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흔히 갖는 편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랑이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아무 준비 없이 그저 하면 되는 것,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행위적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생긴 편견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그저 달콤한 기분으로 유쾌하게 탐닉해 버리고 마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침내 사랑을 애써 배워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일 또는 사랑스러운 대상을 찾는 문제에만 매달리고, 사랑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능력을 갖추는 일에는 소홀하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무엇을 그릴지만 골몰하고 어떻게 그려 낼 것인가는 걱정하지 않는 태도와 같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간절하게 사랑을 원하면서도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물론 사랑은 행동을 해야 비로소 이루어지므로 실천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배움을 거치지 않는 사랑은 서툰 사랑 혹은 병적인 사랑에 이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어렵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술로서의 사랑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사랑의 원리는 무엇일까? 인간은 본래 생각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따라서 다른 짐승들보다 자연적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문화적 세계를 만들어 살게 된다. 이처럼 세계에서 분리되어 사는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심지어 수치심과 죄책감까지 느낀다. 멀어진 세계에서 받게 되는 불안함, 수치심, 죄책감 등을 잊기 위하여 아예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 갇혀 살거나 도취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본성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불안감, 수치심, 죄책감 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노력이 바로 올바른 사랑이며, 그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의 근본 원리는 인간이 성장할수록 사랑의 기술을 애써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본문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전제는 단독으로 또는 결합되어서 이 태도를 뒷받침해준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중략)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기술을 배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는 무엇인가?
[출전]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토론하기
(1)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사랑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2)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실천 사항의 목록을 작성해 보자.
(3) 현대인들이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리해보자.
해설읽기
사랑의 두 가지 양식- 소유와 존재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종종 생각하는 또 하나의 편견이 있다. 그것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상태만 사랑의 진짜 모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 이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의 상태가 오히려 사랑의 전체 과정 중에서 더욱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사실 남녀 간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흥분과 격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을 못 잊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만 곧 권태와 실망으로 바뀌는 것 또한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 사라졌다거나 사랑의 감정이 식었다기보다 사랑의 후속 단계에 들어갔다는 표현이 옳다. 격정이란 본래 그 속성상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사랑의 격정 상태에서 신체가 3단계의 활발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갈망, 이끌림, 지속적 애착이 그것이다. 이 단계들마다 특유의 화학 물질 분비를 담당하는 뇌의 활동이 급격하게 활발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질에 대한 병적이 사랑, 즉 중독 상태에 빠진 마약 중독자와 남녀 간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두뇌 활동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며, 사랑에 빠진 사람이 실연으로 비탄에 빠지는 상태는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을 주지 않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두 가지 양식을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으로 구분하면서,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예를 들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는 것이 잘못된 소유 양식이라면 거위가 건강을 유지하며 꾸준히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온전한 존재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롬은 소유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사랑마저도 소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착각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사랑이 식었다거나 사라졌다는 것도 실은 사랑이 존재 양식에서 소유 양식으로 전환되기 쉽다. 여기서 사랑의 형식은 계속 존재 양식을 취해야 진정 행복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소유 양식이 아니라 존재 양식을 유지하는 한 지속되는 것이 사랑의 원리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인간은 본래 생각할 줄 아는 사고 능력이 뛰어나서 자연 세계와 분리되어 문화적 세계에 살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노력이 바로 올바른 사랑이며, 그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학문과 예술 또는 자신의 신체 단련 같은 것도 외로움을 이기는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지만 가장 바람직한 노력은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다. 그 시작은 따뜻하게 열려있는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관심, 지식, 보호, 존경,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보다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와 이웃, 부부(이성), 자기 자신, 하나님 등 대상에 따른 분별 있는 사랑법을 먼저 배워 알아야 한다.
1) 모성애: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에게 행복이고 평화이며 애써 획득할 필요도 없고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이기에 필요에 따라 획득할 수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도 없다는 점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간섭이 심한 어머니는 아이가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수동적 인간으로 만들더라도 통제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성장하면 어머니의 의무는 어린애의 분리를 관용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바라고 후원해 줘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성은 그들의 과업에 실패한다.
2) 형제애: 동등한 자들 사이의 서로에 대한 수평적 사랑이다. 형제를 가장 넓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이웃이다. 따라서 형제애는 모든 형태의 사랑의 바탕에 놓여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이다.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동등한 하나라는 평등 개념의 기반 위에 있기 때문에 가장 크게 열려 있는 사랑이다.
3) 이성 간의 사랑: 가장 배타적인 사랑이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사랑이고 모성애는 무력한 자에 대한 사랑이다. 두 사랑은 근본적으로 편애를 배격하며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성 간의 사랑은 서로를 독점하고자 하는 배타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꿔 말하면 두 사람을 단위로 한 ‘이기주의’인 것이다. 이런 배타성은 자칫 사랑을 중단시키는 소유욕(소유 양식)으로 바뀌기 쉽고, 그래서 이성 간의 사랑은 가장 쉽게 이끌려 시작되지만 오래 지속되는 일이 드물다. 또 모성애와는 사랑의 방향이 반대라는 특징도 있다. 모성애는 어머니와 하나였던 자녀가 성장하면서 독립하여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이성 간의 사랑은 분리되어 있던 남녀가 하나로 일치됨을 목표로 한다.
4) 자기애: 자기애는 의외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사랑의 개념을 여러 가지 대상에 적용하는데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이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라는 신념이 퍼져 있다. 이런 오해의 바탕에는 사랑이 나와 그 무엇과의 관계라는 이해가 깔려 있다. 그 누구도 나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할수록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애는 이기주의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애는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천하는 보편적 형제애의 대상에 나까지 포함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키워드
기술, 능력, 사랑, 소유, 존재
전후맥락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흔히 갖는 편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랑이란 배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아무 준비 없이 그저 하면 되는 것,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행위적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생긴 편견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그저 달콤한 기분으로 유쾌하게 탐닉해 버리고 마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마침내 사랑을 애써 배워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 일 또는 사랑스러운 대상을 찾는 문제에만 매달리고, 사랑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능력을 갖추는 일에는 소홀하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무엇을 그릴지만 골몰하고 어떻게 그려 낼 것인가는 걱정하지 않는 태도와 같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간절하게 사랑을 원하면서도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물론 사랑은 행동을 해야 비로소 이루어지므로 실천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배움을 거치지 않는 사랑은 서툰 사랑 혹은 병적인 사랑에 이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어렵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술로서의 사랑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사랑의 원리는 무엇일까? 인간은 본래 생각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따라서 다른 짐승들보다 자연적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문화적 세계를 만들어 살게 된다. 이처럼 세계에서 분리되어 사는 사람은 외로움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심지어 수치심과 죄책감까지 느낀다. 멀어진 세계에서 받게 되는 불안함, 수치심, 죄책감 등을 잊기 위하여 아예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 갇혀 살거나 도취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본성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불안감, 수치심, 죄책감 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노력이 바로 올바른 사랑이며, 그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랑의 근본 원리는 인간이 성장할수록 사랑의 기술을 애써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본문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전제는 단독으로 또는 결합되어서 이 태도를 뒷받침해준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중략)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기술을 배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는 무엇인가?
[출전]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토론하기
(1)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사랑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2)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실천 사항의 목록을 작성해 보자.
(3) 현대인들이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리해보자.
해설읽기
사랑의 두 가지 양식- 소유와 존재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종종 생각하는 또 하나의 편견이 있다. 그것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상태만 사랑의 진짜 모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 이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의 상태가 오히려 사랑의 전체 과정 중에서 더욱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사실 남녀 간에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흥분과 격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을 못 잊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만 곧 권태와 실망으로 바뀌는 것 또한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랑이 사라졌다거나 사랑의 감정이 식었다기보다 사랑의 후속 단계에 들어갔다는 표현이 옳다. 격정이란 본래 그 속성상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사랑의 격정 상태에서 신체가 3단계의 활발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갈망, 이끌림, 지속적 애착이 그것이다. 이 단계들마다 특유의 화학 물질 분비를 담당하는 뇌의 활동이 급격하게 활발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질에 대한 병적이 사랑, 즉 중독 상태에 빠진 마약 중독자와 남녀 간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두뇌 활동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며, 사랑에 빠진 사람이 실연으로 비탄에 빠지는 상태는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을 주지 않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두 가지 양식을 존재 양식과 소유 양식으로 구분하면서,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예를 들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는 것이 잘못된 소유 양식이라면 거위가 건강을 유지하며 꾸준히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온전한 존재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롬은 소유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사랑마저도 소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착각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사랑이 식었다거나 사라졌다는 것도 실은 사랑이 존재 양식에서 소유 양식으로 전환되기 쉽다. 여기서 사랑의 형식은 계속 존재 양식을 취해야 진정 행복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소유 양식이 아니라 존재 양식을 유지하는 한 지속되는 것이 사랑의 원리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인간은 본래 생각할 줄 아는 사고 능력이 뛰어나서 자연 세계와 분리되어 문화적 세계에 살기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노력이 바로 올바른 사랑이며, 그런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학문과 예술 또는 자신의 신체 단련 같은 것도 외로움을 이기는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지만 가장 바람직한 노력은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사랑이다. 그 시작은 따뜻하게 열려있는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관심, 지식, 보호, 존경,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보다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모, 형제와 이웃, 부부(이성), 자기 자신, 하나님 등 대상에 따른 분별 있는 사랑법을 먼저 배워 알아야 한다.
1) 모성애: 어머니의 사랑은 자녀에게 행복이고 평화이며 애써 획득할 필요도 없고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이기에 필요에 따라 획득할 수 없고 만들어 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도 없다는 점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간섭이 심한 어머니는 아이가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수동적 인간으로 만들더라도 통제하기가 어렵다. 아이가 성장하면 어머니의 의무는 어린애의 분리를 관용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바라고 후원해 줘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성은 그들의 과업에 실패한다.
2) 형제애: 동등한 자들 사이의 서로에 대한 수평적 사랑이다. 형제를 가장 넓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이웃이다. 따라서 형제애는 모든 형태의 사랑의 바탕에 놓여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이다.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동등한 하나라는 평등 개념의 기반 위에 있기 때문에 가장 크게 열려 있는 사랑이다.
3) 이성 간의 사랑: 가장 배타적인 사랑이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사랑이고 모성애는 무력한 자에 대한 사랑이다. 두 사랑은 근본적으로 편애를 배격하며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성 간의 사랑은 서로를 독점하고자 하는 배타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꿔 말하면 두 사람을 단위로 한 ‘이기주의’인 것이다. 이런 배타성은 자칫 사랑을 중단시키는 소유욕(소유 양식)으로 바뀌기 쉽고, 그래서 이성 간의 사랑은 가장 쉽게 이끌려 시작되지만 오래 지속되는 일이 드물다. 또 모성애와는 사랑의 방향이 반대라는 특징도 있다. 모성애는 어머니와 하나였던 자녀가 성장하면서 독립하여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이성 간의 사랑은 분리되어 있던 남녀가 하나로 일치됨을 목표로 한다.
4) 자기애: 자기애는 의외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사랑의 개념을 여러 가지 대상에 적용하는데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이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라는 신념이 퍼져 있다. 이런 오해의 바탕에는 사랑이 나와 그 무엇과의 관계라는 이해가 깔려 있다. 그 누구도 나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할수록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애는 이기주의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애는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천하는 보편적 형제애의 대상에 나까지 포함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키워드
기술, 능력, 사랑, 소유,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