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판단은 지식, 감각적 쾌락, 윤리, 그 어느 것과도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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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 


셀 묶음 : 아름다움과 삶의 거리

 아름다움의 정의는 시대와 이론에 따라 달라진다. 서양에서는 고대 이래로 미를 조화와 비례 같은 대상의 속성에서 찾는 관점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영국 경험론을 위시해 미의 근거를 주관의 인식과 감정 자체에서 찾는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미와 삶의 다른 영역이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이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선미(善美; kalokagathia), 즉 외면적 미(kalos)와 내면적 선(agathos)의 일치를 추구했다. 근대 이후의 미는, 여전히 선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미주의에서처럼 독자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표현하는 기술이라고 할 때, 예술의 성격과 역할 역시 그와 함께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다. 선미의 합일에 기반하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은 완벽한 비례를 갖춘 신체를 통해 단순히 외면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신적인 덕목 역시 함께 표현한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신고전주의 회화는 정물화나 풍경화처럼 단순히 대상의 외양을 묘사하는 그림이 아니라 역사화, 즉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성의 가치를 밝히는 그림을 우위에 놓았다. 리얼리즘 회화처럼 구체적인 이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사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현대의 추상회화는 아무런 내용적인 주제를 갖지 않으며 회화 매체의 물질성 자체를 강조하는 경향에서 등장했다.

이처럼 아름다움/예술은 정치, 윤리 등 삶의 다른 영역과 절대적인 거리를 두기도 하고 전혀 거리를 두지 않고 삶에 개입하거나 삶 자체가 되기를 지향하기도 한다. 이 묶음에서는 서양 근현대의 글 몇 편을 통해 아름다움/예술이 삶과 관계 맺거나 단절하는 방식들을 살펴본다. 근대 미학의 기반을 닦은 칸트는 무관심적인 미적 판단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지식, 유용성, 도덕 등 다른 일체의 영역과 무관한 것으로서의 미 개념을 제시한다. 이를 계승한 그린버그의 미술론은 형식주의적인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의 문화정치적 가치를 함께 주장한다. 니체는 “신의 죽음”이라는 테제를 통해 종래의 가치 기준이 무너진 근대 이후 인간의 삶이란 그 자체로 창조의 문제가 되었음을, 즉 삶이란 곧 하나의 예술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며, 앙드레 브르통은 꿈, 무의식 등 현실 너머의 것을 탐구함으로써 현실을 새로 쓰는 초현실주의 예술의 방법론을 제안한다.

아름다움은 정치든 유용성이든 삶의 다른 영역들과 완전히 구분될 수 있을까, 혹은 그래야 할까? 예술은 일상과는 동떨어진 공간일까? 반대로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정치적인 문제이며 예술 또한 그러하다면, 직접적인 주장을 담은 작품 외에 다른 방식도 상상할 수 있을까? 미와 추,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구분히 갈수록 흐려져 가는 현대에 직접 적용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필요한 저런 질문들을 탐구하는 데 있어 정박지로 삼을 수 있는 시사점을 주는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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