈’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해설읽기
본문의 첫 단락에 나오는 대약진 운동에 관한 허삼관의 설명은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담고 있다. 대약진 운동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의 창건자이자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이 주도한 경제 개발 정책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중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이로써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을 공산주의적인 방식으로 따라잡겠다는 목표 아래 추진되었다. 정부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전국의 가정과 마을을 “인민공사(人民公社)”라는 단위로 조직하여 노동과 생산을 집단화했다. 그러나 허삼관의 말에서 드러나듯, 이 운동은 농민들에게서 토지를 박탈하고 생산의 결과마저 수탈하는 또 다른 형태의 착취로 작용했다. “나라가 마치 예전의 지주처럼 되는 거지.”라는 허삼관의 말은 전근대 시대의 지주제를 비판하고 이를 폐지하려고 한 공산주의 정부가 실상은 “인민공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착취의 구조를 지속하고 있다는 저자의 인식을 드러낸다.
더욱이 정부는 정책 실행에 있어서도 철저히 실패하여, 당초 목표로 삼았던 산업화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인민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집단적 생산 체제 아래에서 농민들은 생산에 대한 동기를 상실했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일방적으로 강요한 중앙 정부와, 이를 형식적으로 맞추기 위해 실제 상황을 왜곡하고 수치를 조작한 지방 정부의 합작은 정책 전반의 붕괴를 초래했다. 허삼관이 언급하는 “제강운동(大鍊鋼鐵)”은 이러한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단적으로 이야기해 준다. 정부는 도시의 산업화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농가마다 조악한 용광로를 설치하게 하고, 가정에서 사용하던 냄비나 농기구 같은 철제 생활용품을 녹여 철을 생산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철은 품질이 낮아 산업적으로는 전혀 활용될 수 없었고, 결국 대부분 폐기되고 말았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는 전국적인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이 시작된 이후 3~4년 사이에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다. 허삼관의 생일 저녁에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은, 역사상 전례 없는 이 대규모 기근을 허구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소설의 맥락은 이 장면이 단순히 허삼관 가족이 잠자리에 드는 모습이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옥수수죽으로 허기를 채우며 배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지내는, 대기근 생활의 일부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허삼관이 오래 굶주린 식구들을 위해 ‘입요리’를 해 주는 장면은 풍요를 약속했던 중국공산당 정부의 허위를 날카롭게 패러디한다. 흰쌀밥이 먹고 싶다는 삼락이의 말에 “흰쌀밥이야 무한정 있지. 네가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라는 허삼관의 대답은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서 죽어 가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의 풍요를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입으로 만든 홍소육을 그나마도 한 점 더 먹고 싶어하는 삼락이에게 허삼관이 “너처럼 꼬마가 다섯 점이나 먹으면 배가 터져 죽는다구.”라고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은 “배가 터져 죽”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과 정반대로 고기를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본문에서 생략된, 자신을 위한 요리에 대한 허삼관의 말은 이 패러디의 정점을 찍는다. 황주를 한 잔 마시고 볶은 돼지간 한 점을 ‘먹으며’ 허삼관은 생각한다. “이게 바로 신선들의 삶이었구나!” 대기근이라는 비참한 현실에서 떠올리는 신선들의 이상적인 삶은 결국 공산당 정부가 약속했던 유토피아가 허삼관의 입요리만큼이나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허삼관이 피를 팔러 가는 다음 장면에서 작가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보다 분명히 한다. 본문이 속한 맥락에서 자신을 “공산당원”으로 이야기하는 이 혈두는 사람들에게 매혈을 알선하며 수수료를 받아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인물이다. 작가는 허삼관의 시선을 통해 이 혈두의 윤기 나는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이를 마을 사람들의 핏기 없는 얼굴과 대조함으로써 기근이라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연재해 이상으로 인민들의 삶을 비참으로 몰아가는 착취의 구조를 폭로한다.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공산당원 혈두는 공산주의 체제가 사실 그것이 비판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조금도 다름이 없거나, 어떤 의미에서 더 잔혹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체현한다. 더욱이, 흔히 이야기하듯이 공산주의 혁명을 비롯한 역사의 혁명이 ‘인민의 피’에 기초한다고 한다면, 자신들이 내 건 혁명을 완성해야 할 인민의 피로 지도층의 배를 불리는 공산주의 체제는 인민의 피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회의적으로 묻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허삼관의 희생은 이 모든 역사적 비극과 체제의 부조리를 넘어선다. 피를 팔고 받은 돈 35원에서 혈두에게 수수료를 떼어주고 남은 돈 30원을 집에 가져오는 허삼관은 그 돈으로 가족을 먹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돈이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우물물”과 같은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을 먹일 것이라고 하는 허삼관의 말은 국가와 이데올로기가 실패한 자리를 어떻게 한 개인이 자기희생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메워나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키워드
가족, 대약진 운동, 매혈, 사회 구조의 착취, 자기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