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의 조선 유학생들은 한국의 독립을 촉구하는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 선언서는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며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했고, 이는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민족 지도자들은 거족적인 만세 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종교계(천도교, 기독교, 불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학생,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계획을 구체화했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종로의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같은 시각 학생과 시민들은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는 전국적인 만세 시위로 확산되었다. 시위는 비폭력 평화 시위로 시작되었지만,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인해 점차 무장 시위로 발전하기도 했다. 3.1운동은 서울을 넘어 평양, 의주 등 주요 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만주, 연해주, 미주 등 해외 동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말 그대로 대표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물리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들은 분산된 독립운동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러한 필요성 속에서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국내외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독립을 위한 체계적인 외교 활동과 무장 투쟁을 전개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임시정부는 단순한 저항 조직을 넘어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며 근대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고전본문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을 발달시킬 기회가 가로막힌 아픔이 얼마인가. 민족의 존엄함에 상처받은 아픔 또한 얼마이며,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가.
아,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 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면,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모든 인류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가 싸우면 어떤 강한 적도 꺾을 수 있고, 설령 물러난다 해도 이루려 한다면 어떤 뜻도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 뒤에 갖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일본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 않겠다. (중략)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 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출처]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
토론하기
(1) 3.1독립선언서에서 한국 민족이 세계적으로 독립을 누릴 만한 자격 중 어떤 점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2) 3.1독립선언서에 담긴 비폭력의 정신은 오늘날 다방면의 갈등이 첨예하게 표출되는 세계 여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3) 백범 김구의 글 「나의 소원」은 문화로 모범이 되는 한국 민족의 미래를 그렸다. 3.1독립선언서와 「나의 소원」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토론해보고, 현재 K-컬쳐의 위상과 연결지어 의견을 말해보자.
해설읽기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글로벌 무대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의 작가, 예술가 혹은 작품이 전에 후보에 오르리라 상상도 못 했던 국제 영화제나 시상식의 최고상을 받기도 하였고, 한국이 만들거나 한국을 소재로 한 컨텐츠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이후 백범 김구가 남긴 글이 다시 회자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하지만 이 김구의 말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에르네스트 르낭이 민족들이 문명의 공동과제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19세기 유럽 지식인은 민족의 존재 가치를 인류 문명에 대한 기여로 측정하였다. 다만 르낭은 한국 민족이라는 자체를 알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던 당시의 흔한 인종주의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말 이후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을 필두로 시작된 서구를 흉내 낸 근대화는 아시아에도 민족이 있고 그 민족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목소리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심지어 국권을 상실했던 한국 민족이 해방 후 곧바로 물질적 측면에서 민족의 세계적 존재 가치를 내세울 수는 없었다. 김구가 언급했던 단군, 홍익인간, 덕, 선비 등 문화적 측면이 당장 한국이 내세울 만한 민족의 가치였다. 유럽 지성계가 문명이나 문화에 각 민족이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한국 민족은 적어도 그 측면에서는 내세울 무언가가 있었다고 하겠다.
한국 역사에서 3.1운동은 한 때 ‘3.1혁명’으로도 불렸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한 큰 사건이고, 특히 민족운동의 차원에서는 최대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초반의 10년을 무단통치 하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서 그대로 사라진 줄 알았던 한국인이 갑자기 한반도 전체는 물론 그들이 이주한 해외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친 사건은 여러 차원에서 위대하였다. ‘갑자기’라고 적었지만 사실 3.1운동의 발발 이전에 2.8 독립선언을 비롯한 여러 단계가 있었고, 전국적 만세 운동은 어느 정도 소수 인물에 의해 기획된 측면도 있다. 여기 3.1독립선언서는 당시 한국인, 조선인의 마음을 격동시키기 위해 작성되었고 그 내용의 중요한 부분은 한국 민족의 문화적 가치를 내세우는 부분이었다.
선언서에는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적혀있지만 이 말은 1919년의 시점에 사실은 아니다. 조선은 1945년이 될 때까지 독립하지 못했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했고, 많은 조선인이 사실이 아닌 이 구절에 공감하고 길거리 등에서 모여 함께 만세를 외친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유럽이 19세기에 소위 백년 동안 평화의 시기를 보내다 191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1918년에 비로소 종전이 이루어졌다. 즉 1919년의 3.1운동은 사상 유례없는 세계전쟁이 끝난 직후 인류의 반성과 세계적 평화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비록 한국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 이제는 세계대전으로 상징되는 폭력의 시대가 가고 선언서의 구절처럼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것은 조선인만의 착각이 아니었고, 1920년대 초반까지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존재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힘 대신 도덕과 도의가 중요해진 시대에 조선인은 원래 가지고 있던 자유의 권리를 회복하여, 즉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세계의 여러 민족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인류의 새 시대에 문화와 문명으로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3.1독립선언서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 인류 문화와 문명에 기여하는 민족이라는 생각 자체는 유럽의 지식인이 만들어냈다. 당시 한국인은 서구 근대가 만들어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한국 민족의 문화적 가치를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에 반복하여 항변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뿌리 깊은 서구의 타 지역에 대한 인종주의와 편견이라는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중첩되어 있었다. 어쩌면 3.1독립선언서의 내용은 21세기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키워드
독립, 문화, 민족, 일본, 조선
전후맥락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의 조선 유학생들은 한국의 독립을 촉구하는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 선언서는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며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했고, 이는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민족 지도자들은 거족적인 만세 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종교계(천도교, 기독교, 불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학생,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계획을 구체화했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종로의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같은 시각 학생과 시민들은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는 전국적인 만세 시위로 확산되었다. 시위는 비폭력 평화 시위로 시작되었지만,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인해 점차 무장 시위로 발전하기도 했다. 3.1운동은 서울을 넘어 평양, 의주 등 주요 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만주, 연해주, 미주 등 해외 동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말 그대로 대표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물리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들은 분산된 독립운동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러한 필요성 속에서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국내외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독립을 위한 체계적인 외교 활동과 무장 투쟁을 전개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임시정부는 단순한 저항 조직을 넘어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며 근대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려는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고전본문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이 선언은 오천 년 동안 이어 온 우리 역사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자유롭게 발전하려는 것이며,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의 큰 흐름에 발맞추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시대의 흐름이며,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갈 정당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 독립을 가로막지 못한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우리 민족이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리는 고통을 받은 지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고통은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을 발달시킬 기회가 가로막힌 아픔이 얼마인가. 민족의 존엄함에 상처받은 아픔 또한 얼마이며, 새로운 기술과 독창성으로 세계 문화에 기여할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가.
아,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떨쳐 내고 지금의 고통을 벗어던지려면, 앞으로 닥쳐올 위협을 없애 버리고 억눌린 민족의 양심과 사라진 국가 정의를 다시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가여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유산 대신 완전한 행복을 주려면,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이천만 조선인은 저마다 가슴에 칼을 품었다. 모든 인류와 시대의 양심은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아가 싸우면 어떤 강한 적도 꺾을 수 있고, 설령 물러난다 해도 이루려 한다면 어떤 뜻도 펼칠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 뒤에 갖가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일본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대하듯 하며 우리의 오랜 사회와 민족의 훌륭한 심성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탓하지 않겠다. (중략)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온 세상의 도리가 다시 살아나는 지금, 세계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우리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우리는 원래부터 지닌 자유권을 지켜서 풍요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다. 원래부터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떨쳐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나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나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어둡고 낡은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 모두와 함께 즐겁고 새롭게 되살아날 것이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영혼이 안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지켜 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출처]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
토론하기
(1) 3.1독립선언서에서 한국 민족이 세계적으로 독립을 누릴 만한 자격 중 어떤 점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2) 3.1독립선언서에 담긴 비폭력의 정신은 오늘날 다방면의 갈등이 첨예하게 표출되는 세계 여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3) 백범 김구의 글 「나의 소원」은 문화로 모범이 되는 한국 민족의 미래를 그렸다. 3.1독립선언서와 「나의 소원」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토론해보고, 현재 K-컬쳐의 위상과 연결지어 의견을 말해보자.
해설읽기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글로벌 무대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의 작가, 예술가 혹은 작품이 전에 후보에 오르리라 상상도 못 했던 국제 영화제나 시상식의 최고상을 받기도 하였고, 한국이 만들거나 한국을 소재로 한 컨텐츠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한국이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이후 백범 김구가 남긴 글이 다시 회자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하지만 이 김구의 말이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에르네스트 르낭이 민족들이 문명의 공동과제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19세기 유럽 지식인은 민족의 존재 가치를 인류 문명에 대한 기여로 측정하였다. 다만 르낭은 한국 민족이라는 자체를 알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던 당시의 흔한 인종주의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말 이후 아시아 각지에서 일본을 필두로 시작된 서구를 흉내 낸 근대화는 아시아에도 민족이 있고 그 민족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목소리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심지어 국권을 상실했던 한국 민족이 해방 후 곧바로 물질적 측면에서 민족의 세계적 존재 가치를 내세울 수는 없었다. 김구가 언급했던 단군, 홍익인간, 덕, 선비 등 문화적 측면이 당장 한국이 내세울 만한 민족의 가치였다. 유럽 지성계가 문명이나 문화에 각 민족이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한국 민족은 적어도 그 측면에서는 내세울 무언가가 있었다고 하겠다.
한국 역사에서 3.1운동은 한 때 ‘3.1혁명’으로도 불렸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한 큰 사건이고, 특히 민족운동의 차원에서는 최대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초반의 10년을 무단통치 하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서 그대로 사라진 줄 알았던 한국인이 갑자기 한반도 전체는 물론 그들이 이주한 해외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친 사건은 여러 차원에서 위대하였다. ‘갑자기’라고 적었지만 사실 3.1운동의 발발 이전에 2.8 독립선언을 비롯한 여러 단계가 있었고, 전국적 만세 운동은 어느 정도 소수 인물에 의해 기획된 측면도 있다. 여기 3.1독립선언서는 당시 한국인, 조선인의 마음을 격동시키기 위해 작성되었고 그 내용의 중요한 부분은 한국 민족의 문화적 가치를 내세우는 부분이었다.
선언서에는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적혀있지만 이 말은 1919년의 시점에 사실은 아니다. 조선은 1945년이 될 때까지 독립하지 못했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했고, 많은 조선인이 사실이 아닌 이 구절에 공감하고 길거리 등에서 모여 함께 만세를 외친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유럽이 19세기에 소위 백년 동안 평화의 시기를 보내다 191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1918년에 비로소 종전이 이루어졌다. 즉 1919년의 3.1운동은 사상 유례없는 세계전쟁이 끝난 직후 인류의 반성과 세계적 평화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비록 한국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 이제는 세계대전으로 상징되는 폭력의 시대가 가고 선언서의 구절처럼 “인류가 양심에 따라 만들어가는 세계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것은 조선인만의 착각이 아니었고, 1920년대 초반까지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존재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힘 대신 도덕과 도의가 중요해진 시대에 조선인은 원래 가지고 있던 자유의 권리를 회복하여, 즉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여 세계의 여러 민족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인류의 새 시대에 문화와 문명으로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3.1독립선언서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 인류 문화와 문명에 기여하는 민족이라는 생각 자체는 유럽의 지식인이 만들어냈다. 당시 한국인은 서구 근대가 만들어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한국 민족의 문화적 가치를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에 반복하여 항변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뿌리 깊은 서구의 타 지역에 대한 인종주의와 편견이라는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중첩되어 있었다. 어쩌면 3.1독립선언서의 내용은 21세기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키워드
독립, 문화, 민족, 일본,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