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즐거운 학문』은 전반부에서는 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등의 전작에서 전개해 온 도덕 비판을 이어가고 후반부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구체화될 신의 죽음, 초인 등의 논의를 위한 기반을 닦는다. 지문은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대목으로, 장터에서 신의 죽음을 설파하는 광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야 처음으로 언급되지만, 이 광인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바로 그 차라투스트라다.
광인은 사람들에게 신은 죽었다고, 그리고 신을 살해한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라고 설파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저 웃음거리로 삼는다. 이미 신앙심이나 경외심은 잃어버려 자신들도 신을 갖고서 농담을 하지만, 정작 신이 사라졌다는 것의 의미는 모르기 때문이다. 신의 죽음은 바로 지금까지 인간이 삶이 의지해 왔던 모든 기준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광인이 보기에 인간은 더 이상 그런 절대적 기준을 믿지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저 관성적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삶의 토대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런 것이 여전히 있기는 한지, 앞으로는 어떤 삶을 창조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고전본문
§125
광인. 낡이 밝았는데도 초롱불을 켜고 장터로 달려가 줄기차게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하고 외친 그 광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주위에 잔뜩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는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신이 미아가 되었다고 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이 어딘가에 숨어버렸소? 신이 우리가 무섭다 하오? 배를 타기라도 했소? 이민이라도 갔단 말이오? 사람들이 소리치고 웃어대는 통에 야단이 일었다. 광인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노려보자 좌중이 얼어붙었다. “신이 어디로 가버렸느냐고?” 그가 외쳤다.
“내 말해 드리리다, 우리가 신을 죽였소 ― 당신들과 내가 말이오! 우리가 신을 살해했단 말이오! 그런데 대관절 어떻게 그리 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바닷물을 다 마셔 없앨 수 있었단 말인가? 저 지평선 너머까지를 단번에 닦아버릴 걸레를 누가 우리에게 주었단 말인가? 지구를 태양에서 떼어내 버리다니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 땅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모든 태양과 멀어지고 마는 것인가? 멈출 줄 모르고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사방으로? 위아래랄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그저 무한한 무無 속을 헤메이는 것은 아닌가? 텅 빈 우주가 한숨만 내쉬는 것은 아닌가? 추위가 닥쳐 온 것은 아닌가? 계속해서 밤이 내려앉아 갈수록 어두워만 지는 것은 아닌가? 아침에도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신을 파묻는 사토장이들이 저리 소란스러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도 썩는다! 신은 죽었다! 이미 죽은지 오래다! 그리고 그를 죽인 것은 바로 우리요.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를 위로할 길이 있으랴. 세상이 지금껏 가져본 가장 성스럽고 전능한 것이 우리의 칼에 피 흘리며 죽었는데 누가 우리에게 묻은 피를 닦아 주랴. 무슨 물로 우리를 씻을 수 있으랴. 죄를 씻는 어떤 의식을, 어떤 신성한 제전을 만들어 내야 할꼬.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 아닌가? 그에 걸맞아 보이려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이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소.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다음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역사보다도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되리니!”
광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입을 다문 채 놀란 눈으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바닥에 초롱을 내던졌다. 불은 꺼지고 초롱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 그가 말을 이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아니하였구나. 이 대사건은 아직도 찾아오는 중이요 방황하는 중이구나. 인간의 귀에는 아직 당도하지 아니하였구나. 천둥번개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별빛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행위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 이미 벌어진 일이라도 보이고 들리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로다. 이 행위은 그들에게는 가장 멀리 있는 별보다도 더 멀리 있구나, 하지만 그들 스스로 저지른 일인 것을!”
전하기로, 광인은 그날 여러 교회를 찾아가 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문을 읊조렸다. 끌어내어 따져 묻는 이들에게는 매번 이렇게 답하였다. “이제 이 교회들이 다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125
광인. 낡이 밝았는데도 초롱불을 켜고 장터로 달려가 줄기차게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하고 외친 그 광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주위에 잔뜩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는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신이 미아가 되었다고 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이 어딘가에 숨어버렸소? 신이 우리가 무섭다 하오? 배를 타기라도 했소? 이민이라도 갔단 말이오? 사람들이 소리치고 웃어대는 통에 야단이 일었다. 광인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노려보자 좌중이 얼어붙었다. “신이 어디로 가버렸느냐고?” 그가 외쳤다.
“내 말해 드리리다, 우리가 신을 죽였소 ― 당신들과 내가 말이오! 우리가 신을 살해했단 말이오! 그런데 대관절 어떻게 그리 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바닷물을 다 마셔 없앨 수 있었단 말인가? 저 지평선 너머까지를 단번에 닦아버릴 걸레를 누가 우리에게 주었단 말인가? 지구를 태양에서 떼어내 버리다니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 땅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모든 태양과 멀어지고 마는 것인가? 멈출 줄 모르고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사방으로? 위아래랄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그저 무한한 무無 속을 헤메이는 것은 아닌가? 텅 빈 우주가 한숨만 내쉬는 것은 아닌가? 추위가 닥쳐 온 것은 아닌가? 계속해서 밤이 내려앉아 갈수록 어두워만 지는 것은 아닌가? 아침에도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신을 파묻는 사토장이들이 저리 소란스러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도 썩는다! 신은 죽었다! 이미 죽은지 오래다! 그리고 그를 죽인 것은 바로 우리요.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를 위로할 길이 있으랴. 세상이 지금껏 가져본 가장 성스럽고 전능한 것이 우리의 칼에 피 흘리며 죽었는데 누가 우리에게 묻은 피를 닦아 주랴. 무슨 물로 우리를 씻을 수 있으랴. 죄를 씻는 어떤 의식을, 어떤 신성한 제전을 만들어 내야 할꼬.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 아닌가? 그에 걸맞아 보이려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이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소.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다음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역사보다도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되리니!”
광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입을 다문 채 놀란 눈으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바닥에 초롱을 내던졌다. 불은 꺼지고 초롱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 그가 말을 이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아니하였구나. 이 대사건은 아직도 찾아오는 중이요 방황하는 중이구나. 인간의 귀에는 아직 당도하지 아니하였구나. 천둥번개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별빛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행위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 이미 벌어진 일이라도 보이고 들리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로다. 이 행위은 그들에게는 가장 멀리 있는 별보다도 더 멀리 있구나, 하지만 그들 스스로 저지른 일인 것을!”
전하기로, 광인은 그날 여러 교회를 찾아가 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문을 읊조렸다. 끌어내어 따져 묻는 이들에게는 매번 이렇게 답하였다. “이제 이 교회들이 다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출전] 니체, 『즐거운 학문』제3부
토론하기
(1) 여기서 말하는 신은 단순히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 체계의 기반을 가리킨다고 할 때, 신의 죽음이 인간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자.
(2) 기존의 가치 체계가 무너졌을 때 인간은 어떻게 ‘좋은 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를 ‘예술로서의 삶’ 혹은 ‘창조로서의 삶’이라는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
(3) 각자가 자신의 삶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어떤 의미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흔히 서구의 근대를 계몽의 시대라고 할 만큼, 이 시기 서구에서는 인간 이성의 지위가 크게 격상되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지배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법칙을 이해하고 고유한 자유를 행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신이 죽었다고, 우리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말하는 광인과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보여준다.
서구 문화에서 신은 그저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나 인간이 현세와 내세에서의 복을 비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 속에서 행위하는 원리를 제공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영원불변하는 진리의 세계와 끊임 없이 변화하는 한낱 그림자일 뿐인 현상의 세계, 신과 인간, 인간과 짐승 같은 이분법의 근원이자 선과 악의 구분을 규정하는 기반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기독교가 일반화되기 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신이 죽었다는 것은 그러한 가치의 기반 일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지구가 태양의 인력권에서 벗어나고 위아래, 밤낮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광인의 말은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광인은, 그처럼 무너진 질서를 되돌리는 대신 그저 신의 명복을 빌기로, 교회는 그저 묘비로 여기기로 한다. 이미 자신들의 세계관이 달라진 것을 모른 체 여전히 신의 이름을 되뇌는 이들에게 새 출발을 명하는 것이다.
세계를 A와 A가 아닌 것으로 양분하고 모두가 끝없이 A를 추구하는 것이 기존의 삶이라면, 그러한 구분이 무너진 세계에서는 각자가 고유한 가치 체계를 수립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참신한 예술 작품은 외부 세계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자체가 만드는 독자적인 세계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은 이제 죽은 신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새로운 기준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광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예술이, 창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기준대로 삶을 창조한다면, 공동체 혹은 사회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을 것이다. 실제로 니체는 강함의 가치를 강조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강한 자가 되어 타인을 휘두르라는 말이기보다는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중론을 모으고 그것을 따르는 데 치중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으로, 다시 말해 각자가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키워드
미적 전회, 신의 죽음, 창조, 프리드리히 니체
전후맥락
『즐거운 학문』은 전반부에서는 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등의 전작에서 전개해 온 도덕 비판을 이어가고 후반부에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구체화될 신의 죽음, 초인 등의 논의를 위한 기반을 닦는다. 지문은 책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대목으로, 장터에서 신의 죽음을 설파하는 광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야 처음으로 언급되지만, 이 광인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바로 그 차라투스트라다.
광인은 사람들에게 신은 죽었다고, 그리고 신을 살해한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라고 설파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저 웃음거리로 삼는다. 이미 신앙심이나 경외심은 잃어버려 자신들도 신을 갖고서 농담을 하지만, 정작 신이 사라졌다는 것의 의미는 모르기 때문이다. 신의 죽음은 바로 지금까지 인간이 삶이 의지해 왔던 모든 기준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광인이 보기에 인간은 더 이상 그런 절대적 기준을 믿지도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그저 관성적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삶의 토대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런 것이 여전히 있기는 한지, 앞으로는 어떤 삶을 창조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고전본문
§125
광인. 낡이 밝았는데도 초롱불을 켜고 장터로 달려가 줄기차게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하고 외친 그 광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주위에 잔뜩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는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신이 미아가 되었다고 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이 어딘가에 숨어버렸소? 신이 우리가 무섭다 하오? 배를 타기라도 했소? 이민이라도 갔단 말이오? 사람들이 소리치고 웃어대는 통에 야단이 일었다. 광인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노려보자 좌중이 얼어붙었다. “신이 어디로 가버렸느냐고?” 그가 외쳤다.
“내 말해 드리리다, 우리가 신을 죽였소 ― 당신들과 내가 말이오! 우리가 신을 살해했단 말이오! 그런데 대관절 어떻게 그리 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바닷물을 다 마셔 없앨 수 있었단 말인가? 저 지평선 너머까지를 단번에 닦아버릴 걸레를 누가 우리에게 주었단 말인가? 지구를 태양에서 떼어내 버리다니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 땅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모든 태양과 멀어지고 마는 것인가? 멈출 줄 모르고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사방으로? 위아래랄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그저 무한한 무無 속을 헤메이는 것은 아닌가? 텅 빈 우주가 한숨만 내쉬는 것은 아닌가? 추위가 닥쳐 온 것은 아닌가? 계속해서 밤이 내려앉아 갈수록 어두워만 지는 것은 아닌가? 아침에도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신을 파묻는 사토장이들이 저리 소란스러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도 썩는다! 신은 죽었다! 이미 죽은지 오래다! 그리고 그를 죽인 것은 바로 우리요.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를 위로할 길이 있으랴. 세상이 지금껏 가져본 가장 성스럽고 전능한 것이 우리의 칼에 피 흘리며 죽었는데 누가 우리에게 묻은 피를 닦아 주랴. 무슨 물로 우리를 씻을 수 있으랴. 죄를 씻는 어떤 의식을, 어떤 신성한 제전을 만들어 내야 할꼬.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 아닌가? 그에 걸맞아 보이려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이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소.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다음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역사보다도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되리니!”
광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입을 다문 채 놀란 눈으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바닥에 초롱을 내던졌다. 불은 꺼지고 초롱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 그가 말을 이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아니하였구나. 이 대사건은 아직도 찾아오는 중이요 방황하는 중이구나. 인간의 귀에는 아직 당도하지 아니하였구나. 천둥번개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별빛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행위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 이미 벌어진 일이라도 보이고 들리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로다. 이 행위은 그들에게는 가장 멀리 있는 별보다도 더 멀리 있구나, 하지만 그들 스스로 저지른 일인 것을!”
전하기로, 광인은 그날 여러 교회를 찾아가 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문을 읊조렸다. 끌어내어 따져 묻는 이들에게는 매번 이렇게 답하였다. “이제 이 교회들이 다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125
광인. 낡이 밝았는데도 초롱불을 켜고 장터로 달려가 줄기차게 “나는 신을 찾는다! 나는 신을 찾는다!” 하고 외친 그 광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주위에 잔뜩 있는 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는 그야말로 웃음거리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신이 미아가 되었다고 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이 어딘가에 숨어버렸소? 신이 우리가 무섭다 하오? 배를 타기라도 했소? 이민이라도 갔단 말이오? 사람들이 소리치고 웃어대는 통에 야단이 일었다. 광인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노려보자 좌중이 얼어붙었다. “신이 어디로 가버렸느냐고?” 그가 외쳤다.
“내 말해 드리리다, 우리가 신을 죽였소 ― 당신들과 내가 말이오! 우리가 신을 살해했단 말이오! 그런데 대관절 어떻게 그리 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바닷물을 다 마셔 없앨 수 있었단 말인가? 저 지평선 너머까지를 단번에 닦아버릴 걸레를 누가 우리에게 주었단 말인가? 지구를 태양에서 떼어내 버리다니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 땅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모든 태양과 멀어지고 마는 것인가? 멈출 줄 모르고 떨어져 내리는 것인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사방으로? 위아래랄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그저 무한한 무無 속을 헤메이는 것은 아닌가? 텅 빈 우주가 한숨만 내쉬는 것은 아닌가? 추위가 닥쳐 온 것은 아닌가? 계속해서 밤이 내려앉아 갈수록 어두워만 지는 것은 아닌가? 아침에도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신을 파묻는 사토장이들이 저리 소란스러운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도 썩는다! 신은 죽었다! 이미 죽은지 오래다! 그리고 그를 죽인 것은 바로 우리요.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를 위로할 길이 있으랴. 세상이 지금껏 가져본 가장 성스럽고 전능한 것이 우리의 칼에 피 흘리며 죽었는데 누가 우리에게 묻은 피를 닦아 주랴. 무슨 물로 우리를 씻을 수 있으랴. 죄를 씻는 어떤 의식을, 어떤 신성한 제전을 만들어 내야 할꼬.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 아닌가? 그에 걸맞아 보이려면 우리 자신이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이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소.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 다음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역사보다도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되리니!”
광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입을 다문 채 놀란 눈으로 광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바닥에 초롱을 내던졌다. 불은 꺼지고 초롱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 그가 말을 이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아니하였구나. 이 대사건은 아직도 찾아오는 중이요 방황하는 중이구나. 인간의 귀에는 아직 당도하지 아니하였구나. 천둥번개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별빛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행위에도 시간이 필요한 법 ― 이미 벌어진 일이라도 보이고 들리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이로다. 이 행위은 그들에게는 가장 멀리 있는 별보다도 더 멀리 있구나, 하지만 그들 스스로 저지른 일인 것을!”
전하기로, 광인은 그날 여러 교회를 찾아가 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문을 읊조렸다. 끌어내어 따져 묻는 이들에게는 매번 이렇게 답하였다. “이제 이 교회들이 다 신의 무덤과 묘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출전] 니체, 『즐거운 학문』제3부
토론하기
(1) 여기서 말하는 신은 단순히 기독교의 신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 체계의 기반을 가리킨다고 할 때, 신의 죽음이 인간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자.
(2) 기존의 가치 체계가 무너졌을 때 인간은 어떻게 ‘좋은 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를 ‘예술로서의 삶’ 혹은 ‘창조로서의 삶’이라는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
(3) 각자가 자신의 삶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어떤 의미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흔히 서구의 근대를 계몽의 시대라고 할 만큼, 이 시기 서구에서는 인간 이성의 지위가 크게 격상되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지배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법칙을 이해하고 고유한 자유를 행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신이 죽었다고, 우리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말하는 광인과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보여준다.
서구 문화에서 신은 그저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나 인간이 현세와 내세에서의 복을 비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 속에서 행위하는 원리를 제공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영원불변하는 진리의 세계와 끊임 없이 변화하는 한낱 그림자일 뿐인 현상의 세계, 신과 인간, 인간과 짐승 같은 이분법의 근원이자 선과 악의 구분을 규정하는 기반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기독교가 일반화되기 전,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신이 죽었다는 것은 그러한 가치의 기반 일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지구가 태양의 인력권에서 벗어나고 위아래, 밤낮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광인의 말은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광인은, 그처럼 무너진 질서를 되돌리는 대신 그저 신의 명복을 빌기로, 교회는 그저 묘비로 여기기로 한다. 이미 자신들의 세계관이 달라진 것을 모른 체 여전히 신의 이름을 되뇌는 이들에게 새 출발을 명하는 것이다.
세계를 A와 A가 아닌 것으로 양분하고 모두가 끝없이 A를 추구하는 것이 기존의 삶이라면, 그러한 구분이 무너진 세계에서는 각자가 고유한 가치 체계를 수립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참신한 예술 작품은 외부 세계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자체가 만드는 독자적인 세계의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은 이제 죽은 신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새로운 기준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광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예술이, 창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기준대로 삶을 창조한다면, 공동체 혹은 사회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을 것이다. 실제로 니체는 강함의 가치를 강조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강한 자가 되어 타인을 휘두르라는 말이기보다는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중론을 모으고 그것을 따르는 데 치중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으로, 다시 말해 각자가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공존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키워드
미적 전회, 신의 죽음, 창조,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