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는 1882년 3월 11일 그가 소르본 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이고, 이후 르낭을 다룬 여러 책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인류의 사회 형태가 다양했음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러 형태 중에는 부족, 도시국가, 지방의 연합, 종교 공동체, 민족국가, 연방 등이 포함된다. 현재 국제정치의 표준 형태인 민족국가는 20세기 전반까지 존재했던 제국을 비롯한 다른 사회 형태와 공존하고 있었다. 종족은 흔히 민족과 혼동되는 개념이었다. 당시에도 종족과 민족의 구분은 혼란스러웠고, 르낭은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 중 어떤 나라도 순수하게 단일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실증하며 강조하였다. 사람들이 민족 구분의 기준으로 언어와 종교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언어라는 구분은 사람들을 편협함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으며, 한때 종교는 국경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지만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이후 서서히 개인이 신앙의 자유를 가지게 되며 연관성이 약해졌다. 이익공동체, 지리적 경계도 민족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르낭은 민족의 핵심으로 영혼, 정신을 내세우게 된다.
고전본문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 원칙입니다. 사실상 하나에 불과한 두 가지가 이 영혼, 이 정신적 원칙을 구성합니다. 하나는 과거에 속하고, 다른 하나는 현재에 속합니다. 하나는 풍부한 추억의 유산을 함께 소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동의, 즉 함께 살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받은 유산의 가치를 분할되지 않은 형태로 영속시키려는 의지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민족도 노력, 희생, 헌신의 오랜 과거가 축적된 것입니다. 조상에 대한 숭배는 모든 것 중 가장 정당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적인 과거, 위대한 인물, 영광(진정한 의미의 영광 말입니다)은 민족적 관념의 기초가 되는 자본입니다. 과거에 공통의 영광을 가지고, 현재에 공통의 의지를 가지는 것, 함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 이것이 인민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동의한 희생과 겪은 고통에 비례하여 사랑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짓고 물려주는 집을 사랑합니다. 스파르타인의 노래—“우리는 당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될 것입니다”—는 그 단순함 속에서 모든 조국의 축약된 찬가입니다.
과거에 공유할 영광과 회한의 유산이 있고, 미래에 실행할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함께 고통받고, 기뻐하고, 희망했다는 것, 이것이 공통의 세관이나 전략적 사상에 부합하는 국경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종과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방금 “함께 고통받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통의 고통은 기쁨보다 더 강하게 결속시킵니다. 민족적 기억에 있어서는 슬픔이 승리보다 더 가치가 있는데, 왜냐하면 슬픔은 의무를 부과하고 공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자신이 겪은 희생과 앞으로 겪을 준비가 된 희생의 감정으로 구성된 거대한 연대입니다. 민족은 과거를 전제로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명백한 사실, 즉 공동의 삶을 계속하겠다는 동의, 명확히 표현된 욕망으로 요약됩니다. 민족의 존재는 (이 은유를 용서해 주십시오) 매일의 국민투표이며, 마치 개인의 존재가 삶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인 것과 같습니다. 오! 저는 이것이 신성한 권리보다 덜 형이상학적이고, 소위 역사적 권리보다 덜 잔혹하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제시한 생각의 틀 안에서, 민족은 왕이 한 지방에 “너는 내게 속해, 내가 너를 점령한다”고 말할 권리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에게 한 지방은 그곳의 주민들입니다. 그런 일에 대해 자문을 구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민에게 있는 것입니다. 민족은 어떤 나라를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합병하거나 보유하는 데 결코 진정한 관심이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민족이 원하는 것이 유일하고 정당한 기준이며, 항상 돌아와야 할 기준입니다.
(중략) 인간의 의지는 변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민족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유럽 연맹이 그들을 대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의 법칙은 아닙니다. 현재 민족의 존재는 좋은 것이며, 심지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가 자유를 보장하며, 세상에 단 하나의 법과 단 하나의 지배자만 있다면 자유는 상실될 것입니다.
민족들은 그들의 다양하고 종종 대립하는 능력들을 통해 문명의 공동 과제에 기여합니다. 각각은 인류라는 위대한 협주곡에 한 음을 내며, 이는 결국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적 현실입니다. 고립된 상태에서 각자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여러분, 요약하겠습니다. 인간은 그의 인종, 언어, 종교, 강의 흐름, 산맥의 방향에 대한 노예가 아닙니다. 건강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거대한 인간의 집단이 바로 민족이라고 불리는 도덕적 의식을 창조합니다. 이 도덕적 의식이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포기를 요구하는 희생을 통해 그 힘을 입증하는 한, 그것은 정당하며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다. (후략)
[출처]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토론하기
(1) 르낭이 “매일의 국민투표”를 비유로 들어 민족의 존속을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2)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인간이 만들고 소속된 집단들은 희로애락 중 어떤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측면이 강할까?
(3) 르낭은 민족이 영원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민족은 또 다른 형태로 변하는 단계에 있을까? 르낭이 유럽 연맹을 미래의 형태로 제시했듯이 아시아에서 유사한 정치체제가 형성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이 글은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 강연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 글의 말미에 다시 요약되지만 르낭은 강연의 앞 부분에서 민족이 인종, 언어, 종교, 지리적 경계 등으로 인해 결정되지 않음을 강조했다. 민족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영혼과 정신적 측면이라는 것이 르낭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인종, 언어, 종교, 국경선이 민족과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민족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지만 르낭은 그것보다 영혼과 정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하나의 민족은 개인에게 있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사실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누구보다 절절하게 민족을 강조했던 경험이 있다. 20세기 초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 한국인은 기존의 나라인 대한제국을 상실한 ‘민족’으로서만 존재하였다. 그래서 민족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소중한 단위였고, 언제가 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기반이기도 하였다. 그 시대 한국인은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민족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개인적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에서 민족에 대한 강조는 이어졌다. 한때 한국인은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글을 외워야 했다. 1968년 만들어진 이 글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중략)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로 시작한다. 또한 한국인은 수십 년간 국민의례 때 태극기를 바라보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이렇게 조국과 민족의 영광이 한국인의 지상과제였던 시대가 있었다.
르낭의 이 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민족은 과거의 영광과 고통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러한 과거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의 민족으로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겠다는 각오를 항상 새롭게 다진다. 시간순으로 따지면 르낭의 글이 이후 민족에 대한 세계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즉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국인도 르낭식의 민족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민족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갔다. 더구나 한국은 수십 년간 피식민 상태였으므로 민족을 더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르낭이 민족을 19세기 후반의 상황에서 거의 신성한 존재처럼 다뤘음에도 민족이 영원하지는 않으리라고 예측한 부분도 주목된다. 르낭은 민족이 과거에는 없던 것임을 인식했고, 세상 만물의 이치처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리라 예측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유럽의 맥락에서는 민족의 구분선이 희미해지고 유럽 대륙을 아우르는 연맹, 마치 현재의 유럽연합을 예견하는 듯한 정치체제가 생성되리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시대가 지난 이후의 일이었다. 르낭에게 있어 민족은 19세기 후반 가장 바람직한 집단 형태였고,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에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구호의 원형으로서 민족들이 “문명의 공동 과제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일견 자기애에 충만한 민족이 경계선을 맞댄 현실은 전쟁이 촉발되어야 마땅하게 보이고, 실제로 유럽은 르낭의 이 연설이 있은 지 30여 년 만에 세계대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민족주의 시대에 이상적인 민족의 모습은 각각의 민족이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인류 문명이라는 거대한 대의에 어떤 식으로건 기여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르낭이 생각하는 민족은 유럽에 존재하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의 민족이었지, 유럽인들이 미개하게 생각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의 집단이 아니었다. 후진 지역에는 르낭이 말하는 ‘문명에 기여하는 민족’이 형성되리라 기대되지 않았다. 19세기 유럽의 지식인 다수가 그러하듯 르낭도 인종주의의 굴레를 벗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키워드
국민투표, 민족, 에르네스트 르낭, 종교, 종족
전후맥락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는 1882년 3월 11일 그가 소르본 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이고, 이후 르낭을 다룬 여러 책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인류의 사회 형태가 다양했음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러 형태 중에는 부족, 도시국가, 지방의 연합, 종교 공동체, 민족국가, 연방 등이 포함된다. 현재 국제정치의 표준 형태인 민족국가는 20세기 전반까지 존재했던 제국을 비롯한 다른 사회 형태와 공존하고 있었다. 종족은 흔히 민족과 혼동되는 개념이었다. 당시에도 종족과 민족의 구분은 혼란스러웠고, 르낭은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 중 어떤 나라도 순수하게 단일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실증하며 강조하였다. 사람들이 민족 구분의 기준으로 언어와 종교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언어라는 구분은 사람들을 편협함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으며, 한때 종교는 국경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지만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이후 서서히 개인이 신앙의 자유를 가지게 되며 연관성이 약해졌다. 이익공동체, 지리적 경계도 민족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르낭은 민족의 핵심으로 영혼, 정신을 내세우게 된다.
고전본문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 원칙입니다. 사실상 하나에 불과한 두 가지가 이 영혼, 이 정신적 원칙을 구성합니다. 하나는 과거에 속하고, 다른 하나는 현재에 속합니다. 하나는 풍부한 추억의 유산을 함께 소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동의, 즉 함께 살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받은 유산의 가치를 분할되지 않은 형태로 영속시키려는 의지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민족도 노력, 희생, 헌신의 오랜 과거가 축적된 것입니다. 조상에 대한 숭배는 모든 것 중 가장 정당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적인 과거, 위대한 인물, 영광(진정한 의미의 영광 말입니다)은 민족적 관념의 기초가 되는 자본입니다. 과거에 공통의 영광을 가지고, 현재에 공통의 의지를 가지는 것, 함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 이것이 인민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동의한 희생과 겪은 고통에 비례하여 사랑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짓고 물려주는 집을 사랑합니다. 스파르타인의 노래—“우리는 당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될 것입니다”—는 그 단순함 속에서 모든 조국의 축약된 찬가입니다.
과거에 공유할 영광과 회한의 유산이 있고, 미래에 실행할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함께 고통받고, 기뻐하고, 희망했다는 것, 이것이 공통의 세관이나 전략적 사상에 부합하는 국경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종과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방금 “함께 고통받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통의 고통은 기쁨보다 더 강하게 결속시킵니다. 민족적 기억에 있어서는 슬픔이 승리보다 더 가치가 있는데, 왜냐하면 슬픔은 의무를 부과하고 공통의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은 자신이 겪은 희생과 앞으로 겪을 준비가 된 희생의 감정으로 구성된 거대한 연대입니다. 민족은 과거를 전제로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명백한 사실, 즉 공동의 삶을 계속하겠다는 동의, 명확히 표현된 욕망으로 요약됩니다. 민족의 존재는 (이 은유를 용서해 주십시오) 매일의 국민투표이며, 마치 개인의 존재가 삶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인 것과 같습니다. 오! 저는 이것이 신성한 권리보다 덜 형이상학적이고, 소위 역사적 권리보다 덜 잔혹하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제시한 생각의 틀 안에서, 민족은 왕이 한 지방에 “너는 내게 속해, 내가 너를 점령한다”고 말할 권리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에게 한 지방은 그곳의 주민들입니다. 그런 일에 대해 자문을 구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민에게 있는 것입니다. 민족은 어떤 나라를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합병하거나 보유하는 데 결코 진정한 관심이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민족이 원하는 것이 유일하고 정당한 기준이며, 항상 돌아와야 할 기준입니다.
(중략) 인간의 의지는 변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민족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작이 있었고, 끝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유럽 연맹이 그들을 대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의 법칙은 아닙니다. 현재 민족의 존재는 좋은 것이며, 심지어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가 자유를 보장하며, 세상에 단 하나의 법과 단 하나의 지배자만 있다면 자유는 상실될 것입니다.
민족들은 그들의 다양하고 종종 대립하는 능력들을 통해 문명의 공동 과제에 기여합니다. 각각은 인류라는 위대한 협주곡에 한 음을 내며, 이는 결국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적 현실입니다. 고립된 상태에서 각자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여러분, 요약하겠습니다. 인간은 그의 인종, 언어, 종교, 강의 흐름, 산맥의 방향에 대한 노예가 아닙니다. 건강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거대한 인간의 집단이 바로 민족이라고 불리는 도덕적 의식을 창조합니다. 이 도덕적 의식이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포기를 요구하는 희생을 통해 그 힘을 입증하는 한, 그것은 정당하며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다. (후략)
[출처]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토론하기
(1) 르낭이 “매일의 국민투표”를 비유로 들어 민족의 존속을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2) 인간의 삶은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인간이 만들고 소속된 집단들은 희로애락 중 어떤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측면이 강할까?
(3) 르낭은 민족이 영원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 민족은 또 다른 형태로 변하는 단계에 있을까? 르낭이 유럽 연맹을 미래의 형태로 제시했듯이 아시아에서 유사한 정치체제가 형성될 수 있을까?
해설읽기
이 글은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 강연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 글의 말미에 다시 요약되지만 르낭은 강연의 앞 부분에서 민족이 인종, 언어, 종교, 지리적 경계 등으로 인해 결정되지 않음을 강조했다. 민족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영혼과 정신적 측면이라는 것이 르낭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인종, 언어, 종교, 국경선이 민족과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민족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지만 르낭은 그것보다 영혼과 정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하나의 민족은 개인에게 있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사실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누구보다 절절하게 민족을 강조했던 경험이 있다. 20세기 초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 한국인은 기존의 나라인 대한제국을 상실한 ‘민족’으로서만 존재하였다. 그래서 민족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소중한 단위였고, 언제가 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기반이기도 하였다. 그 시대 한국인은 민족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민족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개인적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에서 민족에 대한 강조는 이어졌다. 한때 한국인은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글을 외워야 했다. 1968년 만들어진 이 글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중략)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로 시작한다. 또한 한국인은 수십 년간 국민의례 때 태극기를 바라보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이렇게 조국과 민족의 영광이 한국인의 지상과제였던 시대가 있었다.
르낭의 이 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민족은 과거의 영광과 고통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러한 과거를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의 민족으로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겠다는 각오를 항상 새롭게 다진다. 시간순으로 따지면 르낭의 글이 이후 민족에 대한 세계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즉 세계 여러 곳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국인도 르낭식의 민족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민족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갔다. 더구나 한국은 수십 년간 피식민 상태였으므로 민족을 더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르낭이 민족을 19세기 후반의 상황에서 거의 신성한 존재처럼 다뤘음에도 민족이 영원하지는 않으리라고 예측한 부분도 주목된다. 르낭은 민족이 과거에는 없던 것임을 인식했고, 세상 만물의 이치처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리라 예측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유럽의 맥락에서는 민족의 구분선이 희미해지고 유럽 대륙을 아우르는 연맹, 마치 현재의 유럽연합을 예견하는 듯한 정치체제가 생성되리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시대가 지난 이후의 일이었다. 르낭에게 있어 민족은 19세기 후반 가장 바람직한 집단 형태였고,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에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구호의 원형으로서 민족들이 “문명의 공동 과제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일견 자기애에 충만한 민족이 경계선을 맞댄 현실은 전쟁이 촉발되어야 마땅하게 보이고, 실제로 유럽은 르낭의 이 연설이 있은 지 30여 년 만에 세계대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민족주의 시대에 이상적인 민족의 모습은 각각의 민족이 세계사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인류 문명이라는 거대한 대의에 어떤 식으로건 기여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르낭이 생각하는 민족은 유럽에 존재하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의 민족이었지, 유럽인들이 미개하게 생각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의 집단이 아니었다. 후진 지역에는 르낭이 말하는 ‘문명에 기여하는 민족’이 형성되리라 기대되지 않았다. 19세기 유럽의 지식인 다수가 그러하듯 르낭도 인종주의의 굴레를 벗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키워드
국민투표, 민족, 에르네스트 르낭, 종교, 종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