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네스는 감정생활의 바탕에 깔린 어떤 것,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오랫동안 거기 있는 어떤 것을 ‘감정생활의 지배적 음조’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유쾌하든 덜 유쾌하든, 일종의 희미한 느낌으로 존재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것도 뚜렷하게 느끼지 않을 때’의 느낌이다. 네스는 매순간 변하는 감정과 지배적인 감정적 음조를 구별하며, 그와 같은 감정생활의 지배적 음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매순간 변하는 감정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지배적인 감정적 음조, 일종의 감정의 바탕음을 바꾸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질은 오로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와 관련된다.
고전본문
내 경우에, 나는 윤리학에 있어서 실재론자 혹은 절대론자이다. 나치즘은 내가 분명하고 명백한 불의라고 생각하는 사례를 제공했다. 그러나 나치즘에 대해 무슨 일을 하게 만들고,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쓰게 만드는 동기가 단지 부정적 판단과 부정적인 감정적 반응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취급은 전적인 수동성과 함께 관찰될 수도 있다. 싸이코패스는 옳고 그름에 대해 배울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옳은 것을 행하고 그른 것을 거부할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감정적 개입이 전혀 없는 데서 비롯한다고 부분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구별의 요점이 뭡니까? 내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무관심하지 않은 것들,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들, 삶에 차이를 가져오는 것들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걷기 여행의 세부사항과 목표는 아름다운 작은 언덕, 산 정상, 매혹적인 시내 등과 같이, 좀 더 두드러지고,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우리가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풍경의 특징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Merkwelt(지각세계)라는 인상적인 독일어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에 가장 가까운 상당어구는 “일정한 존재가 감지하는 모든 것”이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개가 어떻게 모든 것을 냄새 맡는지 알아차린다! 그 개는 시각적 풍경이 아니라 냄새의 풍경을 걸어가면서 지각한다. 냄새 외에 다른 것들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냄새는 산책을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개의 지각세계는 우리들의 것과 매우 다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길을 걸어간다면, 당신은 상당히 뚜렷한 차이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우리는 그들이 더 풍부한 지각세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통 그들은 어떤 것을 긍정적 느낌을 가지고 관찰하지만, 때로는 혐오나 다른 부정적인 느낌, 예를 들어 지루함을 느끼면서 관찰한다. 이 경우에, 내가 반복의 문제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는 것이 빠짐없이 수반된다. “그러나 그건 똑같은 거야.” “나는 이미 그걸 너무 자주 봤어.” “나는 그걸 또다시 견딜 수는 없어.” 미국의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언젠가 미합중국 태평양 연안의 위풍당당한 레드우드 나무들에 관해서, “만약 당신이 한 그루를 봤다면, 그것들 전부를 본 것이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로 마찬가지인 나무들이 그토록 많이 있는데 나무들을 계속 베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차이를 보는 곳에서 다른 이들은 항상 “같은 것”을 본다. 다음의 대화를 살펴보자.
앤 : 당신은 항상 같은 길을 걷는군요!
베아트리체 : 아뇨, 저는 결코 같은 길을 걷지 않아요!
앤 : 왜 당신은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지요? 단지 지루한 구름뿐인데요.
베아트리체 : 그것들은 결코 똑같은 구름이 아니랍니다. 그것들은 항상 새롭고, 언제나 바라볼만한 가치가 있지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것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 앞의 사물들과 사건들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지각세계는 훨씬 축소된다. 지능이 극도로 낮은 사람들과 전문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사소한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문조차 경탄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출전]『삶의 철학: 더 깊은 세계에서의 이성과 느낌 (Life's Philosophy: Reason and Feeling in a Deeper World)』
토론하기
(1)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지겨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 순간을 다르게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2) 강아지와 함께 산책한 적이 있나요?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와 나는 같은 것을 감각하고 있을까요? 차이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3) 자연 속에서 차이를 식별하는 훈련은 우리 삶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본문에 나오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레드우드 나무들의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 것에 비추어 생각해보세요.
해설읽기
일상생활에서 무감각하고 무감동한 상태에 빠져든 사람들이 있다. 아래 본문에서 네스는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무감각하고 무감동한 상태를 경계하는 듯하다. 네스는 나치즘과 사이코패스를 예를 들며,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해 배우더라도 옳은 것을 행하고 그른 것을 거부할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네스가 볼 때, 이는 곧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감정적 개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정 부분 비롯한다.
삶에 차이를 가져오는 것,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무감각하고 무감동한 상태가 아니다. 네스는 지각세계(Merkwelt)라는 독일어 단어를 빌려와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단어는 존재가 감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네스는 개를 데리고 산책할 때 개의 지각세계와 우리 인간의 지각세계는 매우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개는 뛰어난 후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감각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감지하는 것보다 후각적으로 더 풍부한 세계를 감각할 것이다.
네스는 오감을 열고 이 세계를 좀 더 풍부하게 감각할 경우, 지각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고 여긴다. 우울한 사람은 비유컨대 이 세계를 잿빛으로 경험하는데, 우울한 사람의 지각세계는 매우 축소된 세계이다. 협소한 지각세계에서 살고 있으면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동력 역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네스가 볼 때,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수행되어온 수많은 활동들은 이 세계의 수많은 존재들의 본질적 가치, 내재적 가치를 드러내기보다는 테크닉의 수준에서 도구적 가치에 관련된 활동인 경우가 많았다. 도구적 이성을 활용해서 도구적 가치를 목표로 삼는 환경운동은 표피적 수준에 머무르며, 그 활동가들은 흔히 바쁜 일상 속에서 자연에서의 생명에 관한 경탄과 기쁨의 느낌을 잃어버린다. 말하자면, 이들은 축소된 지각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심층생태학 운동에서 강조하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가진다’는 관념은 도구적 이성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느낌, 직관과 연관된 것이다. 네스는 우리가 “일정한 존재가 감지하는 모든 것”으로서의 지각세계(Merkwelt)를 확장시킴으로써 세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것(reanimation)을 요청한다. 생명과 장소에 대한 느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심층적인 변화를 위해 중요하다. 심층생태운동의 목표는 “현 사회의 가벼운 개혁이 아니라, 우리 전 문명의 실질적 재지향”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감각, 감정, 느낌, 심층생태학, 지각세계
전후맥락
네스는 감정생활의 바탕에 깔린 어떤 것,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오랫동안 거기 있는 어떤 것을 ‘감정생활의 지배적 음조’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유쾌하든 덜 유쾌하든, 일종의 희미한 느낌으로 존재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것도 뚜렷하게 느끼지 않을 때’의 느낌이다. 네스는 매순간 변하는 감정과 지배적인 감정적 음조를 구별하며, 그와 같은 감정생활의 지배적 음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매순간 변하는 감정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지배적인 감정적 음조, 일종의 감정의 바탕음을 바꾸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질은 오로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와 관련된다.
고전본문
내 경우에, 나는 윤리학에 있어서 실재론자 혹은 절대론자이다. 나치즘은 내가 분명하고 명백한 불의라고 생각하는 사례를 제공했다. 그러나 나치즘에 대해 무슨 일을 하게 만들고,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쓰게 만드는 동기가 단지 부정적 판단과 부정적인 감정적 반응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취급은 전적인 수동성과 함께 관찰될 수도 있다. 싸이코패스는 옳고 그름에 대해 배울 수 있겠지만, 그에게는 옳은 것을 행하고 그른 것을 거부할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감정적 개입이 전혀 없는 데서 비롯한다고 부분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구별의 요점이 뭡니까? 내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무관심하지 않은 것들,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들, 삶에 차이를 가져오는 것들은 어떠한가? 예를 들어, 걷기 여행의 세부사항과 목표는 아름다운 작은 언덕, 산 정상, 매혹적인 시내 등과 같이, 좀 더 두드러지고,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우리가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풍경의 특징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Merkwelt(지각세계)라는 인상적인 독일어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에 가장 가까운 상당어구는 “일정한 존재가 감지하는 모든 것”이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개가 어떻게 모든 것을 냄새 맡는지 알아차린다! 그 개는 시각적 풍경이 아니라 냄새의 풍경을 걸어가면서 지각한다. 냄새 외에 다른 것들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냄새는 산책을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개의 지각세계는 우리들의 것과 매우 다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길을 걸어간다면, 당신은 상당히 뚜렷한 차이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관찰한다. 우리는 그들이 더 풍부한 지각세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통 그들은 어떤 것을 긍정적 느낌을 가지고 관찰하지만, 때로는 혐오나 다른 부정적인 느낌, 예를 들어 지루함을 느끼면서 관찰한다. 이 경우에, 내가 반복의 문제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는 것이 빠짐없이 수반된다. “그러나 그건 똑같은 거야.” “나는 이미 그걸 너무 자주 봤어.” “나는 그걸 또다시 견딜 수는 없어.” 미국의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언젠가 미합중국 태평양 연안의 위풍당당한 레드우드 나무들에 관해서, “만약 당신이 한 그루를 봤다면, 그것들 전부를 본 것이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로 마찬가지인 나무들이 그토록 많이 있는데 나무들을 계속 베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차이를 보는 곳에서 다른 이들은 항상 “같은 것”을 본다. 다음의 대화를 살펴보자.
앤 : 당신은 항상 같은 길을 걷는군요!
베아트리체 : 아뇨, 저는 결코 같은 길을 걷지 않아요!
앤 : 왜 당신은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지요? 단지 지루한 구름뿐인데요.
베아트리체 : 그것들은 결코 똑같은 구름이 아니랍니다. 그것들은 항상 새롭고, 언제나 바라볼만한 가치가 있지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것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 앞의 사물들과 사건들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지각세계는 훨씬 축소된다. 지능이 극도로 낮은 사람들과 전문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사소한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문조차 경탄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출전]『삶의 철학: 더 깊은 세계에서의 이성과 느낌 (Life's Philosophy: Reason and Feeling in a Deeper World)』
토론하기
(1)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지겨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 순간을 다르게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2) 강아지와 함께 산책한 적이 있나요?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와 나는 같은 것을 감각하고 있을까요? 차이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3) 자연 속에서 차이를 식별하는 훈련은 우리 삶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본문에 나오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레드우드 나무들의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 것에 비추어 생각해보세요.
해설읽기
일상생활에서 무감각하고 무감동한 상태에 빠져든 사람들이 있다. 아래 본문에서 네스는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무감각하고 무감동한 상태를 경계하는 듯하다. 네스는 나치즘과 사이코패스를 예를 들며,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해 배우더라도 옳은 것을 행하고 그른 것을 거부할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네스가 볼 때, 이는 곧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감정적 개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정 부분 비롯한다.
삶에 차이를 가져오는 것,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무감각하고 무감동한 상태가 아니다. 네스는 지각세계(Merkwelt)라는 독일어 단어를 빌려와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단어는 존재가 감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네스는 개를 데리고 산책할 때 개의 지각세계와 우리 인간의 지각세계는 매우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가령 개는 뛰어난 후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감각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감지하는 것보다 후각적으로 더 풍부한 세계를 감각할 것이다.
네스는 오감을 열고 이 세계를 좀 더 풍부하게 감각할 경우, 지각세계가 확장될 수 있다고 여긴다. 우울한 사람은 비유컨대 이 세계를 잿빛으로 경험하는데, 우울한 사람의 지각세계는 매우 축소된 세계이다. 협소한 지각세계에서 살고 있으면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동력 역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네스가 볼 때,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수행되어온 수많은 활동들은 이 세계의 수많은 존재들의 본질적 가치, 내재적 가치를 드러내기보다는 테크닉의 수준에서 도구적 가치에 관련된 활동인 경우가 많았다. 도구적 이성을 활용해서 도구적 가치를 목표로 삼는 환경운동은 표피적 수준에 머무르며, 그 활동가들은 흔히 바쁜 일상 속에서 자연에서의 생명에 관한 경탄과 기쁨의 느낌을 잃어버린다. 말하자면, 이들은 축소된 지각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심층생태학 운동에서 강조하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자체의 본질적 가치를 가진다’는 관념은 도구적 이성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느낌, 직관과 연관된 것이다. 네스는 우리가 “일정한 존재가 감지하는 모든 것”으로서의 지각세계(Merkwelt)를 확장시킴으로써 세계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것(reanimation)을 요청한다. 생명과 장소에 대한 느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심층적인 변화를 위해 중요하다. 심층생태운동의 목표는 “현 사회의 가벼운 개혁이 아니라, 우리 전 문명의 실질적 재지향”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감각, 감정, 느낌, 심층생태학, 지각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