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포퍼는 과학자의 활동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이론을 착상하거나 창안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그 이론을 논리적으로 검사하고 비판하는 단계이다. 그는 첫 단계—즉 발견의 순간—은 심리학적·개인적 영역이지 철학적 논리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과학자의 머릿속에 이론이 떠오르는 과정은 꿈, 직관, 우연 등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고, 이는 “사실의 문제”(칸트의 quid facti)이다. 반면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단계, 즉 정당화의 맥락이다. 여기서는 어떤 진술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다른 명제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는 “타당성의 문제”(칸트의 quid juris)에 해당한다.
따라서 포퍼는 과학 철학이 해야 할 일은 심리적 발견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시된 가설이 어떤 논리적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이들은 과학자를 새로운 진리에 도달하게 한 과정을 “합리적 재구성”하는 것이 철학의 과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포퍼는 이 또한 결국 논리적 검사 과정만을 재구성할 수 있을 뿐, 실제 창안의 순간을 그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즉 발견 자체는 비합리적 요소나 창조적 직관을 포함하며, 오직 그 이후의 검증 단계만이 논리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본문
최초의 단계, 즉 이론을 착상하거나 창안하는 행위는 논리적 분석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렇게 분석되지도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어떠한 참신한 생각이, 그것이 음악의 테마이든, 극적 갈등이든, 과학 이론이든 간에, 도대체 어떻게 한 인간에게 떠오르느냐 하는 문제는 경험 심리학의 큰 관심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지식의 논리적 분석과는 무관하다. 후자는 사실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당화 또는 타당성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의 문제들은 다음과 같은 유형의 것들이다. 진술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시험가능한가? 그것은 다른 진술들에 논리적으로 의존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과 혹 모순되는가? 어떤 진술이 이렇게 해서 논리적으로 검사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먼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 누군가가 그것을 정식화하고 논리적 검사에 회부한 것이 틀림없다.
이에 따라 필지는 새 관념을 착상하는 과정과 그것을 논리적으로 검사하는 방법들과 귀결들을 예리하게 구별할 것이다. 지식의 심리학에 대조되는 지식의 논리의 과제에 관해 필자는 그것이 전적으로 어떤 새로운 생각이든 진지하게 대접받으려면 거쳐야만 하는 체계적인 검사에서 사용되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데 있다는 가정하에 논의 계속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과학자들을 발견으로 즉, 어떤 새로운 진리를 찾는 데로 인도한 단계들의 이른바 「합리적 재구성」을 수행하는 것을 인식론의 과업으로 보는 편이 그 목적에 더욱 부합되지 않느냐고 반론을 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정확히 무엇을 재구성하기를 원하는가? "만약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어떤 영감을 자극하고 방출하는 데 얽힌 과정들이라면, 필자는 그것을 지식의 논리 과제로 취급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런 과정들은 경험 심리학의 관심 사이지 결코 논리학의 관심사라 할 수 없다. 영감이 그것들에 의해 [진짜] 발견임이 발견되는, 또는 지식으로 알려지게 되는 후속적 검사 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과학자가 그 자신의 영감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변개하고 물리치는 한, 우리는 원한다면 여기서 수행된 방법론적 분석을 그에 대응되는 사고 과정들의 일종의 「합리적 재구성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재구성은 이러한 과정들을 실제로 일어났던 그대로 기술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다만 검사과정의 논리적 골조만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아마 우리가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들의 합리적 재구성을 논하는 이들이 의미하는 바의 전부일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 책에서의 필자의 논변들은 이 문제와 전연 독립적이게 되었다. 그러나 무슨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문제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새로운 생각을 갖는 논리적 방법이라든가 이 과정의 논리적 재구성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는 어떤 발견도 비합리적 요소나 베르그송적 의미로 창조적 직관을 포함한다고 말함으로써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순수한 연역에 의해 세계상이 얻어질 수 있는 고도의 보편적 법칙들의 탐색」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이러한 법칙들로 인도해 주는 논리적 행로란 없다. 그것들은 경험의 대상들에 대한 지적 사랑(Einfuhlung) 같은 것에 근거한 진관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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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1장
토론하기
(1) 포퍼는 왜 과학 이론이 ‘어떻게 떠올랐는가’라는 문제보다 ‘그 이론이 어떻게 검증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보았는가?
(2) 여러분이 과학 실험이나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자. 그 아이디어가 진짜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겠는가?
(3) 오늘날 인공지능, 의학, 환경과학 같은 분야에서도 ‘영감이나 창의성’과 ‘검증’의 구분은 여전히 중요한가? 만약 이 두 과정을 혼동한다면 어떤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 있겠는가?
해설읽기
이 글은 포퍼가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 이론이 처음 떠오르는 과정, 예를 들어 어떤 천재적 직관이나 우연한 영감 등은 철학적 논리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심리학의 관심사일 뿐이며, 과학철학이 다뤄야 할 문제는 그 이론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철학자의 과제는 ‘어떻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가?’가 아니라 ‘그 생각을 어떤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과학자의 발견 과정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했지만, 포퍼는 여기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실제로 영감이나 창의의 순간은 합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없고, 다만 그 후속적 검증 절차만이 논리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발견의 실제 심리적 과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 검증 과정의 구조는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퍼는 나아가 ‘새로운 생각을 산출하는 논리적 방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론의 출발에는 항상 비합리적 요소, 창조적 직관, 또는 경험 대상에 대한 지적 애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보편 법칙을 찾아가는 길에는 순수한 논리적 행로가 없으며, 오히려 일종의 직관적 통찰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과학적 발견은 우연과 직관에서 비롯되지만,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검증하고 반증 가능하게 만드는가이다.
정리하면, 이 글은 “발견은 심리학의 영역, 정당화는 철학의 영역”이라는 포퍼의 핵심 입장을 보여주는 부분이며, 과학철학의 분석은 후자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키워드
발견의 맥락, 정당화의 맥락, 반증주의
전후맥락
포퍼는 과학자의 활동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이론을 착상하거나 창안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그 이론을 논리적으로 검사하고 비판하는 단계이다. 그는 첫 단계—즉 발견의 순간—은 심리학적·개인적 영역이지 철학적 논리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과학자의 머릿속에 이론이 떠오르는 과정은 꿈, 직관, 우연 등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고, 이는 “사실의 문제”(칸트의 quid facti)이다. 반면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단계, 즉 정당화의 맥락이다. 여기서는 어떤 진술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다른 명제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는 “타당성의 문제”(칸트의 quid juris)에 해당한다.
따라서 포퍼는 과학 철학이 해야 할 일은 심리적 발견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시된 가설이 어떤 논리적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이들은 과학자를 새로운 진리에 도달하게 한 과정을 “합리적 재구성”하는 것이 철학의 과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포퍼는 이 또한 결국 논리적 검사 과정만을 재구성할 수 있을 뿐, 실제 창안의 순간을 그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즉 발견 자체는 비합리적 요소나 창조적 직관을 포함하며, 오직 그 이후의 검증 단계만이 논리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본문
최초의 단계, 즉 이론을 착상하거나 창안하는 행위는 논리적 분석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렇게 분석되지도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어떠한 참신한 생각이, 그것이 음악의 테마이든, 극적 갈등이든, 과학 이론이든 간에, 도대체 어떻게 한 인간에게 떠오르느냐 하는 문제는 경험 심리학의 큰 관심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지식의 논리적 분석과는 무관하다. 후자는 사실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당화 또는 타당성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의 문제들은 다음과 같은 유형의 것들이다. 진술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시험가능한가? 그것은 다른 진술들에 논리적으로 의존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과 혹 모순되는가? 어떤 진술이 이렇게 해서 논리적으로 검사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먼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한다. 누군가가 그것을 정식화하고 논리적 검사에 회부한 것이 틀림없다.
이에 따라 필지는 새 관념을 착상하는 과정과 그것을 논리적으로 검사하는 방법들과 귀결들을 예리하게 구별할 것이다. 지식의 심리학에 대조되는 지식의 논리의 과제에 관해 필자는 그것이 전적으로 어떤 새로운 생각이든 진지하게 대접받으려면 거쳐야만 하는 체계적인 검사에서 사용되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데 있다는 가정하에 논의 계속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과학자들을 발견으로 즉, 어떤 새로운 진리를 찾는 데로 인도한 단계들의 이른바 「합리적 재구성」을 수행하는 것을 인식론의 과업으로 보는 편이 그 목적에 더욱 부합되지 않느냐고 반론을 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정확히 무엇을 재구성하기를 원하는가? "만약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이 어떤 영감을 자극하고 방출하는 데 얽힌 과정들이라면, 필자는 그것을 지식의 논리 과제로 취급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그런 과정들은 경험 심리학의 관심 사이지 결코 논리학의 관심사라 할 수 없다. 영감이 그것들에 의해 [진짜] 발견임이 발견되는, 또는 지식으로 알려지게 되는 후속적 검사 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과학자가 그 자신의 영감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변개하고 물리치는 한, 우리는 원한다면 여기서 수행된 방법론적 분석을 그에 대응되는 사고 과정들의 일종의 「합리적 재구성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재구성은 이러한 과정들을 실제로 일어났던 그대로 기술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다만 검사과정의 논리적 골조만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아마 우리가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들의 합리적 재구성을 논하는 이들이 의미하는 바의 전부일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 책에서의 필자의 논변들은 이 문제와 전연 독립적이게 되었다. 그러나 무슨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문제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새로운 생각을 갖는 논리적 방법이라든가 이 과정의 논리적 재구성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는 어떤 발견도 비합리적 요소나 베르그송적 의미로 창조적 직관을 포함한다고 말함으로써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순수한 연역에 의해 세계상이 얻어질 수 있는 고도의 보편적 법칙들의 탐색」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이러한 법칙들로 인도해 주는 논리적 행로란 없다. 그것들은 경험의 대상들에 대한 지적 사랑(Einfuhlung) 같은 것에 근거한 진관에 의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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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1장
토론하기
(1) 포퍼는 왜 과학 이론이 ‘어떻게 떠올랐는가’라는 문제보다 ‘그 이론이 어떻게 검증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보았는가?
(2) 여러분이 과학 실험이나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자. 그 아이디어가 진짜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겠는가?
(3) 오늘날 인공지능, 의학, 환경과학 같은 분야에서도 ‘영감이나 창의성’과 ‘검증’의 구분은 여전히 중요한가? 만약 이 두 과정을 혼동한다면 어떤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 있겠는가?
해설읽기
이 글은 포퍼가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 이론이 처음 떠오르는 과정, 예를 들어 어떤 천재적 직관이나 우연한 영감 등은 철학적 논리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심리학의 관심사일 뿐이며, 과학철학이 다뤄야 할 문제는 그 이론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철학자의 과제는 ‘어떻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가?’가 아니라 ‘그 생각을 어떤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과학자의 발견 과정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했지만, 포퍼는 여기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실제로 영감이나 창의의 순간은 합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없고, 다만 그 후속적 검증 절차만이 논리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발견의 실제 심리적 과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 검증 과정의 구조는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퍼는 나아가 ‘새로운 생각을 산출하는 논리적 방법은 없다’고 단언한다. 어떤 이론의 출발에는 항상 비합리적 요소, 창조적 직관, 또는 경험 대상에 대한 지적 애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보편 법칙을 찾아가는 길에는 순수한 논리적 행로가 없으며, 오히려 일종의 직관적 통찰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과학적 발견은 우연과 직관에서 비롯되지만,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검증하고 반증 가능하게 만드는가이다.
정리하면, 이 글은 “발견은 심리학의 영역, 정당화는 철학의 영역”이라는 포퍼의 핵심 입장을 보여주는 부분이며, 과학철학의 분석은 후자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키워드
발견의 맥락, 정당화의 맥락, 반증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