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우화는 『장자』의 「지락(至樂)」에 수록되어 있다. ‘지락’은 말그대로 ‘지극한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논의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우화 역시 독립적으로 완결된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후의 다른 에피소드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다만 『장자』의 다른 편인 「대종사(大宗師)」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대종사」에 등장하는 우화는 공자와 안회(顔回)의 대화로 구성된 글로, 대화에서 안회는 맹손재(孟孫才)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곡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서러움을 나타내지 않은 이유를 공자에게 질문한다.
공자는 맹손재를 진리에 다가선 사람이라고 상찬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가 볼 때 맹손재는 죽음을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한 가지 현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고 변화의 원리를 파악하여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우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와 같이 행동한 것이다.
고전본문
장자의 아내가 죽어 친구 혜자가 조문을 갔는데,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북을 두드리며 흥겹게 노래하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자네의 부인은 자네와 함께 살며 자식을 키우다가 늙어 죽었네. 자네가 큰 소리로 울지 않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북까지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태도는 너무하지 않은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이 사람이 막 숨을 거두었을 때는 내 어찌 슬프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가 처음 존재할 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본래는 생명이 없었네.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디 형체조차 없었네.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氣, *역자 주: 우주와 생명의 에너지)조차 없었네. 태초의 혼돈이 변하여 기가 있게 되었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으며,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던 것이라네.
그녀는 이제 다시 변하여 죽음으로 돌아간 것이니, 이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운행과 같은 것일세. 내 아내가 이제야 천지라는 거대한 방에서 편히 잠들었는데,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계속해서 울부짖는다면, 이는 하늘의 법칙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래서 슬피 울기를 그만둔 것이라네.”
[출전]『장자』 중에서
토론하기
(1)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은 슬픔과 애도의 대상이지만, 장자는 우주적 지평에서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고 기뻐하기까지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유교 전통의 관성이
남아있으며, 친족과 지인의 죽음에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장례 문화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문화가 장자의 죽음 관념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양자를 어떻게 조율하여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2) 장자는 혼돈에서 형성된 기가 형태와 생명을 낳고 생명이 혼돈으로 되돌아가는 순환과정을 언급하며, 죽음을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삶의 연속으로 긍정한다. 우리가 이러
한 상대주의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면, 가까운 이의 죽음을 대할 때 슬픔을 좀 더 완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논의해 보고, 장자와 같은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고 본다면 그
이유도 생각해 보자.
(3)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장자는 ‘죽음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라는 이견을 제시한다. 생사에 대한 강력한 호불호의 기제인 ‘본능’과 ‘생사에는
호불호가 없다는 상대주의 태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장자는 그의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노년까지 함께 살았다. 그럼에도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슬퍼하거나 곡을 하기는커녕 북을 치고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문상을 온 친구 혜자의 눈에는 기괴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는 장자가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평생을 함께 한 고인에 대한 예우로서 부적절한 감정 표현이자 태도임을 반문을 통해 지적한 것이다.
독자의 시선에서도 장자의 태도는 낯설고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상갓집을 방문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많은 이들이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애도하는 모습이 일반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자의 핀잔에 장자는 죽음조차도 나쁘지 않은 것, 심지어 삶만큼 좋은 것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제시한다. 그 역시 피와 살로 구성된 인간이기에 처음에는 슬픔의 감정이 몰려왔지만, 시야를 최대한 확장하여 우주의 생성과 변화 전체를 조망한 결과로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 것이다.
장자의 설명에 따르면 태초에는 혼돈만이 있었다. 혼돈이 변하여 우주와 생명의 에너지인 기가 생겨났고, 기가 뭉쳐 사물의 형태가 있게 되었다. 생명과 형태를 가진 개체로 변한 사물 중 하나가 인간이고 그중에서도 내 아내가 되었다. 기가 뭉쳐 인간이 생겨난 다음에 다시 그 기가 해체되어 소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마치 사계절의 순환과 같은 자연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혼돈에서 태어나 생명체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다시 혼돈으로 돌아간 것일 뿐이니, 한평생 희노애락의 삶을 살다 우주로 되돌아가 편안히 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자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자연의 변화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슬퍼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고단한 삶을 다하고 평안을 얻은 것에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삶을 원하고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능 중 가장 강렬한 욕구이다. 이런 까닭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한다. 그런데 장자는 죽음이 과연 나쁘고 싫은 것인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본능의 차원에서 죽음은 싫고 무서운 것일 수 있으나 우리의 시야를 최대로 확장하여 삶 이전부터 이후까지를 조망한다면, 죽음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장자의 통찰은 누구나 주변에서 겪게 되고 언젠가는 자신도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죽음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이 장자처럼 상대주의 관점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그 고통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이 큰 슬픔과 고통으로 다가올 때 잠시 장자와 같은 지평에 사서 죽음을 조망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면, 감정이 한결 더 이완되고 편안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키워드
본능과 통찰, 삶과 죽음, 상대주의, 생성과 소멸, 자연의 순환, 죽음의 수용
전후맥락
이 우화는 『장자』의 「지락(至樂)」에 수록되어 있다. ‘지락’은 말그대로 ‘지극한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논의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우화 역시 독립적으로 완결된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후의 다른 에피소드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다만 『장자』의 다른 편인 「대종사(大宗師)」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대종사」에 등장하는 우화는 공자와 안회(顔回)의 대화로 구성된 글로, 대화에서 안회는 맹손재(孟孫才)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곡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서러움을 나타내지 않은 이유를 공자에게 질문한다.
공자는 맹손재를 진리에 다가선 사람이라고 상찬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가 볼 때 맹손재는 죽음을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한 가지 현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고 변화의 원리를 파악하여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우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와 같이 행동한 것이다.
고전본문
장자의 아내가 죽어 친구 혜자가 조문을 갔는데,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북을 두드리며 흥겹게 노래하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자네의 부인은 자네와 함께 살며 자식을 키우다가 늙어 죽었네. 자네가 큰 소리로 울지 않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북까지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 태도는 너무하지 않은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이 사람이 막 숨을 거두었을 때는 내 어찌 슬프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가 처음 존재할 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본래는 생명이 없었네.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디 형체조차 없었네.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氣, *역자 주: 우주와 생명의 에너지)조차 없었네. 태초의 혼돈이 변하여 기가 있게 되었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으며,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던 것이라네.
그녀는 이제 다시 변하여 죽음으로 돌아간 것이니, 이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운행과 같은 것일세. 내 아내가 이제야 천지라는 거대한 방에서 편히 잠들었는데, 내가 소리를 지르며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계속해서 울부짖는다면, 이는 하늘의 법칙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래서 슬피 울기를 그만둔 것이라네.”
[출전]『장자』 중에서
토론하기
(1)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은 슬픔과 애도의 대상이지만, 장자는 우주적 지평에서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고 기뻐하기까지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유교 전통의 관성이
남아있으며, 친족과 지인의 죽음에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장례 문화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문화가 장자의 죽음 관념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양자를 어떻게 조율하여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2) 장자는 혼돈에서 형성된 기가 형태와 생명을 낳고 생명이 혼돈으로 되돌아가는 순환과정을 언급하며, 죽음을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삶의 연속으로 긍정한다. 우리가 이러
한 상대주의적 관점을 얻을 수 있다면, 가까운 이의 죽음을 대할 때 슬픔을 좀 더 완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논의해 보고, 장자와 같은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고 본다면 그
이유도 생각해 보자.
(3)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장자는 ‘죽음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라는 이견을 제시한다. 생사에 대한 강력한 호불호의 기제인 ‘본능’과 ‘생사에는
호불호가 없다는 상대주의 태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장자는 그의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노년까지 함께 살았다. 그럼에도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슬퍼하거나 곡을 하기는커녕 북을 치고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문상을 온 친구 혜자의 눈에는 기괴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는 장자가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평생을 함께 한 고인에 대한 예우로서 부적절한 감정 표현이자 태도임을 반문을 통해 지적한 것이다.
독자의 시선에서도 장자의 태도는 낯설고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상갓집을 방문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많은 이들이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애도하는 모습이 일반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자의 핀잔에 장자는 죽음조차도 나쁘지 않은 것, 심지어 삶만큼 좋은 것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제시한다. 그 역시 피와 살로 구성된 인간이기에 처음에는 슬픔의 감정이 몰려왔지만, 시야를 최대한 확장하여 우주의 생성과 변화 전체를 조망한 결과로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 것이다.
장자의 설명에 따르면 태초에는 혼돈만이 있었다. 혼돈이 변하여 우주와 생명의 에너지인 기가 생겨났고, 기가 뭉쳐 사물의 형태가 있게 되었다. 생명과 형태를 가진 개체로 변한 사물 중 하나가 인간이고 그중에서도 내 아내가 되었다. 기가 뭉쳐 인간이 생겨난 다음에 다시 그 기가 해체되어 소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마치 사계절의 순환과 같은 자연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혼돈에서 태어나 생명체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다시 혼돈으로 돌아간 것일 뿐이니, 한평생 희노애락의 삶을 살다 우주로 되돌아가 편안히 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자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자연의 변화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슬퍼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고단한 삶을 다하고 평안을 얻은 것에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삶을 원하고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능 중 가장 강렬한 욕구이다. 이런 까닭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한다. 그런데 장자는 죽음이 과연 나쁘고 싫은 것인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본능의 차원에서 죽음은 싫고 무서운 것일 수 있으나 우리의 시야를 최대로 확장하여 삶 이전부터 이후까지를 조망한다면, 죽음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장자의 통찰은 누구나 주변에서 겪게 되고 언젠가는 자신도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죽음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이 장자처럼 상대주의 관점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그 고통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이 큰 슬픔과 고통으로 다가올 때 잠시 장자와 같은 지평에 사서 죽음을 조망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면, 감정이 한결 더 이완되고 편안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키워드
본능과 통찰, 삶과 죽음, 상대주의, 생성과 소멸, 자연의 순환, 죽음의 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