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신학대전』 제1부 제2문 제1–2절에서 아퀴나스는 “신학은 학문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신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제2문은 “하느님에 대하여”(De Deo)라는 큰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소문제를 제시한다.
- 1절: 하느님의 존재가 자명한가? (신의 존재는 당연히 알 수 있는가)
- 2절: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논증가능한가?)
- 3절: 하느님이 존재하는가? (존재 증명 시도)
1절에서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는 자명하지 않다. 이성적 논증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2절에서는 “신의 존재는 경험적 논증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고 하며 본격적인 증명의 필요성을 열어 놓는다. 3절에서 신 존재 논증으로 가는 다섯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앞서 자명하지 않고, 증명 가능하다는 결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증을 실행한다.
안셀무스가 신에 대한 개념 정의로부터 논증을 시작한 것과 달리, 아퀴나스는 우리가 사는 세계(경험적 세계)에서 관찰되는 운동, 원인, 우연, 정도, 목적, 이렇게 다섯 가지를 신 존재 근거로 삼아 논증을 펼친다. 각 논증의 결론은 “따라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다”라는 형식으로 마무리한다.
아퀴나스는 신 존재 증명을 마친 뒤 “신의 본질에 대하여”(De simplicitate Dei)로 넘어간다. “신이 존재한다”는 점이 증명되었으므로 이제 그 신이 어떤 성질(단순성, 완전성, 무한성, 불변성 등)을 지니는지 논한다. 이는 아퀴나스가 신이 존재함을 논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신학 전체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전본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의 존재는 자명한가?
[운동으로부터의 길 (via ex motu)]
우리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어떤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진다. […]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첫 번째 원동자가 있어야 한다. 이 첫 번째 원동자를 모두가 하느님이라 부른다.
[원인으로부터의 길 (via ex ratione causae efficientis)]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질서 있는 원인의 연쇄를 본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이 효인이 될 수는 없다. […] 원인의 무한 소급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일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가능성과 필연으로부터의 길 (via ex contingentia et necessitate)]
우리는 세상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이런 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적 존재라면, 언젠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무언가가 존재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 필연적 존재를 모든 이들은 신이라 부른다.
[정도(완전성의 등급)로부터의 길 (via ex gradibus perfectionis)]
사물들 사이에는 선과 진리, 고귀함에서 더 많고 적음의 정도가 발견된다. […] 더 많음과 적음은 최고선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사물들의 원인이 되는 최고의 것, 즉 가장 참되고 가장 선하고 가장 고귀한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하느님이라 부른다.
[세계의 질서(목적)로부터의 길 (via ex gubernatione rerum)]
우리는 지성이 없는 자연적인 것들이 일정한 질서로, 항상 또는 거의 항상, 목적을 향해 나아감을 본다. […] 지성 없는 것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없고, 지성 있는 존재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적인 것을 목적에 이끄는 지성적 존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출전]『신학대전』 제1부, 제2문, 제3절 중에서
토론하기
(1) 아퀴나스는 왜 “원인의 무한 소급”을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제일 원인”을 상정해야 한다고 보았을까?
(2) “가능성과 필연으로부터의 길”에서 아퀴나스는 ‘지금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신을 논증한다. 이 논리의 핵심 연결고리를 직접 설명해 보시오.
(3) 아퀴나스는 감각 경험에서 출발해 ‘궁극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날 과학도 우주의 기원이나 자연 질서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 설명과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이 둘은 서로 대립하는가, 아니면 보완적일 수도 있는가?
해설읽기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제1부 제2문에서 신의 존재는 논증 없이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 세계를 근거로 한 논증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처럼 개념 정의만으로 신의 존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와 달리,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는 귀납적 논증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퀴나스는 세계 안에서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근거로 다섯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운동으로부터의 길 (via ex motu)]
아퀴나스는 먼저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주목한다. 모든 운동은 원인에 의해 일어나며,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진다. 이러한 운동의 연쇄를 무한히 소급할 수 없다. 따라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첫 번째 원동자(primum movens)가 있어야 하고, 그 그러한 존재가 신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를 기독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세계의 변화와 운동이 우연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에 의해 지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원인으로부터의 길 (via ex ratione causae efficientis)]
세계는 원인과 결과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원인 사슬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일 원인(causa prima)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제일 원인이 신이다. 제일 원인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처음에 있었던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모든 원인 작용의 근거로 작동하는 근본적 존재를 가리킨다. 즉, 신은 과거의 ‘첫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를 성립시키는 궁극적 원인이다.
[가능성과 필연으로부터의 길 (via ex contingentia et necessitate)]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능적 존재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적 존재라면, 언젠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따라서 세상의 근거는 스스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이어야 하고, 그러한 필연적 존재(ens necessarium)가 신이다. 이는 우연적 존재들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보장하는 궁극적 필연성의 필요를 강조한다.
[정도(완전성의 등급)로부터의 길 (via ex gradibus perfectionis)]
사물들 사이에는 선, 진리, 고귀함에서 더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다. ‘더 많고 적음’은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곧 최고의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가장 참되고 선하며, 가장 고귀한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최고 존재가 신이다. 이는 플라톤적 전통을 반영한 논증으로, 세계의 상대적 가치들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은 그 절대적 척도이자 근원으로 이해된다.
[세계의 질서(목적)로부터의 길 (via ex gubernatione rerum)]
아퀴나스는 자연 세계를 보면 지성이 없는 것들조차 일정한 질서와 목적성을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그러나 지성이 없는 존재가 목적을 향해 나아가려면, 외부에서 목적을 지시하는 지성적 존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연을 질서 있게 이끄는 지성적 존재가 있어야 하며, 그 존재가 신이다. 이는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의 전형으로, 이후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 등 근세 자연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키워드
운동, 원인, 필연적 존재, 제일 원인, 신 존재 증명
전후맥락
『신학대전』 제1부 제2문 제1–2절에서 아퀴나스는 “신학은 학문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신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제2문은 “하느님에 대하여”(De Deo)라는 큰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소문제를 제시한다.
- 1절: 하느님의 존재가 자명한가? (신의 존재는 당연히 알 수 있는가)
- 2절: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논증가능한가?)
- 3절: 하느님이 존재하는가? (존재 증명 시도)
1절에서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는 자명하지 않다. 이성적 논증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2절에서는 “신의 존재는 경험적 논증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고 하며 본격적인 증명의 필요성을 열어 놓는다. 3절에서 신 존재 논증으로 가는 다섯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앞서 자명하지 않고, 증명 가능하다는 결론에서 본격적으로 논증을 실행한다.
안셀무스가 신에 대한 개념 정의로부터 논증을 시작한 것과 달리, 아퀴나스는 우리가 사는 세계(경험적 세계)에서 관찰되는 운동, 원인, 우연, 정도, 목적, 이렇게 다섯 가지를 신 존재 근거로 삼아 논증을 펼친다. 각 논증의 결론은 “따라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다”라는 형식으로 마무리한다.
아퀴나스는 신 존재 증명을 마친 뒤 “신의 본질에 대하여”(De simplicitate Dei)로 넘어간다. “신이 존재한다”는 점이 증명되었으므로 이제 그 신이 어떤 성질(단순성, 완전성, 무한성, 불변성 등)을 지니는지 논한다. 이는 아퀴나스가 신이 존재함을 논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신학 전체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전본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의 존재는 자명한가?
[운동으로부터의 길 (via ex motu)]
우리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어떤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진다. […]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첫 번째 원동자가 있어야 한다. 이 첫 번째 원동자를 모두가 하느님이라 부른다.
[원인으로부터의 길 (via ex ratione causae efficientis)]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질서 있는 원인의 연쇄를 본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이 효인이 될 수는 없다. […] 원인의 무한 소급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일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가능성과 필연으로부터의 길 (via ex contingentia et necessitate)]
우리는 세상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이런 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적 존재라면, 언젠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무언가가 존재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 필연적 존재를 모든 이들은 신이라 부른다.
[정도(완전성의 등급)로부터의 길 (via ex gradibus perfectionis)]
사물들 사이에는 선과 진리, 고귀함에서 더 많고 적음의 정도가 발견된다. […] 더 많음과 적음은 최고선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사물들의 원인이 되는 최고의 것, 즉 가장 참되고 가장 선하고 가장 고귀한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하느님이라 부른다.
[세계의 질서(목적)로부터의 길 (via ex gubernatione rerum)]
우리는 지성이 없는 자연적인 것들이 일정한 질서로, 항상 또는 거의 항상, 목적을 향해 나아감을 본다. […] 지성 없는 것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없고, 지성 있는 존재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적인 것을 목적에 이끄는 지성적 존재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출전]『신학대전』 제1부, 제2문, 제3절 중에서
토론하기
(1) 아퀴나스는 왜 “원인의 무한 소급”을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제일 원인”을 상정해야 한다고 보았을까?
(2) “가능성과 필연으로부터의 길”에서 아퀴나스는 ‘지금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신을 논증한다. 이 논리의 핵심 연결고리를 직접 설명해 보시오.
(3) 아퀴나스는 감각 경험에서 출발해 ‘궁극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날 과학도 우주의 기원이나 자연 질서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적 설명과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이 둘은 서로 대립하는가, 아니면 보완적일 수도 있는가?
해설읽기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제1부 제2문에서 신의 존재는 논증 없이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 세계를 근거로 한 논증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처럼 개념 정의만으로 신의 존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와 달리,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는 귀납적 논증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퀴나스는 세계 안에서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을 근거로 다섯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운동으로부터의 길 (via ex motu)]
아퀴나스는 먼저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주목한다. 모든 운동은 원인에 의해 일어나며, 움직이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진다. 이러한 운동의 연쇄를 무한히 소급할 수 없다. 따라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첫 번째 원동자(primum movens)가 있어야 하고, 그 그러한 존재가 신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를 기독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세계의 변화와 운동이 우연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에 의해 지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원인으로부터의 길 (via ex ratione causae efficientis)]
세계는 원인과 결과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원인 사슬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일 원인(causa prima)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제일 원인이 신이다. 제일 원인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처음에 있었던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모든 원인 작용의 근거로 작동하는 근본적 존재를 가리킨다. 즉, 신은 과거의 ‘첫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를 성립시키는 궁극적 원인이다.
[가능성과 필연으로부터의 길 (via ex contingentia et necessitate)]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능적 존재들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적 존재라면, 언젠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따라서 세상의 근거는 스스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이어야 하고, 그러한 필연적 존재(ens necessarium)가 신이다. 이는 우연적 존재들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보장하는 궁극적 필연성의 필요를 강조한다.
[정도(완전성의 등급)로부터의 길 (via ex gradibus perfectionis)]
사물들 사이에는 선, 진리, 고귀함에서 더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다. ‘더 많고 적음’은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 곧 최고의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가장 참되고 선하며, 가장 고귀한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최고 존재가 신이다. 이는 플라톤적 전통을 반영한 논증으로, 세계의 상대적 가치들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은 그 절대적 척도이자 근원으로 이해된다.
[세계의 질서(목적)로부터의 길 (via ex gubernatione rerum)]
아퀴나스는 자연 세계를 보면 지성이 없는 것들조차 일정한 질서와 목적성을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그러나 지성이 없는 존재가 목적을 향해 나아가려면, 외부에서 목적을 지시하는 지성적 존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자연을 질서 있게 이끄는 지성적 존재가 있어야 하며, 그 존재가 신이다. 이는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의 전형으로, 이후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 등 근세 자연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키워드
운동, 원인, 필연적 존재, 제일 원인, 신 존재 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