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도시에 사는 언니가 시골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갔다. 이 둘은 도시와 시골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동생의 남편 농부 바홈이 말했다.
“우리 농부들은 어려서부터 땅을 벗 삼아 살아왔기 때문에 어리석은 유혹에는 빠질 틈이 없어요. 원하는 만큼의 땅만 가질 수 있다면 악마라도 두렵지 않아요.”
화덕 뒤에 숨어 있던 악마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악마는 화가 났다. 악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그럼 어디 한번 붙어보자. 내가 너에게 땅을 넉넉히 주지. 그리고 그 땅으로 널 유혹하고 말겠다.”
마을의 지주가 땅을 팔았다. 마을 농부들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샀다. 바홈은 자신만의 땅이 생겨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다른 농부들의 가축이 자신의 땅으로 들어와 작물을 짓밟았다. 그는 이웃들에게 부탁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는 화가 나서 이웃 농부들을 고발했고, 이웃 농부들은 그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했다.
어느 날, 바홈은 ‘새로운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약 400킬로를 간 뒤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땅의 가격도 저렴했다. 비옥한 땅에서 작물이 무럭무럭 자랐고, 그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바홈은 한 농부를 만난다. 파산하는 바람에 500 데샤티나의 땅을 1500루블에 판다는 것이었다. 바홈은 계약을 성사되기 직전 한 상인을 만난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바시키르에서 500 데샤티나의 땅을 고작 1000루블에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놀란 바홈은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정리한 후 바시키르로 향했다. 그곳에 가보니 모든 것은 상인이 말한 그대로였다. 바홈은 바시키르인들과 거래를 했다.
“땅값은 하루에 1000루블입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직접 걸어갔다가 돌아온 만큼의 땅이 1000루블입니다.
바홈은 신이 났다. 다음날 바홈은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일찍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달렸다. 자신이 걸어간 것만큼 내 땅에 더 늘어난다는 기쁨 때문에 바홈은 그 걸음을 더욱 빨라졌다. 악마는 이런 바홈의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한 미소를 짓는다.
한참이나 달렸던 바홈, 문득 저 멀리 해가 지는 모습에 놀라 급히 발걸음을 돌이킨다.
이 해가 다 질 때까지 마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지금까지 달려와서 확보한 그 땅이 무효가 된다. 그러나 너무 멀리 왔다. 급해진 바홈은 죽을 만큼 달리며 돌아가려 했다. 결국 가까스로 마을로 돌아온 바홈, 이를 멀리서 보고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 그러나 얼마 후 바홈 곁으로 온 그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것, 그것은 피를 흘린 채 죽어있는 ‘바홈의 시신’이었다.
이를 본 바시키르 사람들은 땅을 파서 바홈을 묻었다. 결국 바홈에게 주어진 땅은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묻힐 ‘무덤의 크기’인 ‘땅 1평뿐’이었다.
고전본문
바홈은 곧장 언덕 쪽을 향해 걸었으나 점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몸은 땀 투성이가 되고 장화를 벗은 발은 찢기고 베이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좀 쉬고도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해는 사정없이 넘어갔다.
‘아, 실패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 너무 욕심을 낸 게 아닐까? 만약 늦으면 어떡한담.’
그는 언덕과 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출발점까지는 아직도 멀었으나 해는 이제 막 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홈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몹시 괴로웠으나 쉴 새 없이 걸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길은 멀었다. 마침내 뛰기 시작했다. 조끼도 장화도 물통도 모자도 내팽개치고 오직 괭이만을 들고 그것을 지팡이 삼아 뛰었다.
‘아, 내가 너무 욕심이 지나쳤어. 이제 다 끝났다. 해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할 것 같지 않아.’
그는 이렇게 두려운 생각으로 숨까지 막혀 왔다.
바홈은 무작정 달렸다. 땀에 젖은 속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고 입은 바싹 말라 버렸다. 가슴은 대장간 풀무처럼 펄럭거렸고 심장은 망치질을 하듯이 뚝딱거렸다. 다리는 남의 다리처럼 휘청거렸다. 바홈은 이러다가 죽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죽는 것은 무섭지만 멈춰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생스레 뛰어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멈추어 선다면 그야말로 바보 소릴 듣겠지.’
그가 계속 달리고 달려서 겨우 가까이까지 왔을 때 바스끼르 사람들이 그를 향해 질러대는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외침소리 때문에 그의 심장은 한층 더 열이 올랐다. 바홈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달리고 있었는데 해는 이미 지평선 가까이 저녁 노을 속으로 떨어져 가느라 새빨간 큰 공처럼 보였다. 드디어 이제 넘어가는 것이다. 해는 이제 떨어지고 있었다. 바홈은 용기 내어 언덕으로 달려 올라갔다.(중략)
‘허어, 장하구려! 땅을 완전히 잡으셨소.’
바홈의 하인이 달려가서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쓰러져 죽고 말었던 것이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 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1아르시은 약 70센티미터)을 팠다. 바홈의 무덤을 위해. 그리하여 그를 그곳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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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레프 톨스토이, 『사람에게는 얼마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토론하기
(1) 바홈은 값싼 가격에 넓은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컸지만, 넓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바홈이 죽음을 맞이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2)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마음이 욕심이나 탐욕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이나 태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3)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주변에서 탐욕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왜 그러한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탐욕의 세 얼굴
톨스토이는 탐욕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탐욕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악마’인 것을 톨스토이는 작품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통해 경고한다.
탐욕은 일상에서 세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첫째, 탐욕은 가끔 인색한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돕지 못하는 인색한 사람의 삶에서 간혹 나타난다.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모습 때문이다.
또한 탐욕은 결국 다른 사람의 것을 사악한 방식으로 탈취하는 악덕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탈취하여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는 탐욕스러운 사람도 발견된다. 다른 사람의 형편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이 더 가지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로채고 빼앗아 오는 사람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탐욕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영원한 갈증으로 나타난다. 바홈의 경우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바홈이 자신이 확보한 땅에 만족하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왔다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홈은 너무 욕심을 내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가서는 안 되었다. 멈춰서야 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에서 멈추고 돌아왔어야 했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하고 너무 멀리 가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었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만족하지 못하면 가지고 있는 것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한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행복의 핵심은 스스로 만족할 아는 마음에 달려 있다.
행복은 지족(知足)에 달려 있다!
기원전 4세기경, 세계 정복을 꿈꾸던 알렉산더 대왕은 당대의 괴짜 철학자로 알려진 디오게네스를 찾아간다.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의 대표자로, 물질적 소유와 사회적 권위, 관습을 거부하고 자연에 따라 단순하고 자족적인 삶을 살 것을 주장했다. 그는 항아리 속에서 거주하며, 최소한의 필요만으로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이런 디오게네스를 흥미롭게 여겨 직접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담담하게, ‘해를 가리지 말게.
즉, 알렉산더가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달라고 대답한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조차 자신의 삶에 아무런 필요가 없으며, 단지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준다. 반면, 알렉산더는 그 단순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동받아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진정한 행복은 권력과 같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족적 삶의 태도에서 비롯됨을 일깨워준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다 정복하고도 여전히 부족함에 시달리며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항아리 속에 들어가 살면서도 순간순간 욕망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만족하며 자신을 축복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행복을 느끼면 살았다,
마음속의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살 때 행복이 다가온다. 돈과 권력이 행복을 조립해주는 부품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만족을 알고 스스로 만족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에 달려 있다.
키워드
땅, 소유, 지족, 탐욕, 행복
전후맥락
도시에 사는 언니가 시골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갔다. 이 둘은 도시와 시골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동생의 남편 농부 바홈이 말했다.
“우리 농부들은 어려서부터 땅을 벗 삼아 살아왔기 때문에 어리석은 유혹에는 빠질 틈이 없어요. 원하는 만큼의 땅만 가질 수 있다면 악마라도 두렵지 않아요.”
화덕 뒤에 숨어 있던 악마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악마는 화가 났다. 악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그럼 어디 한번 붙어보자. 내가 너에게 땅을 넉넉히 주지. 그리고 그 땅으로 널 유혹하고 말겠다.”
마을의 지주가 땅을 팔았다. 마을 농부들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샀다. 바홈은 자신만의 땅이 생겨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다른 농부들의 가축이 자신의 땅으로 들어와 작물을 짓밟았다. 그는 이웃들에게 부탁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그는 화가 나서 이웃 농부들을 고발했고, 이웃 농부들은 그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했다.
어느 날, 바홈은 ‘새로운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약 400킬로를 간 뒤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땅의 가격도 저렴했다. 비옥한 땅에서 작물이 무럭무럭 자랐고, 그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바홈은 한 농부를 만난다. 파산하는 바람에 500 데샤티나의 땅을 1500루블에 판다는 것이었다. 바홈은 계약을 성사되기 직전 한 상인을 만난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바시키르에서 500 데샤티나의 땅을 고작 1000루블에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놀란 바홈은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정리한 후 바시키르로 향했다. 그곳에 가보니 모든 것은 상인이 말한 그대로였다. 바홈은 바시키르인들과 거래를 했다.
“땅값은 하루에 1000루블입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직접 걸어갔다가 돌아온 만큼의 땅이 1000루블입니다.
바홈은 신이 났다. 다음날 바홈은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일찍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달렸다. 자신이 걸어간 것만큼 내 땅에 더 늘어난다는 기쁨 때문에 바홈은 그 걸음을 더욱 빨라졌다. 악마는 이런 바홈의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한 한 미소를 짓는다.
한참이나 달렸던 바홈, 문득 저 멀리 해가 지는 모습에 놀라 급히 발걸음을 돌이킨다.
이 해가 다 질 때까지 마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지금까지 달려와서 확보한 그 땅이 무효가 된다. 그러나 너무 멀리 왔다. 급해진 바홈은 죽을 만큼 달리며 돌아가려 했다. 결국 가까스로 마을로 돌아온 바홈, 이를 멀리서 보고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 그러나 얼마 후 바홈 곁으로 온 그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것, 그것은 피를 흘린 채 죽어있는 ‘바홈의 시신’이었다.
이를 본 바시키르 사람들은 땅을 파서 바홈을 묻었다. 결국 바홈에게 주어진 땅은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묻힐 ‘무덤의 크기’인 ‘땅 1평뿐’이었다.
고전본문
바홈은 곧장 언덕 쪽을 향해 걸었으나 점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몸은 땀 투성이가 되고 장화를 벗은 발은 찢기고 베이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좀 쉬고도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해는 사정없이 넘어갔다.
‘아, 실패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 너무 욕심을 낸 게 아닐까? 만약 늦으면 어떡한담.’
그는 언덕과 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출발점까지는 아직도 멀었으나 해는 이제 막 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홈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몹시 괴로웠으나 쉴 새 없이 걸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길은 멀었다. 마침내 뛰기 시작했다. 조끼도 장화도 물통도 모자도 내팽개치고 오직 괭이만을 들고 그것을 지팡이 삼아 뛰었다.
‘아, 내가 너무 욕심이 지나쳤어. 이제 다 끝났다. 해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할 것 같지 않아.’
그는 이렇게 두려운 생각으로 숨까지 막혀 왔다.
바홈은 무작정 달렸다. 땀에 젖은 속옷은 몸에 찰싹 달라붙고 입은 바싹 말라 버렸다. 가슴은 대장간 풀무처럼 펄럭거렸고 심장은 망치질을 하듯이 뚝딱거렸다. 다리는 남의 다리처럼 휘청거렸다. 바홈은 이러다가 죽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죽는 것은 무섭지만 멈춰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생스레 뛰어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멈추어 선다면 그야말로 바보 소릴 듣겠지.’
그가 계속 달리고 달려서 겨우 가까이까지 왔을 때 바스끼르 사람들이 그를 향해 질러대는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외침소리 때문에 그의 심장은 한층 더 열이 올랐다. 바홈은 마지막 힘을 다하여 달리고 있었는데 해는 이미 지평선 가까이 저녁 노을 속으로 떨어져 가느라 새빨간 큰 공처럼 보였다. 드디어 이제 넘어가는 것이다. 해는 이제 떨어지고 있었다. 바홈은 용기 내어 언덕으로 달려 올라갔다.(중략)
‘허어, 장하구려! 땅을 완전히 잡으셨소.’
바홈의 하인이 달려가서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쓰러져 죽고 말었던 것이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 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3아르신(1아르시은 약 70센티미터)을 팠다. 바홈의 무덤을 위해. 그리하여 그를 그곳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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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레프 톨스토이, 『사람에게는 얼마 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토론하기
(1) 바홈은 값싼 가격에 넓은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컸지만, 넓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바홈이 죽음을 맞이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2)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마음이 욕심이나 탐욕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이나 태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3)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주변에서 탐욕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고 왜 그러한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탐욕의 세 얼굴
톨스토이는 탐욕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탐욕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악마’인 것을 톨스토이는 작품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통해 경고한다.
탐욕은 일상에서 세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첫째, 탐욕은 가끔 인색한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돕지 못하는 인색한 사람의 삶에서 간혹 나타난다.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모습 때문이다.
또한 탐욕은 결국 다른 사람의 것을 사악한 방식으로 탈취하는 악덕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탈취하여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는 탐욕스러운 사람도 발견된다. 다른 사람의 형편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이 더 가지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로채고 빼앗아 오는 사람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탐욕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영원한 갈증으로 나타난다. 바홈의 경우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바홈이 자신이 확보한 땅에 만족하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왔다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홈은 너무 욕심을 내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가서는 안 되었다. 멈춰서야 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에서 멈추고 돌아왔어야 했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하고 너무 멀리 가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없었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만족하지 못하면 가지고 있는 것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한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행복의 핵심은 스스로 만족할 아는 마음에 달려 있다.
행복은 지족(知足)에 달려 있다!
기원전 4세기경, 세계 정복을 꿈꾸던 알렉산더 대왕은 당대의 괴짜 철학자로 알려진 디오게네스를 찾아간다.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의 대표자로, 물질적 소유와 사회적 권위, 관습을 거부하고 자연에 따라 단순하고 자족적인 삶을 살 것을 주장했다. 그는 항아리 속에서 거주하며, 최소한의 필요만으로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이런 디오게네스를 흥미롭게 여겨 직접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담담하게, ‘해를 가리지 말게.
즉, 알렉산더가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달라고 대답한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조차 자신의 삶에 아무런 필요가 없으며, 단지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준다. 반면, 알렉산더는 그 단순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동받아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진정한 행복은 권력과 같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족적 삶의 태도에서 비롯됨을 일깨워준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다 정복하고도 여전히 부족함에 시달리며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항아리 속에 들어가 살면서도 순간순간 욕망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만족하며 자신을 축복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행복을 느끼면 살았다,
마음속의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살 때 행복이 다가온다. 돈과 권력이 행복을 조립해주는 부품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 만족을 알고 스스로 만족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에 달려 있다.
키워드
땅, 소유, 지족, 탐욕,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