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안셀무스는 『모놀로기온』에서 여러 가지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논증했으나, 그는 여러 개의 논증이 아니라 단 하나의 강력한 논증을 제시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집필한 작품이 『프로슬로기온』이다. 안셀무스는 신을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고, 그 개념으로부터 신이 실재적이고 필연적 존재임을 도출했다. 이는 최초의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으로서, 이후 수 세기 동안 신 존재 논의의 핵심이 된다.안셀무스의 논증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사 가우니로는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가장 완전한 섬’을 상상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 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비유로 반박했다. 중세 후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존재론적 논증이 인간 이성만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보고, 경험적 세계에 근거한 ‘다섯 가지 길’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근세에 들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각각의 철학 체계 속에서 존재론적 증명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형태로 계승했지만,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존재는 술어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이 논증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을 가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앨빈 플랜팅가가 가능세계 의미론을 활용해 변형된 존재론적 논증을 제시했다. 안셀무스의 기획은 여전히 철학적 논쟁의 한가운데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전본문
어리석은 사람도 내가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가 들은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 사람이 이해한 것은 그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비록 그 사람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러하다[그것은 그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한 사물이 지성 속에 존재한다는 것과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만들 것을 미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성 속에 있는 것이지만, [...] 화가가 이미 그림을 그렸다면, 그는 그가 이미 만든 것을 지성 속에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도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적어도 지성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것을 들으면 이해하고, 이해한 것은 무엇이든 지성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지성 속에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은 [지성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지성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지성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
그런 실재는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실재는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진실로 존재하지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실재가 신이다.
- 안셀무스, 『프로슬로기온』 제2장-제3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안셀무스가 말한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어떤 것인가? 왜 안셀무스는 이 정의에서 출발해 신의 존재를 논증하려고 했을까?
(2) 안셀무스는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리고 이 구별이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3) 안셀무스처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태도를 사회 문제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더 건전한 토론과 공존을 이룰 수 있을까?
해설읽기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흔히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라고 부른다.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이라는 명칭은 안셀무스가 붙인 것이 아니라, 18세기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가 처음 사용했다. 볼프는 안셀무스-데카르트 계열의 논증을 다른 신 존재 증명과 구분하기 위해 이를 “존재론적 논증”이라고 불렀다. 존재론적 논증은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이나 관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순전히 개념 정의와 이성적 추론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즉, 존재 그 자체에서 신의 존재를 도출한다는 점 때문에 “존재론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전제]
(2) 무신론자도 이 말을 이해하므로, 신은 최소한 지성 속에는 존재한다. [전제]
(3)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지성 속에만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 [전제]
(4) 신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2와 3으로부터]
(5) 그러나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므로, 더 위대한 것이 상상될 수 없다. [1로부터]
(6) 따라서 신은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 [4와 5로부터]
(7)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라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3에서 확장]
(8) 그러나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므로, 그런 방식으로 상상될 수 없다. [1로부터]
(9) 그러므로 신은 단순히 실제로 존재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7와 8으로부터]
안셀무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수도사 가우닐로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짧은 글을 써서 안셀무스의 논증을 반박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편 14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는 구절을 가리키며, 안셀무스가 논증 대상 삼은 무신론자를 말한다. 가우닐로는 안셀무스의 논증 구조를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1) 세상 어디엔가 가장 완전한 섬이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2) 만약 그것이 단지 마음속에만 있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더 완전하므로 모순이 된다.
(3) 따라서 그 섬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4) 그러나 분명히 그런 섬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가우닐로의 비판에 대하여 안셀무스는 신은 섬 같은 우연적 사물(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물)과 달리, 그 정의 자체가 ‘필연적 존재’를 포함하므로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즉,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는 개념상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가우닐로의 섬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다.
키워드
신 존재 논증, 존재론적 논증, 필연적 존재
전후맥락
안셀무스는 『모놀로기온』에서 여러 가지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논증했으나, 그는 여러 개의 논증이 아니라 단 하나의 강력한 논증을 제시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집필한 작품이 『프로슬로기온』이다. 안셀무스는 신을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고, 그 개념으로부터 신이 실재적이고 필연적 존재임을 도출했다. 이는 최초의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으로서, 이후 수 세기 동안 신 존재 논의의 핵심이 된다.안셀무스의 논증이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사 가우니로는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가장 완전한 섬’을 상상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런 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비유로 반박했다. 중세 후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존재론적 논증이 인간 이성만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보고, 경험적 세계에 근거한 ‘다섯 가지 길’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근세에 들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각각의 철학 체계 속에서 존재론적 증명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형태로 계승했지만,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존재는 술어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이 논증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을 가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앨빈 플랜팅가가 가능세계 의미론을 활용해 변형된 존재론적 논증을 제시했다. 안셀무스의 기획은 여전히 철학적 논쟁의 한가운데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전본문
어리석은 사람도 내가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가 들은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 사람이 이해한 것은 그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비록 그 사람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러하다[그것은 그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한 사물이 지성 속에 존재한다는 것과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만들 것을 미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성 속에 있는 것이지만, [...] 화가가 이미 그림을 그렸다면, 그는 그가 이미 만든 것을 지성 속에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도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적어도 지성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것을 들으면 이해하고, 이해한 것은 무엇이든 지성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지성 속에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은 [지성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지성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지성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
그런 실재는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 실재는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진실로 존재하지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실재가 신이다.
- 안셀무스, 『프로슬로기온』 제2장-제3장 중에서
토론하기
(1) 안셀무스가 말한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어떤 것인가? 왜 안셀무스는 이 정의에서 출발해 신의 존재를 논증하려고 했을까?
(2) 안셀무스는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리고 이 구별이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3) 안셀무스처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태도를 사회 문제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더 건전한 토론과 공존을 이룰 수 있을까?
해설읽기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흔히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이라고 부른다.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이라는 명칭은 안셀무스가 붙인 것이 아니라, 18세기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가 처음 사용했다. 볼프는 안셀무스-데카르트 계열의 논증을 다른 신 존재 증명과 구분하기 위해 이를 “존재론적 논증”이라고 불렀다. 존재론적 논증은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이나 관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순전히 개념 정의와 이성적 추론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즉, 존재 그 자체에서 신의 존재를 도출한다는 점 때문에 “존재론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전제]
(2) 무신론자도 이 말을 이해하므로, 신은 최소한 지성 속에는 존재한다. [전제]
(3)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단지 지성 속에만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 [전제]
(4) 신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2와 3으로부터]
(5) 그러나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므로, 더 위대한 것이 상상될 수 없다. [1로부터]
(6) 따라서 신은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다. [4와 5로부터]
(7)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라면,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3에서 확장]
(8) 그러나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므로, 그런 방식으로 상상될 수 없다. [1로부터]
(9) 그러므로 신은 단순히 실제로 존재할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7와 8으로부터]
안셀무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수도사 가우닐로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짧은 글을 써서 안셀무스의 논증을 반박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편 14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는 구절을 가리키며, 안셀무스가 논증 대상 삼은 무신론자를 말한다. 가우닐로는 안셀무스의 논증 구조를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1) 세상 어디엔가 가장 완전한 섬이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2) 만약 그것이 단지 마음속에만 있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더 완전하므로 모순이 된다.
(3) 따라서 그 섬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4) 그러나 분명히 그런 섬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가우닐로의 비판에 대하여 안셀무스는 신은 섬 같은 우연적 사물(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물)과 달리, 그 정의 자체가 ‘필연적 존재’를 포함하므로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즉, ‘그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존재’는 개념상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가우닐로의 섬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다.
키워드
신 존재 논증, 존재론적 논증, 필연적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