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논어는 서사가 있는 문학서도 아니고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논증 구조로 서술된 철학서도 아니다. 이것은 공자가 그의 제자들과 묻고 답한 일종의 문답형 글이자 제자들이 평소 그의 언행을 보고 들은 뒤 죽간이나 옷자락에 축약하여 기록한 글들의 모음이다. 그러므로 논어는 일종의 언행록이나 어록집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후대 학자들이 제자들의 기록을 모아서 주제에 맞게 배치하고 ‘논어(論語)’라는 서명을 붙여 완성하였기 때문에, 논어각 편의 구절 사이에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논어 첫 편의 첫 구절이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적어도 논어를 편집한 후대 지식인은 그것의 핵심을 지식의 학습과 성찰이라고 보았다. 앎과 진리에 관한 논어의 대표적인 기록 중 음미해 볼 만한 여섯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고전본문
①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②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③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
④ 유(由)야, 내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좋
은 점은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⑥ 군자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논어』 중에서
토론하기
(1)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구절을 이해하고, 과거의 앎이 오늘날의
문제나 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무엇인지 사례를 들어 논의해 보자.
(2) ‘주변 사람에게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는’ 훈련을 오랜 기간 반복한다
면 이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이 무엇일지 논의해 보자.
(3)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나에게 찾는 태도를 지속하면 생길 수 있는 효과나
부작용을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논어가 편집된 이후 원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주석 전통이 형성되었다. 대표 주석가로는 한대 이후로 하안(何晏, ?~249)과 황간(皇侃, 488~545), 형병(邢昺, 932~1010), 주희(朱熹, 1130~1200) 등이 있으며, 이들 외에 주석을 단 이들도 1,100명에 이른다. 주석가의 수만큼 논어의 수많은 해석이 존재해 왔음에도, 해석의 길을 여전히 열려 있다. 전통 시대 학자들의 주석을 참고하며 오늘날 시각에서 해석하면 위의 여섯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①은 배움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움의 대상은 다양하다. 그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진리나 통찰까지 포함한다. 이 구절의 ‘수시로’는 원문의 ‘시(時)’를 풀이한 것으로, 부단함을 말한다. 또한 ‘익힌다’는 원문의 ‘습(習)’을 풀이한 것으로, 이는 단순한 지식의 복습이 아니라 몸에 배도록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이든 통찰이든, 진리든 삶 속에서 부단히 배울 때, 그 내면에서 번지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배움은 따분한 의무가 아니며 기쁨의 원천이다. 진정으로 그것을 배워 내 일부로 체화될 때, 이는 삶을 변화시키는 추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②에서 ‘아는 자’는 대상을 이해하여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자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만으로 지적 성취가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자’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호기심과 지식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좋아하여 탐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앎의 경지는 바로 지식의 성취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다. ‘즐기는 자’는 앎에 온전히 몰입하여 자신을 잊은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한다.
③의 원문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성어로서, 논어에 등장한 이후 이 천여 년 동안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에서 회자되었다. ‘옛것을 데운다[溫故]’는 말은 오래된 지식이나 역사, 진리 등 과거부터 축적된 앎의 총체를 되새기며 익힌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새것을 알게 된다[知新]’는 말은 기존에 익혔던 전통 시대의 앎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나 통찰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스승이 될 만하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도덕적·지적 전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이 구절을 종합하여 풀이해 보면, ‘지나간 앎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여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앎으로 창출한다면, 타인의 스승이 될 만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④에서 유(由)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의 이름이다. 공자에 따르면 진정한 앎이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아는 분별력 즉 메타인지 능력을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지적 겸손이 참된 앎의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무지의 자각’과 상통하는 동서양 철인의 공통된 통찰이다.
⑤에서 ‘길을 걸어가는 세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들 중에 누구든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는 말은 스승이란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예, 수준 높은 인격과 날카로운 통찰을 가진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주변의 평범한 이들도 전부 내가 배울 점이 있다는 뜻이다.
배움의 대상은 이어지는 구절에 명시되어 있다. 주변인의 장점은 본받아 내 것으로 체득하고, 단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다. 요컨대 타인의 장단점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앎이 성찰이라는 실천이며, 인간은 이러한 앎을 통해 인격 도야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⑥에 등장하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공자 이전에는 주로 왕족·귀족과 평민·천민을 가리키던 계급적 용어였는데, 공자는 이를 도덕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다시 규정했다. 그에게 군자는 진정한 앎을 실천하는 지적·인격적 존재라면, 소인은 성찰 능력과 도덕성이 결핍된 존재이다. 공자에 따르면 군자는 일이 잘못될 경우에 그 책임과 원인을 자신의 언행이나 판단, 수양의 부족에서 찾는 반면, 소인은 다른 사람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 운명 등의 외부 조건을 탓하기만 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인격의 점진적 도야가 가능하지만, 소인은 내면의 성숙과 성장이 불가능하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갈등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고 비난하는 대신, 성찰을 통해 자신에서 찾을 것을 권고한다.
키워드
공자, 군자, 논어, 앎, 성찰, 소인, 지식, 체득, 군자
전후맥락
논어는 서사가 있는 문학서도 아니고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논증 구조로 서술된 철학서도 아니다. 이것은 공자가 그의 제자들과 묻고 답한 일종의 문답형 글이자 제자들이 평소 그의 언행을 보고 들은 뒤 죽간이나 옷자락에 축약하여 기록한 글들의 모음이다. 그러므로 논어는 일종의 언행록이나 어록집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후대 학자들이 제자들의 기록을 모아서 주제에 맞게 배치하고 ‘논어(論語)’라는 서명을 붙여 완성하였기 때문에, 논어각 편의 구절 사이에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논어 첫 편의 첫 구절이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적어도 논어를 편집한 후대 지식인은 그것의 핵심을 지식의 학습과 성찰이라고 보았다. 앎과 진리에 관한 논어의 대표적인 기록 중 음미해 볼 만한 여섯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고전본문
①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②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③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
④ 유(由)야, 내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의 좋
은 점은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⑥ 군자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논어』 중에서
토론하기
(1)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만하다’는 구절을 이해하고, 과거의 앎이 오늘날의
문제나 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무엇인지 사례를 들어 논의해 보자.
(2) ‘주변 사람에게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는’ 훈련을 오랜 기간 반복한다
면 이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이 무엇일지 논의해 보자.
(3)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나에게 찾는 태도를 지속하면 생길 수 있는 효과나
부작용을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논어가 편집된 이후 원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주석 전통이 형성되었다. 대표 주석가로는 한대 이후로 하안(何晏, ?~249)과 황간(皇侃, 488~545), 형병(邢昺, 932~1010), 주희(朱熹, 1130~1200) 등이 있으며, 이들 외에 주석을 단 이들도 1,100명에 이른다. 주석가의 수만큼 논어의 수많은 해석이 존재해 왔음에도, 해석의 길을 여전히 열려 있다. 전통 시대 학자들의 주석을 참고하며 오늘날 시각에서 해석하면 위의 여섯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①은 배움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움의 대상은 다양하다. 그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진리나 통찰까지 포함한다. 이 구절의 ‘수시로’는 원문의 ‘시(時)’를 풀이한 것으로, 부단함을 말한다. 또한 ‘익힌다’는 원문의 ‘습(習)’을 풀이한 것으로, 이는 단순한 지식의 복습이 아니라 몸에 배도록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이든 통찰이든, 진리든 삶 속에서 부단히 배울 때, 그 내면에서 번지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배움은 따분한 의무가 아니며 기쁨의 원천이다. 진정으로 그것을 배워 내 일부로 체화될 때, 이는 삶을 변화시키는 추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②에서 ‘아는 자’는 대상을 이해하여 지식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자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만으로 지적 성취가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자’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 호기심과 지식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좋아하여 탐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앎의 경지는 바로 지식의 성취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다. ‘즐기는 자’는 앎에 온전히 몰입하여 자신을 잊은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한다.
③의 원문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성어로서, 논어에 등장한 이후 이 천여 년 동안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에서 회자되었다. ‘옛것을 데운다[溫故]’는 말은 오래된 지식이나 역사, 진리 등 과거부터 축적된 앎의 총체를 되새기며 익힌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새것을 알게 된다[知新]’는 말은 기존에 익혔던 전통 시대의 앎을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나 통찰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스승이 될 만하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도덕적·지적 전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이 구절을 종합하여 풀이해 보면, ‘지나간 앎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여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앎으로 창출한다면, 타인의 스승이 될 만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④에서 유(由)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의 이름이다. 공자에 따르면 진정한 앎이란,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아는 분별력 즉 메타인지 능력을 말한다. 이 말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지적 겸손이 참된 앎의 출발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무지의 자각’과 상통하는 동서양 철인의 공통된 통찰이다.
⑤에서 ‘길을 걸어가는 세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들 중에 누구든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이가 있다’는 말은 스승이란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예, 수준 높은 인격과 날카로운 통찰을 가진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주변의 평범한 이들도 전부 내가 배울 점이 있다는 뜻이다.
배움의 대상은 이어지는 구절에 명시되어 있다. 주변인의 장점은 본받아 내 것으로 체득하고, 단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다. 요컨대 타인의 장단점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앎이 성찰이라는 실천이며, 인간은 이러한 앎을 통해 인격 도야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⑥에 등장하는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공자 이전에는 주로 왕족·귀족과 평민·천민을 가리키던 계급적 용어였는데, 공자는 이를 도덕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다시 규정했다. 그에게 군자는 진정한 앎을 실천하는 지적·인격적 존재라면, 소인은 성찰 능력과 도덕성이 결핍된 존재이다. 공자에 따르면 군자는 일이 잘못될 경우에 그 책임과 원인을 자신의 언행이나 판단, 수양의 부족에서 찾는 반면, 소인은 다른 사람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 운명 등의 외부 조건을 탓하기만 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인격의 점진적 도야가 가능하지만, 소인은 내면의 성숙과 성장이 불가능하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갈등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고 비난하는 대신, 성찰을 통해 자신에서 찾을 것을 권고한다.
키워드
공자, 군자, 논어, 앎, 성찰, 소인, 지식, 체득, 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