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의산문답」에 등장하는 허자와 실옹은 가상 인물로서, 전자는 전통 성리학을 옹호하고 후자는 전통 지식을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 지식인을 대표한다. 허자는 세상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방대하고 심오한 학문 세계를 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중, 북경에서 의무려산에 사는 실옹이 현자라는 말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
실옹은 허자와의 대화에서 예의로 점철된 성리학의 언행을 거짓으로 간주하고, 성리학의 정통의식과 이단 비판 역시 그 이면에는 강한 과시욕과 호승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어서 성리학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다고 주장하는 허자의 주장에, 실옹은 인간의 관점에서 그 말은 옳지만 다른 부류의 관점에서 보면 틀린 것이며, 더 나아가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물이 귀한 것이다.
허자는 그의 말에 봉황과 용, 시초와 울금초, 소나무와 잣나무가 상서로운 영물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날짐승과 초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반론한다. 이들은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어진 마음이 없고 세상을 다스릴 지혜도 없으며, 예악과 형벌과 같은 문명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달리 세상을 다스리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옹은 허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그의 말을 재차 반박한다. 즉 영물들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예악과 형벌을 갖추고 자연을 운용한다. 심지어 인간은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고 세상을 다스릴 때 만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그들의 병법과 예의, 제작은 개미나 박쥐, 거미로부터 모방한 것이다. 성인(聖人)이 만물을 스승으로 삼는 것도 모방을 통해 문명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옹은 반론을 마친 다음, 인간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볼 것을 거듭 강조한다.
고전본문
(허자가 사람과 만물의 차이를 대답하자,) 실옹이 말했다.
“아, 그대의 말과 같다면 사람이 사물과 다른 점은 거의 없다. 털과 피부(*역자 주: 초목의 경우는 솜털과 표피)로 구성된 몸체와 정액이나 혈액의 감응은 초목과 사람이 동일한데, 하물며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그대에게 다시 묻겠다. 생물의 종류에는 셋이 있으니 사람과 짐승, 초목이 그것이다. 초목을 거꾸로 자라는 까닭에 의식[知]은 있어도 자각[覺]이 없으며, 짐승은 옆으로 자라는 까닭에 자각은 있어도 지혜[慧]가 없다. 이 세 종의 생물이 한없이 어지럽게 뒤엉켜 서로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데, 귀천에 등급이 있겠는가.”
허자가 대답했다.
“천지 간 살아있는 사물 중 사람만이 귀합니다. 저 짐승이나 초목은 지혜도 자각도 없으며 예법도 의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귀하고 초목은 짐승보다 천한 것입니다.”
실옹은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진실로 ‘사람’이다.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이다. 떼를 지어 다니며 서로를 불러 먹이는 것은 짐승의 예의이고, 떨기로 나서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은 천하지만, 사물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사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만물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출전] 홍대용, 『의산문답』 중에서
토론하기
(1) 성리학을 대변하는 허자는 인간만이 지혜와 예의를 갖춘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실옹은 동물과 식물도 각자의 방식으로 ‘예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동물권에 대한 논
의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얼마만큼의 권리와 지위를 차별적으로 가질 수 있는지 논의해 보자.
(2) 인간 중심의 문명관은 지구 생태를 파계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은 물론, 기후변화로 인해 그 고통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도 고스란히 돌려받고
있다. 문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인류가 지구생태계와 공존할 방안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유학 전통에서 인간의 지위는 만물의 정점에 있다. 성리학의 우주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기 가운데 가장 맑고 가벼운 것으로 빚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탁하고 무거운 기로 구성된 여타 사물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하다. 인간의 기가 맑고 가볍다는 말은 그의 마음도 동일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가장 명징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만물 중 가장 탁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의 명징성뿐만 아니라 만물의 외형을 근거로 인간의 우월성을 제시했다. 그 기준은 ‘하늘의 형태와 얼마나 닮았는가’, 그리고 ‘하늘과 얼마나 근접한가’였다. 예를 들어 인간의 머리는 둥글며 신체에서 가장 높이 달려 있기에 하늘과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또한 하늘과 근거리에 있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과 달리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은 머리와 몸이 옆으로 자란다. 이들은 하늘을 등지고 땅을 내려보기 때문에 인간과 비교하면 하늘보다는 땅과 가깝다. 초목은 머리 즉 뿌리를 땅에 박고 있기에 완전히 하늘과 등지고 있다. 그러므로 피와 살 혹은 솜털과 표피가 있고 정액과 혈액 등이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짐승, 초목은 공통 분모를 갖지만, 인간만이 고차원적 지성과 감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 중 가장 우월하다.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상정된 허자 역시 성리학의 인간 중심사상을 지지하고, 인간만이 지혜와 자각, 예의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옹은 초목과 동물에게도 그들 나름의 예의가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의 기준으로 이들의 귀천을 재단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에 따르면 오륜과 오사는 사람의 예의에 해당한다.
여기서 오륜은 어버이와 자신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주와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 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부부유별(夫婦有別), 나이가 많은 적음에 따라 순서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친구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의미한다. 오사는 ‘얼굴을 단정하게[貌曰恭]’ 하고 ‘말은 바르게[言曰從]’ 하며, ‘보는 것은 밝게[視曰明]’ 하고 ‘듣는 것은 자세히[聽曰聰]’ 하며, ‘생각은 투철하게[思曰睿]’ 하는 것을 말한다.
오륜과 오사가 인간의 예의라면, 군집 생활을 하며 서로를 불러서 먹이는 것은 짐승의 예의라 할 수 있다. 또한 떨기로 나서 무성하게 잎과 꽃을 피운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실옹의 이러한 반론은 하늘의 시야에서 짐승과 초목을 조망하면 이들 역시 이른바 ‘예의’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으며, 그들 역시 인간만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키워드
상대주의, 성리학, 실용, 의산문답, 인물균(人物均), 허자, 홍대용,
전후맥락
「의산문답」에 등장하는 허자와 실옹은 가상 인물로서, 전자는 전통 성리학을 옹호하고 후자는 전통 지식을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 지식인을 대표한다. 허자는 세상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방대하고 심오한 학문 세계를 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중, 북경에서 의무려산에 사는 실옹이 현자라는 말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
실옹은 허자와의 대화에서 예의로 점철된 성리학의 언행을 거짓으로 간주하고, 성리학의 정통의식과 이단 비판 역시 그 이면에는 강한 과시욕과 호승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어서 성리학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다고 주장하는 허자의 주장에, 실옹은 인간의 관점에서 그 말은 옳지만 다른 부류의 관점에서 보면 틀린 것이며, 더 나아가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물이 귀한 것이다.
허자는 그의 말에 봉황과 용, 시초와 울금초, 소나무와 잣나무가 상서로운 영물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날짐승과 초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반론한다. 이들은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어진 마음이 없고 세상을 다스릴 지혜도 없으며, 예악과 형벌과 같은 문명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달리 세상을 다스리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옹은 허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그의 말을 재차 반박한다. 즉 영물들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예악과 형벌을 갖추고 자연을 운용한다. 심지어 인간은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고 세상을 다스릴 때 만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그들의 병법과 예의, 제작은 개미나 박쥐, 거미로부터 모방한 것이다. 성인(聖人)이 만물을 스승으로 삼는 것도 모방을 통해 문명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옹은 반론을 마친 다음, 인간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볼 것을 거듭 강조한다.
고전본문
(허자가 사람과 만물의 차이를 대답하자,) 실옹이 말했다.
“아, 그대의 말과 같다면 사람이 사물과 다른 점은 거의 없다. 털과 피부(*역자 주: 초목의 경우는 솜털과 표피)로 구성된 몸체와 정액이나 혈액의 감응은 초목과 사람이 동일한데, 하물며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그대에게 다시 묻겠다. 생물의 종류에는 셋이 있으니 사람과 짐승, 초목이 그것이다. 초목을 거꾸로 자라는 까닭에 의식[知]은 있어도 자각[覺]이 없으며, 짐승은 옆으로 자라는 까닭에 자각은 있어도 지혜[慧]가 없다. 이 세 종의 생물이 한없이 어지럽게 뒤엉켜 서로 망하게도 하고 흥하게도 하는데, 귀천에 등급이 있겠는가.”
허자가 대답했다.
“천지 간 살아있는 사물 중 사람만이 귀합니다. 저 짐승이나 초목은 지혜도 자각도 없으며 예법도 의리도 없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귀하고 초목은 짐승보다 천한 것입니다.”
실옹은 고개를 젖히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진실로 ‘사람’이다.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이다. 떼를 지어 다니며 서로를 불러 먹이는 것은 짐승의 예의이고, 떨기로 나서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사물은 천하지만, 사물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사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만물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출전] 홍대용, 『의산문답』 중에서
토론하기
(1) 성리학을 대변하는 허자는 인간만이 지혜와 예의를 갖춘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실옹은 동물과 식물도 각자의 방식으로 ‘예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동물권에 대한 논
의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얼마만큼의 권리와 지위를 차별적으로 가질 수 있는지 논의해 보자.
(2) 인간 중심의 문명관은 지구 생태를 파계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은 물론, 기후변화로 인해 그 고통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도 고스란히 돌려받고
있다. 문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인류가 지구생태계와 공존할 방안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유학 전통에서 인간의 지위는 만물의 정점에 있다. 성리학의 우주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기 가운데 가장 맑고 가벼운 것으로 빚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탁하고 무거운 기로 구성된 여타 사물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하다. 인간의 기가 맑고 가볍다는 말은 그의 마음도 동일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가장 명징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만물 중 가장 탁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의 명징성뿐만 아니라 만물의 외형을 근거로 인간의 우월성을 제시했다. 그 기준은 ‘하늘의 형태와 얼마나 닮았는가’, 그리고 ‘하늘과 얼마나 근접한가’였다. 예를 들어 인간의 머리는 둥글며 신체에서 가장 높이 달려 있기에 하늘과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또한 하늘과 근거리에 있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과 달리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은 머리와 몸이 옆으로 자란다. 이들은 하늘을 등지고 땅을 내려보기 때문에 인간과 비교하면 하늘보다는 땅과 가깝다. 초목은 머리 즉 뿌리를 땅에 박고 있기에 완전히 하늘과 등지고 있다. 그러므로 피와 살 혹은 솜털과 표피가 있고 정액과 혈액 등이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짐승, 초목은 공통 분모를 갖지만, 인간만이 고차원적 지성과 감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 중 가장 우월하다.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상정된 허자 역시 성리학의 인간 중심사상을 지지하고, 인간만이 지혜와 자각, 예의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옹은 초목과 동물에게도 그들 나름의 예의가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의 기준으로 이들의 귀천을 재단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에 따르면 오륜과 오사는 사람의 예의에 해당한다.
여기서 오륜은 어버이와 자신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주와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 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부부유별(夫婦有別), 나이가 많은 적음에 따라 순서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 친구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의미한다. 오사는 ‘얼굴을 단정하게[貌曰恭]’ 하고 ‘말은 바르게[言曰從]’ 하며, ‘보는 것은 밝게[視曰明]’ 하고 ‘듣는 것은 자세히[聽曰聰]’ 하며, ‘생각은 투철하게[思曰睿]’ 하는 것을 말한다.
오륜과 오사가 인간의 예의라면, 군집 생활을 하며 서로를 불러서 먹이는 것은 짐승의 예의라 할 수 있다. 또한 떨기로 나서 무성하게 잎과 꽃을 피운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실옹의 이러한 반론은 하늘의 시야에서 짐승과 초목을 조망하면 이들 역시 이른바 ‘예의’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으며, 그들 역시 인간만큼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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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 성리학, 실용, 의산문답, 인물균(人物均), 허자, 홍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