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검증가능성이 아니라 반증가능성에서 찾았다. 아무리 많은 흰 백조를 관찰해도 모든 흰 백조(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흰 백조)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든 백조는 희다”는 명제를 검증할 수 없지만, 검은 백조를 한 마리만 발견해도 해당 명제는 논박된다. 좋은 과학 이론일수록 더 구체적이고, 실패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둔다는 것이 포퍼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유럽 철학계를 주도하던 논리실증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한 명제만을 유의미한 것으로 보았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경험적인 방식으로 검증할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규정했다. 이들에 따르면, 철학의 문제는 언어를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만드는 문제로 환원된다. 이러한 입장을 검증주의(verificationism)라고 한다. 포퍼는 이 기준이 과학 법칙까지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점성술 같은 사이비 과학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논리실증주의가 검증 기준의 한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의 검증 기준에 따르면, 물을 가열하는 다양한 실험을 하더라도 모든 물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와 같은 과학 법칙(전칭 명제)도 무의미한 것이 된다.
고전본문
당시[1919년 가을] 나를 괴롭힌 문제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문제였다. [...] 과학도 종종 오류를 범하고, 사이비 과학도 우연히 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대답은, [...] 과학은 관찰이나 실험 등 귀납적인 경험적 방법에 의해 수행되며, 사이비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 나는 진정한 경험적 방법과 사이비 경험적 방법을 구별하는 것을 나의 문제로 정식화했다. [...] 대표적인 사례로는 별자리와 사람의 일생을 관찰하여 방대한 경험적 증거를 남긴 점성술을 들 수 있다.
[...] 나의 관심을 끈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아들러의 심리학이었다. [...] 나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들러의 지지자였던 친구들이 세 이론의 [...]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력에 감명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론들은 그것들이 언급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 그래서 일단 [해당 이론에] 눈을 뜨게 되면, 어디서든지 그 이론을 입증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 아들러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19년 나는 아들러의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를 그에게 보고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들러는 그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는데도, 열등감에 관한 자신의 이론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 사례를 분석했다. 나는 약간 충격받아서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아들러는 “1000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까지 합치면 1001번째가 되겠네요.”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아들러의 이전의 관찰들이 새로운 관찰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매번의 경험은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되었으면, 동시에 추가적인 입증 사례로 간주되었다. 나는 관찰이 무엇을 입증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결론은 한 사례가 그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 아들러의 이론이나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해석하지 못할 인간 행위가 [...] 없다는 사실은 신봉자들 눈에는 그 이론들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을 구성했다. 그러나 나는 [...] 이 점이 그 이론들의 약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보면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 [...] 그의 중력 이론은, 물체가 (태양과 같은) 무거운 물체에 의해 이끌리듯 빛도 이끌린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태양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먼 항성에서 나오는 빛은, 그 항성이 약간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방향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한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었다. [...] 이러한 별들은 낮에는 [...] 정상적으로 관찰할 수 없지만,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동일한 성좌들을 밤에 촬영하면 두 사진으로 거리를 측정하고 예측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종류의 예측에 수반되는 위험성이다. 예측된 결과가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곧바로 논박된다. 그 이론은 다른 가능한 결과들과 양립불가능하다. [...]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기준은 이론의 반증가능성, 또는 시험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칼 포퍼, 『추측과 논박』, 「1장. 과학: 추측과 논박」 중에서
토론하기
(1) 포퍼가 말하는 ‘반증가능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았는지 설명해 보자.
(2)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나 주장 가운데, ‘반증가능성’이 낮아서 믿기 어려운 사례를 하나 들어보고, 그 이유를 말해 보자.
(3) 사이비 과학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학교나 언론,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1919년 가을, 칼 포퍼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학과 과학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던 스무 살 학생이었다. 당시 유럽은 1차 대전 직후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 사이에서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하고 있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아들러 개인심리학도 학계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에딩턴의 일식 관측(1919년)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는 과학, 철학, 심리학, 정치 이론 등 여러 분야에서 격변이 일어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포퍼가 고민한 문제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였다. 그는 과학도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사이비 과학도 우연히 참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대답은 “과학은 귀납적인 경험적 방법을 사용하고, 사이비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퍼는 점성술처럼 방대한 경험적 자료를 모아도 실제로는 과학적이지 않은 사례를 보면서, 단순한 ‘경험적 방법’만으로는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퍼가 특히 주목한 세 가지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투쟁과 생산양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하며, 사회 변혁의 필연성을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억압 등을 통해 인간 심리를 해석했다. 아들러는 인간 행동의 주요 동기를 ‘열등감 극복’에서 찾았다.
이들 세 이론은 어디서나 자신을 뒷받침하는 ‘입증 사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입증 사례란, 관찰된 사실을 이론이 맞다는 증거로 삼는 경우를 말한다. 문제는, 관찰이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 한, 어떤 현상이라도 해석을 통해 이론의 증거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포퍼가 본 아들러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전혀 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는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주장했고,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예측했다. 이 예측은 이론을 위기에 빠뜨릴 위험을 동반했다. 관측 결과 예측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이론은 즉시 폐기되었을 것이다. 한 번의 관측이나 실험으로도 틀렸음을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반증가능성)이야말로 포퍼가 제시한 과학의 기준이었다.
논리적으로 검증과 반증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다. 검증은 아무리 많은 사례가 뒷받침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반면, 반증은 후건 부정(Modus Tollens) 구조를 따르므로, 논리적으로 정당화된다.
이론 T가 참이라면, 관측 O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O가 관측되지 않았다.
-----------------------
그러므로 이론 T는 거짓이다.
이 구조는 귀납적 검증과 달리, 단 한 번의 반례로도 이론을 거부할 수 있게 한다. 포퍼에게 훌륭한 과학 이론은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실패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론이었다.
키워드
과학적 방법론, 논박, 반증 가능성, 비판적 합리주의, 지식의 성장, 추측
전후맥락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검증가능성이 아니라 반증가능성에서 찾았다. 아무리 많은 흰 백조를 관찰해도 모든 흰 백조(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흰 백조)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든 백조는 희다”는 명제를 검증할 수 없지만, 검은 백조를 한 마리만 발견해도 해당 명제는 논박된다. 좋은 과학 이론일수록 더 구체적이고, 실패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둔다는 것이 포퍼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유럽 철학계를 주도하던 논리실증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한 명제만을 유의미한 것으로 보았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경험적인 방식으로 검증할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규정했다. 이들에 따르면, 철학의 문제는 언어를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만드는 문제로 환원된다. 이러한 입장을 검증주의(verificationism)라고 한다. 포퍼는 이 기준이 과학 법칙까지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뿐 아니라, 점성술 같은 사이비 과학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논리실증주의가 검증 기준의 한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의 검증 기준에 따르면, 물을 가열하는 다양한 실험을 하더라도 모든 물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와 같은 과학 법칙(전칭 명제)도 무의미한 것이 된다.
고전본문
당시[1919년 가을] 나를 괴롭힌 문제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문제였다. [...] 과학도 종종 오류를 범하고, 사이비 과학도 우연히 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대답은, [...] 과학은 관찰이나 실험 등 귀납적인 경험적 방법에 의해 수행되며, 사이비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 나는 진정한 경험적 방법과 사이비 경험적 방법을 구별하는 것을 나의 문제로 정식화했다. [...] 대표적인 사례로는 별자리와 사람의 일생을 관찰하여 방대한 경험적 증거를 남긴 점성술을 들 수 있다.
[...] 나의 관심을 끈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아들러의 심리학이었다. [...] 나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들러의 지지자였던 친구들이 세 이론의 [...]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력에 감명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론들은 그것들이 언급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 그래서 일단 [해당 이론에] 눈을 뜨게 되면, 어디서든지 그 이론을 입증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 아들러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19년 나는 아들러의 이론에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를 그에게 보고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들러는 그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는데도, 열등감에 관한 자신의 이론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 사례를 분석했다. 나는 약간 충격받아서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아들러는 “1000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까지 합치면 1001번째가 되겠네요.”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아들러의 이전의 관찰들이 새로운 관찰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매번의 경험은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되었으면, 동시에 추가적인 입증 사례로 간주되었다. 나는 관찰이 무엇을 입증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나, 결론은 한 사례가 그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 아들러의 이론이나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해석하지 못할 인간 행위가 [...] 없다는 사실은 신봉자들 눈에는 그 이론들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을 구성했다. 그러나 나는 [...] 이 점이 그 이론들의 약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보면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 [...] 그의 중력 이론은, 물체가 (태양과 같은) 무거운 물체에 의해 이끌리듯 빛도 이끌린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결과 태양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먼 항성에서 나오는 빛은, 그 항성이 약간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방향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한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었다. [...] 이러한 별들은 낮에는 [...] 정상적으로 관찰할 수 없지만,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동일한 성좌들을 밤에 촬영하면 두 사진으로 거리를 측정하고 예측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종류의 예측에 수반되는 위험성이다. 예측된 결과가 관찰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곧바로 논박된다. 그 이론은 다른 가능한 결과들과 양립불가능하다. [...]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기준은 이론의 반증가능성, 또는 시험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 칼 포퍼, 『추측과 논박』, 「1장. 과학: 추측과 논박」 중에서
토론하기
(1) 포퍼가 말하는 ‘반증가능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왜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았는지 설명해 보자.
(2)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나 주장 가운데, ‘반증가능성’이 낮아서 믿기 어려운 사례를 하나 들어보고, 그 이유를 말해 보자.
(3) 사이비 과학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학교나 언론,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1919년 가을, 칼 포퍼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학과 과학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던 스무 살 학생이었다. 당시 유럽은 1차 대전 직후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 사이에서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하고 있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아들러 개인심리학도 학계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에딩턴의 일식 관측(1919년)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는 과학, 철학, 심리학, 정치 이론 등 여러 분야에서 격변이 일어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포퍼가 고민한 문제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였다. 그는 과학도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사이비 과학도 우연히 참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대답은 “과학은 귀납적인 경험적 방법을 사용하고, 사이비 과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퍼는 점성술처럼 방대한 경험적 자료를 모아도 실제로는 과학적이지 않은 사례를 보면서, 단순한 ‘경험적 방법’만으로는 구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퍼가 특히 주목한 세 가지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계급투쟁과 생산양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하며, 사회 변혁의 필연성을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억압 등을 통해 인간 심리를 해석했다. 아들러는 인간 행동의 주요 동기를 ‘열등감 극복’에서 찾았다.
이들 세 이론은 어디서나 자신을 뒷받침하는 ‘입증 사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입증 사례란, 관찰된 사실을 이론이 맞다는 증거로 삼는 경우를 말한다. 문제는, 관찰이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 한, 어떤 현상이라도 해석을 통해 이론의 증거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포퍼가 본 아들러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전혀 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는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주장했고,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예측했다. 이 예측은 이론을 위기에 빠뜨릴 위험을 동반했다. 관측 결과 예측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이론은 즉시 폐기되었을 것이다. 한 번의 관측이나 실험으로도 틀렸음을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반증가능성)이야말로 포퍼가 제시한 과학의 기준이었다.
논리적으로 검증과 반증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다. 검증은 아무리 많은 사례가 뒷받침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반면, 반증은 후건 부정(Modus Tollens) 구조를 따르므로, 논리적으로 정당화된다.
이론 T가 참이라면, 관측 O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O가 관측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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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론 T는 거짓이다.
이 구조는 귀납적 검증과 달리, 단 한 번의 반례로도 이론을 거부할 수 있게 한다. 포퍼에게 훌륭한 과학 이론은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실패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론이었다.
키워드
과학적 방법론, 논박, 반증 가능성, 비판적 합리주의, 지식의 성장,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