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여기서 소개할 본문은 「성악설(性惡說)」의 첫 단락이다. 본문에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의와 법도로 제어하여 그를 선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교육론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셀4]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는 관계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고전본문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것이 선하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다.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를 따르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양보가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따르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다치게 하는 경우가 생기며 충심과 믿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모습을 좋아하는데, 이를 따르기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법도가 없어진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이 자기 본성을 따르고 감정만 따른다면 반드시 싸우고 뺏게 되며, 분수를 어기고 법도를 어지럽혀 난폭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의 교화와 예의의 계도가 있는 뒤에야 비로소 서로 양보하고 법도를 따르게 되어 다스려질 것이다. 이로써 볼 때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출전] 순자, 『순자』, 「성악」
토론하기
(1) 맹자와 순자는 성(性)이라는 개념을 서로 다르게 정의를 내린다. 정의의 차이가 단순한 용어 해석을 넘어서, 인간관과 도덕관, 교육관, 정치관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2) 순자는 배고픔·졸음·소유욕·성욕 등 본능을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욕구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악(惡)’이라 부른 이유는 그 ‘위험성’에서 찾았다. 즉 욕망이 방치되면 과열되고 그 결과 사회적 갈등·범죄·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순자가 사용하는 악 개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악의 이미지와 얼마나 다르며, 다르다면 오늘날 악의 이미지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떠오르는 이유를 논의해 보자.
(3) 순자는 인간의 본성 즉 본능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보고, 스승과 교육을 신뢰한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 교육 체계가 기본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음에도 학생들의 충동이 잘 제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그 요인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사단(四端)이라는 도덕적 감정 욕구로 보았기에 인간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순자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본성을 악하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순자의 본성 개념이 맹자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성은 ‘마음 ‘심(心)’과 ‘날 생(生)’이 합쳐져 ‘마음에서 생겨난 욕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순자의 성은 기본적으로 맹자와 비슷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양자에 차이가 생겨난다. 즉 맹자에게 성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도덕적 감정 욕구’를 말한다면, 순자는 ‘생리적‧감각적 욕구’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리적‧감각적 욕구란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고 싶고, 좋으면 갖고 싫으면 피하고 싶은’ 일종의 본능에 해당한다. 그런데 본능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배고플 때 먹고 싶고 졸릴 때 자고 싶은 것이 가치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자가 본능을 굳이 악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것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자의 관점에서 본능 자체는 중립적일 수 있으나, 인간 사회에서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점차 증폭된다. 다시 말해 허기가 심해지고 식욕이 강해지면 타인의 음식을 빼앗아서라도 먹으려 하고, 성욕이 강해지면 타인을 강제로 범하게 된다. 또한 소유욕이 강해지면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다.
이처럼 본능은 내‧외부의 자극으로 강렬해지고 그 욕구가 지나치면 타인을 해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위태로운 조건이다. 바로 이 위험성을 경계하여 순자는 본성을 악하다고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악에 대한 순자의 규정을 이해한 뒤에 본문을 천천히 읽어보면, 그가 성악설을 주장했어도 인간을 구제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에서 그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감정 욕구가 강해질 때 일어나는 사회적 혼란을 차례로 열거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과하게 주장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충돌하여 갈등이 일어난다. 또한 인간의 본능 가운데는 인정욕구도 있는데, 그것이 충족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박탈되는 감정을 느끼면 시기나 질투를 일으켜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또한 인간에게는 눈과 귀, 코, 입 등의 감각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마음에서 감정 욕구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면,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타자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해를 끼칠 수 있다.
개개인 서로가 자신의 과열된 욕망을 충족하려 한다면 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되며, 이는 상해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능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태생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이 자연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충돌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면, 사회 질서와 안정은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함에도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스승과 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저마다 악하게 태어나 자연 상태에서는 필연적으로 투쟁했지만, 인류 가운데 아주 드물게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자가 등장했다. 이 극소수의 사람이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규범을 정하여 제도화하고 군중을 절제의 길로 인도하여,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녕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순자는 하늘로부터 탁월한 능력을 받은 사람이 인류의 스승이자 군주가 되어 예의와 법도를 제정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가르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알게 될 것이며, 서로가 배려와 양보를 통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맹자와 달리 인간이 도덕적 감정 욕구를 타고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본능으로 인해 위태롭다고 주장했지만, 교육을 통해 인간이 선한 존재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순자는 스승과 규범,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한 유학자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교화, 규범, 본능, 성악설, 순자, 스승, 예법
전후맥락
여기서 소개할 본문은 「성악설(性惡說)」의 첫 단락이다. 본문에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의와 법도로 제어하여 그를 선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교육론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셀4]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는 관계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고전본문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것이 선하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다.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를 따르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양보가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따르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다치게 하는 경우가 생기며 충심과 믿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모습을 좋아하는데, 이를 따르기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법도가 없어진다.
그러한 까닭에 사람이 자기 본성을 따르고 감정만 따른다면 반드시 싸우고 뺏게 되며, 분수를 어기고 법도를 어지럽혀 난폭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의 교화와 예의의 계도가 있는 뒤에야 비로소 서로 양보하고 법도를 따르게 되어 다스려질 것이다. 이로써 볼 때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하다는 말은 거짓이다.
[출전] 순자, 『순자』, 「성악」
토론하기
(1) 맹자와 순자는 성(性)이라는 개념을 서로 다르게 정의를 내린다. 정의의 차이가 단순한 용어 해석을 넘어서, 인간관과 도덕관, 교육관, 정치관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2) 순자는 배고픔·졸음·소유욕·성욕 등 본능을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욕구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악(惡)’이라 부른 이유는 그 ‘위험성’에서 찾았다. 즉 욕망이 방치되면 과열되고 그 결과 사회적 갈등·범죄·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순자가 사용하는 악 개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악의 이미지와 얼마나 다르며, 다르다면 오늘날 악의 이미지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떠오르는 이유를 논의해 보자.
(3) 순자는 인간의 본성 즉 본능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변화될 수 있다고 보고, 스승과 교육을 신뢰한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 교육 체계가 기본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음에도 학생들의 충동이 잘 제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그 요인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사단(四端)이라는 도덕적 감정 욕구로 보았기에 인간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순자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본성을 악하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순자의 본성 개념이 맹자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성은 ‘마음 ‘심(心)’과 ‘날 생(生)’이 합쳐져 ‘마음에서 생겨난 욕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순자의 성은 기본적으로 맹자와 비슷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양자에 차이가 생겨난다. 즉 맹자에게 성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도덕적 감정 욕구’를 말한다면, 순자는 ‘생리적‧감각적 욕구’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생리적‧감각적 욕구란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고 싶고, 좋으면 갖고 싫으면 피하고 싶은’ 일종의 본능에 해당한다. 그런데 본능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배고플 때 먹고 싶고 졸릴 때 자고 싶은 것이 가치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자가 본능을 굳이 악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것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자의 관점에서 본능 자체는 중립적일 수 있으나, 인간 사회에서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점차 증폭된다. 다시 말해 허기가 심해지고 식욕이 강해지면 타인의 음식을 빼앗아서라도 먹으려 하고, 성욕이 강해지면 타인을 강제로 범하게 된다. 또한 소유욕이 강해지면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다.
이처럼 본능은 내‧외부의 자극으로 강렬해지고 그 욕구가 지나치면 타인을 해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위태로운 조건이다. 바로 이 위험성을 경계하여 순자는 본성을 악하다고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악에 대한 순자의 규정을 이해한 뒤에 본문을 천천히 읽어보면, 그가 성악설을 주장했어도 인간을 구제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에서 그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감정 욕구가 강해질 때 일어나는 사회적 혼란을 차례로 열거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과하게 주장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이익과 충돌하여 갈등이 일어난다. 또한 인간의 본능 가운데는 인정욕구도 있는데, 그것이 충족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박탈되는 감정을 느끼면 시기나 질투를 일으켜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또한 인간에게는 눈과 귀, 코, 입 등의 감각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마음에서 감정 욕구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면,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타자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해를 끼칠 수 있다.
개개인 서로가 자신의 과열된 욕망을 충족하려 한다면 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되며, 이는 상해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능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태생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이 자연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충돌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면, 사회 질서와 안정은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함에도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스승과 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저마다 악하게 태어나 자연 상태에서는 필연적으로 투쟁했지만, 인류 가운데 아주 드물게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자가 등장했다. 이 극소수의 사람이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규범을 정하여 제도화하고 군중을 절제의 길로 인도하여, 사회의 질서와 개인의 안녕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순자는 하늘로부터 탁월한 능력을 받은 사람이 인류의 스승이자 군주가 되어 예의와 법도를 제정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가르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알게 될 것이며, 서로가 배려와 양보를 통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맹자와 달리 인간이 도덕적 감정 욕구를 타고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본능으로 인해 위태롭다고 주장했지만, 교육을 통해 인간이 선한 존재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순자는 스승과 규범,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한 유학자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교화, 규범, 본능, 성악설, 순자, 스승, 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