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는 자기 자신 속의 두 세계의 갈등, 즉,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의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베크는 그런 싱클레어를 술집으로 유혹한다. 뒷골목의 어두운 모습, 시궁창의 풍경 같은 금지된 구역에 들어서게 되고 자기소외와 자기부정에 빠진다. 그는 베크와 함께 카인과 아벨 신화의 이중성, 성의 금욕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이후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이런 타락한 모습에 우려를 피력하나 싱클레어는 여전히 정신이 성(性)을 갈망하는 육체를 통제 못해 괴로워한다.
얼마 후,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아간다. 싱클레어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아가고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아닌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인 모습으로 변하여 마침내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안에서 어느새 데미안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지구에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리고 얼마 후 데미안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새, 먼저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온 새, 그리고 신 압락사스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다. 이 편지를 통해 싱클레어는 압락사스가 빛과 어두움의 공존하는 신, 곧 선한 신이면서도 동시에 악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데미안의 편지를 통해서 자기 내부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전본문
“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는 않는다. 내 피가 몸 속에서 소리내고 있는 그 가르침을 듣기 시작하고 있다...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출전]『데미안』중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 글줄을 몇 차례 읽은 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떤 의심도 불가능했다. 이건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나와 그 말고 그 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내 그림을 그가 받은 것이다. 그는 이해하였고 내가 풀이 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압락사스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출전]『데미안』중에서
토론하기
(1)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또는 내가 갇혀있는 ‘알’은 어떤 것이 있으며, 내가 알에서 나오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3) 싱클레어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데미안과 에바 부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가 나만의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만나야 할 ‘자신만의 데미안’은 누구(또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나를 찾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의 시작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란 가명으로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헤세가 말하듯 “늙은 아저씨의 이름이 젊은 독자들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결의로 내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작가 싱클레어가 바로 헤세이므로 『데미안』은 누구보다도 헤세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헤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과연 헤세는 ‘무엇’을 찾는 구도자이었을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헤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작품 속의 싱클레어가 겪는 두 세계, 곧 ‘밤과 낮’ 또는 ‘어둠과 빛’의 세계 사이에서의 혼란과 갈등,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싶다는 갈망 등은 대부분의 청소년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아버지의 집으로 표상되는 밝은 세계’와 ‘그 바깥의 낯설고 무서운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세계 인식에서 비롯된다.
싱클레어는 인생의 목표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찍부터 악당들과 탕아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나쁜 짓거리를 자랑삼아 떠벌리는 자리에서 악동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자기도 과일을 훔친 적이 있다고 짐짓 이야기를 꾸며댄 것은 싱클레어의 그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크로머의 형상은 사실 ‘싱클레어의 내부’에 ‘먼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아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겐 ‘카인’의 형상 또한 깊이 박혀 있었다. 크로머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를 습격하여 살해하는 꿈은 싱클레어의 금지된 욕망이 노출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싱클레어는 카인적인 욕망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부정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욕망도 갖고 있다. 이 ‘욕망’과 ‘금지’ 사이에서 고통받는 싱클레어를 구제해주는 것이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이란 이름 자체가 ‘데몬’을 연상시키듯,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보호해주는 ‘수호천사’이자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유혹자’이며 ‘정령’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성경》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준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월한 표식을 가진 카인과 그 자손들을 무서워했던 사람들이 후대에 꾸며낸 내용일 뿐이며, 실제로 카인은 강하고 늠름한 자라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이러한 데미안의 ‘가르침’이 신에 대한 예배와 함께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소개한 압락사스는 바로 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을 가리키는 신성이었습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이런 양면적이고 양성적인 세계를 동시에 구현한 형상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다. 물론 ‘에바’란 말은 ‘이브’에서 가져온 것이며, 궁극적인 근원이자 완전함의 모태를 상징한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온 이상적인 이미지를 확인하게 된다. 남성성과 여성성, 젊음과 성숙함, 아름다움과 근엄함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는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이자 연인”이 바로 에바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게 이끌린 싱클레어의 자기 탐색이 에바 부인과의 만남과 포옹으로 일단락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한 것이며, 이제 남은 건 그 운명과 일체가 되어 삶을 주도해나가는 것이었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태어나는 건 언제나 어려워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
키워드
꿈, 알, 운명, 세계, 자신
전후맥락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 속의 두 세계의 갈등, 즉,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의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베크는 그런 싱클레어를 술집으로 유혹한다. 뒷골목의 어두운 모습, 시궁창의 풍경 같은 금지된 구역에 들어서게 되고 자기소외와 자기부정에 빠진다. 그는 베크와 함께 카인과 아벨 신화의 이중성, 성의 금욕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이후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을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이런 타락한 모습에 우려를 피력하나 싱클레어는 여전히 정신이 성(性)을 갈망하는 육체를 통제 못해 괴로워한다.
얼마 후,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안정을 찾아간다. 싱클레어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아가고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아닌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인 모습으로 변하여 마침내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안에서 어느새 데미안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지구에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리고 얼마 후 데미안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새, 먼저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온 새, 그리고 신 압락사스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다. 이 편지를 통해 싱클레어는 압락사스가 빛과 어두움의 공존하는 신, 곧 선한 신이면서도 동시에 악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데미안의 편지를 통해서 자기 내부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전본문
“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는 않는다. 내 피가 몸 속에서 소리내고 있는 그 가르침을 듣기 시작하고 있다...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출전]『데미안』중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 글줄을 몇 차례 읽은 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떤 의심도 불가능했다. 이건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나와 그 말고 그 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내 그림을 그가 받은 것이다. 그는 이해하였고 내가 풀이 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압락사스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출전]『데미안』중에서
토론하기
(1)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또는 내가 갇혀있는 ‘알’은 어떤 것이 있으며, 내가 알에서 나오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3) 싱클레어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데미안과 에바 부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내가 나만의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만나야 할 ‘자신만의 데미안’은 누구(또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나를 찾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의 시작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란 가명으로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헤세가 말하듯 “늙은 아저씨의 이름이 젊은 독자들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결의로 내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작가 싱클레어가 바로 헤세이므로 『데미안』은 누구보다도 헤세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헤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한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과연 헤세는 ‘무엇’을 찾는 구도자이었을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헤세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작품 속의 싱클레어가 겪는 두 세계, 곧 ‘밤과 낮’ 또는 ‘어둠과 빛’의 세계 사이에서의 혼란과 갈등,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싶다는 갈망 등은 대부분의 청소년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은 ‘아버지의 집으로 표상되는 밝은 세계’와 ‘그 바깥의 낯설고 무서운 세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세계 인식에서 비롯된다.
싱클레어는 인생의 목표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찍부터 악당들과 탕아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나쁜 짓거리를 자랑삼아 떠벌리는 자리에서 악동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자기도 과일을 훔친 적이 있다고 짐짓 이야기를 꾸며댄 것은 싱클레어의 그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크로머의 형상은 사실 ‘싱클레어의 내부’에 ‘먼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아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겐 ‘카인’의 형상 또한 깊이 박혀 있었다. 크로머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를 습격하여 살해하는 꿈은 싱클레어의 금지된 욕망이 노출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싱클레어는 카인적인 욕망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부정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욕망도 갖고 있다. 이 ‘욕망’과 ‘금지’ 사이에서 고통받는 싱클레어를 구제해주는 것이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이란 이름 자체가 ‘데몬’을 연상시키듯,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보호해주는 ‘수호천사’이자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유혹자’이며 ‘정령’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성경》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이야기를 재해석해 준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월한 표식을 가진 카인과 그 자손들을 무서워했던 사람들이 후대에 꾸며낸 내용일 뿐이며, 실제로 카인은 강하고 늠름한 자라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이러한 데미안의 ‘가르침’이 신에 대한 예배와 함께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소개한 압락사스는 바로 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을 가리키는 신성이었습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이런 양면적이고 양성적인 세계를 동시에 구현한 형상이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다. 물론 ‘에바’란 말은 ‘이브’에서 가져온 것이며, 궁극적인 근원이자 완전함의 모태를 상징한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온 이상적인 이미지를 확인하게 된다. 남성성과 여성성, 젊음과 성숙함, 아름다움과 근엄함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는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이자 연인”이 바로 에바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게 이끌린 싱클레어의 자기 탐색이 에바 부인과의 만남과 포옹으로 일단락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한 것이며, 이제 남은 건 그 운명과 일체가 되어 삶을 주도해나가는 것이었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태어나는 건 언제나 어려워요. 아시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