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심도있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시민성, 문화, 혈통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앤더슨은 문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이어서 볼 고전 본문의 맥락에서 특이한 점은 사회주의다. 그는 책의 시작 부분에서 민족이 아닌 마르크스주의를 다룬다. 1978~1979년의 몇 달 사이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하는 등 마르크스주의 정권 사이의 전쟁이 역사적으로 이례적이라는 것이 앤더슨의 관찰 결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공산 정권들은 모두 민족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정의했고, 일종의 제국적 행태를 나타낸 소련조차 과거의 러시아제국의 유산을 상당 부분 물려받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마르크스의 오랜 구호처럼 마르크스주의는 대표적인 국제주의 사상이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특정 정치 집단을 우선시하며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민족(주의)와 대척점에 있었어야 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앤더슨이 관찰하기로, 또한 누가 보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정권은 민족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이 역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길래 이토록 강력한가를 규명하는 것이 그의 질문이었다. 그는 다음의 고전 본문에 이어 책의 2장에서 민족의 문화적 뿌리로서 종교, 왕조의 영지, ‘비어 있는 동질적 시간’이라는 관념 등을 제시한다.
고전본문
나의 출발점은 민족성 또는 이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고려하여 민족다움과 민족주의가 일종의 특정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어떻게 역사적 존재가 되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왜 오늘날 그토록 심오한 감정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 세 가지 산물이 18세기 말에 서로 다른 역사적 힘들의 복합적 ‘교차’가 자연 증류된 결과라고 주장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진 후, 그것들은 ‘모듈식’이 되어, 다양한 사회적 지형으로, 자의식의 정도는 다양했지만 이식될 수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이념적 집단들과 통합되거나 통합될 수 있었다. 나는 또한 왜 이 특정한 문화적 산물들이 그토록 깊은 애착을 불러일으켰는지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중략)
그래서 인류학적 정신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그것은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이며, 본질적으로 제한적이며 동시에 주권적인 것으로 상상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이 상상되는 이유는 가장 작은 민족의 구성원들조차도 대부분의 동료 구성원을 결코 알지 못하고, 만나거나, 심지어 소문을 듣지도 못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그들의 교감의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르낭은 자신의 세련된 빗대는 말로써 이 상상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민족의 본질은 모든 개인이 많은 것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고, 또한 모든 개인이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겔너는 단호하게 “민족주의는 민족이 자의식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곳에 민족을 발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비교할 만한 지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의 단점은 겔너가 민족주의가 거짓된 가장 아래 위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조작’ 및 ‘거짓’과 동일시하고, ‘상상’과 ‘창조’와는 다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진정한’ 공동체가 존재하며, 그것을 유리하게 민족과 병치시킬 수 있다고 암시하였다. 사실, 얼굴을 마주하는 원시적 마을보다 더 큰 모든 공동체(그리고 아마도 그 마을조차도)는 상상된 것이다. 공동체는 그들의 거짓/진정성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 구별된다. (중략)
민족이 제한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이유는 가장 큰 민족조차도, 어쩌면 10억 명의 살아있는 인간들을 포함하더라도, 그 너머에 다른 민족들이 있는 유한하고 탄력적인 경계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스스로를 인류 전체와 접해 있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가장 메시아적인 민족주의자들도 인류의 모든 구성원이 그들의 민족에 합류하는 날을 꿈꾸지 않는다. 이것은 특정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완전히 기독교화된 행성을 꿈꿀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민족이 주권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이유는 이 개념이 계몽주의와 대혁명이 신이 부여한 위계적 왕조 지배의 정당성을 파괴하던 시대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모든 보편 종교의 가장 독실한 추종자들조차도 그러한 종교들의 살아있는 다원성과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범위 사이의 동형성이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되는 인류 역사의 단계에서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민족은 자유롭기를 꿈꾸며, 신 아래에 있다면, 직접적으로 그러하기를 꿈꾼다. 이러한 자유의 증표이자 상징은 바로 주권 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 내에 만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불평등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항상 깊고 수평적인 동료애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바로 이 우애가 지난 두 세기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제한된 상상을 위해 기꺼이 죽이고 죽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죽음은 우리를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핵심 문제에 갑자기 직면하게 한다. 즉, 최근 역사(2세기 남짓)의 축소된 상상들이 왜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낳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시작이 민족주의의 문화적 뿌리에 있다고 믿는다.
[출처]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된 공동체』
토론하기
(1) 민족이 가공의 구성물이라고 할 때, ‘상상된 것’과 거짓, 조작의 차이는 무엇일까?
(2) 우리가 만난 적도 없는 민족 구성원에게 동료애를 느낀다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실제 그런 경험이 있는가?
(3) 저자는 민족의 범위가 제한되어있다고 주장했는데,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하고 인터넷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SNS가 이용되는 지금 민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해설읽기
에릭 홉스봄이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을 쓴 것처럼 민족 그리고 민족과 강력하게 결부된 근대 국가는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거나 심지어 새로이 창조함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신성함을 강조하였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개인을 집단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게 만듦으로써 전쟁 기계의 자발적 희생자로 만들기도 하였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글에서 “특정한 문화적 산물”인 민족이 어떻게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깊은 감정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혀보려고 했다.
한 개인은 일생에 하나의 민족에 소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재 어느 개인이 어떤 민족인가를 잘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보다는 어느 나라의 국민인가, 국적이 무엇인가가 더 일차적인 정체성의 대상일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민족주의의 시대를 거쳐 대개의 국가가 민족국가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이 거의 국민과 등치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국만 해도 민족 구성원에 대한민국의 국민 외에도 당장 북한 주민, 해외 동포, 중국의 조선족 등 다양한 인구 집단을 포함시킬지 말지 고민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체의 민족이 있다고, 즉 북과 남의 다른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러한 지점은 한국 민족이라고 할 때 우리가 단군 할아버지부터 떠올리는 생각의 고리가 그렇게 단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설사 단군 시대부터 한국 민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민족 집단에 균열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보기에 민족은 분명히 18세기 이후에야 만들어졌고, 하나의 모델이 되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민족 집단을 형성하였다. 민족 모델은 ‘상상되었고’, ‘제한적’이고 ‘주권적’이었다.
민족이 상상되었다는 대목은 앤더슨의 책 제목이 될 정도로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하나의 민족 집단이 있다고 할 때 그 구성원은 자신 주변의 일부 사람들과 접촉할 뿐 나머지 대부분의 민족 구성원은 일생 동안 만나지도, 혹은 만나더라도 진지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하고 죽게 된다. 우리가 민족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처럼 간주하지만, 대부분의 같은 민족의 구성원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일 뿐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퇴니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유명한 구별에서 나타나듯 농촌에서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암시한다. 하지만 대개의 민족은 그 규모가 하나 혹은 몇 개 마을의 단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이 공동체라고 한다면 ‘상상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앤더슨의 주장이다.
민족이 한 개인의 체험 범위를 넘는 식으로 상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제한된다. 앤더슨이 민족의 경우 중 인구 10억의 인구를 언급한 것은 중국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인도도 중국 못지않은 인구를 자랑하는 하나의 국가 혹은 민족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구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지구 전체 인류를 하나의 민족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범위는 제한적이고, 그 한계에 대한 상상은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
민족과 주권의 관계는 밀접하다. 어떤 의미에서 민족이나 주권은 서구 근대라는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다고도 하겠다. 시기적으로 주권 개념이 더 일찍 확립되었지만 앤더슨이 말하듯이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이후 왕의 지배가 아닌 동등한 자격으로서 시민들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하나의 이상이 되었다. 즉 국가의 주인은 이제 인구의 다수인 시민이었고, 이는 주권이 더 이상 절대왕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손에 있다는 큰 변화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 시민이라는 폭넓은 범위 안을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사람 간에 여러 차별과 신분의 실질적 구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하나의 민족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은 주권적으로 상상되었다.
키워드
민족, 베네딕트 앤더슨, 우애, 상상된 공동체, 주권
전후맥락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심도있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시민성, 문화, 혈통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앤더슨은 문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이어서 볼 고전 본문의 맥락에서 특이한 점은 사회주의다. 그는 책의 시작 부분에서 민족이 아닌 마르크스주의를 다룬다. 1978~1979년의 몇 달 사이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하는 등 마르크스주의 정권 사이의 전쟁이 역사적으로 이례적이라는 것이 앤더슨의 관찰 결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공산 정권들은 모두 민족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정의했고, 일종의 제국적 행태를 나타낸 소련조차 과거의 러시아제국의 유산을 상당 부분 물려받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마르크스의 오랜 구호처럼 마르크스주의는 대표적인 국제주의 사상이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특정 정치 집단을 우선시하며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민족(주의)와 대척점에 있었어야 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앤더슨이 관찰하기로, 또한 누가 보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정권은 민족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이 역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길래 이토록 강력한가를 규명하는 것이 그의 질문이었다. 그는 다음의 고전 본문에 이어 책의 2장에서 민족의 문화적 뿌리로서 종교, 왕조의 영지, ‘비어 있는 동질적 시간’이라는 관념 등을 제시한다.
고전본문
나의 출발점은 민족성 또는 이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고려하여 민족다움과 민족주의가 일종의 특정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어떻게 역사적 존재가 되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왜 오늘날 그토록 심오한 감정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 세 가지 산물이 18세기 말에 서로 다른 역사적 힘들의 복합적 ‘교차’가 자연 증류된 결과라고 주장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진 후, 그것들은 ‘모듈식’이 되어, 다양한 사회적 지형으로, 자의식의 정도는 다양했지만 이식될 수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광범위한 정치적, 이념적 집단들과 통합되거나 통합될 수 있었다. 나는 또한 왜 이 특정한 문화적 산물들이 그토록 깊은 애착을 불러일으켰는지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중략)
그래서 인류학적 정신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민족의 정의를 제안한다. 그것은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이며, 본질적으로 제한적이며 동시에 주권적인 것으로 상상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이 상상되는 이유는 가장 작은 민족의 구성원들조차도 대부분의 동료 구성원을 결코 알지 못하고, 만나거나, 심지어 소문을 듣지도 못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그들의 교감의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르낭은 자신의 세련된 빗대는 말로써 이 상상에 대해 이렇게 썼다. “민족의 본질은 모든 개인이 많은 것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고, 또한 모든 개인이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겔너는 단호하게 “민족주의는 민족이 자의식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곳에 민족을 발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비교할 만한 지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의 단점은 겔너가 민족주의가 거짓된 가장 아래 위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너무 애쓴 나머지 ‘발명’을 ‘조작’ 및 ‘거짓’과 동일시하고, ‘상상’과 ‘창조’와는 다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진정한’ 공동체가 존재하며, 그것을 유리하게 민족과 병치시킬 수 있다고 암시하였다. 사실, 얼굴을 마주하는 원시적 마을보다 더 큰 모든 공동체(그리고 아마도 그 마을조차도)는 상상된 것이다. 공동체는 그들의 거짓/진정성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되는 방식에 의해 구별된다. (중략)
민족이 제한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이유는 가장 큰 민족조차도, 어쩌면 10억 명의 살아있는 인간들을 포함하더라도, 그 너머에 다른 민족들이 있는 유한하고 탄력적인 경계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민족도 스스로를 인류 전체와 접해 있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가장 메시아적인 민족주의자들도 인류의 모든 구성원이 그들의 민족에 합류하는 날을 꿈꾸지 않는다. 이것은 특정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완전히 기독교화된 행성을 꿈꿀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민족이 주권적인 것으로 상상되는 이유는 이 개념이 계몽주의와 대혁명이 신이 부여한 위계적 왕조 지배의 정당성을 파괴하던 시대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모든 보편 종교의 가장 독실한 추종자들조차도 그러한 종교들의 살아있는 다원성과 각 신앙의 존재론적 주장과 영토적 범위 사이의 동형성이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되는 인류 역사의 단계에서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민족은 자유롭기를 꿈꾸며, 신 아래에 있다면, 직접적으로 그러하기를 꿈꾼다. 이러한 자유의 증표이자 상징은 바로 주권 국가이다.
마지막으로, 민족은 공동체로 상상된다. 왜냐하면, 각 민족 내에 만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불평등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항상 깊고 수평적인 동료애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바로 이 우애가 지난 두 세기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제한된 상상을 위해 기꺼이 죽이고 죽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죽음은 우리를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핵심 문제에 갑자기 직면하게 한다. 즉, 최근 역사(2세기 남짓)의 축소된 상상들이 왜 그렇게 엄청난 희생을 낳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시작이 민족주의의 문화적 뿌리에 있다고 믿는다.
[출처]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된 공동체』
토론하기
(1) 민족이 가공의 구성물이라고 할 때, ‘상상된 것’과 거짓, 조작의 차이는 무엇일까?
(2) 우리가 만난 적도 없는 민족 구성원에게 동료애를 느낀다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실제 그런 경험이 있는가?
(3) 저자는 민족의 범위가 제한되어있다고 주장했는데,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하고 인터넷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SNS가 이용되는 지금 민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얼마나 변했을까?
해설읽기
에릭 홉스봄이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을 쓴 것처럼 민족 그리고 민족과 강력하게 결부된 근대 국가는 과거의 전통을 이어받거나 심지어 새로이 창조함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신성함을 강조하였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개인을 집단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게 만듦으로써 전쟁 기계의 자발적 희생자로 만들기도 하였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글에서 “특정한 문화적 산물”인 민족이 어떻게 개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깊은 감정적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혀보려고 했다.
한 개인은 일생에 하나의 민족에 소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재 어느 개인이 어떤 민족인가를 잘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보다는 어느 나라의 국민인가, 국적이 무엇인가가 더 일차적인 정체성의 대상일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민족주의의 시대를 거쳐 대개의 국가가 민족국가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이 거의 국민과 등치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국만 해도 민족 구성원에 대한민국의 국민 외에도 당장 북한 주민, 해외 동포, 중국의 조선족 등 다양한 인구 집단을 포함시킬지 말지 고민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체의 민족이 있다고, 즉 북과 남의 다른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러한 지점은 한국 민족이라고 할 때 우리가 단군 할아버지부터 떠올리는 생각의 고리가 그렇게 단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설사 단군 시대부터 한국 민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민족 집단에 균열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보기에 민족은 분명히 18세기 이후에야 만들어졌고, 하나의 모델이 되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민족 집단을 형성하였다. 민족 모델은 ‘상상되었고’, ‘제한적’이고 ‘주권적’이었다.
민족이 상상되었다는 대목은 앤더슨의 책 제목이 될 정도로 이 글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하나의 민족 집단이 있다고 할 때 그 구성원은 자신 주변의 일부 사람들과 접촉할 뿐 나머지 대부분의 민족 구성원은 일생 동안 만나지도, 혹은 만나더라도 진지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하고 죽게 된다. 우리가 민족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처럼 간주하지만, 대부분의 같은 민족의 구성원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일 뿐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퇴니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의 유명한 구별에서 나타나듯 농촌에서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암시한다. 하지만 대개의 민족은 그 규모가 하나 혹은 몇 개 마을의 단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이 공동체라고 한다면 ‘상상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앤더슨의 주장이다.
민족이 한 개인의 체험 범위를 넘는 식으로 상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제한된다. 앤더슨이 민족의 경우 중 인구 10억의 인구를 언급한 것은 중국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인도도 중국 못지않은 인구를 자랑하는 하나의 국가 혹은 민족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구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지구 전체 인류를 하나의 민족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범위는 제한적이고, 그 한계에 대한 상상은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
민족과 주권의 관계는 밀접하다. 어떤 의미에서 민족이나 주권은 서구 근대라는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다고도 하겠다. 시기적으로 주권 개념이 더 일찍 확립되었지만 앤더슨이 말하듯이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이후 왕의 지배가 아닌 동등한 자격으로서 시민들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하나의 이상이 되었다. 즉 국가의 주인은 이제 인구의 다수인 시민이었고, 이는 주권이 더 이상 절대왕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손에 있다는 큰 변화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 시민이라는 폭넓은 범위 안을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사람 간에 여러 차별과 신분의 실질적 구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하나의 민족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은 주권적으로 상상되었다.
키워드
민족, 베네딕트 앤더슨, 우애, 상상된 공동체, 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