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플라톤의 대화편인 『향연』은 아테네의 시인 아가톤의 비극 경연 우승을 축하하는 연회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 연회에서 참석자들은 술을 적게 마시기로 하고, 대신 각자가 사랑의 신 에로스(Eros)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들이 펼쳐지는 담론의 장이 열린다.
첫 번째로 발언한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가장 오래된 신으로 간주하고, 에로스가 인간에게 덕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것으로 그 신은 존경받고 있거든. 그 증거는 다음과 같네. 에로스에게는 부모가 없으며 산문 작가든 시인이든 그 누구도 그 부모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네. 오히려 헤시오도스는 맨 처음에 카오스가 생겨나고, 그 다음으로 늘 모든 것들의 굳건한 터전인 가슴 넓은 가이아가 그리고 에로스가 생겨났다고 말하네.”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을 때 더욱 용감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예로 들며, 에로스가 공동체를 도덕적으로 고양시키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자로서 그는 우리에게 있는 최대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네”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천상의 에로스(우라니아), 즉 정신적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일반적이며 육체적 욕망에 불과한 지상의 에로스(판데모스)이다. 그는 전자의 에로스만이 진정한 의미의 고귀한 사랑이라고 보며, 연인이 덕을 추구할 때 그 사랑이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의사 에뤽시마코스는 의학자의 관점에서 에로스를 설명한다. 그는 에로스를 우주의 조화와 건강, 질서의 원리로 보며, 사랑은 인간의 몸뿐 아니라 자연과 예술, 신앙에까지 작용하는 보편적 힘이라고 말한다.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가 사람들의 영혼에만, 그리고 아름다운 자들에 대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른 것들 속에도 즉, 모든 동물들의 몸에도 땅에서 자라나는 것들에도, 그러니까 말하자면 있는 모든 것들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우리 기술인 의술로부터 깨달았다고 생각하네. 그 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랄만한 신인지, 그리고 어떻게 모든 것에, 즉 인간적인 사물들과 신적인 사물들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지가 의문”이라고 말한다.
네 번째로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신화적 이야기로 에로스를 설명한다. 그는 원래 인간이 남남, 여여, 남녀 세 종류의 구형 존재였지만, 신들이 이를 반으로 갈라 지금의 인간이 되었으며, 에로스는 잃어버린 반쪽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러기에 우리 각자는 한 인간의 부절이네. 마치 넙치 모양으로 하나에서 둘로 잘라져 있으니까 말일세. 각자는 자신의 부절을 하염없이 찾아다닌다네. 즉 자기가 사랑하는 자와 한데 모여 융합되어 둘이던 게 하나가 되는 것 말일세.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네. 우리의 옛 본성이 이제까지 말한 바로 이런 것이었고, 우리가 온전한 자들이었다는 것 말일세. 그래서 그 온전함에 대한 욕망과 추구에 붙여진 이름이 사랑(에로스)이지.”라고 말한다. 이로써 에로스는 자기완성과 결핍의 충족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다섯 번째로 아가톤은 에로스를 젊고 아름다우며 덕 있는 신으로 묘사한다. 그는 에로스가 모든 덕의 근원이자 모든 아름다운 것의 원천이라고 찬양하며, 에로스를 미와 선의 신으로 이상화한다. 아가톤은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젊네. 나는 그가 신들 가운데 가장 젊고 또 늘 젊다고 주장하네.”, “그는 젊고 또 젊을 뿐만 아니라 섬섬(갸냘프고 여리다)하기도 하네. 그 신의 섬섬함을 드러내는 데는 호메로스 시인이 필요하네.”라고 말하며 에로스의 신체적 특성에 대해서 언급한다. 또한 에로스의 덕, 즉 정신적 특성인 정의, 절제, 용기, 지혜, 생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정의- “에로스가 자신에게든 인간에게든 불의를 행하지도 않고, 신에 의해서든 인간에 의해서든 불의를 당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네.”
절제-“그는 정의에 더해 아주 풍부한 절제를 나눠 갖고 있네. 쾌락과 욕망을 지배하는 것이 절제인데, 그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하지 않다고 다들 동의하거든.”
용기- “또 실로 적어도 용기에 관한 한 에로스에게 ‘아레스조차도 맞서지 못한다네. 아레스가 에로스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가 아레스를 붙잡고 있거든”
지혜- “그 신은 남도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로운 시인이네. 어쨌거나 에로스가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지어 이전에는 뮤즈 여신과 거리가 멀었다 해도 시인이 되지. 에로스가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의 통틀어 말해 시가 기술과 관련된 모든 창작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의 증거로 삼는 게 적절한 것이네.”
생산-“또 실로 모든 생물의 생산(창작-만듦)에 관해서도 모든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게 되는 게 에로스의 지혜에 의해서가 아니라고 누가 가로막고 나서겠는가?
이 과정을 통해 아가톤은 에로스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기에 비슷한 다른 것들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디오티마에게서 들은 가르침을 전하면서 기존 발언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에로스를 신이 아니라 중간적 존재인 다이몬으로 보며, 인간이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과 지혜를 추구하는 욕망의 힘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그는 에로스를 육체적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점차 정신적 아름다움과 지혜, 나아가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나아가는 상승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는 일명 ‘에로스의 사다리’로도 불리며,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고전본문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끄는 자가 올바로 이끌 경우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아름다운 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의 몸에 대한 이 열정을 무시하고 사소하다 여김으로써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미한 아름다움의 꽃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에게는 충분하며, 이자를 사랑하고 신경 써 주며 젊은이들을 더 훌륭한 자로 만들어 줄 그런 이야기들을 산출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번에는 그가 행실들과 법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도록, 그리고 그것 자체가 온통 그것 자체와 동류라는 것을 보도록 강제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몸에 관련된 아름다움이 사소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끄는 자는 그를 행실들 다음으로 앎들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가 이번에는 앎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이제는 아름다움 여럿을 쳐다보고 있기에, 더 이상 어리디 어린 소년이나 특정 인간이나 하나의 행실의 아름다움에 흡족하여 종처럼 하나에게 있는 아름다움에 노예 노릇 하면서 보잘것없고 하찮은 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 일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끝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앞서의 모든 노고들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출전] 플라톤, 『향연』
토론하기
(1)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이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핵심적인 개념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2) 위 다섯 명이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찬미 내용과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정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3)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찬미 중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에로스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해설읽기
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의 만남
디오티마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사랑(에로스)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적 가르침을 전하는 여사제로 등장한다. 그녀는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을 넘어서, 사랑이 단순히 아름다운 대상을 욕망하거나 소유하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결핍에서 비롯된 지향성과 창조성의 힘임을 설명한다. 디오티마의 설명은 플라톤 철학에서 에로스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먼저 디오티마는 에로스를 신이 아니라 ‘다이몬’(daimon), 즉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 규정한다.
“인간들의 것을 신들에게, 그리고 신들의 것을 인간들에게 해석해 주고 전달해 줍니다. 인간들로부터는 탄원과 제사를, 그리고 신들로부터는 명령과 제사의 대가를 해석해 주고 전달해 주지요. 그들 양자의 가운데 있어서 그들 사이를 메워 주고, 그래서 그 전체가 그 자체로 서로 결속되게 해 줍니다.”
에로스는 신처럼 완전하거나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존재, 다시 말해 결핍된 존재이다. 그녀는 이를 통해 에로스가 단순히 아름다움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그것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자임을 밝힌다. 따라서 에로스는 지혜와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것을 사랑하며, 이를 통해 인간 역시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사랑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오티마는 또한 사랑의 목적은 단순한 육체적 결합이나 쾌락이 아니라 ‘불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불멸을 추구하며, 사랑은 바로 이 불멸성을 획득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부 사람들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육체적인 불멸을 추구하고, 철학자나 시인, 입법자와 같은 사람들은 지혜나 업적, 덕과 같은 정신적인 창조물로 불멸을 추구한다. 이처럼 사랑은 영원한 아름다움과 선을 향한 창조적 충동이며, 인간 존재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녀의 가르침 중 핵심은 에로스의 사다리라고 불리는 상승의 여정이다. 이는 사랑이 단순한 육체적 욕망에서 시작하여 점차 정신적·지적인 사랑으로 전환되고, 마침내는 ‘아름다움 그 자체’—즉 감각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이고 순수한 이데아로서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된다는 과정이다. 이 아름다움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형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이며, 철학자는 이를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디오티마는 사랑이 단지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결핍에서 출발하여 진리, 선,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철학적 여정이라는 점을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친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사랑을 일시적인 감정이나 쾌락이 아니라, 지혜와 진리를 향한 영혼의 열망으로 승화시키며, 철학의 중심에 에로스를 놓는다. 디오티마의 가르침은 플라톤 철학 전체에서 에로스를 존재론적, 인식론적 원리로 확장시키는 핵심적인 사유로 평가된다.
에로스의 사다리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여사제 디오티마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통해 사랑(에로스)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에로스를 단순한 감정이나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인간이 참된 아름다움과 진리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동력이라고 본다. 이 과정은 ‘에로스의 사다리’라 불리는 점진적인 상승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사다리는 사랑의 대상을 점점 더 높은 차원으로 확장시키며, 감각적인 사랑에서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 가는 여정이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다. 한 사람의 외모나 신체적인 매력에 매혹되어 사랑이 시작된다.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두 번째 단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의 육체적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육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다. 이때 사랑은 개별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 확장된다.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육체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고귀한 대상, 즉 영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다. 이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목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며, 이때부터 사랑은 육체적인 매혹을 넘어서 도덕적이고 지적인 차원으로 상승한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이어지는 네 번째 단계에서는 한 개인의 덕이나 영혼을 넘어서, 사회 제도나 법, 관습, 학문과 예술 등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정신적이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다. 사랑은 점점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하면 그가 행실들과 법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도록, 그리고 그것 자체가 온통 그것 자체와 동류라는 것을 보도록 강제될 것이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모든 개별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아름다움 그 자체’를 인식하게 된다. 이 아름다움은 감각적이지 않으며,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 즉 ‘이데아’이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디오티마에 따르면, 이를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육체나 특정한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와 선, 절대적 아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며, 이는 곧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자 철학자가 추구해야 할 가장 고귀한 사랑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에로스의 사다리는 단순한 감정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철학적 사유와 내면의 성숙을 통해 진리와 이데아에 도달하는 존재론적 여정이다. 이는 사랑이 곧 인식의 길이며, 철학이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리의 탐구임을 드러낸다.
키워드
아름다움, 에로스, 이데아, 진리, 향연
전후맥락
플라톤의 대화편인 『향연』은 아테네의 시인 아가톤의 비극 경연 우승을 축하하는 연회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 연회에서 참석자들은 술을 적게 마시기로 하고, 대신 각자가 사랑의 신 에로스(Eros)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들이 펼쳐지는 담론의 장이 열린다.
첫 번째로 발언한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가장 오래된 신으로 간주하고, 에로스가 인간에게 덕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것으로 그 신은 존경받고 있거든. 그 증거는 다음과 같네. 에로스에게는 부모가 없으며 산문 작가든 시인이든 그 누구도 그 부모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네. 오히려 헤시오도스는 맨 처음에 카오스가 생겨나고, 그 다음으로 늘 모든 것들의 굳건한 터전인 가슴 넓은 가이아가 그리고 에로스가 생겨났다고 말하네.”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을 때 더욱 용감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예로 들며, 에로스가 공동체를 도덕적으로 고양시키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자로서 그는 우리에게 있는 최대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네”라고 말한다.
두 번째로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천상의 에로스(우라니아), 즉 정신적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일반적이며 육체적 욕망에 불과한 지상의 에로스(판데모스)이다. 그는 전자의 에로스만이 진정한 의미의 고귀한 사랑이라고 보며, 연인이 덕을 추구할 때 그 사랑이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의사 에뤽시마코스는 의학자의 관점에서 에로스를 설명한다. 그는 에로스를 우주의 조화와 건강, 질서의 원리로 보며, 사랑은 인간의 몸뿐 아니라 자연과 예술, 신앙에까지 작용하는 보편적 힘이라고 말한다. 에뤽시마코스는 “에로스가 사람들의 영혼에만, 그리고 아름다운 자들에 대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른 것들 속에도 즉, 모든 동물들의 몸에도 땅에서 자라나는 것들에도, 그러니까 말하자면 있는 모든 것들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우리 기술인 의술로부터 깨달았다고 생각하네. 그 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랄만한 신인지, 그리고 어떻게 모든 것에, 즉 인간적인 사물들과 신적인 사물들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지가 의문”이라고 말한다.
네 번째로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신화적 이야기로 에로스를 설명한다. 그는 원래 인간이 남남, 여여, 남녀 세 종류의 구형 존재였지만, 신들이 이를 반으로 갈라 지금의 인간이 되었으며, 에로스는 잃어버린 반쪽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러기에 우리 각자는 한 인간의 부절이네. 마치 넙치 모양으로 하나에서 둘로 잘라져 있으니까 말일세. 각자는 자신의 부절을 하염없이 찾아다닌다네. 즉 자기가 사랑하는 자와 한데 모여 융합되어 둘이던 게 하나가 되는 것 말일세.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네. 우리의 옛 본성이 이제까지 말한 바로 이런 것이었고, 우리가 온전한 자들이었다는 것 말일세. 그래서 그 온전함에 대한 욕망과 추구에 붙여진 이름이 사랑(에로스)이지.”라고 말한다. 이로써 에로스는 자기완성과 결핍의 충족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다섯 번째로 아가톤은 에로스를 젊고 아름다우며 덕 있는 신으로 묘사한다. 그는 에로스가 모든 덕의 근원이자 모든 아름다운 것의 원천이라고 찬양하며, 에로스를 미와 선의 신으로 이상화한다. 아가톤은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 가장 젊네. 나는 그가 신들 가운데 가장 젊고 또 늘 젊다고 주장하네.”, “그는 젊고 또 젊을 뿐만 아니라 섬섬(갸냘프고 여리다)하기도 하네. 그 신의 섬섬함을 드러내는 데는 호메로스 시인이 필요하네.”라고 말하며 에로스의 신체적 특성에 대해서 언급한다. 또한 에로스의 덕, 즉 정신적 특성인 정의, 절제, 용기, 지혜, 생산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정의- “에로스가 자신에게든 인간에게든 불의를 행하지도 않고, 신에 의해서든 인간에 의해서든 불의를 당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네.”
절제-“그는 정의에 더해 아주 풍부한 절제를 나눠 갖고 있네. 쾌락과 욕망을 지배하는 것이 절제인데, 그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하지 않다고 다들 동의하거든.”
용기- “또 실로 적어도 용기에 관한 한 에로스에게 ‘아레스조차도 맞서지 못한다네. 아레스가 에로스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가 아레스를 붙잡고 있거든”
지혜- “그 신은 남도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로운 시인이네. 어쨌거나 에로스가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지어 이전에는 뮤즈 여신과 거리가 멀었다 해도 시인이 되지. 에로스가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의 통틀어 말해 시가 기술과 관련된 모든 창작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의 증거로 삼는 게 적절한 것이네.”
생산-“또 실로 모든 생물의 생산(창작-만듦)에 관해서도 모든 생물이 태어나고 자라게 되는 게 에로스의 지혜에 의해서가 아니라고 누가 가로막고 나서겠는가?
이 과정을 통해 아가톤은 에로스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기에 비슷한 다른 것들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 디오티마에게서 들은 가르침을 전하면서 기존 발언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에로스를 신이 아니라 중간적 존재인 다이몬으로 보며, 인간이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과 지혜를 추구하는 욕망의 힘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그는 에로스를 육체적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점차 정신적 아름다움과 지혜, 나아가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나아가는 상승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는 일명 ‘에로스의 사다리’로도 불리며,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고전본문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끄는 자가 올바로 이끌 경우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아름다운 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의 몸에 대한 이 열정을 무시하고 사소하다 여김으로써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미한 아름다움의 꽃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에게는 충분하며, 이자를 사랑하고 신경 써 주며 젊은이들을 더 훌륭한 자로 만들어 줄 그런 이야기들을 산출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번에는 그가 행실들과 법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도록, 그리고 그것 자체가 온통 그것 자체와 동류라는 것을 보도록 강제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몸에 관련된 아름다움이 사소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끄는 자는 그를 행실들 다음으로 앎들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가 이번에는 앎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이제는 아름다움 여럿을 쳐다보고 있기에, 더 이상 어리디 어린 소년이나 특정 인간이나 하나의 행실의 아름다움에 흡족하여 종처럼 하나에게 있는 아름다움에 노예 노릇 하면서 보잘것없고 하찮은 자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 일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끝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앞서의 모든 노고들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출전] 플라톤, 『향연』
토론하기
(1)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이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핵심적인 개념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2) 위 다섯 명이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찬미 내용과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정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3)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에로스에 대한 찬미 중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에로스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해설읽기
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의 만남
디오티마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사랑(에로스)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철학적 가르침을 전하는 여사제로 등장한다. 그녀는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을 넘어서, 사랑이 단순히 아름다운 대상을 욕망하거나 소유하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결핍에서 비롯된 지향성과 창조성의 힘임을 설명한다. 디오티마의 설명은 플라톤 철학에서 에로스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먼저 디오티마는 에로스를 신이 아니라 ‘다이몬’(daimon), 즉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 규정한다.
“인간들의 것을 신들에게, 그리고 신들의 것을 인간들에게 해석해 주고 전달해 줍니다. 인간들로부터는 탄원과 제사를, 그리고 신들로부터는 명령과 제사의 대가를 해석해 주고 전달해 주지요. 그들 양자의 가운데 있어서 그들 사이를 메워 주고, 그래서 그 전체가 그 자체로 서로 결속되게 해 줍니다.”
에로스는 신처럼 완전하거나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존재, 다시 말해 결핍된 존재이다. 그녀는 이를 통해 에로스가 단순히 아름다움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그것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자임을 밝힌다. 따라서 에로스는 지혜와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했기에 그것을 사랑하며, 이를 통해 인간 역시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사랑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오티마는 또한 사랑의 목적은 단순한 육체적 결합이나 쾌락이 아니라 ‘불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불멸을 추구하며, 사랑은 바로 이 불멸성을 획득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부 사람들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육체적인 불멸을 추구하고, 철학자나 시인, 입법자와 같은 사람들은 지혜나 업적, 덕과 같은 정신적인 창조물로 불멸을 추구한다. 이처럼 사랑은 영원한 아름다움과 선을 향한 창조적 충동이며, 인간 존재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녀의 가르침 중 핵심은 에로스의 사다리라고 불리는 상승의 여정이다. 이는 사랑이 단순한 육체적 욕망에서 시작하여 점차 정신적·지적인 사랑으로 전환되고, 마침내는 ‘아름다움 그 자체’—즉 감각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이고 순수한 이데아로서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게 된다는 과정이다. 이 아름다움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형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이며, 철학자는 이를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디오티마는 사랑이 단지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결핍에서 출발하여 진리, 선,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철학적 여정이라는 점을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친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사랑을 일시적인 감정이나 쾌락이 아니라, 지혜와 진리를 향한 영혼의 열망으로 승화시키며, 철학의 중심에 에로스를 놓는다. 디오티마의 가르침은 플라톤 철학 전체에서 에로스를 존재론적, 인식론적 원리로 확장시키는 핵심적인 사유로 평가된다.
에로스의 사다리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여사제 디오티마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통해 사랑(에로스)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에로스를 단순한 감정이나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인간이 참된 아름다움과 진리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동력이라고 본다. 이 과정은 ‘에로스의 사다리’라 불리는 점진적인 상승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사다리는 사랑의 대상을 점점 더 높은 차원으로 확장시키며, 감각적인 사랑에서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 가는 여정이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다. 한 사람의 외모나 신체적인 매력에 매혹되어 사랑이 시작된다.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곧이어, 두 번째 단계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의 육체적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육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다. 이때 사랑은 개별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 확장된다.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육체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고귀한 대상, 즉 영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다. 이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목들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며, 이때부터 사랑은 육체적인 매혹을 넘어서 도덕적이고 지적인 차원으로 상승한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이어지는 네 번째 단계에서는 한 개인의 덕이나 영혼을 넘어서, 사회 제도나 법, 관습, 학문과 예술 등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정신적이고 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다. 사랑은 점점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하면 그가 행실들과 법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도록, 그리고 그것 자체가 온통 그것 자체와 동류라는 것을 보도록 강제될 것이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모든 개별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아름다움 그 자체’를 인식하게 된다. 이 아름다움은 감각적이지 않으며,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 즉 ‘이데아’이다.
“아름다움의 큰 바다로 향하게 되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결국 거기서 힘을 얻고 자라나서 어떤 단일한 앎을 즉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에 대한 것으로서의 앎을 직관하게 됩니다.”
디오티마에 따르면, 이를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육체나 특정한 대상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와 선, 절대적 아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며, 이는 곧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자 철학자가 추구해야 할 가장 고귀한 사랑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에로스의 사다리는 단순한 감정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철학적 사유와 내면의 성숙을 통해 진리와 이데아에 도달하는 존재론적 여정이다. 이는 사랑이 곧 인식의 길이며, 철학이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리의 탐구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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