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허자가 사람과 사물이 생성된 근본을 묻자, 실옹은 태허에 가득 찬 기가 엉키고 모여 천지와 만물을 만들었다고 언급한 후, 지구설과 지전설이 진리임을 설파한다. 그는 월식(月蝕) 때 달에 드리워진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사실을 근거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말은 들은 허자가 지구가 둥글다면 사람들이 미끄러져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를 묻자, 실옹은 기(氣)의 구심력을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실옹에 따르면 지구의 둘레는 구만리로, 한 바퀴 도는 데 스물네 시간이 걸린다. 구만리나 되는 긴 둘레로 이십사 시간 안에 회전하려면 지구는 번개나 포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땅이 매우 빠른 속도로 돌게 되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하늘의 기와 격렬하게 부딪치면서, 기가 지상에 쌓이게 된다. 그리고 지면에 모여든 기는 구심력을 발휘하여 만물을 지면으로 끌어당긴다. 이것이 바로 둥근 지구가 빠른 속도로 회전함에도 사람들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지표면에 설 수 있는 이유이다.
실옹은 기의 구심력을 근거로 지구설과 지전설을 입증한 뒤, 이를 확장하여 지구 중심설을 부정하고 우주에 중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지구와 가까운 일곱 개의 행성 가운데 해와 달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지만, 나머지 다섯 별 즉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태양을 둘러싸고 있다. 또한 지구를 비롯한 일곱 행성은 광대한 은하에 속해 있으며, 또 이 은하도 무수히 많다는 점에서 우주는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하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에는 무수한 은하계가 존재하고, 또 은하계마다 무수한 행성이 흩어져 자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모든 행성은 스스로가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적 관점에서 우주를 보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처럼 보이지만, 우주의 지평에서 지구를 조망하면 이것은 거대한 대지에 흩뿌려진 한 톨의 먼지처럼 보잘 것 없다.
고전본문
허자가 질문했다.
“공자가 『춘추(春秋) 』(春秋) 를 지으면서 중국을 안으로 삼고, 주변의 오랑캐는 밖으로 삼았습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이 이처럼 엄격한데, 지금 선생께서는 (오랑캐의 운수가 왕성한 것을) ‘사람의 일이 감응한 것이오, 하늘의 때가 가져온 필연이다’라고 하시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실옹이 대답했다.
“하늘이 낳고 땅이 길러주니,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가 사람이다. 여럿 중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가 군주이며, 문을 여러 겹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영지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모두가 나라이다. 장보(章甫)건 위모(委貌)건, 문신(文身)이건 조제(雕題)건 간에 모두가 풍속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팎의 구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저마다 자기 나라 사람과 친하고 자신의 군주를 높이며 자기 나라를 지키고 자신의 풍속을 편안히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마찬가지다.
천지가 변하면서 사람과 사물이 많아졌고 사람과 사물이 많아지면서 ‘타자’와 ‘나’가 나타났으며, ‘타자’와 ‘나’가 나타나면서 안과 밖이 구분되었다. 오장육부와 팔다리는 한 몸의 안과 밖이요, 자신과 처자식은 한 가정의 안과 밖이다. 형제와 친척은 한 가문의 안과 밖이요, 이웃 마을과 주변 지역은 한 나라의 안과 밖이며, 동일한 법도를 따르는 제후국들과 군주의 덕화(德化)가 미치지 못하는 먼 나라들은 천지의 안과 밖이다.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취하는 것을 일러 도둑이라 하고, 죄가 없는데 죽이는 것을 일러 도적이라 하며, 네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하는 것을 일러 도둑 떼라 하고, 중국이 네 오랑캐에게 무력을 남용하는 것을 일러 도적이라 한다. 서로가 도둑 떼라고 여기고 서로가 도적이라 여기지만 그 뜻은 매한가지다.
공자는 주나라 사람이다. 왕실이 날로 기울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랑캐인) 오나라와 초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히며 끊임없이 노략질하고 해쳤다. 춘추는 주나라의 책이므로, (그가) 안과 밖을 엄격히 구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자가 바다에 떠다니다가 오랑캐 땅에 들어가 살았다면 중화의 문명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고 주나라의 도(道)를 중국 밖에서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기에 안과 밖의 구분과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도 당연히 ‘역외춘추(域外春秋)’에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聖人)이신 이유이다.”
[출전] 홍대용, 『의산문답』
토론하기
(1) 허자는 유교 문명을 기준으로 오랑캐와 중국을 구분하고 우열을 가리는 반면, 실옹은 나라마다 자기 문화를 중시하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늘날의 시각에
서 문화 간에 우열은 존재하는지, 아니면 문화의 지위는 서로 동등한지 논의해 보자.
(2) 실옹은 공자가 중국 밖에 살았더라도 중국 문화를 전파했을 것이라며 그를 성인으로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결국 유교 문명의 보편성을 전제로 내포한다. 공자는 진정으로
보편 문화를 담지한 성인이었는지, 아니면 시대적 한계를 지닌 사상가였는지 토론해 보자.
(3) 실옹은 어느 지역이든, 어떤 민족이든 스스로 중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현대
에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하는 관념이 여전히 존재한다. 양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
엇이며 누구의 시각에서 결정되는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중화와 이적(履跡) 즉 중국과 오랑캐를 우열로 구분하는 화이관(華夷觀)은 공자 시대 이전부터 줄곧 있었던 오래된 관념이다. 양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역과 인종, 그리고 문화였다. 초기 관념에는 황화 문명권에 포진한 나라들과 그 주변부에 생겨난 나라를 구분하는 지역적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유교 문화의 수용 여부를 기준으로 양자를 가르기도 했다. 그리고 한 제국이 세워지고 한족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 이후로는 종족이 중국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세 가지 의미를 중첩하여 사용했고 중화의 관점에서 오랑캐를 열등하게 보는 구도도 줄곧 유지했다.
그런데 홍대용은 실옹의 목소리를 빌려 이 구도의 탈피를 시도한다. 그는 앞서 무한 우주설을 설파하여 어느 행성이라도 그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지구설과 지전설을 통해 지구의 어떤 지역이라도 지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의산문답」 마지막 단락에서는 하늘의 관점에서 볼 때 한족이든 이민족이든 모두가 천지가 낳고 기른 인류로서 동등한 존재론적 위상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종족 간에 우열이 없다는 생각에 기반해 어느 나라든 그 문명과 제도 역시 각자의 입장에서 올바른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머리에 쓰는 관인 ‘장보’와 갓인 ‘위모’는 각각 고대 중국의 문명국가인 은나라와 주나라의 문물이다. ‘문신’과 ‘조제’는 오랑캐가 몸이나 이마에 그리는 무늬를 말한다. 저마다의 관점에서 각 문물은 모두 올바른 풍속이다. 또한 어느 나라든 군주를 중심으로 한 정치 체제를 운용하고 도시를 건설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저마다 고유성과 개성을 갖는다.
실옹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에는 지역이든 종족이든 문화든 이들 사이에 우열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과 사물의 수가 많아지면서 자신을 기준으로 안팎을 가르고 밖으로 규정된 대상을 차별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리고 서로가 자신이 속한 대상이 우월하다고 여기며 서로 대립과 갈등을 일삼게 된 것이다.
실옹은 화이관의 발생 원인을 이같이 지적하고 그 폐해를 진단하여 갈등을 해소할 것을 요청한다. 상대주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나라와 인종, 문화가 전부 스스로 중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우열과 차별, 대립이 존재할 여지가 남아있기 어렵다.
그럼에도 홍대용의 대변자인 실옹은 문화적 차원에서 화이론을 탈피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글 말미에서 유교 문명의 경전적 권위를 누려온 공자의 춘추를 거론하여 허자의 화이관을 해체하려 한다.
실옹이 볼 때 공자가 주나라의 관점에 대상을 오랑캐로 규정하고 비판한 것은 그가 중원에 태어나 중화 문명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오랑캐의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유교의 도로써 오랑캐 지역을 교화하여 새로운 중화 문명을 건설하고 이곳의 관점에서 중원 지역의 야만성을 비판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홍대용은 오랑캐도 유교 문명의 세례를 받아 교화되면 중국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오랑캐인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한 일을 하늘의 관점에서 정당하다고 본 것도, 그의 생전에 문화강국이 된 청나라를 유교 문명을 선도하는 종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보면 중국적 입장에서 오랑캐일 수 있는 조선 역시 중화 문명을 선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파격적 생각이다. 다만 그의 이러한 생각은 지역적․인종적 화이관을 극복했으나 문화적 화이관은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그 역시 하은주 삼대에 원형이 완성된 유교의 강령과 제도야말로 누구나 지향해야 할 보편 문명이라고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워드
상대주의, 유교문명, 역외춘추(域外春秋), 화이관
전후맥락
허자가 사람과 사물이 생성된 근본을 묻자, 실옹은 태허에 가득 찬 기가 엉키고 모여 천지와 만물을 만들었다고 언급한 후, 지구설과 지전설이 진리임을 설파한다. 그는 월식(月蝕) 때 달에 드리워진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사실을 근거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말은 들은 허자가 지구가 둥글다면 사람들이 미끄러져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를 묻자, 실옹은 기(氣)의 구심력을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실옹에 따르면 지구의 둘레는 구만리로, 한 바퀴 도는 데 스물네 시간이 걸린다. 구만리나 되는 긴 둘레로 이십사 시간 안에 회전하려면 지구는 번개나 포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땅이 매우 빠른 속도로 돌게 되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하늘의 기와 격렬하게 부딪치면서, 기가 지상에 쌓이게 된다. 그리고 지면에 모여든 기는 구심력을 발휘하여 만물을 지면으로 끌어당긴다. 이것이 바로 둥근 지구가 빠른 속도로 회전함에도 사람들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지표면에 설 수 있는 이유이다.
실옹은 기의 구심력을 근거로 지구설과 지전설을 입증한 뒤, 이를 확장하여 지구 중심설을 부정하고 우주에 중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지구와 가까운 일곱 개의 행성 가운데 해와 달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지만, 나머지 다섯 별 즉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태양을 둘러싸고 있다. 또한 지구를 비롯한 일곱 행성은 광대한 은하에 속해 있으며, 또 이 은하도 무수히 많다는 점에서 우주는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하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에는 무수한 은하계가 존재하고, 또 은하계마다 무수한 행성이 흩어져 자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모든 행성은 스스로가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적 관점에서 우주를 보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처럼 보이지만, 우주의 지평에서 지구를 조망하면 이것은 거대한 대지에 흩뿌려진 한 톨의 먼지처럼 보잘 것 없다.
고전본문
허자가 질문했다.
“공자가 『춘추(春秋) 』(春秋) 를 지으면서 중국을 안으로 삼고, 주변의 오랑캐는 밖으로 삼았습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이 이처럼 엄격한데, 지금 선생께서는 (오랑캐의 운수가 왕성한 것을) ‘사람의 일이 감응한 것이오, 하늘의 때가 가져온 필연이다’라고 하시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실옹이 대답했다.
“하늘이 낳고 땅이 길러주니,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가 사람이다. 여럿 중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가 군주이며, 문을 여러 겹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영지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모두가 나라이다. 장보(章甫)건 위모(委貌)건, 문신(文身)이건 조제(雕題)건 간에 모두가 풍속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팎의 구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저마다 자기 나라 사람과 친하고 자신의 군주를 높이며 자기 나라를 지키고 자신의 풍속을 편안히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마찬가지다.
천지가 변하면서 사람과 사물이 많아졌고 사람과 사물이 많아지면서 ‘타자’와 ‘나’가 나타났으며, ‘타자’와 ‘나’가 나타나면서 안과 밖이 구분되었다. 오장육부와 팔다리는 한 몸의 안과 밖이요, 자신과 처자식은 한 가정의 안과 밖이다. 형제와 친척은 한 가문의 안과 밖이요, 이웃 마을과 주변 지역은 한 나라의 안과 밖이며, 동일한 법도를 따르는 제후국들과 군주의 덕화(德化)가 미치지 못하는 먼 나라들은 천지의 안과 밖이다.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취하는 것을 일러 도둑이라 하고, 죄가 없는데 죽이는 것을 일러 도적이라 하며, 네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하는 것을 일러 도둑 떼라 하고, 중국이 네 오랑캐에게 무력을 남용하는 것을 일러 도적이라 한다. 서로가 도둑 떼라고 여기고 서로가 도적이라 여기지만 그 뜻은 매한가지다.
공자는 주나라 사람이다. 왕실이 날로 기울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랑캐인) 오나라와 초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히며 끊임없이 노략질하고 해쳤다. 춘추는 주나라의 책이므로, (그가) 안과 밖을 엄격히 구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자가 바다에 떠다니다가 오랑캐 땅에 들어가 살았다면 중화의 문명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고 주나라의 도(道)를 중국 밖에서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기에 안과 밖의 구분과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도 당연히 ‘역외춘추(域外春秋)’에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聖人)이신 이유이다.”
[출전] 홍대용, 『의산문답』
토론하기
(1) 허자는 유교 문명을 기준으로 오랑캐와 중국을 구분하고 우열을 가리는 반면, 실옹은 나라마다 자기 문화를 중시하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늘날의 시각에
서 문화 간에 우열은 존재하는지, 아니면 문화의 지위는 서로 동등한지 논의해 보자.
(2) 실옹은 공자가 중국 밖에 살았더라도 중국 문화를 전파했을 것이라며 그를 성인으로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결국 유교 문명의 보편성을 전제로 내포한다. 공자는 진정으로
보편 문화를 담지한 성인이었는지, 아니면 시대적 한계를 지닌 사상가였는지 토론해 보자.
(3) 실옹은 어느 지역이든, 어떤 민족이든 스스로 중심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현대
에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하는 관념이 여전히 존재한다. 양자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
엇이며 누구의 시각에서 결정되는지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중화와 이적(履跡) 즉 중국과 오랑캐를 우열로 구분하는 화이관(華夷觀)은 공자 시대 이전부터 줄곧 있었던 오래된 관념이다. 양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역과 인종, 그리고 문화였다. 초기 관념에는 황화 문명권에 포진한 나라들과 그 주변부에 생겨난 나라를 구분하는 지역적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유교 문화의 수용 여부를 기준으로 양자를 가르기도 했다. 그리고 한 제국이 세워지고 한족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 이후로는 종족이 중국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세 가지 의미를 중첩하여 사용했고 중화의 관점에서 오랑캐를 열등하게 보는 구도도 줄곧 유지했다.
그런데 홍대용은 실옹의 목소리를 빌려 이 구도의 탈피를 시도한다. 그는 앞서 무한 우주설을 설파하여 어느 행성이라도 그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지구설과 지전설을 통해 지구의 어떤 지역이라도 지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의산문답」 마지막 단락에서는 하늘의 관점에서 볼 때 한족이든 이민족이든 모두가 천지가 낳고 기른 인류로서 동등한 존재론적 위상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종족 간에 우열이 없다는 생각에 기반해 어느 나라든 그 문명과 제도 역시 각자의 입장에서 올바른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머리에 쓰는 관인 ‘장보’와 갓인 ‘위모’는 각각 고대 중국의 문명국가인 은나라와 주나라의 문물이다. ‘문신’과 ‘조제’는 오랑캐가 몸이나 이마에 그리는 무늬를 말한다. 저마다의 관점에서 각 문물은 모두 올바른 풍속이다. 또한 어느 나라든 군주를 중심으로 한 정치 체제를 운용하고 도시를 건설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저마다 고유성과 개성을 갖는다.
실옹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에는 지역이든 종족이든 문화든 이들 사이에 우열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과 사물의 수가 많아지면서 자신을 기준으로 안팎을 가르고 밖으로 규정된 대상을 차별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리고 서로가 자신이 속한 대상이 우월하다고 여기며 서로 대립과 갈등을 일삼게 된 것이다.
실옹은 화이관의 발생 원인을 이같이 지적하고 그 폐해를 진단하여 갈등을 해소할 것을 요청한다. 상대주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나라와 인종, 문화가 전부 스스로 중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우열과 차별, 대립이 존재할 여지가 남아있기 어렵다.
그럼에도 홍대용의 대변자인 실옹은 문화적 차원에서 화이론을 탈피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글 말미에서 유교 문명의 경전적 권위를 누려온 공자의 춘추를 거론하여 허자의 화이관을 해체하려 한다.
실옹이 볼 때 공자가 주나라의 관점에 대상을 오랑캐로 규정하고 비판한 것은 그가 중원에 태어나 중화 문명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오랑캐의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유교의 도로써 오랑캐 지역을 교화하여 새로운 중화 문명을 건설하고 이곳의 관점에서 중원 지역의 야만성을 비판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홍대용은 오랑캐도 유교 문명의 세례를 받아 교화되면 중국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오랑캐인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한 일을 하늘의 관점에서 정당하다고 본 것도, 그의 생전에 문화강국이 된 청나라를 유교 문명을 선도하는 종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보면 중국적 입장에서 오랑캐일 수 있는 조선 역시 중화 문명을 선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파격적 생각이다. 다만 그의 이러한 생각은 지역적․인종적 화이관을 극복했으나 문화적 화이관은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그 역시 하은주 삼대에 원형이 완성된 유교의 강령과 제도야말로 누구나 지향해야 할 보편 문명이라고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워드
상대주의, 유교문명, 역외춘추(域外春秋), 화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