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 글에서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로서의 추상미술에 주목하며, 키치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예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는 고급예술로 여겨져 온 아카데미 회화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요컨대 널리 이해되고 공감을 살 수 있는 내용과 이미 정착된 형식에 천착하는 예술은 모두 키치라고 할 수 있으며, 아방가르드는 그러한 반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예술의 지반 자체를 다시 만드는 예술이다.
글의 도입부에서 가져온 아래 지문은 아방가르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서술을 담고 있다. 그린버그는 어떻게 하나의 사회에서 T. S. 엘리엇의 모더니즘 문학과 대중가요 가사,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 회화와 통속적인 잡지 표지 그림 같이 대조적인 것들이 같이 창작되고 감상되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그는 대중적으로 이해되거나 인기를 끌지 않는 전자의 예술이 등장한 것은 단순히 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변화나 역사 자체의 힘과 결부된 문제라고 진단하는데, 지문은 그 직후 그가 외견상 사회에 무관심하고 예술 자체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사회나 정치, 그리고 예술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탄생했는지를 논의하는 부분이다.
고전본문
그렇다, 보헤미아에* 최초로 자리 잡은 이들 ― 당시에는 그들이 아방가르드였다 ― 은 정치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은 곧 가감 없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세간에 혁명적 사상이 유통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부르주아”라는 개념을 떼어내어 자신들이 무엇이 아닌지를 규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혁명적인 정치적 태도들의 도덕적 도움 없이는 사회에 팽배한 기준들에 맞서 공격적으로 스스로를 내세울 용기를 낼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방가르드가 부르주아 사회에서 보헤미아로 이주해 간다는 것은 또한 자본주의 시장을, 귀족 후원자가 사라지면서 미술가와 문학가가 내던져졌던 그 시장을 떠난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듯 아방가르드는 다름아닌 그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사회와 절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런 ― 골방에서 굶게 된다는 ― 뜻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회와 “절연”하는 데 성공한 아방가르드가 태세를 바꾸어 부르주아 정치는 물론 혁명적 정치 또한 부정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혁명은 지금까지 문화가 의지해 왔던 “소중한” 금과옥조를 포함하게 되자마자 사회 속에, 미술과 시가 너무도 헛되다고 여기는 이념 투쟁의 아수라장에 남겨졌다. 그리하여 아방가르드의 진정하고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혼돈과 폭력 한가운데서도 문화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임이 밝혀졌다. 공적인 것에서는 전부 물러난 아방가르드 시인, 미술가는 작업의 폭을 좁히고 또한 작업을 모든 상대적인 것들과 모순이 해소되거나 중요하지 않게 되는 절대적인 것의 표현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자 했다. “미술을 위한 미술”과 “순수 시”가 등장하고 주제나 내용은 피해야 할 역병 같은 것이 된다.
아방가르드가 “추상적” 혹은 “비대상적” 미술에 도달한 것은 절대를 찾는 과정에서였다 ― 시도 마찬가지다. 아방가르드 시인이나 미술가는 결국, 자연이 그 자체로 타당하고 풍경화가 아닌 풍경 자체가 미적으로 타당하듯 오직 그 자체로서 타당한 무언가, 주어진 무언가를, 본래적으로 존재하며 의미, 닮음, 원본 같은 것들과는 무관한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신을 모방하려 하는 것이다. 내용은 형식에 완전히 녹아들어, 미술작품, 문학작품은 전체로서든 부분으로서든, 그것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이고, 시인이나 미술가는 어떤 상대적인 가치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는 다름 아닌 상대적인 가치들, 미학의 가치들의 이름으로 절대적인 것을 호출한다. 이로써, 그가 모방하는 것은 ― 나는 여기서 “모방”을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로 쓰고 있다 ― 신이 아니라 미술과 문학의 규칙과 과정 자체임이 드러난다. 이것이 “추상(abstract)”의 기원이다. 시인이나 미술가는 그간 공통의 경험이라는 주제에 두었던 관심을 자기 일의 재료에로 돌린다. 비재현적인 것 혹은 “추상적”인 것이 미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자의적이거나 우연해서는 안 되며 모종의 가치 있는 제약 혹은 독창적인 것에의 복종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공통적이고 외향적인 경험의 세계를 한 번 단념한 이상, 이 제약은 오로지 미술과 문학이 세계를 모방했던 과정들 혹은 규칙들 자체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이것 자체가 미술과 문학의 주제가 된다.
* 여기서 보헤미아는 사회와 단절된 예술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출처] 그린버그,『아방가르드와 키치』
토론하기
(1) “미술을 위한 미술”이나 “순수 시” 등 주제나 내용을 갖지 않는 형식주의적인 예술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이 글의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보자.
(2) 반대로 대중가요의 가사나 잡지 표지 그림처럼 주제와 내용에 집중하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예술이나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문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경우도 있을지 생각해 보자.
(3)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답을 토대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아방가르드와 키치, 전위와 후위 등)의 위계를 나누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지문에서 보헤미아로 간 예술 혹은 아방가르드 예술은 외적으로는 부르주아 사회 및 그 시장, 내적으로는 내용적인 주제와 단절한 예술로 정의된다. 이것이 새로이 주제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 세계를 모방하는 과정과 규칙, 즉 예술의 원리와 본질 자체이다. 지문 앞에서는 예로 T. S. 엘리엇과 조르주 브라크가 언급되는데, 엘리엇은 일견 비논리적이고 난해해 보이는 문장으로 문학의 어법을 탐구한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브라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을 통해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화폭에 옮기는 회화의 시선을 탐구한 화가이다. 그린버그는 이런 시도들에 주목하면서 단순히 이들이 새로운 문학, 새로운 회화를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예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언어와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을 지향하고 이로써 문화의 최첨단이 세상의 조악함에 물들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데에 가치를 둔다.
각 분야의 본질을 발견하고 보존하는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오로지 예술 그 자체에만 관심을 두는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성격을 밝히고 유지하기 위해서 특수한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예술을 떠받치는 기성 부르주아 이념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과는 다른 주제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변혁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일상적인 세계에 보헤미아의 그림자를 드리움으로써 모종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저급예술을 포함한 문화 전체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방가르드 예술은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현실과 완전히 거리를 둠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것과는 다른 문화 원리가 상상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그런 예술이 기성 사회의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며 그린버그도 지적하듯 아방가르드는 결국 부르주아 사회 속에 남았다. 반대로 형식을 연마하는 대신 오히려 형식을 파괴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도입한 다다, 초현실주의 등 그린버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아방가르드 그룹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성 사회와 반목하였으며, 팝아트와 같이 키치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미술의 새로 운 지평을 연 사조도 있다. 지문에 나타나는 그린버그의 완고한 고급예술관은 한편으로는 추상미술을 위시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틀이 되었으나 저런 예술들의 배경과 성과를 설명하지는 못했으며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위계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남겨 놓기도 한다.
키워드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클레멘드, 추상미술
전후맥락
이 글에서 그린버그는 아방가르드로서의 추상미술에 주목하며, 키치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예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는 고급예술로 여겨져 온 아카데미 회화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요컨대 널리 이해되고 공감을 살 수 있는 내용과 이미 정착된 형식에 천착하는 예술은 모두 키치라고 할 수 있으며, 아방가르드는 그러한 반복을 거부하고 새로운 지평을 엶으로써 예술의 지반 자체를 다시 만드는 예술이다.
글의 도입부에서 가져온 아래 지문은 아방가르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서술을 담고 있다. 그린버그는 어떻게 하나의 사회에서 T. S. 엘리엇의 모더니즘 문학과 대중가요 가사,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 회화와 통속적인 잡지 표지 그림 같이 대조적인 것들이 같이 창작되고 감상되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그는 대중적으로 이해되거나 인기를 끌지 않는 전자의 예술이 등장한 것은 단순히 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변화나 역사 자체의 힘과 결부된 문제라고 진단하는데, 지문은 그 직후 그가 외견상 사회에 무관심하고 예술 자체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사회나 정치, 그리고 예술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탄생했는지를 논의하는 부분이다.
고전본문
그렇다, 보헤미아에* 최초로 자리 잡은 이들 ― 당시에는 그들이 아방가르드였다 ― 은 정치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은 곧 가감 없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세간에 혁명적 사상이 유통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부르주아”라는 개념을 떼어내어 자신들이 무엇이 아닌지를 규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혁명적인 정치적 태도들의 도덕적 도움 없이는 사회에 팽배한 기준들에 맞서 공격적으로 스스로를 내세울 용기를 낼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방가르드가 부르주아 사회에서 보헤미아로 이주해 간다는 것은 또한 자본주의 시장을, 귀족 후원자가 사라지면서 미술가와 문학가가 내던져졌던 그 시장을 떠난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듯 아방가르드는 다름아닌 그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사회와 절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런 ― 골방에서 굶게 된다는 ― 뜻이었다.)
하지만 일단 사회와 “절연”하는 데 성공한 아방가르드가 태세를 바꾸어 부르주아 정치는 물론 혁명적 정치 또한 부정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혁명은 지금까지 문화가 의지해 왔던 “소중한” 금과옥조를 포함하게 되자마자 사회 속에, 미술과 시가 너무도 헛되다고 여기는 이념 투쟁의 아수라장에 남겨졌다. 그리하여 아방가르드의 진정하고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적 혼돈과 폭력 한가운데서도 문화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임이 밝혀졌다. 공적인 것에서는 전부 물러난 아방가르드 시인, 미술가는 작업의 폭을 좁히고 또한 작업을 모든 상대적인 것들과 모순이 해소되거나 중요하지 않게 되는 절대적인 것의 표현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자 했다. “미술을 위한 미술”과 “순수 시”가 등장하고 주제나 내용은 피해야 할 역병 같은 것이 된다.
아방가르드가 “추상적” 혹은 “비대상적” 미술에 도달한 것은 절대를 찾는 과정에서였다 ― 시도 마찬가지다. 아방가르드 시인이나 미술가는 결국, 자연이 그 자체로 타당하고 풍경화가 아닌 풍경 자체가 미적으로 타당하듯 오직 그 자체로서 타당한 무언가, 주어진 무언가를, 본래적으로 존재하며 의미, 닮음, 원본 같은 것들과는 무관한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신을 모방하려 하는 것이다. 내용은 형식에 완전히 녹아들어, 미술작품, 문학작품은 전체로서든 부분으로서든, 그것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이고, 시인이나 미술가는 어떤 상대적인 가치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사랑하게 마련이다. 그는 다름 아닌 상대적인 가치들, 미학의 가치들의 이름으로 절대적인 것을 호출한다. 이로써, 그가 모방하는 것은 ― 나는 여기서 “모방”을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로 쓰고 있다 ― 신이 아니라 미술과 문학의 규칙과 과정 자체임이 드러난다. 이것이 “추상(abstract)”의 기원이다. 시인이나 미술가는 그간 공통의 경험이라는 주제에 두었던 관심을 자기 일의 재료에로 돌린다. 비재현적인 것 혹은 “추상적”인 것이 미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자의적이거나 우연해서는 안 되며 모종의 가치 있는 제약 혹은 독창적인 것에의 복종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공통적이고 외향적인 경험의 세계를 한 번 단념한 이상, 이 제약은 오로지 미술과 문학이 세계를 모방했던 과정들 혹은 규칙들 자체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이것 자체가 미술과 문학의 주제가 된다.
* 여기서 보헤미아는 사회와 단절된 예술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출처] 그린버그,『아방가르드와 키치』
토론하기
(1) “미술을 위한 미술”이나 “순수 시” 등 주제나 내용을 갖지 않는 형식주의적인 예술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이 글의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보자.
(2) 반대로 대중가요의 가사나 잡지 표지 그림처럼 주제와 내용에 집중하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예술이나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문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경우도 있을지 생각해 보자.
(3)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답을 토대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아방가르드와 키치, 전위와 후위 등)의 위계를 나누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지문에서 보헤미아로 간 예술 혹은 아방가르드 예술은 외적으로는 부르주아 사회 및 그 시장, 내적으로는 내용적인 주제와 단절한 예술로 정의된다. 이것이 새로이 주제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 세계를 모방하는 과정과 규칙, 즉 예술의 원리와 본질 자체이다. 지문 앞에서는 예로 T. S. 엘리엇과 조르주 브라크가 언급되는데, 엘리엇은 일견 비논리적이고 난해해 보이는 문장으로 문학의 어법을 탐구한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브라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을 통해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화폭에 옮기는 회화의 시선을 탐구한 화가이다. 그린버그는 이런 시도들에 주목하면서 단순히 이들이 새로운 문학, 새로운 회화를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예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언어와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을 지향하고 이로써 문화의 최첨단이 세상의 조악함에 물들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데에 가치를 둔다.
각 분야의 본질을 발견하고 보존하는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오로지 예술 그 자체에만 관심을 두는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성격을 밝히고 유지하기 위해서 특수한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예술을 떠받치는 기성 부르주아 이념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과는 다른 주제를 제시하고 요구하는 변혁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일상적인 세계에 보헤미아의 그림자를 드리움으로써 모종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저급예술을 포함한 문화 전체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방가르드 예술은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현실과 완전히 거리를 둠으로써 오히려 현실의 것과는 다른 문화 원리가 상상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하지만 그런 예술이 기성 사회의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는 드물 것이며 그린버그도 지적하듯 아방가르드는 결국 부르주아 사회 속에 남았다. 반대로 형식을 연마하는 대신 오히려 형식을 파괴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도입한 다다, 초현실주의 등 그린버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아방가르드 그룹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성 사회와 반목하였으며, 팝아트와 같이 키치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미술의 새로 운 지평을 연 사조도 있다. 지문에 나타나는 그린버그의 완고한 고급예술관은 한편으로는 추상미술을 위시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적 틀이 되었으나 저런 예술들의 배경과 성과를 설명하지는 못했으며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위계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남겨 놓기도 한다.
키워드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클레멘드, 추상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