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격몽요결』은 율곡이 선조와 정치적 갈등을 겪고 해주(海州)로 내려온 이듬해인 1577년에 저술한 책이다. 율곡은 과거시험에서 수차례 장원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과거 답안지인 「천도책(天道策)」은 중국에서 회람할 정도로 그의 천재성은 이웃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해주로 내려오자, 주변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시에 도움을 받기 위해 그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런데 율곡은 초학자들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율곡이 볼 때 초학자들의 두서없고 얕은 질문은 서로를 자극하고 학문을 진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초학자들을 위한 입문서를 저술하여 그들이 이를 등불 삼아 올바른 학문의 길을 찾아가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격몽요결의 편집 목적과 의의, 기대효과, 내용 등을 압축적으로 서술한 서문이다.
고전본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노릇을 하자면 학문을 해야 한다. 학문이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학문이란) 아비 된 자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식 된 자는 효도해야 하며, 신하가 된 자는 충성을 다하고 부부가 된 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가 된 자는 우애가 있어야 한다. 젊은 사람은 웃어른에게 공손해야 하고 벗이 되었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행동에서 저마다 마땅한 일을 따르면 될 뿐이니, 마음을 아득하고 오묘한 곳으로 내달리게 하여 기이한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지식이 길을 밝혀줄 것이니, 오직 그때라야 지혜가 튼튼해지고 활동에 밸런스가 맞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배움이 일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저 아득히 높고 멀어 (보통 사람이라면) 행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학문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스스로 포기해 버리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해산(海山)의 남쪽에 살고 있을 때 학생 한두 명이 찾아와 나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다. 또 한편으로는 초학자들이 아무 방향도 모르고 굳건한 뜻도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겠다고 한다면, 저들에게나 나에게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사람의 조롱거리만 될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에 간략히 책 한 권을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섬기고 남을 대하는 일 등의 방법을 거칠게나마 적어 ‘격몽요결’이라고 이름 지었다. 학생들이 이 책을 읽어 마음을 씻고 자리에 똑바로 서서 바로 그날로 공부에 손대게 하고자 하며, 나 역시 오랫동안 낡은 습속에 매어 근심하던 차여서 이 책으로 자신을 경계하고 성찰하고자 한다.
[출전] 이이, 『격몽요결』
토론하기
(1) 율곡이 제시한 학문의 목적과 내용을 오늘날 한국 사회의 그것과 비교해 보고, 진정한 학문이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2) 학문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취해야 할 적절한 마음과 몸의 태도라는 율곡의 주장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보자.
(3)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기 수양과 전문 지식의 습득 중 더 시급한 실천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해설읽기
율곡은 인간다움의 전제 조건을 학문이라고 선언하며 말문을 연다. 그가 볼 때 학문은 깊은 산 속에서 은둔하여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것도 아니고, 기이하고 신기한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학문은 전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여 누구라도 알만한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부모와 형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를 익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체득하여 앎을 삶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율곡에 따르면 초학자는 선현이 남긴 서적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관계의 원리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 원리를 남김없이 이해한 다음에 비로소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학문은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學]’ ‘묻는[問]’ 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치를 마음속으로 철저히 깨닫고 훈련을 통해 습관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학문하는 자들은 지식과 지혜의 습득이 일상에 있음을 모르고, 진리는 거창하고 고원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착각한다.
진리는 물과 같이 담백하여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체득하여 실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어렵다. 그럼에도 입문자에게 첫발을 내디딜 곳을 제시하고 방향을 알려준다면, 그가 마음을 가다듬고 해묵은 나쁜 습관을 씻어낼 수 있다. 율곡은 이러한 희망으로 격몽요결을 저술했다. 이 책의 저술을 통해 초학자들은 물론, 그 역시 자신의 해묵은 습관을 제거할 것을 기대했다.
이처럼 앎이란 정밀한 연구 끝에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부모와 형제, 친구 등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먼 타인까지 인간관계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를 올바르게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가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율곡에게 앎은 심신의 훈련을 통한 체득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천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키워드
격몽요결, 수양, 앎, 오륜, 율곡 이이
전후맥락
『격몽요결』은 율곡이 선조와 정치적 갈등을 겪고 해주(海州)로 내려온 이듬해인 1577년에 저술한 책이다. 율곡은 과거시험에서 수차례 장원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과거 답안지인 「천도책(天道策)」은 중국에서 회람할 정도로 그의 천재성은 이웃 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해주로 내려오자, 주변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시에 도움을 받기 위해 그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런데 율곡은 초학자들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율곡이 볼 때 초학자들의 두서없고 얕은 질문은 서로를 자극하고 학문을 진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초학자들을 위한 입문서를 저술하여 그들이 이를 등불 삼아 올바른 학문의 길을 찾아가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격몽요결의 편집 목적과 의의, 기대효과, 내용 등을 압축적으로 서술한 서문이다.
고전본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노릇을 하자면 학문을 해야 한다. 학문이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학문이란) 아비 된 자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식 된 자는 효도해야 하며, 신하가 된 자는 충성을 다하고 부부가 된 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형제가 된 자는 우애가 있어야 한다. 젊은 사람은 웃어른에게 공손해야 하고 벗이 되었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행동에서 저마다 마땅한 일을 따르면 될 뿐이니, 마음을 아득하고 오묘한 곳으로 내달리게 하여 기이한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지식이 길을 밝혀줄 것이니, 오직 그때라야 지혜가 튼튼해지고 활동에 밸런스가 맞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배움이 일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저 아득히 높고 멀어 (보통 사람이라면) 행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학문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스스로 포기해 버리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해산(海山)의 남쪽에 살고 있을 때 학생 한두 명이 찾아와 나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다. 또 한편으로는 초학자들이 아무 방향도 모르고 굳건한 뜻도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겠다고 한다면, 저들에게나 나에게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사람의 조롱거리만 될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에 간략히 책 한 권을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섬기고 남을 대하는 일 등의 방법을 거칠게나마 적어 ‘격몽요결’이라고 이름 지었다. 학생들이 이 책을 읽어 마음을 씻고 자리에 똑바로 서서 바로 그날로 공부에 손대게 하고자 하며, 나 역시 오랫동안 낡은 습속에 매어 근심하던 차여서 이 책으로 자신을 경계하고 성찰하고자 한다.
[출전] 이이, 『격몽요결』
토론하기
(1) 율곡이 제시한 학문의 목적과 내용을 오늘날 한국 사회의 그것과 비교해 보고, 진정한 학문이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2) 학문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취해야 할 적절한 마음과 몸의 태도라는 율곡의 주장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보자.
(3)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기 수양과 전문 지식의 습득 중 더 시급한 실천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해설읽기
율곡은 인간다움의 전제 조건을 학문이라고 선언하며 말문을 연다. 그가 볼 때 학문은 깊은 산 속에서 은둔하여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것도 아니고, 기이하고 신기한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학문은 전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여 누구라도 알만한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부모와 형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를 익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체득하여 앎을 삶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율곡에 따르면 초학자는 선현이 남긴 서적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관계의 원리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 원리를 남김없이 이해한 다음에 비로소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학문은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學]’ ‘묻는[問]’ 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치를 마음속으로 철저히 깨닫고 훈련을 통해 습관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학문하는 자들은 지식과 지혜의 습득이 일상에 있음을 모르고, 진리는 거창하고 고원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착각한다.
진리는 물과 같이 담백하여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체득하여 실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어렵다. 그럼에도 입문자에게 첫발을 내디딜 곳을 제시하고 방향을 알려준다면, 그가 마음을 가다듬고 해묵은 나쁜 습관을 씻어낼 수 있다. 율곡은 이러한 희망으로 격몽요결을 저술했다. 이 책의 저술을 통해 초학자들은 물론, 그 역시 자신의 해묵은 습관을 제거할 것을 기대했다.
이처럼 앎이란 정밀한 연구 끝에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부모와 형제, 친구 등 가까운 주변 사람부터 먼 타인까지 인간관계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를 올바르게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가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율곡에게 앎은 심신의 훈련을 통한 체득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천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키워드
격몽요결, 수양, 앎, 오륜, 율곡 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