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우화는 『장자』의 「제물론」에 등장한다. 편명인 ‘제물론(齊物論)’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유력한 설 중 하나가 우열이나 시비의 관점을 벗어나 만물의 가치를 대등하게 본다는 것이다. 이 글 전후에도 유사한 에피소드가 소개되며 우주와 만물부터 주장이나 이론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시비(是非)와 선악(善惡) 미추(美醜) 등을 판별하는 절대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글의 도입부는 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질문하는 말로 시작한다. 설결은 왕예에게 사물의 가치가 대등하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나 왕예는 “내가 어찌 알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다시 설결이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왕예는 동일한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설결이 답답한 마음에 “선생님께서는 사물에 대해 아시는 바가 없습니까.”라며 대답을 재촉하자, 왕예는 잘 모르지만 한번 대답해 보겠다고 말하며 설결에게 질문을 던지고 깨달음을 준다.
고전본문
내 그대에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나고 반신불수가 되어 끝내는 죽게 된다네. 그런데 미꾸라지도 그러하던가.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 무서워 덜덜 떠는데, 어디 원숭이도 무서워하던가. 그럼 이 셋 중에 누가 어느 곳이 올바른 장소인지를 아는 것인가. 또한 사람은 소와 양, 개돼지를 잡아먹고 고라니와 사슴은 부드러운 풀을 뜯고 지네는 뱀을 잘 먹으며, 솔개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지. 이 네 종류 중에 누가 올바른 맛을 알고 있는가.
긴꼬리원숭이는 빨간코원숭이와 짝을 짓고 고라니는 사슴과 교미를 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어울려 놀지. 세상 사람은 모장(毛嬙)과 이희(麗姬)를 미인이라고 칭송하지. 하지만 물고기들이 그녀들을 보면 물속 깊이 숨어버리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고라니와 사슴은 후다닥 달아나지. 저들 네 종류 가운데 누가 천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안다고 하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사랑과 정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네. 그러니 어찌 내가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것과 나쁜 것, 옳고 그름 등을 판별할 수 있겠는가.
[출전]『장자』
토론하기
(1) 장자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오늘날 ‘보편 진리’나 ‘보편 가치’를 주장할 때, 실제로는 어떤 문화적·시간적·공간적 한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관점을 인정한다면, 정
치·도덕·과학 분야에서 보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거나 적용해야 할지 논의해 보자.
(2) 내가 원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을 상대가 실행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혐오나 불쾌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은 개인이 어디까지 감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
양성을 용인하고, 더 한 걸음 나아가 존중할 수 있을까. 아울러 이러한 혐오와 불쾌의 감정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논의해 보자.
(3) 장자는 “사랑과 정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모호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인 도덕·윤리의 기준을 세우려 할 때 어떤 한계와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
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태도나 방법을 취해야 할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만물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는 진리를 설결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 왕예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잠자리를 언급하고, 이어서 음식과 외모에 대한 취향을 차례로 언급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편안한 잠자리가 침실이라고 한다면, 미꾸라지는 습지가 그들에게 최고의 잠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침실이 아닌 습지에서 잠을 잔다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저체온증이 유발되거나 수포성 피부염, 곰팡이성 피부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숭이들에게는 나무 위가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인 반면, 인간에게 그곳은 언제 아래로 떨어져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장소이다. 이런 곳에서 인간이 숙면을 취할 리가 만무하다.
식성이나 미각 역시 상대적이다. 사람은 도축한 고기를 즐겨 먹지만 고라니와 사슴은 부드러운 풀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최상급 고기를 제공한들, 그들에게는 부드러운 잡초 한 포기만 못한 것이며 먹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네는 뱀을 즐겨 먹고 솔개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혐오식품으로 분류한다.
같은 포유류끼리도 종이 다르면 이처럼 식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인간종 안에서도 개체 간에도 서로 선호하는 음식이 다르다. 어떤 이는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지만 다른 이는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을 즐긴다. 또 어떤 이는 육식을 즐기지만 다른 이는 채식을 선호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도 종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개체마다 취향이 다르다. 원숭이는 그 무리 중에서 아름다운 상대에게 구애하고, 미꾸라지는 수중 동물 가운데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과 짝을 짓는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정평이 난 미녀를 보면 그렇게 느끼기는커녕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달아난다.
그러므로 시대와 지역, 부류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기준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 개체 등에 따라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진리 즉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우리의 앎은 항상 상대적이며 따라서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장자의 진리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다원성, 보편 기준의 부재, 상대주의, 장자, 탈인간중심주의
전후맥락
이 우화는 『장자』의 「제물론」에 등장한다. 편명인 ‘제물론(齊物論)’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유력한 설 중 하나가 우열이나 시비의 관점을 벗어나 만물의 가치를 대등하게 본다는 것이다. 이 글 전후에도 유사한 에피소드가 소개되며 우주와 만물부터 주장이나 이론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시비(是非)와 선악(善惡) 미추(美醜) 등을 판별하는 절대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글의 도입부는 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질문하는 말로 시작한다. 설결은 왕예에게 사물의 가치가 대등하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나 왕예는 “내가 어찌 알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다시 설결이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왕예는 동일한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설결이 답답한 마음에 “선생님께서는 사물에 대해 아시는 바가 없습니까.”라며 대답을 재촉하자, 왕예는 잘 모르지만 한번 대답해 보겠다고 말하며 설결에게 질문을 던지고 깨달음을 준다.
고전본문
내 그대에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나고 반신불수가 되어 끝내는 죽게 된다네. 그런데 미꾸라지도 그러하던가.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가면 무서워 덜덜 떠는데, 어디 원숭이도 무서워하던가. 그럼 이 셋 중에 누가 어느 곳이 올바른 장소인지를 아는 것인가. 또한 사람은 소와 양, 개돼지를 잡아먹고 고라니와 사슴은 부드러운 풀을 뜯고 지네는 뱀을 잘 먹으며, 솔개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지. 이 네 종류 중에 누가 올바른 맛을 알고 있는가.
긴꼬리원숭이는 빨간코원숭이와 짝을 짓고 고라니는 사슴과 교미를 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어울려 놀지. 세상 사람은 모장(毛嬙)과 이희(麗姬)를 미인이라고 칭송하지. 하지만 물고기들이 그녀들을 보면 물속 깊이 숨어버리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고라니와 사슴은 후다닥 달아나지. 저들 네 종류 가운데 누가 천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안다고 하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사랑과 정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모호하기 짝이 없다네. 그러니 어찌 내가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것과 나쁜 것, 옳고 그름 등을 판별할 수 있겠는가.
[출전]『장자』
토론하기
(1) 장자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오늘날 ‘보편 진리’나 ‘보편 가치’를 주장할 때, 실제로는 어떤 문화적·시간적·공간적 한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관점을 인정한다면, 정
치·도덕·과학 분야에서 보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거나 적용해야 할지 논의해 보자.
(2) 내가 원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을 상대가 실행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혐오나 불쾌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은 개인이 어디까지 감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
양성을 용인하고, 더 한 걸음 나아가 존중할 수 있을까. 아울러 이러한 혐오와 불쾌의 감정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논의해 보자.
(3) 장자는 “사랑과 정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모호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인 도덕·윤리의 기준을 세우려 할 때 어떤 한계와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
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태도나 방법을 취해야 할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만물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는 진리를 설결에게 깨우쳐 주기 위해, 왕예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위해 먼저 잠자리를 언급하고, 이어서 음식과 외모에 대한 취향을 차례로 언급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편안한 잠자리가 침실이라고 한다면, 미꾸라지는 습지가 그들에게 최고의 잠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침실이 아닌 습지에서 잠을 잔다면,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저체온증이 유발되거나 수포성 피부염, 곰팡이성 피부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숭이들에게는 나무 위가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인 반면, 인간에게 그곳은 언제 아래로 떨어져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장소이다. 이런 곳에서 인간이 숙면을 취할 리가 만무하다.
식성이나 미각 역시 상대적이다. 사람은 도축한 고기를 즐겨 먹지만 고라니와 사슴은 부드러운 풀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최상급 고기를 제공한들, 그들에게는 부드러운 잡초 한 포기만 못한 것이며 먹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네는 뱀을 즐겨 먹고 솔개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을 혐오식품으로 분류한다.
같은 포유류끼리도 종이 다르면 이처럼 식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인간종 안에서도 개체 간에도 서로 선호하는 음식이 다르다. 어떤 이는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지만 다른 이는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을 즐긴다. 또 어떤 이는 육식을 즐기지만 다른 이는 채식을 선호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도 종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개체마다 취향이 다르다. 원숭이는 그 무리 중에서 아름다운 상대에게 구애하고, 미꾸라지는 수중 동물 가운데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과 짝을 짓는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정평이 난 미녀를 보면 그렇게 느끼기는커녕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고 경계하며 달아난다.
그러므로 시대와 지역, 부류를 초월하는 절대불변의 기준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 개체 등에 따라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진리 즉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우리의 앎은 항상 상대적이며 따라서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장자의 진리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다원성, 보편 기준의 부재, 상대주의, 장자, 탈인간중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