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스위프트는 소설의 네 번째 부분인 후이늠 나라로의 여행을 통해 고귀한 말 종족인 후이늠족과 인간의 모습을 한 혐오스러운 야후족을 비교하여 인간 사회를 비판한다. 걸리버는 세 번째 항해 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모험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는 상선의 선장이 되어 먼 항해에 나섰는데 도중에 선상 반란이 일어난다.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은 처음 도착한 육지에 걸리버를 버리고 가버린다. 그곳에서 걸리버는 야후라 불리는 끔찍하고 역거운 모습의 한 무리의 동물들을 만나 진저리 치며 도망치려 한다. 그 때 점잖은 말들이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자기들이 사는 집으로 데려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후이늠의 집에서 지내게 된 걸리버는 그 후이늠을 주인이라 부르며 그의 보호아래 지내게 된다. 어렵사리 후이늠 언어를 배운 걸리버는 그들에게 자신이 살았던 유럽과 영국의 정치, 문화, 역사, 사회제도에 대해 알려주고, 또한 그들 사회에 대해 알게 된다. 후이늠 족의 나라에서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말종족이 지배 종으로 인간과 닮았지만 지적으로 열등하고 잔인한 야후족을 가축처럼 부린다.
생김새는 야후와 닮았지만 지적이고 행동거지가 점잖은 걸리버는 후이늠족에게 신기한 존재였다. 그들은 걸리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 한다. 야후(사람)가 후이늠(말)을 가축으로 부리고 타고 다닌다는 말도 안되는 세상이 말이다. 게다가 걸리버에 따르면 유럽이라고 하는 그곳에서는 서로 속이고 죽이기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후이늠들이 보기에 유럽에 산다는 지적인 능력을 가진 야후족들은 본성에 있어 이곳에 사는 무지한 야후족과 다를 바가 없고, 심지어 그 지적 능력 때문에 더 사악하고 부도덕하다고 결론내린다. 아래 인용한 본문은 2년 넘게 후이늠의 집에서 함께 산 걸리버가 야후와 후이늠의 본성에 대해 관찰한 바를 서술한 것이다. 또한 야후와 닮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고전본문
내가 관찰한 바로는, 야후들은 모든 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가르치기 힘든 짐승으로, 그들의 능력으로는 짐을 끌거나 운반하는 일 이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주로 비틀어지고 반항적인 성격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활하고 심술궂고 쉽게 배반하고 앙심을 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장하고 튼튼하지만, 비겁한 성격을 가져서 거만하고 비열하며 잔인하다. […]
고귀한 후이늠들은 천성적으로 미덕을 지향하는 성향을 타고나서, 이성적인 동물에게서 악이 깃들어있을 가틍성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근본적 원리원칙은 이성을 함양하고 전적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
후이늠에게 있어서 우정과 자비,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대회의가 열렸다. 내가 떠나기 석 달 적이었는데, 우리 주인이 이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도 해묵은 문제가 논의되었다. 실은 그것이 이 나라에서 논의되는 유일한 문제였는데, 우리 주인은 돌아온 후 나에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논란의 주제는 야후들을 이 세상에서 말살해 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말살을 지지하는 한 회원이 매우 강하고 진중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주장했는데, “야후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동물 중에서 가장 더럽고 역겹고 흉측한 동물이어서, 가장 반항적이고 불순하며, 해코지만하고 악랄하다.
그들은 조금만 감시가 소홀해지면, 후이늠이 키우는 암소들의 젖을 몰래 빨고, 고양이를 죽이고 잡아먹으며, 귀리밭과 풀밭을 짓밟는 등 갖가지 나쁜짓을 일삼는다”고 했다. 그는 야후들이 원래분터 이나라에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누구나 아는 전설을 새삼 지적했다. 즉, “야후들은 원래부터 이 땅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태양의 열이 썩은 진흙에 작용해서 생겨났는지, 아니면 나무의 수액이나 바다 거품에서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야만적인 짐등 두 마리가 함께 산 위에 나타났다. 이 한 쌍의 야후가 새끼를 낳고, 그 종족이 금새 엄청난 수로 번식해서 온 나라에 퍼지고 들끓게 되었다. 후이늠들은 이 사악한 무리를 처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냥을 벌여서 마침내 전부를 포위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나이 많은 야후들은 없애버리고, 모든 후으늠이 각각 어린 야후 한 쌍 씩을 우리 안에서 길러서, 천성이 그리 고약한 동물이 더 이상 순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순화시켰다. 그리하여 짐 운반과 기타 노역에 야후들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회원이 계속 말하기를 “이 전설은 매우 사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야후들이 일느흐니암시(이 나라의 원주민이란 뜻)일리가 없습니다. 후이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들이 극도로 혐오하는데, 그들의 사악한 성질 때문에 그렇게 미움을 받는 것이 마당하지만, 만약에 원주민이라면 그렇게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이미 전멸되었을 것입니다. […]”
나는 열악한 생활여건에서 나름대로 매우 만족스러운 생활방식을 개발하여 살고 있었다. 나의 주인은 그의 집에서 약 5.4미터 정도 되는 곳에 자기들 식으로 꾸민 거처를 만들어 주었다. […] 나는 온전한 신체적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누렸다. 친구의 배신이나 변심도, 은밀하거나 드러난 원수의 해코지도 없었다. 고관대작이나 그의 심복의 환심을 사려고 뇌물을 바치거나 아첨하거나 뚜쟁이 노릇을 할 필요가 젼혀 없었다. 질시나 압력에 대해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에는 나의 몸을 망치는 의사도 없었고, 내 재산을 털어먹을 변호사도 없었다. 또한 나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는 밀고자도 없고, 매수되어 나에 대해 엉터리 고소장을 조작하는 사람도 없었다. 또한 이곳에는 헐뜯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 소매치기, 노강강도, 밤도둑, 변호사, 포주, 어릿광대, 사기 도박꾼, 정치가, 재담꾼, 심술꾼,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연사, 논쟁꾼, 강도, 살인자, 강탈자, 숙련자, 정당이나 파벌 지도자나 추종자도 없었다. […]
가족과 친구들, 동족인 영국인들, 또는 인류 전체에 대해 생각해 보니, 그들은 사실상 모습과 성질에 있어서 야후임에 분명해졌다. 다만 영국인들이나 인류 전체는 후이늠 나라에 사는 야후들보다 조금 더 교양이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형제인 이 나라에 사는 야후들은 대자연이 부여한 악덕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데 반해, 그들은 그 악덕을 더 악화심키고 증대하는 데만 이성을 활용하는 야후들인 것이다. 호수나 샘에 비친 내 모습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 때문에 즉시 고개를 돌렸고, 내 모습보다는 차라리 평범한 야훙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 『걸리버 여행기』, 4권 8장~10장 중
토론하기
(1) 작품의 주인공 ‘나(걸리버)’는 자신이 야후와 동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영국인을 포함한 유럽인들과 인류 전체가 야후와 동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걸리버가 보기에 후이늠의 나라에 사는 야후와 자신을 비롯한 영국과 유럽에 사는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2) 후이늠 족이 사는 세상에는 걸리버가 경험했던 인간사회의 악덕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가 실제로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후이늠의 어떤 미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3) 후이늠의 전설에 따르면 야후는 어느 시점에 걸리버처럼 후이늠 나라에 갑자기 등장해 번식을 통해 개체수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걸리버도 오랜 기간 후이늠 나라에서 야후들과 살다보면 야후가 되어 야후처럼 행동하게 될까요? 아니면 걸리버가 존경하는 후이늠을 본받아 덕성스런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인간이 인간사회와 문명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해설읽기
걸리버가 야후족에 대한 혐오와 후인족에 대한 동경을 묘사할 스위프트의 반인간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대목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걸리버는 점차 자신과 인류를 후이늠족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인간 종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걸리버는 후이늠족의 합리성, 냉정함, 순수함을 인류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는 주요 구절은 걸리버가 후이늠족 주인으로부터 유럽의 관습과 행동에 대해 질문을 받은 후 인간 사회의 모습을 한탄하는 대목입니다. 걸리버는 고귀한 후인족과 야만적인 야후족(자신과 인류 전체를 포함)의 비교에 부끄러워하고 낙담하면서 그의 눈에 인간 사회에 심각한 결함과 부패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에 대한 환멸은 “걸리버 여행기” 후반부의 중심 주제로, 인간 조건과 당시의 사회 규범에 대한 스위프트의 비판을 보여줍니다. 스위프트는 후이늠족과 야후족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악덕, 잔인함의 잠재력을 강조함으로써 반인륜적 견해를 표현합니다.
키워드
걸리버 여행기, 문명, 안티 휴머니즘, 야만, 야후, 인간, 인간성, 조너던 스위프트, 풍자, 후이늠
전후맥락
스위프트는 소설의 네 번째 부분인 후이늠 나라로의 여행을 통해 고귀한 말 종족인 후이늠족과 인간의 모습을 한 혐오스러운 야후족을 비교하여 인간 사회를 비판한다. 걸리버는 세 번째 항해 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모험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는 상선의 선장이 되어 먼 항해에 나섰는데 도중에 선상 반란이 일어난다.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은 처음 도착한 육지에 걸리버를 버리고 가버린다. 그곳에서 걸리버는 야후라 불리는 끔찍하고 역거운 모습의 한 무리의 동물들을 만나 진저리 치며 도망치려 한다. 그 때 점잖은 말들이 나타나 그를 구해주고 자기들이 사는 집으로 데려가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후이늠의 집에서 지내게 된 걸리버는 그 후이늠을 주인이라 부르며 그의 보호아래 지내게 된다. 어렵사리 후이늠 언어를 배운 걸리버는 그들에게 자신이 살았던 유럽과 영국의 정치, 문화, 역사, 사회제도에 대해 알려주고, 또한 그들 사회에 대해 알게 된다. 후이늠 족의 나라에서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말종족이 지배 종으로 인간과 닮았지만 지적으로 열등하고 잔인한 야후족을 가축처럼 부린다.
생김새는 야후와 닮았지만 지적이고 행동거지가 점잖은 걸리버는 후이늠족에게 신기한 존재였다. 그들은 걸리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 한다. 야후(사람)가 후이늠(말)을 가축으로 부리고 타고 다닌다는 말도 안되는 세상이 말이다. 게다가 걸리버에 따르면 유럽이라고 하는 그곳에서는 서로 속이고 죽이기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후이늠들이 보기에 유럽에 산다는 지적인 능력을 가진 야후족들은 본성에 있어 이곳에 사는 무지한 야후족과 다를 바가 없고, 심지어 그 지적 능력 때문에 더 사악하고 부도덕하다고 결론내린다. 아래 인용한 본문은 2년 넘게 후이늠의 집에서 함께 산 걸리버가 야후와 후이늠의 본성에 대해 관찰한 바를 서술한 것이다. 또한 야후와 닮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고전본문
내가 관찰한 바로는, 야후들은 모든 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가르치기 힘든 짐승으로, 그들의 능력으로는 짐을 끌거나 운반하는 일 이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주로 비틀어지고 반항적인 성격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활하고 심술궂고 쉽게 배반하고 앙심을 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장하고 튼튼하지만, 비겁한 성격을 가져서 거만하고 비열하며 잔인하다. […]
고귀한 후이늠들은 천성적으로 미덕을 지향하는 성향을 타고나서, 이성적인 동물에게서 악이 깃들어있을 가틍성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근본적 원리원칙은 이성을 함양하고 전적으로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
후이늠에게 있어서 우정과 자비,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대회의가 열렸다. 내가 떠나기 석 달 적이었는데, 우리 주인이 이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도 해묵은 문제가 논의되었다. 실은 그것이 이 나라에서 논의되는 유일한 문제였는데, 우리 주인은 돌아온 후 나에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논란의 주제는 야후들을 이 세상에서 말살해 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말살을 지지하는 한 회원이 매우 강하고 진중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주장했는데, “야후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동물 중에서 가장 더럽고 역겹고 흉측한 동물이어서, 가장 반항적이고 불순하며, 해코지만하고 악랄하다.
그들은 조금만 감시가 소홀해지면, 후이늠이 키우는 암소들의 젖을 몰래 빨고, 고양이를 죽이고 잡아먹으며, 귀리밭과 풀밭을 짓밟는 등 갖가지 나쁜짓을 일삼는다”고 했다. 그는 야후들이 원래분터 이나라에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누구나 아는 전설을 새삼 지적했다. 즉, “야후들은 원래부터 이 땅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 태양의 열이 썩은 진흙에 작용해서 생겨났는지, 아니면 나무의 수액이나 바다 거품에서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야만적인 짐등 두 마리가 함께 산 위에 나타났다. 이 한 쌍의 야후가 새끼를 낳고, 그 종족이 금새 엄청난 수로 번식해서 온 나라에 퍼지고 들끓게 되었다. 후이늠들은 이 사악한 무리를 처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냥을 벌여서 마침내 전부를 포위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나이 많은 야후들은 없애버리고, 모든 후으늠이 각각 어린 야후 한 쌍 씩을 우리 안에서 길러서, 천성이 그리 고약한 동물이 더 이상 순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순화시켰다. 그리하여 짐 운반과 기타 노역에 야후들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회원이 계속 말하기를 “이 전설은 매우 사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야후들이 일느흐니암시(이 나라의 원주민이란 뜻)일리가 없습니다. 후이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들이 극도로 혐오하는데, 그들의 사악한 성질 때문에 그렇게 미움을 받는 것이 마당하지만, 만약에 원주민이라면 그렇게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이미 전멸되었을 것입니다. […]”
나는 열악한 생활여건에서 나름대로 매우 만족스러운 생활방식을 개발하여 살고 있었다. 나의 주인은 그의 집에서 약 5.4미터 정도 되는 곳에 자기들 식으로 꾸민 거처를 만들어 주었다. […] 나는 온전한 신체적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누렸다. 친구의 배신이나 변심도, 은밀하거나 드러난 원수의 해코지도 없었다. 고관대작이나 그의 심복의 환심을 사려고 뇌물을 바치거나 아첨하거나 뚜쟁이 노릇을 할 필요가 젼혀 없었다. 질시나 압력에 대해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에는 나의 몸을 망치는 의사도 없었고, 내 재산을 털어먹을 변호사도 없었다. 또한 나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는 밀고자도 없고, 매수되어 나에 대해 엉터리 고소장을 조작하는 사람도 없었다. 또한 이곳에는 헐뜯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 소매치기, 노강강도, 밤도둑, 변호사, 포주, 어릿광대, 사기 도박꾼, 정치가, 재담꾼, 심술꾼,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연사, 논쟁꾼, 강도, 살인자, 강탈자, 숙련자, 정당이나 파벌 지도자나 추종자도 없었다. […]
가족과 친구들, 동족인 영국인들, 또는 인류 전체에 대해 생각해 보니, 그들은 사실상 모습과 성질에 있어서 야후임에 분명해졌다. 다만 영국인들이나 인류 전체는 후이늠 나라에 사는 야후들보다 조금 더 교양이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형제인 이 나라에 사는 야후들은 대자연이 부여한 악덕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데 반해, 그들은 그 악덕을 더 악화심키고 증대하는 데만 이성을 활용하는 야후들인 것이다. 호수나 샘에 비친 내 모습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 때문에 즉시 고개를 돌렸고, 내 모습보다는 차라리 평범한 야훙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 『걸리버 여행기』, 4권 8장~10장 중
토론하기
(1) 작품의 주인공 ‘나(걸리버)’는 자신이 야후와 동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은 영국인을 포함한 유럽인들과 인류 전체가 야후와 동족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걸리버가 보기에 후이늠의 나라에 사는 야후와 자신을 비롯한 영국과 유럽에 사는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2) 후이늠 족이 사는 세상에는 걸리버가 경험했던 인간사회의 악덕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가 실제로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후이늠의 어떤 미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3) 후이늠의 전설에 따르면 야후는 어느 시점에 걸리버처럼 후이늠 나라에 갑자기 등장해 번식을 통해 개체수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걸리버도 오랜 기간 후이늠 나라에서 야후들과 살다보면 야후가 되어 야후처럼 행동하게 될까요? 아니면 걸리버가 존경하는 후이늠을 본받아 덕성스런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인간이 인간사회와 문명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해설읽기
걸리버가 야후족에 대한 혐오와 후인족에 대한 동경을 묘사할 스위프트의 반인간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대목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걸리버는 점차 자신과 인류를 후이늠족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인간 종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걸리버는 후이늠족의 합리성, 냉정함, 순수함을 인류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는 주요 구절은 걸리버가 후이늠족 주인으로부터 유럽의 관습과 행동에 대해 질문을 받은 후 인간 사회의 모습을 한탄하는 대목입니다. 걸리버는 고귀한 후인족과 야만적인 야후족(자신과 인류 전체를 포함)의 비교에 부끄러워하고 낙담하면서 그의 눈에 인간 사회에 심각한 결함과 부패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간에 대한 환멸은 “걸리버 여행기” 후반부의 중심 주제로, 인간 조건과 당시의 사회 규범에 대한 스위프트의 비판을 보여줍니다. 스위프트는 후이늠족과 야후족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악덕, 잔인함의 잠재력을 강조함으로써 반인륜적 견해를 표현합니다.
키워드
걸리버 여행기, 문명, 안티 휴머니즘, 야만, 야후, 인간, 인간성, 조너던 스위프트, 풍자, 후이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