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천체물리학자 예원제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이루어진 지식인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 속에서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깊은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이후 그녀는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정부의 기밀 프로젝트인 홍안(紅岸)에 투입된다. 홍안 기지에서 예원제는 태양을 이용해 무선 주파수를 증폭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비밀리에 우주 메시지를 보낸다. 8년 뒤 어느 날, 삼체 행성으로부터 답신이 온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인류에 대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예원제는 주저 없이 그들의 지구 침공을 요청한다.
고전본문
사실, 세상과 동떨어진 무릉도원 같은 이 산꼭대기의 레이더 기지에서도 인류의 비이성과 광기는 여전히 날마다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지고 있었다. 예원제는 산 아래 숲이 매일같이 과거의 동지들에 의해 미친듯이 벌목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벌거벗은 땅의 넓이는 날마다 늘어갔고, 그것은 마치 다싱안링의 피부가 벗겨져 나간 것 같았다. 이런 부분들이 서로 이어져 하나의 커다란 구역이 되자, 간신히 남은 몇 조각의 숲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황무지를 태우는 불길이 벌거벗은 산과 들에서 솟아올랐고, 레이더 봉우리는 그 불바다에서 살기 위해 도망쳐 온 새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불길이 타오를 때면 깃털이 타 들어가는 기지 안 새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귀에 끊이지 않았다.
더 먼 외부 세계에서는 인류의 광기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정점에 달해 있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 간의 패권 경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으므로, 양쪽 모두 대륙에 흩어진 수많은 미사일 발사기지와 유령처럼 깊은 바다를 누비는 전략적 핵잠수함에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의 핵무기를 일촉즉발의 상태로 장전해 두고 있었다. 미국의 폴라리스나 소련의 타이푼 급 잠수함 한 척에 실린 분리형 다중 표적 핵탄두만으로도 수백 개의 도시를 파괴하고 수억 명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그저 웃어넘겼다.
(중략)
그러던 중 오늘, 파형 모니터를 힐끗 쳐다보던 예원제는 뭔가 확실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육안만으로 어떤 파형이 정보를 담고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예원제는 우주 배경 복사가 만들어내는 전파 잡음의 파형에 너무나 익숙했다. 지금 눈앞에서 움직이는 파형은 (보통의 것과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오르내리는 가느다란 선은 마치 영혼을 지닌 듯했는데, 그녀는 자기 앞에 나타난 이 전파가 지능을 가진 존재에 의해 변조된 것임을 확신했다.
예원제는 또 다른 메인 단말기로 바쁘게 옮겨 가서 컴퓨터가 지금 수신되고 있는 내용의 식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더니, 출력값이 AAAAA였다! 그전까지 홍안이 수신한 우주 전파 가운데서 식별 가능성이 C를 넘은 적도 한 번도 없었다. A급만 되어도 그 주파수대가 지능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인데, A가 연속으로 다섯 개라는 것은 수신된 메시지가 이곳 홍안이 쏘아 보낸 언어를 그대로 써서 다시 보내온 것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을 의미했다.
예원제는 홍안의 전파 해독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이 소프트웨어는 인식 가능성 B급 이상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데 홍안 프로젝트의 모든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제껏 한 번도 정식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이 소프트웨어의 시험 운행 데이터에 따르면, 지능을 가진 존재가 만든 코드 한 건을 해석하는데 며칠, 심지어 몇 개월의 연산 시간이 걸렸고, 그나마도 나온 결과도 모두 해석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문 파일을 넣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모니터가 해독이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예원제는 결과 파일을 열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의 다른 세계에서 온 메시지를 읽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었다. 그것은 세 번의 반복된 경고였다.
(중략)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흥분과 혼란 속에서, 예원제는 계속해서 메시지의 두 번째 단락을 해독해 내려갔다.
“이쪽 세계가 당신들의 메시지를 수신했다. 나는 이 세계의 평화주의자다. 내가 먼저 메시지를 수신한 것은 당신들 문명의 행운이다. 당신들에게 경고한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우리 별에서 당신들 쪽으로는 수천만 개의 항성이 있다. 당신들이 대답하지만 않는다면, 이쪽 세계는 발신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만약 대답할 경우 발신지가 즉시 특정되어, 당신들의 행성계는 침략당하고, 당신들의 세계는 정복될 것이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모니터에 깜빡이는 초록색 글자를 바라보는 예원제는 차분하게 생각할 방법이 없었다. 흥분과 격동에 사로잡힌 그녀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뿐이었다.
‘지난번 태양을 향해 신호를 보낸 지 9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메시지의 발신지는 지구에서 겨우 4광년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것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서 온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삼중성계였다!
(중략)
발사 시스템은 이미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길쭉한 네모 모양의 발사 버튼은 빨간색이라는 것 말고는 컴퓨터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와 아주 유사했다. 이제 예원제의 손가락은 버튼 바로 2센티미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인류 문명의 운명이 이 가느다란 두 손가락 끝에 달려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원제는 발사 버튼을 눌렀다.
[출전] 류츠신, 『삼체』 중에서
토론하기
(1)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대답하지 마라!”라는 외계인의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원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계로 신호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본문의 첫 두 단락에 담긴 서술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라.
(2) 여러분은 스스로 대항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거대한 힘과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경험은 여러분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3) 환경 파괴나 전쟁처럼 전 지구적 차원의 위기를 초래하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해설읽기
본문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의 폭력에 내몰려 내몽골의 깊은 산속까지 오게 된 주인공 예원제가, 그곳을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유토피아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무릉도원”이라는 말로 부르는 역설로 시작한다. 그녀가 이렇게 표현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예원제는 도시 한복판에서 혁명의 광기를 직접 목격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참혹한 장면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혁명의 소용돌이치는 도시와 먼 중서부 내륙 지방의 산속에 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다소 거리가 먼 정부의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한 명의 과학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예원제는 곧 이곳도 “무릉도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부가 혁명가 추진하고 있는 산림 개간 사업으로 인해 산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문화대혁명 시기 산림 개간 사업에 대해서는 같은 셀 묶음의 “나무를 베려거든 나를 베라” 셀 참조). 도시에서 혁명이 사람들에게 가했던 폭력이 이곳 깊은 산 속까지 침투해 들어와서 자연에 대한 폭력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예원제가 다싱안링 산맥의 벌거벗은 능선을 바라보며 “피부가 벗겨져 나간 것 같았다”고 느꼈다는 서술에는, 혁명의 광기가 사람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무차별적 폭력을 가했다는 저자의 암시가 담겨 있다. 새들에 대한 이어지는 서술은 이러한 폭력의 희생자로서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저자의 관점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황무지를 태우는 불길 속에서 깃털이 타들어가며 울부짖는 새들의 소리는, 본문 앞에서 아버지가 홍위병에게 맞아 죽던 순간 군중 속에서 절규하던 예원제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역사의 광기가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단락에서 예원제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숲의 파괴는 두 번째 단락에서 마찬가지로 그녀의 생각을 통해 상상되는 핵전쟁과 문명 파괴로, 중국 정부의 산림 개간에 희생된 새들은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인명 살상으로 확대된다. 결국, 이 두 사건은 예원제를 인류의 역사와 인간 종 전체에 대한 깊은 환멸에 빠뜨린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 중국과 세계, 자연과 인간이라는, 그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층위에서 인류에게 더 이상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침내는 지구 문명이 소멸해야 한다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
예원제가 인류를 혐오하게 된 이러한 배경은 왜 그녀가 외계에서 온 메시지를 받고 그토록 흥분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밝힌 삼체 문명의 외계인은 지구 문명을 동료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메시지에 답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대답하지 마라!”라는 반복된 경고에는 이 평화주의자 외계인의 간절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외계인이 그토록 지켜주고자 하는 지구 문명에 속한 예원제는 경고를 무시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삼체 문명으로 신호를 보낸다.
인류에 대한 극한적인 절망을 드러내는 예원제의 선택은 다르게 보면 인류가 초래한 악을 삼체 문명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심판하고자 하는,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선’에 대한 추구로 읽을 수도 있다. 예원제의 동기를 어떻게 해석하든, 이 소설의 작가가 삼체 문명을 지구에 불러오고자 하는 그녀의 결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도덕이라는 문제에 있어 인류의 현재와 희망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그것은 이러한 질문들로 표현될 수 있다. 예원제가 맞닥뜨린 상황처럼 인류가 도덕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정말로 희망은 찾을 수 없는 것인가? 만에 하나라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설령 그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인류는 정말로 스스로의 문명을 구할 의지와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키워드
역사의 광기, 인류에 대한 희망 또는 절망, 전쟁, 지구 문명과 외계 문명, 환경 파괴
전후맥락
천체물리학자 예원제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이루어진 지식인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 속에서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깊은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이후 그녀는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정부의 기밀 프로젝트인 홍안(紅岸)에 투입된다. 홍안 기지에서 예원제는 태양을 이용해 무선 주파수를 증폭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비밀리에 우주 메시지를 보낸다. 8년 뒤 어느 날, 삼체 행성으로부터 답신이 온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인류에 대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예원제는 주저 없이 그들의 지구 침공을 요청한다.
고전본문
사실, 세상과 동떨어진 무릉도원 같은 이 산꼭대기의 레이더 기지에서도 인류의 비이성과 광기는 여전히 날마다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지고 있었다. 예원제는 산 아래 숲이 매일같이 과거의 동지들에 의해 미친듯이 벌목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벌거벗은 땅의 넓이는 날마다 늘어갔고, 그것은 마치 다싱안링의 피부가 벗겨져 나간 것 같았다. 이런 부분들이 서로 이어져 하나의 커다란 구역이 되자, 간신히 남은 몇 조각의 숲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황무지를 태우는 불길이 벌거벗은 산과 들에서 솟아올랐고, 레이더 봉우리는 그 불바다에서 살기 위해 도망쳐 온 새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불길이 타오를 때면 깃털이 타 들어가는 기지 안 새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귀에 끊이지 않았다.
더 먼 외부 세계에서는 인류의 광기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정점에 달해 있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 간의 패권 경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였으므로, 양쪽 모두 대륙에 흩어진 수많은 미사일 발사기지와 유령처럼 깊은 바다를 누비는 전략적 핵잠수함에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의 핵무기를 일촉즉발의 상태로 장전해 두고 있었다. 미국의 폴라리스나 소련의 타이푼 급 잠수함 한 척에 실린 분리형 다중 표적 핵탄두만으로도 수백 개의 도시를 파괴하고 수억 명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그저 웃어넘겼다.
(중략)
그러던 중 오늘, 파형 모니터를 힐끗 쳐다보던 예원제는 뭔가 확실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육안만으로 어떤 파형이 정보를 담고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예원제는 우주 배경 복사가 만들어내는 전파 잡음의 파형에 너무나 익숙했다. 지금 눈앞에서 움직이는 파형은 (보통의 것과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오르내리는 가느다란 선은 마치 영혼을 지닌 듯했는데, 그녀는 자기 앞에 나타난 이 전파가 지능을 가진 존재에 의해 변조된 것임을 확신했다.
예원제는 또 다른 메인 단말기로 바쁘게 옮겨 가서 컴퓨터가 지금 수신되고 있는 내용의 식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더니, 출력값이 AAAAA였다! 그전까지 홍안이 수신한 우주 전파 가운데서 식별 가능성이 C를 넘은 적도 한 번도 없었다. A급만 되어도 그 주파수대가 지능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인데, A가 연속으로 다섯 개라는 것은 수신된 메시지가 이곳 홍안이 쏘아 보낸 언어를 그대로 써서 다시 보내온 것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을 의미했다.
예원제는 홍안의 전파 해독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이 소프트웨어는 인식 가능성 B급 이상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데 홍안 프로젝트의 모든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제껏 한 번도 정식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이 소프트웨어의 시험 운행 데이터에 따르면, 지능을 가진 존재가 만든 코드 한 건을 해석하는데 며칠, 심지어 몇 개월의 연산 시간이 걸렸고, 그나마도 나온 결과도 모두 해석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문 파일을 넣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모니터가 해독이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예원제는 결과 파일을 열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우주의 다른 세계에서 온 메시지를 읽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었다. 그것은 세 번의 반복된 경고였다.
(중략)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흥분과 혼란 속에서, 예원제는 계속해서 메시지의 두 번째 단락을 해독해 내려갔다.
“이쪽 세계가 당신들의 메시지를 수신했다. 나는 이 세계의 평화주의자다. 내가 먼저 메시지를 수신한 것은 당신들 문명의 행운이다. 당신들에게 경고한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우리 별에서 당신들 쪽으로는 수천만 개의 항성이 있다. 당신들이 대답하지만 않는다면, 이쪽 세계는 발신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만약 대답할 경우 발신지가 즉시 특정되어, 당신들의 행성계는 침략당하고, 당신들의 세계는 정복될 것이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지 마라!”
모니터에 깜빡이는 초록색 글자를 바라보는 예원제는 차분하게 생각할 방법이 없었다. 흥분과 격동에 사로잡힌 그녀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뿐이었다.
‘지난번 태양을 향해 신호를 보낸 지 9년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메시지의 발신지는 지구에서 겨우 4광년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것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서 온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삼중성계였다!
(중략)
발사 시스템은 이미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길쭉한 네모 모양의 발사 버튼은 빨간색이라는 것 말고는 컴퓨터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와 아주 유사했다. 이제 예원제의 손가락은 버튼 바로 2센티미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인류 문명의 운명이 이 가느다란 두 손가락 끝에 달려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원제는 발사 버튼을 눌렀다.
[출전] 류츠신, 『삼체』 중에서
토론하기
(1)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대답하지 마라!”라는 외계인의 반복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원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계로 신호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본문의 첫 두 단락에 담긴 서술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라.
(2) 여러분은 스스로 대항하거나 극복할 수 없다고 느낄 만큼 거대한 힘과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경험은 여러분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3) 환경 파괴나 전쟁처럼 전 지구적 차원의 위기를 초래하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해설읽기
본문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의 폭력에 내몰려 내몽골의 깊은 산속까지 오게 된 주인공 예원제가, 그곳을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유토피아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무릉도원”이라는 말로 부르는 역설로 시작한다. 그녀가 이렇게 표현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예원제는 도시 한복판에서 혁명의 광기를 직접 목격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참혹한 장면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혁명의 소용돌이치는 도시와 먼 중서부 내륙 지방의 산속에 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다소 거리가 먼 정부의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한 명의 과학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예원제는 곧 이곳도 “무릉도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부가 혁명가 추진하고 있는 산림 개간 사업으로 인해 산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문화대혁명 시기 산림 개간 사업에 대해서는 같은 셀 묶음의 “나무를 베려거든 나를 베라” 셀 참조). 도시에서 혁명이 사람들에게 가했던 폭력이 이곳 깊은 산 속까지 침투해 들어와서 자연에 대한 폭력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예원제가 다싱안링 산맥의 벌거벗은 능선을 바라보며 “피부가 벗겨져 나간 것 같았다”고 느꼈다는 서술에는, 혁명의 광기가 사람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무차별적 폭력을 가했다는 저자의 암시가 담겨 있다. 새들에 대한 이어지는 서술은 이러한 폭력의 희생자로서 인간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저자의 관점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황무지를 태우는 불길 속에서 깃털이 타들어가며 울부짖는 새들의 소리는, 본문 앞에서 아버지가 홍위병에게 맞아 죽던 순간 군중 속에서 절규하던 예원제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역사의 광기가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단락에서 예원제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숲의 파괴는 두 번째 단락에서 마찬가지로 그녀의 생각을 통해 상상되는 핵전쟁과 문명 파괴로, 중국 정부의 산림 개간에 희생된 새들은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인명 살상으로 확대된다. 결국, 이 두 사건은 예원제를 인류의 역사와 인간 종 전체에 대한 깊은 환멸에 빠뜨린다. 그녀는 과거와 현재, 중국과 세계, 자연과 인간이라는, 그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층위에서 인류에게 더 이상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침내는 지구 문명이 소멸해야 한다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
예원제가 인류를 혐오하게 된 이러한 배경은 왜 그녀가 외계에서 온 메시지를 받고 그토록 흥분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밝힌 삼체 문명의 외계인은 지구 문명을 동료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메시지에 답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대답하지 마라!”라는 반복된 경고에는 이 평화주의자 외계인의 간절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외계인이 그토록 지켜주고자 하는 지구 문명에 속한 예원제는 경고를 무시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삼체 문명으로 신호를 보낸다.
인류에 대한 극한적인 절망을 드러내는 예원제의 선택은 다르게 보면 인류가 초래한 악을 삼체 문명이라는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심판하고자 하는,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선’에 대한 추구로 읽을 수도 있다. 예원제의 동기를 어떻게 해석하든, 이 소설의 작가가 삼체 문명을 지구에 불러오고자 하는 그녀의 결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도덕이라는 문제에 있어 인류의 현재와 희망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그것은 이러한 질문들로 표현될 수 있다. 예원제가 맞닥뜨린 상황처럼 인류가 도덕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정말로 희망은 찾을 수 없는 것인가? 만에 하나라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설령 그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인류는 정말로 스스로의 문명을 구할 의지와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키워드
역사의 광기, 인류에 대한 희망 또는 절망, 전쟁, 지구 문명과 외계 문명, 환경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