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은 1948년 발표된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친일 행위에 대한 회고와 반성의 성격을 지닌 대표적 작품이다. 하지만 친일 행위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채만식의 친일 행위에 대한 회고와 반성을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보는 문제적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의 어느 날, ‘나’는 친구인 ‘김’이 주간으로 있는 신문사를 찾아간다. 신문사에는 ‘김군’만이 아니라 ‘윤’도 있었다. ‘윤’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일제가 작가들로 하여금 친일적인 글을 쓰게끔 강요하고 친일적인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도록 만든 것에 반대해 기자 일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버렸다. 반면에 ‘나’는 일제의 강요와 협박을 못 이겨 친일적인 강연에 참여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 ‘윤’은 이러한 ‘나’의 행동을 크게 비난하며, 민족 반역자들을 죄다 숙청해버려야 한다고 날을 세운다. 이를 지켜보던 ‘김’은 ‘윤’에게 비난받는 ‘나’를 방어해주기 위해 ‘윤’의 행동을 나무란다. ‘김’의 관점에서 볼 때, 친일하지 않은 ‘윤’의 행동은 훌륭한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윤’이 금수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김’의 방어를 고맙게는 생각하지만 아무리 방어해도 자신의 친일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며 부끄러워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 동안 앓아 눕다가 자신의 집에 머무는 중학생 조카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중학생 조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일제 시대에 친일파였던 학교 선생님에 대항하여 동맹 휴학이 일어났는데, 조카는 자기 공부가 급하다는 이유로 동맹 휴학에 참여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조카의 행위를 크게 나무란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식민지 말기는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과 같이 제국주의 일본이 대외적 침략 전쟁을 펼치던 시기였다. 침략 전쟁 수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사상을 탄압하고 정체성을 말살하는 등의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펼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서구 열강에 맞선 전쟁을 통해 일본인이 주도하여 아시아인들을 해방시키겠다는 논리였다. 그 당시 총칼을 통해 동아시아인들을 괴롭히던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그러한 기만적 논리를 펼치며 식민지인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대의 많은 작가들 중 일부는 적극적으로 친일적 행위를 하였고, 일부는 마지못해 하였으며, 해외로 떠나거나 절필해버리는 작가들도 있었다. 작품 창작의 경향 역시 크게 변하여 1920-30년대와 같이 식민지 현실을 비판하거나 문제 삼는 작품은 쓰일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작가들은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거나 외부 현실을 그림 그리듯 관찰하는 서술하는 작품들을 주로 창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은 이러한 식민지 조건 아래에서, 어렵사리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던 한 지식인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친일과 반일이라는 문제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작품에도 언급이 되는 대로, 식민지 말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내놓은 주장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친일 일변도’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사태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친일이면서도 친일 아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화 전략을 구상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2등 국민으로서 갖은 차별을 다 받고 살았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일본인들과 동등한 수준의 시민권을 획득하자는 논의를 펼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논란은 많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이 조선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일제의 논리에 동조하는 전형적 친일 논리로 이해하는 한편, 다른 이들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평등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외에도 이전 시기에 사회주의적 입장에 근거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비판해오던 지식인들이 역사철학적 개념어를 통해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동아협동체’ 논리 등이 갖는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식민지 말기에 쏟아져 나온 다양한 주장들은 식민지 시기를 단순히 친일vs. 반일의 구도로만 나누어 이해하는 통념이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처럼 식민지 말기의 상황과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을 겹쳐 읽어보면 독자들은 식민지 시기의 친일 행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친일 행위란 무엇인가, 친일 행위의 경중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친일 행위를 한 사람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친일 행위에 정상참작의 여지는 없는가 등과 같은 질문과 같이 친일 행위에 대한 법적 문제들뿐만 아니라, ‘과연 나라면 저 시대에 살면서 친일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와 같은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